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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9 |
[모악산]미륵신앙의 도량, 금산사
관리자(2005-09-08 16:56:59)
미륵신앙의 도량, 금산사 금산사는 모악산에 자리해 있는 전북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삼국시대에 창건되었으니까 역사가 무려 1400여년이다.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오늘날도 명성과 사세가 크다. 말사가 70여개에 이르니 그럴만도 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금산사를 찾을 때면 무슨 생각을 할까? 아니 ‘금산사’ 하면 무엇을 먼저 떠올릴까? 봄날의 벚꽃과 절 마당의 잣나무 또는 감나무도 있겠지만 아마 미륵전과 방등계단이 아닐까 싶다. 미륵전은 말 그대로 미륵불을 모신 전각이다. 이러한 미륵전은 금산사만이 아니라 전국의 많은 사찰에서 갖고 있는 전각이다. 그런데 왜 유독 금산사의 미륵전이 한국의 미륵전을 대표하고 있을까? 그것은 생긴 모양과 금산사의 역사 때문이다. 금산사의 미륵전은 밖에서 보면 3층인데 안에서 보면 1층의 통층이다. 즉 외부는 3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층 구분 없이 바닥에서 천정까지 뻥 뚫린 한 층으로 되어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건물 양식이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곳에 모셔야할 불상이 너무 커서 3층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다. 그것은 미륵신앙 때문이다. 미륵신앙과 관련된 경전으로는 미륵삼부경이 있는데 미륵상생경과 미륵하생경 그리고 미륵대성불경이 그것이다. 미륵전은 이중 미륵하생경 즉 미륵하생신앙과 관련이 있다. 미륵하생신앙이란 미륵이 때가 되면 하늘에서 땅으로 재림하여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제도 할 것이라는 것을 믿는 신앙이다. 하생경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미륵보살이 도솔천에서 수행하고 있다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56억 7천만 년 후에 사바세계에 하생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설법으로 중생을 제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의 설법은 단 세 번만 이루어진다. 아무리 무지한 중생이라도 미륵의 설법을 세 번에 걸쳐 듣게 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에 설법을 4번까지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란다. 금산사 미륵전은 바로 미륵의 이 3회 설법을 상징하기 위해 3층으로 만들었으며 전각의 명칭도 층층이 다른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이다. 1층이 대자보전이고 2층이 용화지회이며 3층이 미륵전이다. 모두 미륵불과 관련된 이름들이다. 대자보전은 미륵보살이 자씨였기에 자씨의 전각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용화지회는 미륵이 재림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설법하게 될 것을 상징하는 이름이며 미륵전은 미륵불이 계시는 전각이라는 뜻의 명칭이다.   금산사엔 미륵전 외에도 미륵신앙과 관련된 건축물이 또 있다. 미륵전 오른쪽에 위치한 방등계단이 그것이다. 계단이란 스님들이 ‘계를 받는 단’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방등계단은 ‘평등한 계단’ 정도의 뜻이 된다. 이곳에서 계를 받은 사람은 이전의 신분이 어떠했든지, 그리고 지금의 지위가 어떠하든지 모두 평등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방등계단은 이렇듯 미륵신앙과 관련이 있다. 미륵전이 미륵하생신앙을 조형화한 것이라면 방등계단은 미륵상생신앙을 조형화 해 놓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상생신앙이란 스스로가 열심히 수행해서 미륵이 계시는 하늘나라(도솔천)로 직접 올라가기를 염원하는 신앙이다. 미륵이 재림하기를 갈망하기 전에 스스로가  스스로를 하늘로 휴거시키고자 염원하는 신앙이 바로 미륵상생신앙이다. 타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력으로 하늘에 나고 싶었던 사람들의 믿음! 그것이 상생신앙이다. 그런데 이 방등계단이 상징하고 있는 세계가 바로 상생신앙의 요체인 도솔천이다. 도솔천은 불교에서 말하는 28개의 하늘 중 하나로 미륵보살(미륵이 도솔천에 있을 때는 보살의 신분이다. 사바세계에 하생할 때 비로소 부처의 신분이 된다)이 주인인 하늘이다. 금산사는 왜 이렇게 미륵신앙과 관련이 깊을까? 그것은 금산사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금산사는 백제 때 창건되었지만 대찰로 중창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에 의해서였다. 백제가 망하고 100여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백제가 망한지 겨우 100여년이 지난 뒤 백제 땅에 세워진 절이라면 목적은 분명한 것이다. 진표율사가 미륵보살을 만난 후 이곳에 미륵보살을 모신 것이나 금강계단이 아니라 방등계단이 만들어진 것은 모두 한 가지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한다. 정복민으로부터 받아야했던 차별과 그들에게 당해야했던 압박이 백제유민들로 하여금 방등계단을 만들고, 미륵불을 모시게 하지 않았을까싶다. 이들은 미륵신앙에 의지하면서 좋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그 세상은 결국 후삼국으로 나타난다. 견훤에 의한 후백제의 건국. 견훤이 궁예처럼 미륵의 화신을 자처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견훤은 이들에게 후천개벽(?)을 약속한다. 금산사와 견훤과의 긴밀한 관계는 견훤의 금산사유폐사건이나 금산사 초입에 있는 속칭 견훤성문으로 미루어짐작 할 수 있다. 견훤이 미륵신앙의 도량이었던 금산사와 긴밀했다는 것은 새 나라를 건국한 견훤의 대국민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그러나 견훤은 새나라 건설에 실패한다. 이후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중심지라기보다 오히려 한국 불교의 특징인 통불교적인 성격이 강한 사찰로 성장해 나간다. 그러다 근현대에 이르러 다시 미륵신앙의 메카로 급부상하게 된다. 바로 모악산 때문이다. 모악산이 계룡산과 더불어 유사불교적 성격을 갖는 신흥종교의 중심지로 자리하면서 금산사 주변엔 많은 신흥종교단체들이 운집하게 된다. 이들 종교단체들은 대부분 미륵사상을 기저에 내포하면서 후천개벽을 꿈꾼다.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꿈들도 야물어 갔다. 그러나 앞서봤던 미륵삼부경에 따르면 미륵불은 절대 난세나 말세에 오시기로 한 분이 아니다.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러울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평화가 물결칠 때 오시겠다고 한 분이다. 사람들의 마음엔 선기가 넘치고 하늘에선 꽃비가 내리며 땅에선 오곡이 풍성하여 집집마다 풍족함이 넘쳐나는 평화로운 시기에 미륵불이 이 땅에 재림하신다고 하였다. 그러한 세상이어야만, 그러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여야만 미륵의 설법을 단 한번만 들어도 단박에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단 한번의 설법에 거의 모든 중생이 깨닫게 된다고 하였다. 아무리 어두운 중생이라도 세 번이면 깨닫는다고 했으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미륵은 이처럼 중생들 스스로가 지상을 낙원으로 만들어 놓을 때 재림하게 되어 있는 미래불인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륵이 하생할 때를 잘못알고 있다. 말세에 하생하는 미래불로 말이다. 그래서 난세 때만 되면 미륵을 자청했던 사람들이 그리 많았던 것이 아닐까? 김미란 | 전북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는 금산사성보박물관 학예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전북대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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