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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8 |
[문화시평] 뮤지컬 오디션
관리자(2008-08-13 15:08:08)
누구나 한 번쯤 꿈꾸었을 우리들의 이야기 김정수  극작가, 전주대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밴드는 젊음이다. 꿈이다. 아마 누구나 지나간 젊음의 한 귀퉁이엔 밴드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사근사근 숨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이른바 ‘뮤지션’이 아니라도 그렇다. 어느 순간, 어떤 형태로든 밴드와의 조우는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무한한 희열과 더불어 꿈을 꾸게 만든다. 상상하게 만든다. 누구나 한번쯤은 무대에 기타를 메고, 혹은 드럼박스에 앉아있는 자신을 꿈꿔봤을 것이다. 천만에, 라고 말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찬찬히 라이브 밴드와의 첫 만남을 돌이켜 보라. 그래, 바로 그 것이 밴드가 영원한 젊음의 표상으로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이유가 된다. 밴드 이야기를 드라마 화하는 경우는 많았다. 특히 영화의 경우, 멀리 로큰롤 스타나 비틀즈, 다양한 락그룹들의 변화무쌍한 이야기로부터 최근 우리의 ‘와이키키 브러더스’나 ‘즐거운 인생’까지, 그 탄생 배경이나 인고의 과정,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각기 다르지만, 많은 작품들이 밴드의 삶을 이야기해 왔다. 그건 우리의 꿈, 우리의 호기심을 어느 정도 눈치 챈 배려였다. 작년 여름 초연된 후, 수백 회의 공연을 통해 관객을 만나온 뮤지컬 ‘오디션’은 바로 이 밴드의 이야기를 무대 위로 끌어들였다. 음악으로 음악을 이야기한다, 긍정적 시도임에 틀림없다. 주말 한가한 차림으로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연지홀을 찾으면서, 사전에 들었던 많은 입소문들에 현혹되지 말자는 결심을 상기했다. 어쩌면 부정적으로 외로 꼰 시선을 앞세우고 작품을 만나는, 역선입견의 우를 범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연이 진행되고, 노래 한 곡 한 곡을 들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그따위 꼬나보기가 서서히 풀려가고 있음을 느꼈다. ‘오디션’의 스토리는 사실 전혀 별스러운 것이 없었다. 복잡하고 난해한 플롯이 현대 드라마의 특질이라면 오히려 어느 드라마보다도 비현대적인 작품이었다. 시작부터 거의 끝을 짐작할 정도의 구성에, 결정적 사건인 과묵한 ‘환희’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이렇다 할 만한 갈등이나 긴장, 극적 반전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일까. 한 시간 오십분 동안 관객들은 마법에 걸린 듯 꼼짝없이 숨죽이며 작품에 몰입하고 있었다. 분명 색다른 힘이었다. 아마 그 힘이 뮤지컬 대본상을 받게 했으며, 많은 입소문을 불러일으키게 했던 것 아닐까. 그 힘은 분명 놀라운 것이었을 뿐 아니라, 뮤지컬이라는 이름으로 횡행하는 우리 주위의 많은 공연물에 대한 차분한 반성까지  요구하는 것이었다. 뮤지컬 ‘오디션’에는 보통의 뮤지컬이 커다란 미덕으로 기대어온 화려한 조명, 몽환적인 무대, 과장되고 화사한 연기나 의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빠른 템포의 음악, 발랄한 무희들의 춤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형 무대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적이 실망스러울, 평범하거나, 수줍어하거나, 굼뜬, 우리와 흡사한 여섯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조금 다르다면 은근한 동성애, 가출상태, 연주실력 정도나 될까.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가 흡인력을 발휘하는 배경에는 의외의 여백미가 도사리고 있다. 관객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자극시키며, 마치 관객들 자신이 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착각마저 유발케 하는 여백의 활용은 탁월한 면모가 있었다. 장면의 전환이나 배우의 동선 하나에도 비워둠 없이 음악이나 효과로 채우는 요즘 공연 추세에 역행하는 발상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여기에 절제된 언어의 감칠맛과, 상황 속에 녹아 있는 유머, 생활 같은 연기의 자연스러움이 덧대어져, 여섯 색깔의 캐릭터가 성공적으로 구축되면서 작품에 안정감을 주었다. 단음절 대사 몇 개로도 명확한 성격을 드러낸 ‘찬희’, 소심한 ‘병태’와 그의 사랑으로 다가오는 ‘선아’의 심리적 울림들은 관객들에게 충분한 공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디션’의 최고 미덕은 음악에 있다. 마치 뮤지컬은 뮤지컬이어야한다고 강변하듯, 현장의 라이브 연주들은 립싱크나 반주 음반을 활용한 세미라이브 뮤지컬에 익숙해져 온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뮤지컬의 성패가 화려한 무대미술이 아닌 바로 음악에 있음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무대였다. 아쉬움도 없진 않았다. 마지막 ‘병태’와 ‘선아’의 오디션 참가 공연, 이미 죽거나 흩어진 멤버지만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두 사람의 가슴 속, 그리고 관객들 가슴 속에 절절히 울려퍼져야 했는데, 상대적으로 적절한 환타지가 약해보였다. 소박한 맺음이 연출의 의도일수 있겠지만, 앵콜에 의해 아쉬움을 달래야 했던 관객의 입장에서는 ‘내 꿈의 엔진이 꺼지기 전에’를 반복하여 전해주기 보다는, 이 곡에 이은 새로운 마무리 곡 하나가 절실했다. 공연을 보는 동안 내내, 몇 년 전 필리핀 시골 마을에서 만난 한 밴드가 떠올랐다. 곧 열릴 축제의 경연에 도전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다는 그 밴드는 드럼대신 플라스틱 물통을 두드리고, 목이 부러진 기타에 부목을 대어 동여매고도 신나게 연주하고 있었다. 이들의 모습이 ‘오디션’의 밴드 ‘복스팝’과 자꾸만 겹쳐 보였다. 그리고 행복을 생각게 했다. 무엇인가를 위해 힘을 모은다는 것은 참 가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것이 음악일 경우에는 아름다운 일마저 될 것이다. 허나 어디 음악뿐일까. 우리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않을까. 넘어지고 다치고 상처받고 힘들어도 그저 그렇게 기대고 부비며 사는 것 아닐까. 거창하지 않지만 젊음이 있고, 꿈이 있기 때문에…. 뮤지컬 ‘오디션’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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