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 |
정경숙 개인전 - ‘내안의 나’를 찾아서
관리자(2005-12-09 16:23:34)
글 | 김종주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11월 초 전북예술회관 전시실에서는 가을의 풍성함처럼 개인전과 그룹전 등 여러 전시들이 함께 열렸다. 정경숙의 2회 개인전은 2층 전시실 한 곳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작품들이 발산하는 에너지와 북적이는 관객으로 전시장은 열기로 가득 찼다.
정경숙전의 작품들을 대하면서 일종의 미적 쾌감을 느꼈다. 화면의 시각적인 리듬감과 끊임없는 생성상태의 이미지가 즉각적으로 내게 전달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캔버스 표면에는 작가의 잠재된 욕망과 감정들이 용솟음치듯 원색의 아크릴 물감들이 큰 획을 그으며 자유분방하게 중첩되고, 튀어나가고, 흘러내리고 스며들었다.
전시회가 끝나고 일주일쯤 뒤에 그의 작업실을 잠깐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인후동의 한적한 곳 2층에 자리한 작업실을 찾아 들어선 순간 전시회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몇 작품들과 재회하였다. 작품들을 살펴보고 차 한잔 마시면서 작가와 얘기를 나누었다. 전시회 기간 중 관객들로부터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의미를 묻는 질문도 받았고, 작품 제작에 대한 에너지를 재충전시킬 수 있는 흐뭇한 시간들을 보냈다고 한다. 전시가 끝나는 날에는 일주일간의 전시일정이 너무 짧게 느껴져 아쉬운 마음에 작품을 철수하기 싫었다고 한다.
그는 대학에서 처음에 생물학을 전공했는데 결혼 후에 다시 미술대학에 입학하여 대학원까지 마치고 지금까지 꾸준하게 작업해오고 있는 40대 초반의 여성작가다. 자신의 삶에 충실해왔고 대학원을 마칠 때 까지 자기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주변 작가들의 작품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원 졸업 후 작가의 길로 들어서고부터는 주변의 작품들도 관심 있게 보고, 세 번의 유럽여행을 통해 크게 자극 받으면서 자신의 생각과 시야가 변화되었고, 자신의 생각과 작업에 대해 좀더 되물어보고 음미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는 대학원 졸업 발표전에서 자신의 작품성격에 대해 “원색의 대비, 두꺼운 마띠에르, 격렬하고 무작위적인 붓질, 역동적인 획 등은 ‘내안의 나’를 표현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여긴다. 내안에 솟구치는 에너지 -지금껏 길들여지고 만들어진 내가 아닌 순수 본연의 ‘나’-, 구속받지 않은 열정들을 나의 신체적 동작에 실어 화면에 표현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의미를 “행위자체와 물감의 자발성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표현이 작가
의 심층적 표현이자 자기 확인의 방법이 된다. 회화는 진정한 자아의 추구여야 한다는 관심에서 작가의 행위는 작가의 실존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내용을 드러낸다.”고 한 현대미술비평가 로젠버그의 말에서 찾고 있다.
그의 작품형식은 추상표현주의적 성격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화면에 자신의 욕구와 갈등을 의식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위자체에 중점을 두어 표현하는 추상표현주의와, 인간의 내면세계에 존재하는 무의식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써의 오토마티즘(자동기술법)은 그가 추구하는 바와 상통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무의식 상태에서 오토마티즘을 통하여 화면에 예측할 수 없게 나타나는 형태는 우연적인 형태의 이미지들을 개입시키게 되는데, 이러한 표현의 흔적들은 몸 전체를 움직여 행위하는 가운데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알 때, 그 행위의 순수성 자체에 중요성을 부여하게 된다. 이것은 무의식의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움직여지는 표출이야말로, 외부로부터의 영향 없이 순수한 인간적인 해방을 가져온다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의식으로부터 발전되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무의식을 표현하기 위한 소극적인 의미로서가 아닌,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서 의식의 조정을 거치는 자발성의 표현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의식 속에 퇴적된 강박관념이나 고정관념, 지금껏 은연중 길들여지고 만들어진 자신을 깨부수고 순수한 본연의 나를 찾기 위해, 그동안 자신의 울타리 속에 갇혔던 좁은 세계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아를 찾고자하는 필연적 내적 의지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
그의 작품제작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Bursting 이란 제목을 붙인 이번 전시 팜프렛에 실린 작가의 말을 들어본다.
“나의 그림은 표현 할 때의 행위 자체가 큰 의미를 갖는다. 의식적인 형상성을 배제하고, 내면의 감정을 자유분방하게 즉흥적으로 쏟아내는 행위를 통해 나는 무한한 자유와 해방감을 느낀다.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리는 과정을 통하여 나타나는 우연적인 형태의 이미지들은 내가 감지하지 못한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이끌어간다. 오늘도 나는 삶에 대한, 자신에 대한, 수많은 물음과 마주하고 그것을 화면안에서 분출 -Bursting-하며 답을 찾을 것이다.”
그의 이번 전시작품들은 3년 전 대학원 졸업 발표전 때와 비교하면 상당히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전체 작품에서 의식에 의한 선, 면, 형태이미지 등 재현적인 요소를 모두 배제하였다. 또한 캔버스의 빈 바탕면 자체를 중요한 요소로서 활용하여 화면 속에 숨을 불어넣고 공간을 확장시켰다. 색조는 한층 풍부해졌고 선명한 대비와 조화를 이루며 약동하고 있다. 하얀 바탕에 검정색만을 사용한 작품들에서는 색다른 분위기를 창출하며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그리고 각기 따로 제작된 작품이 전시공간에서 같이 만나서 또 다른 작품으로 재탄생 되는데, 미적 요소들이 우연하게 충돌하여 예상치 못한 생동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번 작품들은 자체의 현존감이 강해졌으며 대범하고 간결한 형식을 시도하면서 세련되어졌고 ‘의미있는 형식’을 띠어가면서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본다.
그의 작품은 자신의 내면적 갈등과 감정들을 즉흥적인 행위에 실어 캔버스에 분출해놓은 것들이다. 그는 ‘내안의 나’를 찾아서 행하는 작업 속에서 무한한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며 작품에 표출된 화면 속에서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만나고 있다.
그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창작의 열정을 쏟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열정적인 작업을 지속시킬 것이며 그만큼 생명력 강한 아름다운 빛을 발하게 되리라 본다.
김종주 |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다가, 2003년부터 전북도청문화예술과에서 전북도립미술관 건립 준비를 해왔으며, 현재는 전북도립미술관에서 학예실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