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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7 | 칼럼·시평 [문화시평]
난장의 활력과 서커스 유희의 어우러짐
전주시립극단의 <광대들의 학교>
김길수 연극평론가, 순천대 문예창작학과 교수(2003-07-04 15:13:34)
난장을 통한 판깨기의 맛, 현장 공연을 통한 활력의 멋이 어우러진 작품, 스토리텔링의 재래틀을 뛰어넘어 함께 즐기고 나누며 깽판도 쳐보고 서커스 유희 그림마저 만들어보고, 묘기 뽐내기라는 통속적 드러내기 장면으로 남녀노소 함께 즐기고 만들어가는 연극, 시골 장날 벌이는 질펀한 굿판 놀이를 연상케 한 연극이 있다. 
전주시립극단의 <광대들의 학교>(전주시립극단 공동 구성, 고금석 연출) 공연은 연극과 현실의 경계가 아예 없다. 장기자랑을 통한 경품 잔치 퍼포먼스가 공연 서두부터 이루어져 관객의 참여와 호응은 대단하다. 그 중에서 최고상을 받을 사람이 극중 배우로 참여해야한다. 공연 서두부터 관객 끌어들이기가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공연 말미 역시 관객과 배우들은 무대와 배우를 종횡무진 뛰어놀며 함께 나눈다.
이 작품엔 심청전 연습 과정과 심청 역의 배우를 선발하는 과정 그리고 광대학교 선생님의 독재 횡포와 이를 까발리기 위해 벌이는 기상천외한 코미디 이야기가 주종을 이룬다. 
연극 연습 준비, 청소를 하는 학생 광대, 소품이나 각자의 옷가지를 챙기는 광대들도 있다. 어떤 학생 광대는 고장난 소품을 수선하면서 시끄러운 소음을 내기 까지 한다.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불협화음에서 서서히 규칙음으로 전환되고 주변 학생 광대들은 리드미컬한 그 망치소리에 동화되기 시작한다. 
동화 과정의 그림은 기가 찰 정도로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귀기울기 그림, 불협화음 속에서 서서히 일치점을 찾아가는 과정, 불협화음 과정의 정점에서 소리 장단과 리듬은 하나의 질서 이미지로 변용된다. 카오스와 난장 속에서 신명과 활력의 그림이 만들어진다. 
재래적 틀과 인습의 중압감은 일시에 사라진다. 각기 다양한 그림과 모양, 서로 화합하기 힘든 소리가 앙상블을 이루어간다. 난타를 연상케하는 연주 그림, 수 많은 소품들이 악기로 변용될 줄이야. 갑자기 귀청 터지는 외침소리가 들려온다. 
“연습준비 하라고 했잖아 !”
그러나 이미 신바람에 젖은 대다수 학생 광대들, 경림의 외침소리를 듣지 못한다. 악쓰는 소리, 굉음 소리 들려오면서 멋진 앙상블의 타악은 마침내 중단된다. “아, 저런 하찮은 연극 소품이 멋들어진 악기로 변조되다니!” 
관객은 난장의 맛과 활력의 멋에 동참하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다. 광대학교 연습장만의 멋진 공연놀이가 아니고 또 무어란 말인가.
겉질서를 요구하는 경림의 외침소리, “야아아아!”, 난타식 소리 공연 중단을 요청하는 외침 언어, 그러나 활력의 맛을 느낀 학생 광대들, “왜에에에?”로 화답한다. “야아아아!”, “왜에에에?”, “야아아아!”, “왜에에에?”, 밀고 당기는 파우어 게임이 얼마간 벌어지고, 환호성과 난타의 어울림, 이리하여 타악 퍼폼먼스의 난장 놀이는 절정에 도달한다.
광대학교의 교육 종목은 <심청전>뉴욕공연 연습이다. 드디어 연습이 벌어지고 그 어느 여타의 극단과는 다르게 이 공연의 극중 연습그림은 멋진 버라이어티쇼를 방불케한다.
수 많은 맹인들이 벌이는 주술성 노래, 지팡이 유희, 이들의 신명난 집단 신체 퍼포먼스는 가관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뺑덕어멈에게 농락당하는 어리석은 심봉사의 이미지가 클로즈업된다. 색욕에 눈멀었다가 결국 두루마기 도포마저 홀라당 벗기는 헤프닝, 동정의 이미지로 나타나기 보다는 재물과 색욕에 눈먼 몰가치 이미지가 희화되어 나타난다. 
<심청전>의 미국 공연을 앞두고 광대학교 선생(정진권 분)은 제자 학생 광대들을 스파르타식으로 훈련시켜 나간다. 편애하는 여학생 광대 제자가 있는가 하면 그에게 찍혀 고난당하는 제자들도 있다. 
고난당하는 과정, 다시 말해 기압받는 그림은 가관이다. 명배우가 되고자 하는 훈육그림, 고난도의 육체언어 훈련, 힘들게 만들어가야 하는 육체 그림과 이를 인내하며 안정된 메시지 언어를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 그 불일치의 틈새를 메꾸지 못해 괴이하게 몸부림치는 배우들, 이를 통해 교실의 독재 구조, 그 비틀린 상황이 패로디화된다. 
심청역의 학생광대가 임당수 투신 장면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공연 연습 과정은 이로인해 자주 중단되고 급기야 새로운 심청 배우 선발전까지 개최해야 한다.
선발전은 다양한 노래와 춤이 가미된 의상 패션쇼를 방불케 한다. 노래, 춤, 마임, 기타 장기자랑과 더불어 자연스런 관객 끌어들이기가 이루어진다. 재미와 익살이 넘쳐나는 장면, 그 사이에 학생들간의 사소한 분쟁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스승이 애지중지하는 거울이 깨진다. 이를 은폐시키기 위한 코미디 유희가 써커스화된다. 상대를 속이고 감추기 위한 숨막히는 대접전, 마침내 사건의 전모가 들통나 낭패를 당하는 상황, 결국 그들은 관속에 누워있는 스승을 일어세울 수 있느냐의 숙제풀기로 고민한다.
각종 코미디식의 주문, 귀신 등장으로 관속의 스승이 놀라 그만 일어난다는 황당한 이야기, 훌륭한 제자두기, 이는 스승이 잘났다는 자기도취된 편견, 이런 관중의 조롱과 야유속에서도 막판 사물 축하 놀이가 출연진들과 관객을 하나로 만들어 놓는다.
상투성 코미디 놀이라는 일부 인상에도 불구하고 연극놀이의 맛과 멋이 무궁부진함을 일깨워 주었다는 점에서 연극 <광대들의 학교>는 일단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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