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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9 | 칼럼·시평 [문화시평]
아름다운 실패, 가능성이 돋보인 한판 승부
익산세계아동청소년공연예술축제
박종훈 원음방송 프로듀서(2003-07-03 15:55:04)
연극기획을 오랫동안 해왔던 한 지우가 말한다.
“우리가 도내 순회공연을 할 때 익산은 항상 조심해서 준비를 해! 돈을 벌자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익산에서의 공연만큼은 너무 호응이 적어 최소한의 관객도 들지 않아 애를 먹는 일이 많거든”
그래서 어떤 때는 어물쩍 익산을 피해가기도 한다는데 조금은 모질다 싶게 얘기하는 그 친구를 탓할 일만도 아닌게 현실이다. 
전주와는 고작 30분 거리에 있는, 전북 제 2의 도시라는 익산시.
그러나 두 도시는 문화생활에 있어 그 정보를 영위할 수 있는 기회의 편차가 심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전라북도에서 치러지는 여러 문화행사 제목중에서 ‘익산’이란 지명과 ‘아동’이란 명사는 얼마나 생소하기 짝이 없는 것인가!
어쨌든 이런 뒤틀린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필자는 지난 7월 말, 익산세계아동청소년축제 위원들을 만나게 되고 시각을 달리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이 생소한 단어들이 포함된 행사기획안을 보고 그 가능성을 인정하게 된다.
우선 축제 운영팀들의 나이가 상당히 젊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 사이에는 “도무지 안될 것 같은데”하는 부정적인 표현은 없다. 
나중에 들리는 말로 그들은 우리나라 최저생계비쯤의 돈만을 받고 기꺼이 일하는 혈기가 있었단다. 또한 무서움 없는 신세대 고등학생들을 자원봉사자로 활용한 그들의 무리한 기획력도 오히려 돋보인다.
그리고 나같이 “안될텐데”하는 사람들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틈새 전략. 안될줄 알았는데 진도가 나가는 것을 보면 나같은 사람은 오히려 더 흥분하고 관심을 갖게 되는 법이니까.
문화의 불모지라는 불명예를 걺어지고 있을만큼 낙후된 땅에 사는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그 갈증때문에 효과는 배가 될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계산도 깔고 시작했을 것이다.
어쨌든 8월 4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10일간에 걸쳐 개최된 익산 아동청소년 축제는 지난 13일, 그 막을 내렸고 이제 문제는 다음 행사를 어떻게 잘 치르느냐 하는, 자기반성에 기인한 생산적인 방법을 강구하는 일이다.
포장을 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총 40여개팀 중에서 극단 가게보우시의 그림자극이나 호주의 애크러배틱 코미디쇼, 그리고 베트남의 수중인형극 등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이 많았으나 홍보미숙, 공연시설 미비 등의 여러 이유로 가치가 퇴색되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홍보측면에서는 신문이나 TV홍보는 어느 부분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으나 정말 가려운 곳 시원하게 긁어주는 세세한 홍보가 부재했다는 평가다. 
공연장을 찾는데 안내표지판이 없어 괜한 시간을 낭비해야 했다거나 4대가 준비된 셔틀버스는 익산시내에서 찾아보기가 힘이 들었다. 실례를 든다면 원광대 노천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은 무료임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이 별로 모여들지 않았다. 
그리고 익산시의 협조체제 부재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행사전 유승봉 이사장의 익산시에 대한 아쉬움은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행사기간 내 익산시가 조금만 더 적극적인 홍보와 행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즉 익산시 스스로 주체가 되어 이것저것 열심히 해보고자 하는 노력들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냄새만 피웠지, 아주 맛난 재료를 가지고 양념부족으로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지 못했다는 평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지적들은 어떻게 보면 예산부족에서 기인한 것이 상당부분일 것이다. 이번 축제의 총 행사비용은 7억이 채 넘지 못했다고 하는데 행사기간 10일, 40여개의 단체들이 100회가 넘는 공연을 기획한 규모로는 사실 최저예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대부분의 익산시민들은 불만을 갖지 않았다. 행사 중 비로 인한 공연 연기나 아니면 운용부족의 이유로 공연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어도 주최측이 제공하는 시원한 생수 한잔에 화를 누그러뜨린다. 왜냐하면 평소에 갈증이 심한 사람은 아주 적은 물로도 고마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축제의 가장 큰 수혜자는 우리 아이들일 것이다. 행사 제목이 그렇듯이 익산의 아동과 청소년들은 실로 처음으로(?) 마음껏 연극이나 노래공연, 워크샵등 가족과 함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궂은 날씨탓에 어른들은 처마밑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거나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지만 한참 신나는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시원한 여름나기가 된 셈이다. 
이번에 티켓을 담당했던 한 직원은 새로운 문제점을 제시했다. 어른과 아이들 요금이 똑같아 시민들에게 항의를 받기도 했다는 내용. 그런데 주최측은 서울 아동극 공연에서 가장 적은 수준의 아동요금으로 어른도 맞추어서 상품을 내놓았다는 해명이다. 물론 그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이왕이면 어른들의 요금을 조금 더 올리더라도 아이들은 공짜 내지는 천원쯤은 어땠을까? 대신 부모님 동행, 전제하에서 말이다. 엎어치나 메치나 수입만 같을수 있다면 이왕이면 아동,청소년이란 축제이름 값으로 기분이 그렇다는 말이다.
참 많은 허점과 어중간한 포장때문에 언제 끝났는지도 모를만큼 조용히 그렇게 축제는 끝났다. 
익산에서 처음으로 치러진 세계아동청소년축제, 그 유치배경에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위원장의 고향이 이쪽이라고 해서 갑자기 애향심이 들어 이쪽으로 했던 것도 아니요, 설사 이 지역출신 정치인들의 정치논리가 작용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크게 상관할 바가 없으며 익산시 공무원들의 무관심한 태도도 그리 크게 서운할 일이 못된다.
왜냐하면 이번 익산 아동 청소년 축제(다시 말하거니와 도의 문화계에서 익산이란 지명과 아동이란 단어가 무척 생소하다)는 지역민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해주었고 또 평소에 보기 힘든 세계수준의 문화와 접해볼 수 있었다는 의미, 나아가 문화불모의 도시 익산이 새로운 연극문화의 도시로 탈바꿈 할 수 있는 계기로서 그 역할이 충분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아동연극을 보며 자라난 세대가 십 수년후에 이 지역의 문화발전을 위해 현재의 어른들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기울일거라는 사실, 당연한 가능성일 것이다. 불모지에 피어난 아름다운 실패- 그 가능성이 돋보인 한판이었다.
riano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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