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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4 | [문화와사람]
윤채식 예수병원 외국인노동자진료센터 소장 젊은 의사 윤 소장의 꿈과 희망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5-01 11:58:09)
서른다섯의 필리핀 노동자 페드리토. 예수병원 외과병동에서 마주친 그는 서툰 한국어로 연신 "좋아요"를 연발한다. 얼마 전부터 옆구리와 하복부에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지만, 빠듯한 월급에 꼬박꼬박 치료비를 대기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그러던 차에 예수병원 외국인노동자진료센터의 존재를 알게 됐으니, 페드리토는 '좋아요'란 말을 대신할 더 이상의 한국어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1월 문을 연 예수병원 외국인노동자진료센터. 열악한 작업 환경과 '못 사는 나라'의 '힘없는 노동자'라는 천박하기 짝이 없는 사회적 편견까지 얹혀져 이중 삼중의 고통을 당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이곳은 단비 같은 존재다. 먼 타국에서 겪어야 할 설움이야 어디 한두가지일까마는 덜컥 병이라도 도지는 날에는 그 아득하고 막막한 마음이 오죽 더할 것인가. 그 마음을 헤아리고 어루만져 주고자 나선 이, 외국인노동자진료센터 윤채식 소장(39). 병원 차원의 결단이 있었지만, 최초의 제안자는 마취통증의학과의 이 젊은 과장이었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사회 이슈로 등장하면서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져 왔는데, 제가 가진 능력과 위치에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이쪽으로 생각이 미치게 된거죠. 예수병원이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돼 많은 사람들이 의료 혜택을 받았듯이 이제는 우리가 받은 것을 되돌려 줄 때라고 믿었습니다. 병원장님께 제안을 했는데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병원 차원에선 쉬운 결정이 아니었는데, 뜻을 같이 해준 원장님과 동료 의사들, 직원들이 고마울 뿐이죠." 하얀 가운이 다소 권위적이고 날카로운 느낌이지만, 80년대 대학을 다니며 그는 학생운동에도 깊숙이 관여해 옥살이를 치를 만큼 단단한 역사의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병원에만 '갇혀' 지내는 '샌님' 의사이기 보다 사회에 눈을 돌려 자신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환원하는 '열린'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외국인노동자진료센터라는 건강한 결실로 이어진 것이다. 병원측의 동의를 얻고 지난해 8월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 실태를 파악하는데 3개월이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알게된 외국인노동자선교센터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데 더없이 좋은 길잡이가 됐다. 그 인연으로 윤 소장을 포함해 예수병원 관계자와 외국인노동자선교센터 관계자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꾸리게 되는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개소식을 불과 1주일 남겨놓은 상태에서 극적으로 성사된 일이었다. "외국인노동자선교센터는 주로 그들의 인권이나 선교 활동에 관심을 가진 단체인데, 이곳도 이제 막 기지개를 키기 시작한 때였어요. 우선 선교센터와 접촉하고 있는 200~300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진료센터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죠. 입으로 전해지는 홍보효과를 무시할 수 없잖아요. 선교센터 역시 우리와 함께 서로 돕고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양쪽 단체 모두에게 의미 있는 만남이었죠." 최근 몇 년전만 하더라도 투명한 재단 운영이나 종교적 화합의 문제가 내부 진통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병원장이 바뀌고 자연스레 조직 정비가 이뤄지면서 예수병원 내부의 자구 노력이 진행됐다. 외국인노동자진료센터는 이미지 개선을 위한 환골탈태의 첫 단추가 되어준 셈이다. "사실 이 사업을 하기 위해선 종합병원이 갖고 있는 전반적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가동되어야 하기 때문에 병원 구성원들의 합의와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몇몇 뜻 있는 의사들이 모여 작은 규모로 이뤄지는 경우는 있지만, 우리 병원처럼 의사와 전 직원들이 나서 병원 차원의 사업으로 정착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몇 년전 여러 가지 문제로 병원이 터덕이고 이미지가 훼손되기도 했지만, 이번 진료센터 사업을 계기로 병원이 새롭게 정비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병원 홍보차원으로만 그치고 싶지는 않다고 잘라 말한다.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는 병원, 의사와 직원들이 스스로 자극 받고 실천하는 병원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외국인노동자진료센터는 무료진료를 기본으로 하지만, 수술 등 고비용이 소요될 경우 병원 자체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기금마련을 통해 조금씩 해결해 나갈 계획이다.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의료 혜택을 주기 위해선 어학능력을 갖춘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적 참여도 아쉬운 부분이다. "산업연수생과 불법체류자 등을 망라해 전북지역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략 5천명정도인데 결코 적지 않은 수요가 있는 셈입니다. 재정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병원 형편에서 이들의 진료비를 모두 무상 지원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커요. 그래서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기금 마련을 해보려고 합니다.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기왕이면 양질의 의료혜택을 전해주자는 의미에서도 중요한 부분이죠.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다양한 국적을 갖고 있어 언어 장애도 해결해야 할 과제에요. 안내와 통역을 맡아줄 자원봉사자들을 모으고 있는 중인데 지금 다섯명 정도가 신청을 해왔어요. 목사와 교수, 일선에서 물러난 노 의사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진료센터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외국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탈북자나 한국 유학생, 한국으로 시집 와 파경을 맞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을 넓혀갈 계획이다. 이제 겨우 운영 3개월째인데 어떻게 알았는지 경기도와 대전 등지에서도 문의가 들어오는 상황이다. 그만큼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료 서비스가 낙후돼 있다는 반증이다. 윤 소장은 기금마련을 위해 콘서트 기획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윤도현 밴드' 홈페이지를 기웃거려 봤는데 수확은 아직 없더라고 멋쩍은 웃음이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우리 병원이 하는 일, 앞으로의 계획, 이 사업의 의미 등등을 나름대로는 구구절절 문서화해서 올려놨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네요. 문화저널도 기획사업 하시죠? 유명 연예인은 아니더라도 알고 있는 대중공연 단체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공연 기획까지 넘보는 '만능 엔터테이너' 였다가도, 간간이 진료 차트를 들여다보며 의료팀과 암호로밖에는 들리지 않는 '꼬부랑말'을 구사할라치면 영락없는 의사선생님이다.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재주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그래서인지 그의 이야기에 자연스런 신뢰가 얹어진다. 그의 꿈은 외국인노동자진료센터에서 북한이나 베트남으로도 뻗어있다. "북한은 한 민족이고, 베트남 국민들에겐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빚을 진 경우잖아요. 조금만 눈을 돌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 많아요. 단순히 진료 서비스만 제공해주는 차원이 아니라, 인적 물적 시스템을 전수하고 지원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 부분에서 미력이나마 기여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그것이 개인적인 꿈입니다." 4월에는 중국 단동기독병원으로 날아가 조선족과 고려인, 탈북자들을 상대로 일주일정도 무료진료에 나선다. 50%는 병원 후원이고, 50%는 개인 부담이다. 그러나 그 마음과 의지만은 100% 그의 것이다. '젊은 의사'…. 윤 소장의 꿈과 열정을 설명하기엔 그 한마디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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