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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 |
[막걸리] 안도현 시인한테서 듣는 막걸리 이야기
관리자(2005-10-13 16:12:30)
안도현 시인한테서 듣는 막걸리 이야기 ▶지난번에 평양에서 열린 민족작가대회에 다녀오셨지요? 먼저 감회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 이번 민족작가대회는 하나의 모국어를 사용하는 남북의 작가들이 60년 만에 자리를 함께 한 뜻 깊은 대회였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모국어를 쓰는 작가들마저도 온전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숱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뼈아픈 자리이기도 했지요. 저는 이번이 두 번째 방북입니다만, 분단 60년의 세월이 여전히 견고한 성처럼 여겨졌습니다. 북측은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북쪽 작가들의 명단을 끝내 소상하게 밝히지 않아 우리를 적잖게 실망시켰습니다. 인천공항에서 평양행 비행기를 탈 때는 누구든지 북쪽 작가들과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간절히 고대했을 겁니다. 우리 작가들은 두 차례의 공식 연회 이외에 백두산과 묘향산 일정이 진행되는 시간에 어쩌다가 띄엄띄엄 수인사나 나눌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민족작가대회의 백미라고 할만한 ‘백두산 통일문학의 새벽’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고려호텔과 삼지연의 배게봉호텔에서 각각 한 차례씩 모임을 가진 일은 개인적으로 뜻밖의 수확이었습니다. 공연 연습도 연습이지만, 연습 후 사적인 대화의 자리는 우리가 결국 하나라는 걸 서로 눈빛으로도 확인하는 장이었습니다. ▶아, 그건 다른 분들이 쓴 방북기에는 나오지 않은 이야기군요.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는지요? 그리고 5박 6일 동안 북한의 술도 많이 드셨겠지요? - 사적인 자리에서는 누구나 인간이고 누구나 시인이었습니다. 북의 리호근 시인이 남쪽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는다며, 요즘 젊은 시인들이 술을 잘 마시지 않아 안타깝다는 고은 선생의 글도 읽었다는 말을 꺼낸 게 발단이었습니다. 그러자 좌중의 이야기 주제는 ‘술’로 통일되기 시작했지요. 『청춘송가』를 쓴 남대현 선생은 1989년에 황석영 선생이 방북했을 때, 어느 날 당신의 집을 밤중에 찾아와 술병을 모두 동 냈다고 ‘폭로’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2차 대회가 서울에서 열리게 되면 그날 우리 집 어지럽힌 것 그대로 똑같이 복수할 거야.” ‘복수’라는 말이 ‘화해’보다 더 깊은 울림을 던져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어 『황진이』의 작가 홍석중 선생이 말했습니다.   “나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대취하는 날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애주가인 북의 오영재 시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술로 한 번씩 속을 바꿔주는 건 몸에도 좋은 일이지요.” 남북 작가들의 술타령은 점입가경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그때 고은 선생이 가만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술로 몸에 혁명적 타격을 가하는 거야. 암, 그래야 해.” 저도 5박 6일 동안 평양소주에다 룡성맥주에다 들쭉술에다 금술에다 몸에 엄청나게 혁명적 타격을 가하고 왔습니다. ▶오늘의 주제가 막걸리입니다만, 평소에 술을 많이, 그리고 자주 드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부터 시인, 하면 술이 떠오를 정도로 시인과 술의 관계는 왠지 밀접한 것 같습니다. 그 까닭이 뭘까요? - 물론 저는 술을 좋아합니다. 제가 시인이기 때문에 술을 좋아하는 게 아니고, 저라는 인간이 아직 철이 덜 들어서일 겁니다. 제 생각으로는 시인은 대체로 이 세상의 질서를 거꾸로 거스르려는 욕망을 지닌 자들입니다. 이리 가라 하면 저리 가고, 저리 가라 하면 그리로 가는 자들이지요. 세상의 형편에 발을 덜 맞추는 것, 빠름을 신봉하는 사회에 느린 것도 중요하다고 엉덩이를 뒤로 빼며 뭉그적거리는 것, 다 시인들이 꿈꾸는 거죠. 다들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며 헬스클럽에 다니고 운동을 하는 게 이즈음 세태의 한 단면이라면 시인들이 거기에 합류하는 일은 참으로 난망해 보입니다. 그러니 저녁때마다 술집을 어슬렁거리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지금은 옛날 봉건시대처럼 시인들이 기생 옆에 끼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술상을 차려놓은 채 음풍농월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유독 막걸리를 좋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추억이라도 있습니까? - 80년대 초 대학 다닐 때부터 막걸리를 좋아했지요. 주머니 사정이 궁할 때이니 막걸리는 술이 아니라 훌륭한 밥이었습니다. 배도 불려주고 취기도 오르게 해주니 궁핍한 문학도들이 즐겨 찾을 수밖에 없었지요. 원광대를 다니면서 학교와는 멀리 떨어진 익산 시내 중앙시장에 단골집을 만들어 놓고 수없이 들락거렸지요. 그 집 이름이 ‘이화집’인데, 참 좋았던 시절이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소설 쓰는 이병천 형을 만나기 위해 전주에 오면 늘 선배들은 ‘덕집’에 죽치고 앉아 있곤 했습니다. 술이 거나해지면 다들 불콰해진 얼굴로 ‘똥폼’을 잡고 노래를 하나씩 했지요. 젓가락 장단은 필수였고요. 박배엽, 박두규, 이두엽, 김근수, 백학기와 같은 선배들의 이름이 금방 떠오르는군요. ▶요즘은 일주일에 몇 번 정도 막걸리를 입에 대시는지요? -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그것도 자제를 할 때 그렇습니다. 화가 박민평 선생님 같은 분은 거의 매일 드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려면 멀었습니다. ▶다른 술보다 막걸리를 즐기는 까닭은요?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요……. - 막걸리 한 주전자를 주문하면 열 몇 가지의 안주가 따라 나오는 곳이 전주입니다. 음식 메뉴판을 바라보며 머리로 안주 값을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저는 다른 지방에 가면 막걸리 잘 마시지 않습니다. 막걸리는 뭐니뭐니해도 전주입니다. 메추리알, 배추뿌리, 가오리무침, 돼지비곗살, 조기찜, 오이와 당근, 풋마늘쫑, 계란부침, 부추전, 대합, 생굴, 꼬막, 주꾸미에다 얼큰한 홍어탕이나 청국장…… 막걸리를 파는 집집마다 안주가 다 다르니 주워섬길 수도 없네요. 또 하나 막걸리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저는 막걸리는 술이지만 아주 대단한 야쿠르트라고 생각합니다. 막걸리를 마신 다음 날, 화장실에서 저는 매번 그걸 확인하지요. 황금 빛깔을 가진 용이 꿈틀꿈틀 승천하는 것을요. 막걸리 아닌 다른 술은 황금빛 용을 만들지 못합니다. 혹시 만성변비로 고생하는 분들이 있다면 저녁에 막걸리 한 잔을 권하고 싶습니다. 약이 필요 없답니다. ▶끝으로 요즘 자주 가시는 막걸리집은요? - 세 군데 있습니다. 송천동 전라고 입구의 ‘대장군왔소’, 최근에는 자주 못 갔지만 뻔질나게 드나들던 효자동의 ‘홍도주막’, 그리고 우리 집 앞에 있는 ‘안행 시골 막걸리’. 그러고 보니 외상값을 아직 안 갚은 데도 있네요. 오늘 저녁엔 꼭 들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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