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부터 28일까지 전북예술회관 공연장에서 총 8회에 걸쳐 열린 2013 전북브랜드공연 뮤지컬 <춘향>(연출 권호성 극본 김정숙) 시연공연이 막을 내렸다. 전북도가 주최하고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회
상설공연추진단(단장 홍승광)이 주관하는 전북브랜드공연은 문광부
지원 5억원과 도비 2억원 등 7억원이 투입됐으며, 문광부가 전통문화자원을 현대화해 세계적 공연관광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한 사업으로 만들어졌다. 상설공연으로 자리 잡기까지 무엇을 보강하고 어떻게 보완해야 할까. 네 명의 전문가에게 본 ‘춘향’에 대한 평을 들었다.
창극의 그늘을 맴도는 낯선 뮤지컬
곽병창 우석대
교수, 극작가
원작의 스토리를 비틀어서 새로운 버전을 만들려는 작가의 시도에는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롭게 변형을 꾀한 스토리의 완결성이 현저히 떨어져서 설득력을 얻기가 힘들어 보인다. ‘춘향 행세를 하다가 도망을 간 향단과 향단 노릇을 하다가 고초를 겪는 춘향’이라는 설정만 남아있을 뿐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이 너무 빈약하고 개연성이 없다. 이층무대에까지 은장도를 들고 쫓기던 춘향이 마치
추락해서 죽는 듯 보였다가 다시 감옥 씬에 등장하는 과정은 설명이 부족하고, 기생도 아닌 향단이(춘향인 줄 몰랐으므로 변학도에게 그녀는 향단이인 셈이다)를 수청 들라
하는 변학도의 입장은 모호하기만 하다. 끝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춘향의 입장은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 사랑과 이별 장면 사이의 연결도 너무 거칠고, 변학도에게 많은 장면을 할애하고도 정작 다른 주인공들과의 갈등 관계보다 배우 개인의 코믹한 연기에만 의존하고
있어서 극적 개연성이 낮다. 쇼-스타퍼(showstopper) 노릇에 충실한 방자와 향단의 연기는 칭찬할 만하지만, 몽룡-춘향 두 주인공의 존재감은 너무 미약하다.
관객들에게 익숙한 원작의 소리 대목들을 거의 활용하지 않고 새로운 곡을 배치한 이유는
뮤지컬이라는 특성을 살리고자 한 듯하다. 하지만 사랑가, 이별가, 장모상봉 대목, 어사출도 대목 등에서 새로 시도한 음악들은 대체로
낯설고 지루했다.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는 이른바 복창(復唱, reprise)의 경우(‘사랑꽃’,
‘양반은 아무나 되지’ 등)에도, 바뀐 상황에
적절한 변주(variation)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동어반복적 지루함을 남길 뿐이다. 앞뒤에 배치한 풍물놀이는 장면에 잘 녹아들지 못 하고 겉돈다. 잔치
장면에서 군중들이 퇴장하고 풍물패만 남아 기량 자랑을 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극장 조건의 어려움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무대와 조명,
음향, 의상 등은 전체적으로 너무 구태의연하고 촌스럽다.
불필요한 이층 세트는 비좁은 무대를 잠식해서 연기 공간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고, 동헌은
산신각처럼 작고 음산해 보인다. 조명은 낡은 80년대식 쇼
조명으로 일관하고 있고, 연주자들이 좌우로 나뉘어 배치된 것은 음악의 몰입도와 앙상블을 해친다. 오래 된 창극에서 본 듯한 사실적 무대미술(세트, 의상)이 과연 새로운 뮤지컬 버전에 어울리는 설정인지도 재고할 대목이다.
‘전북 브랜드 공연의 형식이 왜 뮤지컬이어야 하는가?’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뮤지컬을 표방한 이상 뮤지컬의 어법에라도 충실해야 한다. 작가와 연출가는 뮤지컬 분야에서 이미 최고의 역량을 인정받은 중견 연극인들이다. 기대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범공연이다. 이들의 자존심과 눈높이에
모자라지 않는 작품으로 재탄생하기를 기대한다.
대중성의 가치를 엿보다
최동현 군산대 교수
<춘향전>은 역시 수많은 의미로 읽어낼 수 있는 열린 텍스트이다. 그
동안 수많은 <춘향>이 탄생되었고, 또 <춘향>이
탄생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전라북도 브랜드 공연, 뮤지컬 <춘향>은 전통적인
<춘향전>과는 다르다. 우선 뮤지컬이란
장르를 선택했다는 것부터가 전통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내용도 원작을 비튼 경우가
많다. 예컨대 못생긴 향단이가 춘향 역을 대신한다든가, 이도령이
글공부를 하고 있는 데 가서 글동냥을 하다가 사랑에 빠진다든가 하는 점이 그렇다. 세부에 있어서 바뀐
경우는 이보다 훨씬 많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인 <춘향전>만을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을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치기로
송판을 쪼개는 기생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내용이 충격적인 만큼 재미도 있었다. <춘향전>을 재미로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만족감을 주었을 것이다. 이번 <춘향>을 보고나서는 고전이 따분하기만 하다는 말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듯 비틀어서 얻은 효과가 무엇인지 애매하다는 점이다. 재미 외에 삶에 대한 반성, 사회에 대한 반성적인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구성에 있어서도 손보아야 할 부분이 상당히 눈에 띠었다. 예컨대 <춘향전>의 핵심인 사랑과 이별이 너무 짧고 간단하게 처리된
점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해도 <춘향>이 거둔 성과는 크다. <춘향전>을 이렇게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배우들의 능력이
얼마나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인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또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작품은 예술성을 강조한 작품이 아니고 대중성을
강조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이 작품을 두고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것은 이 작품의 본래 제작 취지와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잘 섞어야 ‘브랜드’ 된다
정초왕 전북대 교수, 연출가
‘춘향’은 고전 춘향전의 사랑이야기를 뮤지컬 공연으로 만들어 ‘글로벌 공연관광상품’으로
제공하려는 ‘전북브랜드공연’으로 기획되고 추진되었다. 이 점을 바탕으로 12월 20일 첫 시연을 본 감상을 지면 관계상 큰 것들만 몇 가지
추려서 적어본다.
이야기구조가 설득력이 있었을까? 익숙한
‘춘향 이야기’가 주는 식상함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기존의 ‘스토리’와 다르게 ‘향단을 춘향으로 둔갑시키고 딸의 거짓 죽음까지 감행하며 딸을 지키려는
월매의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월매의 시도는 정말 무의미하게 실패하고 만다. ‘안타까움’은 이러한 극중 전개에서 보다도, 오히려 작가는 대체
왜 이처럼 ‘무의미하게 종결시킬 변형’을 시도했을까 하는 데서 생긴다. 그 밖에는 이야기가 기존의 것에서
대강 대강만을 간추리며 전개되니, 기존 ‘춘향전’의 여러 맛깔스런 장면들이 모두 제 색깔을 내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 필연적인 듯하다. 제한된 공연시간 때문이라면 애초에 장면의 ‘과감한 선택과 집중’이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결국 문제는 ‘지금 이곳의 관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에 있을
것이다.
공연의 양식적 특성은 어떠한가? 처음에는
‘국악뮤지컬’인줄 알고 갔다. 그러나 일종의 ‘퓨전 뮤지컬’이었다. 의상
분장 장치 등 모든 게 ‘한국식’이고, 음악에서만 ‘작창과 작곡’이 혼재하는데, 그 ‘틈’이 그리 잘 메꿔진 것 같지는 않다. 공연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풍물패거리’도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공연 자체와는 이질적이었다. 섞는다는 것은 잘되면 ‘전주비빔밥’처럼
명품이 될 수도 있지만, 잘 안되면 ‘죽도 밥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앞의 것들에 비해 지엽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무대
연출적인 측면에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다. 그 유명한 ‘광한루 그네 타는 장면’이 빠진 것은
바뀐 극본 때문이라고 쳐도, ‘뱃노래’가 나오는 것은 웬일? 변학도가
배를 타고 남원골로 부임하러가는 것이다. 어라, ‘배가 (지리)산으로 가네?’하고
옆 사람과 귓속말로 농담을 했다. 기생점고장면이나 어사출두 장면도 별 재미를 주지 못했고, 무대 가운데에 배치된 동헌 건물은 마치 ‘비각(碑閣)’같은 모양새였다. 무대 양쪽에 배치된 건물 난간 중에서 왼쪽 난간은
끝까지 이용이 되지 않았다. 그저 시각적인 균형을 위해 설계된 것인가?
하나의 공연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잣대를 활용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공연 목표의 달성여부’가 될 것이다. 애초에는
좋은 공연을 보게 된다면 박수를 보내며 기꺼이 배울 마음의 자세가 충분히 되어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전북브랜드공연’
제작에서 소외된 전북지역 예술인의 하나로서 박탈감이나 서운함의 발로로 여겨질지 몰라 호된 평을 쓰기가 몹시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해도 그 막대한 제작비에 이 정도의 결과라니 하고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타깃 설정 철저히 해야
양승수 공연기획자
이 사업이 어떤 사업이고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지향점 제시가 미흡했다고
본다. 그것을 방증하는 것은 평가의 대부분이 ‘전라북도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공연상품인가’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공연상품’ 이것이 사업 목적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은 오히려 어떤 사업의 결과로 얻어지는 효과를 두고 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닐까.
이번 공연을 ‘문화관광 공연상품 개발 장기프로젝트’ 중 1차 시연 성격이라는 전제로 살펴본다면 어떨까. 이 사업의 추진기간
등 그 과정을 감안할 때 어려운 조건 속에서 하나의 공연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과 내부의 이상적 바람이 아닌 외부자의 시각에 입각해서 흥미 있고, 일관성 있게 작품을 제작했다는 것은 성과라 생각된다. 특히 전통에
대한 다양한 시도라는 측면에서 고무적이다. 그러나 뮤지컬과 창극 사이의 간극, 스토리 변형의 효과, 음악과 안무와 극적 흐름의 조화, 시설의 한계, 다소 긴 러닝타임,
지역성에 대한 재해석 등은 숙제로 남아 있다고 본다. 그리고 전통의 변용에 대한 깊은 고민도
하게 한다.
이 사업은 이제 어떤 출발점을 찍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출발을 얼마나 의미 있게 이끌어 가는가, 라고 하는 것은 이제부터 우리가 풀어나갈
행복한 숙제가 될 것이다.
전북의 공연예술이 다양한 각도에서 펼쳐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개별 사업에 있어서 타깃은 분명해야 한다. 이번 사업이 ‘전북예술의
우수성에 도취된 자기위안’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 공연의 타깃 설정을 좀 더 철저하게 하여야 한다. 내국인인지
외국인인지, 외국인이라면 그 지역이 아시아인지 가족용인지 등 그 초점을 좁힐수록 공연의 성격은 분명해지고, 시장은 그 만큼 좁아질 것이다. 모두를 충족하는 만능은 과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