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4 | [세대횡단 문화읽기]
창작의 알곡을 나누며 삶의 가치를 전한다.
전북 문화의 희망 찾기/예술인 김남곤, 곽병창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5-01 11:54:53)
일상으로부터 튀어 오른 시끌벅적한 축제들, 물오른 창작 현장, 그리고 그 중심에서 열기를 뿜어내는 사람들.
겨울잠을 자던 지역 문화계는 4월의 푸릇한 봄 내음 속에 기지개 켜기가 한창이다.
요동치는 지역 문화의 변화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찾아내는 일이란,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이루고 주변을 살필 줄 아는 지혜로움에서 출발할 터. 지역 문화계는 이제 변화를 이끌고 미래로 달려나갈 지혜로운 '문화 리더'의 존재가 절실하다.
급변하는 문화 지형도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고민하며 지역 문화계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서 온 김남곤 한국예술인총연합회 전북연합회장과 곽병창 전통문화센터 관장이 만났다.
정보와 지식과 문화의 담론이 넘쳐나는 시대, 문화현장에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들 선후배는 문화예술인들의 가치와 역할을 오늘 다시 물었다.
문화예술인은 새로운 가치관과 미적 기준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사색하는 존재, 창작이라는 알곡을 걷어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전하는 구원의 존재라고 말하는 이들. 이 선후배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문화예술인들의 보람과 긍지, 그 첫 페이지에 씌어졌다.
목련의 개화 소식처럼 두 선후배의 만남이 더없이 반갑고 정겹다.
-본문-
곽 : 회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언제 뵈어도 늘 변함이 없으십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차이를 못 느끼겠어요.
김 : 그래요? (웃음). 그런 이야길 자주 듣긴 합니다. 누가 95년에 찍어둔 사진을 보고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그래요.
곽 : 예. 제가 회장님을 처음 뵈었던 때도 아마 그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김 : 제가 96년 2월에 예총 회장을 맡아 일을 시작했는데, 제 느낌에는 세월이 많이 흐르고 그만큼 변한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산에 올라가다 보면 힘에 부쳐서 예전하고는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예전만 하더라도 죽음에 대해 별로 생각을 해보질 못했는데, 요즘은 좀 달라지더군요. 세월이 흐르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드는 거겠죠.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놔두고 캄캄한 어딘가로 간다는 게 굉장히 두려운 일이에요. 내가 사라진 뒤에도 이 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싶어요. 우선 우리 가족부터 시작해서 지역 사회, 국가, 세계 인류 모두가 내가 떠난 뒤에도 아름답게 가꿔져 갔으면 좋겠어요. 내가 그런 걱정을 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고, 그래서 때로 부질없는 생각 아닌가 싶기도 해요. 문화저널에서 이 코너를 제안했을 때 많이 망설였어요. 나는 이제 물러날 때도 됐고, 서쪽 하늘을 보면서 태양이 몇 뼘이나 남았나 생각하거든요. 될 수 있으면 젊은 사람들한테 자리를 내주고, 머리도 좋고 생각도 깊고 활동력이나 수행능력도 있는 그런 역동적인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어야 희망적이고 미래적이지 않겠어요? 나 같은 사람 이야기 들어 뭐하겠어요.
곽 : 지나친 겸손이십니다. (웃음) 사실 저 역시도 문화저널에서 제안을 받고 회장님과 제가 말씀을 나누는 게 적합치 않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코너를 계속 보아왔는데, 시를 쓰는 사람끼리, 또 그림 그리는 사람끼리 짝을 이뤄 이야길 진행해 가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회장님처럼 문인도 아니고 평생 몸담아 오신 언론 분야에도 전혀 관계가 없으니까요. (웃음)
김 : 아, 곽 선생이야 연극이면 연극, 방송이면 방송, 다목적이잖아요. 이를테면 다목적 댐 같은 존재죠. (웃음) 곽 선생처럼 지역 사회에 다목적 댐의 능력을 지닌 젊은 사람들이 많이 포진돼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곽 : 과찬이십니다. (웃음) 이 코너가 원로와 중견의 대화라고 했는데, 회장님께서도 원로 소리를 듣기에는 아직 젊으시고, 저 역시 중견이란 칭호를 듣기엔 이뤄놓은 것 없이 부족하기만 해서요.
김 : 나도 원로는 아니죠. 문단에서는 등단 이후 10년까지를 신인, 10년~40년까지를 중진, 그리고 40년 이상을 원로라고 칭하더군요. 대개 20대에 등단을 한다고 치면 40~50년을 활동해야 60, 70이 되고 원로라는 소릴 듣게 된단 말이죠. 나는 아직 그 경지에 오르지도 못했고 영원히 그럴 수도 없을 거예요.
곽 : 통념적으로 원로라는 호칭에서 느껴지는 건 현역에서 할 일을 다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예를 들어 창작을 하는 사람은 창작 현장을 떠났다든지 하는 식의 평생 한 일을 정리하는 단계에 와 계신 분들을 원로라고 칭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김 : 그래요. 멀리 서서 큰 나무처럼 바라봐 주는 관조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존재가 원로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치면 더더군다나 나는 아직 이르고 그 경지에도 오르지 못했죠.
곽 : 제게도 중견이란 표현이 가당치 않은 것 같아요. 몸무게로 치자면 모르겠지만. (웃음) 중견에 대한 선입견은 그렇습니다. 그 분야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이 정립되고 그 가치관에 맞춰 일관성 있게 어떤 일을 도모하고 전개해 나가는 사람, 그런 사람을 중견 혹은 중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나이는 어떨지 모르지만 아직 배울게 많습니다.
김 : 저도 누구한테 그런 이야길 듣지도, 또 칭해보지도 않았지만, 교사면 교사 시인이면 시인 그런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라지, 원로니 중견이니 부르는 건 좀 그렇더라고요. 그림 그리는 사람을 요즘 화백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문단에서도 시백이라는 말을 쓰거든요? 맏백자(伯 : 우두머리, 일가를 이룬 사람)를 써서 말이죠. 그게 나는 좀 건방진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그걸 스스로 받으려고도 안하고 누구한테 써보지도 않았거든요.
우리가 언제 '정직'을 졸업한 적 있는가
곽 : 이 코너가 '세대횡단 문화읽기'라는 이름이고, 세대와 관련된 자리니까 젊은 사람 입장에서 평상시 제가 갖고 있었던 답답한 문제를 회장님께 여쭙고 조언을 듣고 싶은데요. 회장님 말씀대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지식이나 지혜가 많고, 과거에 비해 우리 사회가 많이 열려 있어 다양한 분야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나 통로도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실제로 약 20~30년 전, 그러니까 제가 청년시절이었고, 회장님께서 지금의 제 나이셨을 때와 비교해 볼 때 문화의 흐름, 넓게는 사람 사는 일이 과연 전보다 나아졌고 잘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요. 없던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고 잘 사는 것인가, 지혜와 지식이 높다고 잘 사는 사회인가 하는 부분에서는 머뭇거려진단 말이죠.
김 : 인간이 생명체니까 일단은 먹어야 사는 것 아니겠어요? 과거 30~40년 전까지만 해도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못한 시대였잖아요. 지금은 먹는 것뿐만 아니라 신는 것, 누리는 것들이 엄청나게 향상됐는데, 그렇다면 정신 세계 역시 과거 못 먹던 시절보다 나아지고 풍요로워졌느냐 하는 점에선 그리 긍정적이지 못해요. 물질에 비해 정신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20~30대 박사가 나오는 세상이고, 많은 정보와 능력, 재정적 기반 등이 뒷받침되는 세상인데도 정신의 풍요를 누리는 건 아직 먼 것 같아요. 옛날엔 자기 앞길을 스스로 살피는 자립능력이나 독립심이 강했는데 지금은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습니까? 그건 무엇 때문이겠어요. 온실 속에서만 살아왔다는 것, 또 매서운 눈보라에서 헐벗어본 치열함이 없어 외형적으로는 발전해도 내적으로나 삶의 깊이에서는 뭔가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이건 50대~70대들이 통감하는 사실이에요. 전엔 정직이란 말을 달고 다녔잖아요? 어느 회사 사훈이든 어느 집 가훈이든 정직이 가장 기본 요소니까 그렇단 말이죠.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언제 우리가 '정직'이란 것에서 졸업을 한 적이 있나요? 왜 그걸 소홀히 하냐 이거죠. 남이 잘 못하면 손가락질을 하는데, 한 손가락은 남을 향해 있지만, 나머지 네 손가락은 나를 향해 있잖아요. 자기 자신도 그만큼 살펴야 된다는 뜻이라고 봐요. 지금 젊은이들은 진취성과 지식은 훌륭하지만 자기를 지탱하는 정신력과 자립능력 등이 부족해 보여요. 요즘 일등 도민운동 하자고 하는데, 일등 도민이란 게 늘 꼴찌만 해왔으니, 뭔가 우위에 서보자는 이야기 아니겠어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 질서와 법을 잘 지키는 것부터라고 봐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초등학교 도덕책에 나와있는 것만 실천해도 더 이상 배울게 없다고 말이죠.
곽 : 그렇습니다. 전통적인 도덕관이 절실한 시기인데요. 전통적 도덕관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게 아니라 근대화와 정보화, 산업화 시대를 거치는 동안 물질의 풍요가 진행되면서 점진적으로 더 악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물질과 도덕관의 상관관계가 아쉽게도 반비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 아마 인류의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도덕의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됐을 겁니다. 백년이나 천년 전, 공자 시절에도 악한들이 있었다고 하니까요. 산업화 과정에서 옛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것들이 진행되고 그것을 수시로 뛰어넘고 있잖습니까? 잘못된 것을 채찍질하고 법적으로나 제도적인 장치를 한다면 인류라는 것이 그리 악해질 수만은 없다고 보거든요. 어느 석학은 인간은 배우면 배울수록 악해진다고 하던데, 21세기는 아름다운 생각만 가지고 사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악해질 가능성도 있다는 거죠.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게 인류사지, 반드시 선만이 존재하거나 악만이 존재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물론 악을 이기는 선이 많은 것, 그것이 인류를 지탱해 온 힘이겠지요.
곽 :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전통적 가치관의 회복, 재무장을 촉구하는 내용의 슬로건이나 움직임을 가치관이 급격히 바뀌고 있는 세대들에게 어떻게 다가설 수 있게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보는데요. 이제는 새로운 가치관과 미의 기준, 선을 세심하게 탐구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라고 봅니다. 그런 일을 담당할 수 있는 한 축이 예술이나 문화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일텐데, 그런 의미에서 문화 종사자들이 새로운 가치관과 도덕적 기준,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스스로 세워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저 역시 마찬가지지만 혼란스러운 시기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김 : 일본의 어느 학교에서 개교 이래 늘 전인교육을 부르짖었는데, 60년 전통에도 불구하고 뜻처럼 되지 않았다고 탄식하는 걸 봤습니다. 일본도 전인교육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세워 실천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학교에서 늘 전인교육을 강조하지 않습니까? 예술 분야에서도 그 부분에 대한 나름의 역할과 몫이 있을 겁니다. 궁극적으로는 인류 구원을 목표로 그런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텐데요. 인류가 악의 싹을 끊고 선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노력들을 끊임없이 하고 있으니까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웃음)
예술가, 새로운 가치관을 탐구하라
곽 : 세대와 세대 사이의 격차라고 할까요, 가치관이 바뀌어 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그러면서 생각의 차이는 점점 더 커지는 것이 최근의 현상이라고 봅니다. 창작을 하는 예술가들이 지금의 현실을 좀 더 냉엄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작품에 소화해내는 것, 극단적 가치관의 차이 속에서도 새로운 해결책과 희망의 길을 마련해 나가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그것이 작품으로 결실을 맺어야 하는 것이고요. 시나 연극 등 예술 작품을 통해서 회장님 이 강조하신 인류 구원의 빛이 발현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회장님께선 최근 후배 예술가들의 작품 흐름이나 경향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김 : 그런 대목에 대해서는 나도 옛날 잣대를 가지고 있구나, 내 나름대로 교과서가 있다면 먼지 끼고 때묻은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행동하고 움직이는 예술가는 많은데, 그 행위가 영향을 주고 감화를 줘서 사람들이 그 메시지를 따르게 하는 경우는 오히려 적어지지 않나 싶어요. 시인이면 시인, 미술가면 미술가 나름대로 치열한 작품활동을 하겠지만, 거기에 그치지 말고 그 영향이나 물결이 멀리 전파되고 옆 사람에게 젖어들어 그 아름다움이 받아들여지고 그 정신으로 삶을 배우게 되는, 그런 문화예술의 진정한 힘과 의미는 조금 부족해진 것 같아 아쉬워요. 한정된 예산에서 예술을 하나의 활동으로 마무리해 버리고, 거기에서 쏟아지는 알알들, 빛나는 것들을 누가 주워서 영위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는 아쉬움이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한 시인이 시를 발표하면, 시인들만 읽는 데에서 그치고 그것이 멀리 퍼져 영향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지역에서 열리는 수많은 행사 역시 그 영향력이 얼마나 끼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입니다.
곽 : 회장님 말씀이 워낙 광대무변해서 이런 저런 주제들을 넘나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웃음) 예술가와 예술 작품에 대한 기대가 크신 만큼 아쉬움도 많으실 줄 압니다. 문화예술계에 대한 관의 지원이든 여러 다양한 민간 루트의 지원이든 최근 10년 사이에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좋아진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지원이 실제로 문화예술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 즉 창작자를 얼마나 키워내 그 결과물들을 향유층에 전파시켰는지를 돌아보면 아직은 아쉬운 점이 많은데, 개선안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 : 전북처럼 열악한 환경에서는 예술인이 자생력을 갖추기가 무척 어렵죠. 외국의 메세나 운동처럼 그런 마인드를 가진 기업이 참여하거나 지원한다면 더 바랄게 없겠지만, 우리 전북은 여건상 그런걸 기대하기가 어렵죠. 얼마전 예총 차원에서 사업 계획을 마련해 기업체에 공모를 띄워 뜻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했는데, 불과 네다섯 군데에서밖에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저는 참 아쉬웠는데, 다른 사람들이 전북의 경우에서 보면 굉장히 많이 온 거라고 하더군요. (웃음) 제가 지금 문예진흥기금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지 몇 해가 됐는데, 올해의 경우 신청액이 약 21억쯤 되는데, 배정할 수 있는 한도액은 6억원이 조금 더 되거든요. 6억 가지고 나눠주려면 사실 닭 모이 주는 것밖에 안돼요. 문화예술쪽 예산이 전북의 경우 1.8%, 액수로는 2백억원이 조금 넘는 정도라고 하는데, 배정하는 과정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아요. 전라북도가 보유하고 있는 문예진흥기금이 140억정도 되는데, 그 이자로 한해 지원금을 나눠주고 있거든요. 문화예술활동은 재정적 지원 없이는 숨을 쉴 수가 없는 상태에요. 도가 여러 경로로 예산확보해서 풍족하게 고루 배정해 주는 길을 찾아내야 할 것 같아요. 전북 문화예술인들도 필요할 때만 각자 주장할 일이 아니라, 공동의 사업을 만들거나 한 창구를 통해 목소리를 드러내야 할거라고 봐요. 범 예술인 단체구성도 생각해 볼만하다 싶거든요. 지금 각 소속 단체가 개별적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니 힘이 분산되는 것 같아요.
곽 : 예. 좋은 말씀이십니다. 좀 가벼운 이야긴데, 회장님께서 좋아하는 음식이나 손님들을 모시고 잘 가는 음식점이 있으십니까?
김 : 우리가 타도 사람들에게 자랑할만한 건 음식이거든요. 때로는 그 손님의 취향에 맞추는 경우도 있고 내 취향 맞추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한식집을 가게 되죠.
곽 : 옛날에 비해 최근 전주 음식이 좋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김 : 시대가 바뀌니까 입맛도 바뀌지 않습니까? 우리 손주도 인스턴트 안 먹이고 토종음식 만 먹이자고 결심을 했는데, 주변 환경이 그걸 용서를 안해요. (웃음) 그런 의지가 금새 무너지거든요. 이제는 전통음식만 찾는 시대는 이미 지난것 같아요. 그릇부터 플라스틱으로 담아내고 있잖아요. 아마 노동량을 줄이다 보니 가벼운걸 선호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한데, 한옥생활체험관에서는 유기를 내놓더라고요. 그릇은 옛 것인지 몰라도 음식 자체는 상당한 변화를 가져온 것 같아요. 고유한 우리 음식을 한다면 경제적으로 경비가 더 들 거라고 보는데, 또 선호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타도 사람들은 선비고을 양반고을 가서 음식 한번 먹어보자 하면서 올텐데 이걸 행정에서 지원해 한 두개 정도 전략 음식을 만들어놓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더늠 정신'의 회복과 미래와의 소통
곽 : 전통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게 음식일텐데요. 전통문화센터를 운영하다보니 전통을 지킨다는 게 훨씬 더 고비용이 들어가고 효율은 떨어지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김 : 그래요. 전통 비빔밥을 제대로 하려면 몇 만원이 든다고 하더라고.
곽 : 제대로 갖추려면 그릇부터 시작해 앉아서 먹는 장소나 환경도 분위기에 맞도록 다시 꾸며야 하거든요. 음식뿐만 아니라 옷이나 의례, 문화의 영역에 있어서도 전통을 지켜나간다는 게 돈과 시간, 노력이 갖춰져야 할 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 전통을 어디서 어디까지라고 잘라내어 설명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전통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감성도 같이 조화를 이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곽 : 예. 이건 개인적인 고민이기도 하고 한옥마을 전체의 고민이기도 한데요. 전통문화센터를 맡아 운영을 하다 보니까 이 한옥마을 일대나 한옥마을에 들어선 문화시설들이 전통을 지키고 보존하는 존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것을 응용해 새로운 것으로 발빠르게 적응해 나가는 걸 궁리하는 존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김 : 전통을 있는 그대로만 보존하라는 건 현재로선 잔인한 주문이 아닌가도 싶어요.
곽 : 예. (웃음) 오히려 어느 한쪽을 장악하라고 주문을 한다면 쉬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김 : 생활이 변하면서 예술 역시 변화하고 있어요. 고전과 현대를 융합시켜 장르의 벽을 헐어내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에 문화정책 역시 전통이라는 바탕 위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전통 전통 한다면 석기시대나 원시시대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지금 우리가 말하는 전통도 어느 시대에는 엄청난 변화의 산물로 여겨졌던 것 아니겠어요? 지금은 최첨단 시대니까 그런 개념에서 한 발짝 뛰어넘어야 될 거라고 봐요.
곽 : 도나 시의 문화행정이나 민간차원의 사업도 그렇고 최근의 화두가 전통이 되고 있고, 구체적으로는 전통문화를 상품화하자는 쪽으로 붐이 일고 있거든요. 전통문화를 매개로 세계와 소통하고 만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자는 게 최근의 큰 흐름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결국 지역 전체의 고민거리로 부각되고 있는데, 전통을 박물관처럼 보존하는 건 말 그대로 박물관의 일일테고, 소리축제 등 전통을 소재로 한 행사를 하자면 타 지역의 문화와 미래, 그런 것들과 소통하자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김 : 언젠가 전주에서 세미나를 한 적이 있는데, 중앙의 어느 사람이 전주는 전주가 가진 고유한 전통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이야길 하더라고요. 그 사람이 예로 드는 것이 부채, 그 중에서도 합죽선이나 태극선은 전주가 가장 우수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걸 개발하고 현대적인 쓰임새를 찾아내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는 이야길 하더란 말이죠. 그때 나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그런 이야길 했었어요. 각자 경쟁력을 갖기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는 마당에 전주가 부채 하나 갖고 있다고 그것만 주장하면 언제나 경쟁력을 갖겠느냐고 말이죠. 문화상품을 만들 바에야 돈으로 환치시키는 일이 우리에게는 당장의 과제가 아니겠어요? 남 보기엔 부채가 좋아 보이지, 그렇다고 그것만 고수해서는 산업사회의 경쟁력은 뒤떨어지는 것 아닌가 싶어요.
곽 : 저는 전통이란 것을 어떻게 지금의 대중과 만나게 하고 낯선이와 만나게 하고 더 나아가 미래와 연결해줄 것인가 하는 부분을 고민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전주에 사는 사람, 특히 문화 종사자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근 판소리의 더늠을 통해 번뜩 깨달은 게 있는데, 이 더늠을 오늘에 새롭게 되살릴 수만 있다면 전통 문화를 제대로 계승할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당대 청중들에게 각광받는 선율이나 이야기 한 토막은 소리꾼이 관객과 주고받으면서 창조해내는 새로운 전통의 모델 아닙니까? 그것이 판소리의 더늠이고, 더늠은 전통의 현대적 창조라는 점에서 되새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옛것을 보존하고 고수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개발하고 찾아내자는 것이죠. 전통문화의 계승이라는 것이 북이나 판소리를 그 자체로 상품화해 팔자는 의미는 아닐거라고 봅니다. 소리꾼들이 해외에 나가 소리를 하면서 세계화를 추구한다고 하는데 그쪽 사람들에게는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 이상의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점에 고민이 실려야 한다는 거죠. 요즘 소리하는 사람에게서도 여간해선 찾아보기 힘든 정신이지만, 그런 측면에서 더늠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은 전통 문화를 올바르게 계승해 내는데 큰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 : 좋은 지적입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창작판소리 사습대회를 추진하고 있는데, 누군가 창작 판소리란게 도대체 뭐냐고 묻더라고요. 전통적인 다섯바탕 이외에 말 그대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새롭게 창작해 낸 판소리 아니겠어요? 예를 들어 유관순가나 열사가 등등이 있을텐데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내야 한다고 봐요. 소리축제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입니다만, 올해 예산이 얼마 안돼 행사 주최측의 고민이 많은가 봐요. 언젠가 경주 문화엑스포 관계자를 만나 이야길 했는데, 한 해 예산이 450억이라고 하더군요. 소리축제는 1회 대회에서 40억원이란 예산을 쓰면서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난을 받았잖아요. 물론 문제도 있었지만, 과감히 투자해서 백년 이백년을 끌고 가다 보면 우수한 자원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곽 : 신재효 시절에 열두마당이었던 판소리가 지금은 다섯바탕밖에 없잖습니까? 가사만 겨우 남았거나 가사까지 없어진 경우도 있다고 해요. 사라진 전통을 되살려놓는 것이 과연 전통을 보존하는데 옳은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요. 격론 끝에 유력한 결론을 내린 것이 없어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닌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가사 내용이나 선율이 대중으로부터 호응이나 각광을 받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고, 당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와 맞지 않아 강제적으로 사라지기도 했을거란 말이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학술적인 연구가 필요할 겁니다. 어쨌든 전통이란 걸 딱딱하고 고루한 선조들만의 것으로 좁혀 보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 역사적으로 얼마나 엄청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겠어요. 고전이라는 건 꼭 남아야 할 것들만 남아 전해 내려오는 것 아닙니까? 고전이란 역사적인 검증을 거쳐온 그야말로 고전 그 자체란 말이죠. 지금 우리가 하는 작업이나 창작품들이 몇백년을 가거나 오랜 생명력을 가질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죠. 또 그 생명력이란 건 누가 없애라 해서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전북이 국악의 발상지니까 그 전통을 쉽게 버릴 수 없어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검증을 거쳐 오랫동안 생명력을 갖는 고전들을 꾸준히 만들어 나가야 되겠죠.
문화 희망, 문화예술인들의 통합과 연대에서
곽 : 전통의 보존뿐만 아니라, 지금 미래의 전통을 세우고 만들어나가는 작업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인위적으로 전통을 회복하거나 복원해 주민에게 주입시키는 노력들은 일정부분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판소리나 음식의 경우엔 젊은 세대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어 본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강의시간에 전북대 국문과 학생들을 상대로 중모리 장단을 아는 사람이나 소리를 들으면서 추임새 넣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전북은 소리의 고장이라고 하고 판소리에 대한 자긍심이 강한 곳인데 지역에서 제일가는 국립대학에서, 또 한국음악과 다음으로 소리와 가장 가까운 학과일텐데 추임새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란 말이죠. 이게 우리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어요. 실제로 현장에 가서 판소리를 듣게 하고 까다로운 사설까지 해설해 주면, 새로운 충격을 받고 문화적으로 각성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거든요.
김 : 그 이야길 듣다보니, 행위자는 많은데 그 행위의 결과물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미흡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는데요. 국악협회에 내가 제안을 한 게 있는데, 전라예술제에 기관장들을 출연시켜 판소리 한 대목을 맡겨보자 했어요. 기관장과 청중이 함께 더불어 즐기는 판소리를 만들어보자는 거죠. 기관장들이 의식적으로 우리 것을 익히게 되면 자연스레 청중들을 자극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외부에 나가면 전북에서 왔으니 판소리 한 대목 뽑아보라고 하는데, 나 역시도 난감해요. (웃음) 부끄럽지만 우리도 소극적인 측면이 있다고 봐요. 남이 하는 것을 누리고 보고 즐길 줄만 알았지, 스스로 거기에 젖어들어 익히고 싶은 적극적인 기질은 부족한 것 같아요.
곽 : 건물을 짓고, 대회를 만들고, 축제를 활성화하는 것 못지 않게 소리의 고장이라는 이름 값을 하려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문화 소양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적어도 지역사회 차원에서 중고교 교과서에 판소리 한 대목을 가르칠 수 있는 과목이나 내용들을 배치하는 노력 등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김 : 전라도를 가면 신호등에서도 판소리가 들린다고 소문이 날 만큼 외부적인 이미지는 참 좋아요. 초등학교부터 누구에게나 그런 기초적인 소양을 길러주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싶어요. 프랑스의 경우엔 백발 성성한 할머니들도 시 한편은 다들 낭독할 수 있거든요. 전주도 입으로만 문화예술의 도시라고 할 게 아니라 누군가 나서서 그런 작업을 해야 한다는 거죠. 전에 한글날에 맞춰 오자 있는 간판 찾아주기 운동 같은걸 했었거든요. 시인이나 문학하는 사람이 왜 오자난 간판을 그냥 지나칩니까? (모두 웃음) 자신의 행위나 특기로 지역 사람들에게 어떤 이로움을 줄 것인가까지 고민하고 앞장 서주는 자세가 필요할 거라고 봐요.
곽 : 예. 끝으로 후배 문화예술인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김 : 잘들하고 있는데요, 뭘 굳이…. (웃음) 치열하게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 전북인은 성정으로도 딱 부러지는 고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여러 문화단체들이 이기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더불어 발전하는 통합 기능을 갖췄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나는 문학만 하면 그만이고 너는 연극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더불어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보완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디서 뭐 한다더라 하면 너희만 하느냐 우리도 한다라는 식이 아니라 자신들의 활동의 의미나 그것이 미치는 영향 등을 차분하고 깊이 사색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싶어요. 더불어 서로에게 힘이 충전되는 그런 토양이 갖춰지길 바랍니다.
곽 : 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회장님과 지역문화에 대한 이런저런 희망과 바람들을 나눌 수 있어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앞으로 자주 뵙겠습니다. / 진행·정리 김회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