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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5 |
[전라도 푸진사투리]
관리자(2008-06-09 22:39:28)
찌럭대기와 양글소 김규남 언어문화연구소장 인간과 소의 관계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인간이 부린 짐승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그 중요도 역시 윗길에 쳐야 할 짐승이 바로 소이니 말이다. 그래서 12지간 중에 두 번째이고 윷판의 윷이 소걸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면 소와 우리의 관계 또한 그 연원이 깊어도 어지간히 깊은 셈이다. 그러니 그와 관련된 말 또한 세세하게 분화되어 있을 법하지 않은가. 실제로 그렇다. 가령 뿔이 난 모양에 따라, 둘 다 곧게 선 뿔은 고추뿔, 모두 짧게 난 뿔은 새앙뿔, 둘 다 옆으로 꼬부라진 뿔은 송낙뿔, 안으로 굽은 뿔은 우걱뿔, 끝이 뒤틀리고 뒤로 젖혀진 뿔은 자빡뿔, 모두 바깥쪽으로 평평하게 뻗은 뿔은 홰뿔 그리고 하나는 하늘 다른 하나는 땅을 바라보게 난 뿔은 천지각이라고 한다. 게다가 귀가 작은 소는 귀다래기, 뿔이 날 만한 나이의 송아지는 동부레기, 아직 코뚜레를 하지 않고 목에 고삐를 맨 송아지는 목매기, 길들이지 않은 수송아지는 부룩소, 불알을 까서 기르는 소는 불친소, 들이받는 버릇이 있는 소는 부사리 그 중에서도 성질이 사나운 황소를 찌러기, 전라도 말로는 찌럭대기, 찌럭소이다. 털 색깔로도 얼룩덜룩한 무늬를 가진 소는 얼룩소 또는 얼럭소, 칡덩굴 같은 무늬가 있으면 칡소, 누른 빛은 황소, 붉은 빛이 도는 소는 대추소요, 일 잘하는 소는 일소, 젖 내는 소는 젖소, 풀만 먹고 큰 소는 푿소, 그런 중에도 논밭도 갈고 짐도 싣는 일까지 하는 소는 양글소라고 한단다. 새백이로(소 앞 발 사이로) 소죽통 드나들만한 놈으로 사오라는 주문으로 야문 규모를 상징하던 시대에 담불(열 살) 넘은 소, 여릅 송아치(한 살된 송아지)란 말은 도통 암호 같기조차 하다. 먹고 살기 나아진 세상이라 소를 고기로 여기고 부위별 고기 이름의 분화에 대해 종종 관심을 갖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소는 결코 고기로 칠 대상이 아니다. 어느 소가 일을 잘 하느냐고 묻자 귓속말로 대답한 까닭이 짐승조차도 비교하면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이라는 농부의 말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정승 황희의 일화 속에서도, 유독 소 타기를 즐겼다는 겸손한 관리 맹사성의 이야기 속에서도 그리고 소 판 돈으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수많은 아저씨들도 그 맑고 깨끗한 소의 눈망울과 직사하게 일만 하다 죽을 마당에 흘리는 그 굵은 눈물방울을 만난 적이 있으리라. 이제는 한미 FTA의 상징물이 되어 돈 세상의 돈 이야기 소재가 되고 있기는 하나 어떻든 예전에는 그렇게 세세하게 인식하고 향유하며 공존해 왔던 우리 식구 같은 존재가 소였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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