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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7 | 칼럼·시평 [문화시평]
예술감독 ‘김용진 형’ 전상서
도립오페라단 <루치아>공연
이종록 전북대 교수 음악학과(2003-07-04 15:09:21)
김형! 수고와 고생이 많았습니다. 칭찬과 비난도 많이 들었을 줄로 생각됩니다. 오페라 <루치아>를 관람하고 몇자 적어 올립니다.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성한 시골의 난전처럼 음악회장에도 으레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난전엘 갈라치면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야 합니다. 음악회장엘 가는 군중 또한 몸단장을 하고 서두르기 마련이지요. 난전엘 가는 새벽에는 기분이 들뜨고, 식사도 하는둥 마는둥 마음은 이미 그곳에 가 있습니다. 서양인들의 음악회장 풍속에도 우리네 난전 풍습만큼이나 다양성의 극치가 비쳐집니다. 새옷을 차려입고 연지곤지 바르고 머리손질하고...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곳에 가는 걸까요. 난전은 먼 친인척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으며 이웃이 살아 있음을 확인해 주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음악회장 또한 그간의 안부도 묻고 즐거움과 슬픔을 나누어 갖는 면회소와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생각됩니다. 
머리 속에는 그날 구입할 품목과 만나야 할 사람을 낱낱이 기록하고 꼼꼼히 챙겨, 돌아올 때에는 부족함이 없게 치밀한 계획의 나들이인 것이지요. 음악회장엘 가기 전에는 그날 공연될 작품의 이해와 음악감독, 지휘자, 연출자, 그리고 가수들의 면면을 속속들이 살피고 꼼꼼히 챙기곤 한답니다. 
과연 우리는 옛 조상들의 치밀한 난전 문화를 충분히 알고 있을까요? 또한 서양인들의 음악회장 문화를 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50년 전으로 거슬로 올라만 가봐도 우리 조상들의 음악문화는 대단히 정중하고 기품이 드러나는 일면을 볼 수 있습니다. 
판소리 한 대목을 듣기 위해 깨끗이 세탁한 옷을 준비하고 주머니에 동전 몇닢은 가지고 가는 그런 지혜를 발휘했지요. 이 또한 볼거리에 대한 작은 보답이요, 먹거리에 대한 자그마한 예의인 것이 아닐까요? 
6월 5일은 전라북도 도립오페라단의 <루치아>공연 마지막 날이었지요. 
그래서인지 한껏 기대에 부풀기도 했지만 실망 또한 어김없이 끼어들었습니다. 먼저 <루치아>를 선택한 김용진 음악감독께 특별한 박수를 보냅니다. 현충일을 기념하기 위한 배려가 깔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김형! 감독이나 출연진 모두에게는 섭섭하게 들릴 수 있으나 오늘의 <루치아>공연은 함량미달로 볼 수 있는 요소가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무대의 볼거리는 초라하고 나약함으로 이어졌고 생동감의 결여, 음산하고 스산해야 할 장면에서는 오히려 조마조마함이 앞서기까지 합니다. 
<푸치니>나 <베르디>의 오페라처럼 극적인 박력은 덜하지만 <루치아>는 절규와 비아냥거림, 그리고 조소가 깔려있는 맛깔스런 선율이 도처에 숨어 있지요. 이같은 진수를 표현하기에는 오늘의 가수들은 역부족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번 공연의 특색을 부각시키는데 연출자의 인색함이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김형! 오페라의 배역은 강자일변도에서 상생의 원리를 도입하여 무게중심을 가수에게서 지휘자에게로 이동한다면 극 전체의 느슨함을 막을 수 있다고 보는데, 그 점이 혹시 소홀히 취급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휘자의 냉철한 이끔에 비하여 가수들의 노래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통나무들의 충돌과 같은 아찔한 겹침, 긴박감 이전의 무질서와 같은 준비 덜된 보통의 노래로 들리곤 합니다. 이런 일들은 배역의 적절한 안배 소홀로 돌릴수도 있고, 또한 욕심 때문에 생긴 볼거리의 인식차이로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김형! 감독은 모름지기 바그너의 욕심을 부릴 수도 있어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고 싶습니다. 바그너, 그는 행정관료 및 정치인들의 권위주의를 예술성과 볼거리에 대한 일관된 설득으로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음을 간과해서는 아니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출연자 모두와 관객까지도 강한 메시지 전달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점이 아쉬운 대목이라고 생각됩니다. 
김형! 옛 어른들의 말씀중에 밥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저절로 배가 부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볼거리에 도취되면 먹거리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일차원적인 방정식이라고 여겨지는 잠언이지요. 충분히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먹거리는 이미 보상을 받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定期’라는 단어에 걸맞는 공연이기 위해서는 먼저 충분한 제작비와 투명성의 확보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물론 가수선발의 투명성, 배역의 투명성, 제작비의 투명성 등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그것은 감독의 강한 책임의식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순항될 수만 있다면 볼거리와 먹거리의 일차적 욕구는 채워지는 것이지요. 동물의 세계와는 달리 인간세계의 의사전달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중 인간은 오페라를 통하여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전달을 위하여는 작품의 선택 또한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미 선택의 당위성은 언급한바 있습니다. 
<루치아>에서는 우리에게 상황윤리식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어떻게 하겠느냐고 우리에게 빠른 속도로 대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지요. 현실과 정의의 사이에서 어느편을 선택하느냐는 개개인의 몫으로 돌리더라도, 이날 무대를 뒤로하고 돌아가는 이들 모두는 공연이 던져준 불확실한 메시지에 모호해야 했으며 여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소리발림에 더 많은 박수를 보내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현충일이 지나고 남북의 정상들도 만났습니다. 현실과 정의의 선택은 <루치아>에서 처럼 빠른 대답을 강요합니다. 시원한 노랫가락을 들려주거나 아니면 대답할 수 있는 메시지를 받아가지고 돌아설 수 있기를 기대한 저의 욕심이 지나친 것일까요?
김형! 무대위에 올려질 <루치아>의 열정을 다음 기회에 볼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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