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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7 | 칼럼·시평 [문화칼럼]
이제 관성의 껍데기는 가라
이혜경 여성문화예술기획 대표(2003-07-04 11:12:30)
바로 얼마전까지도, 지역은 소외되어 있고 방치되어 왔는데 이제 지역은 매우 중요한 곳으로 부각되고 있다. 최근까지 모든 것이 경제중심적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이제 문화가 중요하다고 여기저기서 야단법석, 시끌벅적이다. 
지금이라도 이런 식으로 논의가 시작된 것은 물론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도대체 ‘지역’과 ‘지역문화’를 건강하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매우 취약한 상황속에서 이러한 전환을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는지 매우 난감하고 어려운것 또한 사실이다. 
거의 모든 것이 중앙에 예속되어 왔고 사막화 되어온 지방. 인력과 재원은 중앙으로 집중되고, 지역과 지역문화는 고갈되고 피폐해진 가운데 지역의 자기정체성과 공동체성은 지극히 약화되어 있다. 
그나마 지역정체성은 특정한 집단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위해 작동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고, 우리는 이것이 지역주의 지역감정이라는 이름의 매우 부정적인 것임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자신들이 지역문화의 진정한 주체로서 그 권리를 어떻게 행사해야하는 것인지를 잊은지 오래이고 어딘가로부터, 무언가로부터 홀리어 자신을 잃고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어 왔다. 
그 가운데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무력감, 패배적 정서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제 이렇게 취약한 기반 위에서 전북지역의 문화예술인이, 시민이 주체가 되어 ‘전북 문화개혁 시민회의’가 뜬다고 한다. 어려운 여건속에서의 출발이지만 어쨌든 이는 매우 다행스럽고도 기쁜일이다. 
지금부터라도 지역민들이 자기조직능력에 기초한 능동적 문화실천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조직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현재 전북지역의 환경과 여건을 점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전북문화개혁을 어떻게 해내느냐에 따라 문화개혁의 성취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전환적 파라다임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 무엇보다 새로운 철학과 세계관의 정립은 매우 중요하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까지 늘 그래왔던 것 처럼 관념적 당위론의 수준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사회 대부분의 지적논의는, 특히 문화적 논의는 오랜 유교적 전통위에서 뿌리깊은 추상적 관념론의 경향을 갖고 있다.
맹자왈 공자왈이 단지 마르크스왈 루카치 왈로 변해왔는가 하면, 이제 마르크스왈 루카치왈이 아니라 푸코왈 들뢰즈왈이 된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파라다임의 전환일 수 있을까?
아무리 서구의 새로운 사조의 최첨단 문화논의라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 우리의 교과서나 경전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 전북지역 문화예술인, 지역주민의 노동과 창조를 통한 문화생산을 기초로 형성된 문화논의야 말로 현실적합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까지의 우리의 문화예술적 생산·창조능력이 아무리 빈약하다 하더라도 주눅들지 말고 끊임없이 우리 스스로의 삶에 기반한 분노, 절망, 아픔, 희망, 흥 등을 표현하고 창작하며 이를 격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즉 관념적·추상적 논의를 넘어 구체적 실천, 문화예술생산이 선행되도록 하는일의 중요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과 실천은 무엇보다 자립적이고 독립적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 
이는 바로 기존체제나 관으로부터 자유롭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하는 문화예술인, 혹은 단체의 아이덴티티의 문제이기도 하다. 
가난함과 고단함속에서도, 자유성신과 비판적 거리가 유지되는 가운데 자립적 기반과 문화생산적 성과를 쌓은 연후에 관과의 관계는 협조와 상호견제를 대등하게 유지시켜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세를 바탕으로 할 때 지자체나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과 협조관계가 비로소 성숙하고도 유연하게 성장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한 개혁의 주체는 새로운 세대만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70, 80년대 진보적 문화운동의 부정적 전통은 과감히 버려버릴 일이되, 주체세력은 거듭나며 함께 해야 할 일이다. 70, 80년대 논의되었던 것이 아직 실험조차 제대로 되지 못한것도 많으며, 문화는 그것이 개혁을 지향할 때조차 단절보다는 축적의 기반 위에서 부정과 긍정의 변증법의 묘미를 살려야 할 것이다. 더구나 짧은 진보적 문화운동의 역사속에서 이는 우리의 소중한 자원일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이제 비로소 지역과 지역문화는 정체성, 중립성, 수동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공간개념을 넘어 활력성, 역동성, 의도성의 시간개념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시간, 공간의 정치로 ‘지역문화’를 논해야 할 것이다. 
이제 지역은 세계경제나 국가통제의 수동적 공간, 대상화된 공간에서 자율적이고도 주체적인 공간으로 변모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자면 이 역사, 이시간의 주체로서 스스로 자신들의 낡은 사고, 낡은 습관, 관성을 반성하며 낡은 틀을 깨부수고 나아가는 것에서만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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