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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9 | 칼럼·시평 [문화칼럼]
문화 컨텐츠의 복원이 시급한 까닭
안홍엽 원광대 겸임교수/신문방송학과(2003-07-03 15:10:50)
씨 없는 호박을 생각해 본다. 설사 씨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물지 않은 씨는 씨랄 수가 없다. 번식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잘 생긴 모양새를 이어 갈 힘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 호박의 경우 뿐일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현상이 마찬가지다. 
특히 문화의 경우 실존 이상의 컨텐츠를 요구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컨텐츠가 없는 문화란 이미 문화랄 수 없을 뿐 아니라 전통으로서의 가치와 의미가 없다. 한나라의 민족이 어떤 삶을 살아 왔는가, 그 삶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 그 나라의 문화라고 한다면 우리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함께 일 하고 함께 노는 공동의 자리에는 생면부지라 할지라도 어울려서 같이 춤추고 노래하는 신바람이 있었다. 그것이 우리 문화의 컨텐츠였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제 24회 전주시민의 날 풍남제에 처음으로 선 보였던 전주난장의 재현은 우리 문화의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난장은 우리의 장터가 그러했듯이 모든 것을 수용하고 소통해 주는 화합의 장이며 신명의 마당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난장에는 춤꾼이든 소리꾼이든 아니면 그것을 지켜보는 구경꾼이든 간에 서로를 얼싸안은 인간적이고 따뜻한 마음이 담겨었다. 그 안에는 높고 낮은 것도 없으며 귀하고 천한 것도 없었다. 그저 모두가 신명으로 하나일 뿐 이었다. 
우리 문화의 유연성과 자연스러움이 넘치는 난장은 멋과 신명이 넘쳐흘러 삶의 지혜와 독특한 아름다움이 배어 있는 우리 전통문화의 손색없는 컨텐츠의 하나이다. 그러나 전주난장은 퇴보와 변질과 쇠락의 길을 걸어 드디어는 상처의 아픔만 남긴 채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강릉 단오제와 함께 음력 오월 단오를 지켜 40여 회에 걸쳐 치러져 오던 풍남제 마저 5월 에 맞춰 전주 국제영화제,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종이축제와 어우러진 전주 시민문화축제로 통합돼 버린 것이다. 
문화수용능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전주에서 국제행사를 포함해 전국규모의 대회를 세 개씩 네 개씩 벌여야 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난장이 그러하듯 무릇 축제란 모든 사람이 참여하고 모든 것이 수용되어 화합의 장이 되고 신명의 마당이 되어야 비로소 그 의미를 갖게 된다. 과연 전주시민문화축제가 그러한 의미를 갖기에 충분했던가? 이미 각계의 많은 지적이 있었던 터라 그 시나 비를 가리지는 않겠지만 2001년 새해계획이 짜여지고 있을만한 시점이기에 고언의 머릿글을 새겨 두고자 함이다. 
우리 전통문화의 특징적 핵심은 함께 살아가면서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고 서로가 한마음으로 도우며 이해하는 포용력과 융통성이 숨쉬고 있는 것임을 상기하면서 경직된 사고의 전환을 관계자 여러분에게 기대할 따름이다. 참고로 강릉 단오제를 아는 대로 적어둔다. 강릉 단오제는 민간이 중심이 되지만 관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민관공동의 축제로 발전시켜 왔다. 그리고 강릉 단오제는 상하가 함께 했던 고대 제의의 축제적 모습이 전형적으로 살아 있는 행사라는 평가다. 
단오날에 함께 열려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의 불편을 사게 했던 전주 풍남제가 이제 그 때와 모습을 바꾸었으니 강릉 단오제는 보다 더 깊은 전통의 씨앗을 영글게 할 것이다. 제의와 놀이와 난장, 이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축제의 모습이고 사람들을 일상적인 삶의 구속에서 해방시켜 마음껏 자유를 맛보게 해줄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로 하여금 공동체에 대한 긍지와 강한 소속감을 나누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리라 믿는다. 우리 고장에도 컨텐츠가 분명한 문화축제로 춘향제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나라밖 무대에까지 진출이 확정돼 있는 남원 춘향제만이라도 그 깊은 전통을 살려 문화의 고장다운 면모를 지켜 주었으면 싶다. 

최근 전북문화의 새 이슈로 떠오른 전라감영 복원만 해도 그렇다. 전주 풍남제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전라감사 행차, 그 행차의 주인공인 전라감사가 집무하던 곳이 전라감영이다. 전라남북도와 제주도를 다스렸고 전주화약 이후에는 전국의 53개 집강소를 총괄하던 곳, 그래서 전북사람들은 옛 영화를 되새겨 보고자 전라감사 행차 길도 재현해 보고 자랑스런 전북인 사업으로 전라감영 복원사업을 벌리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5천여평의 전라감영 터인지라 그 복원은 처음부터 적지 않은 무리를 안고 출발을 했다. 
도 청사 신축과 관련한 수백억원의 예산확보와 국가 사적 지정이라는 맞수를 함께 풀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접근을 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는지? 요즘 지역 보도에는 ‘어불성설’이라고까지 비판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희미한 사진 한 장이 고증자료의 전부라고 한다면 보도의 표현대로 ‘어불성설’이 맞는 얘기가 아닐는지.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복원을 타의와 연계하여 구상했다는 점이다. 고증과 자료를 성실하게 수집하여 복원의 가치와 필요성을 진지하게 설득시켜 나갔다면 도시의 공동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당국은 기꺼이 복원을 결의하였을 것이며 도 청사 이전의 숙원도 쉽게 풀 수 있지 않았을까. 
전라감영 복원은 복원 자체로만 접근했어야 옳았다는 얘기다. 이미 전라감영 복원계획은 자랑스러운 전북인 사업에 적지 않은 누를 끼치고 말았다. 전주시민문화축제와 전라감영 복원사업의 진행을 보면서 문화는 문화로서만 존재할 뿐이라는 문화의 순수한 속성을 터득하게 된다. 아울러 문화의 고장 그 컨텐츠는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이를 복원하는데 민관이 함께 나서는 것만이 문화고장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 생각한다. kjjahy@yahoo.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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