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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9 |
필봉 풍물굿 축제
관리자(2005-09-08 16:54:57)
푸진 굿, 푸진 삶   (필봉 풍물굿 축제) 전주에서 순창 방면으로 길을 따라 가길 30여분. 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에 고즈넉하게 앉아있는 필봉굿 전수관에 지난 8월 20일과 21일에 걸쳐 걸쭉한 한판 굿 잔치가 벌여졌다. 매년 이맘때면 벌여오는 ‘필봉 풍물굿 축제’, 그 열 번째 마당이 펼쳐진 것이다. “요즘 풍물굿이 너무 공연쪽으로 가다보니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는 원래 풍물굿의 의미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아요. 나누는 문화는 점차 희미해지고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변모해가고 있는 것이죠. 농촌문화를 보기 위해 도시의 공연장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이런 추세에서 관객들이 점차 함께 참여해보려는 의지도 약해지고 있구요.” 양진성 필봉굿 보존회장은 일반인들이 시골에 직접 와서 어울리는 필봉굿 축제를 통해 원래 마을 굿의 의미를 되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풍물굿 축제에는 임실필봉농악을 비롯해 진주삼천포농악, 평택농악, 이리농악, 강릉농악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지역의 대표적인 마을굿들이다. 오후 한시부터 시작된 ‘국악한마당 및 여는 판굿’이 끝나고, 세 시부터 각각 굿마당에 오른 이들은 지역 마을굿의 자부심을 걸고 한판 신나는 굿판을 벌였다. 굿마당은 물론이고 언덕이며 도로까지 빽빽하게 들어찬 관람객들에게는, 서로 다른 색깔의 각 지역 대표굿을 한자리에서 감상하는 호사(?)스러운 자리였다. 열 번째를 맞이하는 올해 축제는 ‘중요무형문화재 합동공연’과 더불어, 고 양순용 선생의 10주기 추모행사가 함께 열렸다. 고 양순용 선생은 현재 필봉굿의 체계를 정리하고, 4만여 제자들을 양성한 필봉마을굿의 큰 어른. 오후 일곱 시부터 시작된 고 양순용 선생 추모행사에는 추모사와 함께 문병란 시인의 「꽹가리 소리 한 평생」 추모시 낭독, 추모비 건립식 등이 있었다. 양진성 보존회장은 “선생님이 가시고 그 십년이라는 시간만큼 선생님의 굿에 대한 열정과 재능과 신명은 굿을 사모하는 이들의 마음이 더해져 참다운 굿판이 사라지지 않도록 힘을 주고 있다”며, “그 십년을 두고 더욱 참된 굿판으로 울타리가 있는 굿이 아닌 모두를 안을 수 있는 굿 공동체 세상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행사에는 2백여 명의 연희패와 함께 2천여 명의 관램객들이 모여 들었다. 마음을 먹고 찾아온 이들에게는 잠시의 적막도 아까운 시간들일 뿐이었다. 정식 공연에 끼여 있진 못했지만, 행사에 참여한 사회패와 대학생패들은 중간 중간 굿마당이 빈틈이면 어김없이 꽹가리와 북, 장고, 소고 등을 들고 나와 신나는 연희를 벌여 관람객들을 마당으로 이끌었다. 이 시간만큼은 이미 연희패와 관람객의 경계가 무너지고, 모두가 연희패로써 하나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필봉굿은 사람들을 한마당으로 끌어 모아 대동시키는 힘이 있어요. 이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행사장을 찾은 정동찬(33·전남도립국악단 단원)씨는 “이번 행사가 다양한 지역의 굿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무엇보다 의미있었다”며, “필봉굿은 ‘푸진굿, 푸진삶’을 모토로 고집스럽게 대동굿의 길을 가고 있어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양순용 선생의 추모제가 끝나고 다시 걸쭉한 굿판이 시작됐을 때, 산 깊은 필봉마을에는 이미 밤이 내려 앉아 있었다. 하지만, 자리를 뜨는 관람객들은 없었다. 하늘 가운데 올라온 달이 사위를 밝히고 텁텁한 막걸리 몇 잔에 얼굴이 붉어질 즈음부터 본격적인 굿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필봉의 밤은 흥겨운 풍물굿 소리와 함께 깊어가고 있었다.    | 최정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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