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6 | [세대횡단 문화읽기]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교육 희망은 그렇게 피어난다
교육자 황민주, 오현옥(2003-07-04 15:27:57)
까맣게 타 들어가는 마음을 '석탄가'로 토해내던 사람들이 있었다.
전교조 합법화와 교육 정상화를 부르짖으며 수많은 교사들이 이유 없이 교단을 떠나야 했고, 시간은 흘러 그들의 눈물과 한숨에 '전교조 합법화'라는 보답이 안겨졌다.
그러나 교육 희망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험난한 가시밭길이다. 지옥 같은 입시 전쟁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고, 교사와 학생 사이엔 점수 따는 일만이 지상 최대의 과제로 남아 사제의 정이 넘치던 아름다운 교실 풍경을 지우고 교단을 흔들어대고 있다.
충남 보성초등학교 교장의 자살 사건은 교단 갈등을 증폭시키고, 전교조 활동은 도마 위에 올라 뭇매를 맞았다. NEIS 문제는 교사들의 삭발과 단식투쟁까지 불러오고 있다.
교육계가 어지럽게 춤을 추는 이 즈음, 퇴직 때까지 평교사로 남아 교단을 지켰던 이 지역 교육운동의 원로 황민주씨와 젊은 전교조 활동가 오현옥씨가 만났다.
교육에 대한 올곧은 신념과 철학을 공통분모로 30여년의 연배차이를 거뜬히 뛰어넘은 두 선후배 교육자는 어지러운 교육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학생들을 위해 헌신하고 마음을 다 하는 수많은 바른 교육자가 존재하는 한,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희망은 그렇게 지난함 속에서도 꿈틀대는 생명력으로 찬찬히 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두 선후배 교육자의 희망가는 양심 있는 수많은 교육자들에 대한 신뢰 속에서 드높게 울려 퍼지고 있다.
황 : 오 선생, 오랜만이에요. 문화저널이 젊은 사람과 이야기 할 기회를 줘서 반갑고 고마워요. 요즘 교사들은 50만 넘으면 희귀한 존재로 여길 만큼 정년이 엄청나게 단축됐잖아요. 우리 사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그렇긴 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이 많이 의기소침해지는 시절이에요. 이 코너가 '세대횡단 문화읽기'라고 하니 더 반갑더라고. 서로 다른 세대를 이해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중요한 일인 것 같거든요. 오 선생은 어젯밤에도 새벽까지 전교조 사무실에서 있었다고? 지부장 단식농성 때문인가?
오 : 예. 어제는 새벽 3시까지 있었고, 오늘은 김제에서 전국초등교사들 연수가 있거든요. 이야기 끝나면 거기를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저야 능력이 부족해 이름표 만드는 일 정도밖에 도울 일이 없겠지만, 먼저 가서 행사 좀 도울까 해요. 선생님은 요즘 교육위원 맡으셔서 많이 바쁘시죠?
황 : 조금 바쁘네요. 추가경정 예산심의 때문에 4일동안 회의하고 그제는 전국 교육위원 교육에 갔다 왔어요. 거기 갔다가 어제 저녁 늦게서야 서울에서 내려왔거든요.
오 : 스승의 날은 어떻게 보내셨어요?
황 : 서울에서 보낸 셈이지. 서울에서 좀 쓸쓸하게 보낼 뻔했는데, 서울 올라가는 길에 아주 오래 전 제자한테서 전화가 왔더라고. 거의 삼사십년 전의 제잔데, 직접 찾아뵈어야 하는데 전화 상으로 죄송하다고 하더라고. 내가 지금 서울 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마침 잘됐다면서 보자고 하더라고요. 9시쯤 정말로 전화가 왔어요. 만나자는 데를 찾아갔더니, 아줌마가 뭐야, 거의 할머니가 다 된 여학생 셋하고 남학생 둘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저녁 같이 먹고 오랜만에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랬어요. 그 중 하나는 노래방을 운영한다고 해서 노래도 실컷 하고 왔지. (웃음)
교단 위기 몰아가는 편파적 언론보도와 전교조 때리기
오 : 그러셨어요? 저도 나이 들어 계속 연락할 수 있는 제자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김제에서 전주로 온 지 얼마 안됐거든요. 김제에선 사실 볼펜 한 자루, 스승의 날 노래 정도가 대부분이었는데, 전주로 오니까 은근히 걱정이 되더라구요. 제가 있는 학교가 좋게 말하면 교육열이 높고, 나쁘게 말하면 바람이 좀 세거든요. (웃음) 사실 스승의 날 3일 전에 학부모들한테 편지를 썼어요. 어린이날 제가 아이들한테 선물을 사서 나눠줬는데, 저희 반 애들 중 하나가 이거 받으면 스승의 날에 부담스러워요, 하는 거예요. 화가 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나중에 불러서 그랬어요. 선생님이 비싸지 않은 걸로 정성으로 산 건데 네가 그렇게 말하면 선생님이 속상하니까 기쁘게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했거든요. 혹시나 학부모들도 그렇게 생각할까봐, 편지를 쓴 거구요. 나는 아이들의 선생님이지 어머니들의 선생님이 아니니까 어머니들이 주시는 선물은 안 받겠다고 했어요.
황 : 어, 그래요? (웃음) 그래서 결과는?
오 : 성공했어요. (옷음) 쿠키나 초, 손수건 같은 작은 선물을 받았거든요. 그런데도 뭘 가져오신 분들도 있더라구요. 돌려드릴까 하다가 다른 선생님들이 학급도서 구입비로 돌려 쓰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렇게 돌려 썼어요. (웃음)
황 : 그거 참, 잘 한 일이네. 요즘 공교육이 붕괴됐다, 학교가 무너졌다 험악한 이야기 많이 나오는데 마음이 참 안좋아요. 물론 그런 걱정이 나올 만큼 좋지 않은 상황들이 종종 나서기도 하지만, 오 선생 같이 학생들을 사랑으로 지도하는 교사들이 아직 더 많잖아요. 그래서 나는 절망하고 싶지 않아요. 위기는 위험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니까. 주변엔 좋은 선생님들이 참 많은데 그걸 단편적인 시각으로만 보니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마음이 참 아픈게 요즘 전교조가 보성초등학교 사건 때문에 무서울 정도로 뭇매를 맞고 있잖아요. 물론 조중동 등 몇몇 언론보도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사정없이 몰아부치는 걸 보면 너무하다 싶기도 하고. 어느 방송 시사프로에서 마음이 참 아픈 장면이 있었는데 보성초등학교 기간제 교사 말고 다른 여교사 두 명 있었잖아요. 정 선생하고 최 선생. 내가 듣기로 두 선생이 평소 학생이나 학부모들하고 아주 깊은 신뢰 속에서 잘 지내오던 사람인데 졸지에 살인마로 몰렸으니 참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오 : 저도 그 선생님을 지부 사무실에서 봤는데, 제가 교장 죽인 사람입니다, 하고 나가는데, 그 말이 참 슬프고 씁쓸하더라구요. 모습도 참 선해보이던데. 그러고 보면 편파보도가 참 무서워요. 이번 사건으로 배운게 하나 있어요. 언론이 한쪽으로 몰고 가려고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구나 하는 걸 뼈저리게 느꼈거든요. 저는 보성초등학교 일이 터지면서 전교조 홈페이지를 거의 매일 드나들었어요.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들이 있으면 열심히 답 글 써가며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황 : <추적 60분>이나 다른 시사고발프로를 통해 전교조 문제에 대한 일반의 오해가 좀 풀리긴 했는데, 언론에서 인권위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식으로 모니까 전교조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거야.
오 : 선생님은 전교조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황 : 그땐 전주 관통로 어딘가에 전교조 사무실이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려고 하니까 어떤 선생님이 막더라고. 내가 장학사나 뭐 기관 사람인 줄 알고. 그래서 나는 여기에 가입하고 싶어서 왔다고, 내 스스로 오고 싶어 온 거라고 한참을 승강이를 하고 있었는데 안에서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아는 선생님이 뛰어 나와 나를 맞아줘서 합류하게 됐어요. 나는 평소에 옳다고 생각하는 걸 실천하면서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참 존경스러웠어요. 내가 알았던 전교조 교사들은 학생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자세로 교직에 몸담고 있었어요. 그런걸 보면서 나도 그런 선생님들과 함께 교사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바로 저런 분들의 마음과 자세로 교사 일을 해야겠다 싶었고, 그이들과 함께 어울린다는 게 내게는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었거든요.
오 : 주위 분들이 황 선생님은 올곧고 옳은 일을 하시느라 애를 많이 쓰신 분이라고 말씀들을 많이 하세요.
황 : 그거야 나만 그런가요. 조금 유별난 건 있는 같아요. 오 선생 유신 헌법 알죠? 박정희 대통령이 영구집권을 하기 위해서 내놓은 악법인데, 그 유신헌법에 관련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교사들한테 마을에 가서 국민투표에 찬성하도록 사람들을 교육시키라고 하는 거예요. 교장 선생님이 교육청에서 지침을 하달 받고 와서는 아침 조회에서 교사들에게 시달을 하는 거예요. 한마디로 유신헌법은 좋은 법이라고 홍보를 하라는 거지. 나는 유신헌법이 우리나라에 있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교장 선생님한테 저는 그리 못하겠습니다, 했죠. 그 헌법 내용을 교장선생님께서 다 읽었는지 모르지만,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이런 법은 있어서는 안됩니다 했죠. 평교사가 상부 지시를 어기니 교장 선생님이 얼마나 화가 났을거야. 선생님들 다 모여 있는데 당신 같은 사람이 학교 망친다고 삿대질을 하더라고. 나도 일어나서 교장 선생님한테 그랬지. 당신 같은 사람이 대한민국을 망칩니다! (모두 웃음) 그러니까 교장 선생님이 그냥 일어나 나가시더라고. 퇴근할 때 즈음 교장 선생님이 오셔서 내 손을 잡고 그러시는 거예요. 황 선생, 지금껏 나랑 그리도 잘 지냈는데, 황 선생이 학교 망치고 내가 나라 망쳐서야 되겠느냐고. 그 날 같이 술 한잔 하면서 서로 마음을 풀었어요. 그게 학교에서 유행어가 됐어요. 나는 학교 망치고 교장은 나라 망친다. (모두 웃음)
오 : TV나 신문 보면 교단 갈등이 어떻다고 떠들어대잖아요. 그런데 제가 피부로 느끼기엔 교단 갈등이 심각하거나 문제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5월 10일에 교장단 결의대회를 했잖아요. 그날 교장 선생님들이 모여 우리가 용서하자 그랬다던데, 오마이뉴스 보도를 보니까 전교조 선생들 못쓰겠다고 하던 교장선생님들이 나오면서는 하나도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는 거예요. 사실 학교 일선에선 갈등이나 문제가 그리 많은 게 아니라는 거죠. 교장이 학교를 비합리적으로 운영하거나 고집만 내세울땐 조금씩 부딪히기도 하지만, 일반 교사나 전교조 교사나 잘 어울리며 생활하잖아요. 그런데 언론 보도만 보면 밥도 같이 안 먹는 사람들처럼 그려져서 참 안타까워요.
황 : 그게 보성 사건으로 전교조가 매도당하기 시작한 건데, 그게 어디서 발단이 됐느냐면 맨 처음 조선일보 가판에 올라와 있던 것이 여과 없이 전 언론으로 확산이 된 거예요. 조중동이 그러는 건 이해해요. 독자 한 사람 더 확보하려고 자전거도 경품으로 주는 형편인데, 전교조에서 공개적으로 조중동 보지 말자고 운동을 하고 설쳐왔으니 조중동에서 생각하면 전교조가 얼마나 밉겠어. 그러니 이때다 싶은게 좋은 기회였겠지. 오 선생 말처럼 전교조 교사랑 교장 사이에 그리 큰 갈등이 빚어진다고는 생각 안해요. 나도 전교조 활동하면서 학교 근무를 해왔는데, 맹세코 교장이나 전교조 이외의 교사와 조금도 갈등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물론 내가 다른 학교로 발령가면 그 학교 교장 선생님이 나를 먼저 경계하는걸 느끼기는 했어요. 그래서 나는 늘 교장과 먼저 면담을 했어요. 내가 전교조 활동을 한다고 해서 학교에 누가 되지는 않을거다, 조금도 걱정스러운 일은 없을테니 혹시 나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면 걱정 마시라고 안심을 시켜드렸지. 그랬더니 다들 좋아하시더라고. 여러 학교를 거쳤지만 한번도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학교가 그래요. 그런데 일반 교사랑 전교조 교사랑 얼굴도 안 마주치고 사는 것처럼 언론이 호도하니 안타까운 일이에요.
승진의 꿈이 있다면, 전교조 가입은 포기해라?
오 : 전교조에 대한 이미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김제 에 발령 받았을 때, 학교에서 그랬대요. 제 이름은 모르고, 전교조가 왔다 하셨대요. (모두 웃음) 역시 사람들이 저한테 다가오는 걸 꺼리는 눈치에요. 전교조 교사라고 하면 강성에, 뭐든지 반발하는 쪽으로 보더라구요. 그런데 사실 다른 교사들이 용기가 없어 말 못하는 내용을 전교조 선생님들은 용기를 내서 많이 이야기하고 대변하잖아요. 전교조에 가입하기 전에 제가 아는 전교조 선생님을 만나 7시간동안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펑펑 울었어요. 공부를 잘 가르치는 교사도 훌륭하지만, 아이들이 뭐가 필요한지 고민해주고 아이들이 해결할 수 없는 것, 학교 환경이나 제도를 바꿔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훌륭한 교사라는 걸 알았거든요. 그래서 곧바로 전교조에 가입을 한 거구요.
황 : 교육위원 선거를 앞두고 전북에 있는 거의 모든 학교를 다 방문해봤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만난 교장 선생님들이 나를 보면 자동으로 전교조가 떠오르시나봐요. (웃음) 그분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길 해봤는데, 어떤 학교 교장선생님은 이런 이야길 하시더라고. 자기 학교에는 거의 대부분이 전교조 교사인데 그 선생들이 그렇게 이쁘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고. 내가 본 바로는 열 학교 중에 8~9학교는 문제가 없어요. 전교조 교사가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라, 교장과 갈등이 있는 학교는 내가 보기엔 다른 문제로 시끄러운 거예요. 언론 보도 내용대로는 절대 아니지.
오 : 선생님도 잘 아시겠지만, 요즘 젊은 교사들도 전교조 가입을 잘 안하려고 하거든요. 승진의 꿈이 있으면 전교조 가입은 안하는 게 현명하니까요. 앞으로 세상이 많이 변해 가니까 가입하라고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다들 꿈이 있기도 하고, 그냥 평교사로 남는다는 건 좀 무능해 보이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선생님께서도 혹시 교장이나 교감 해보고 싶다는 유혹 같은 건 없으셨어요?
황 : 꿈에도 교장 교감 하고 싶은 생각 없었어요. 내가 한창 젊었을 때 평교사 운동회라는 모임이 있었어요. 그 모임의 뜻이 뭐였느냐면, 교단에서 근무하는 동안 가장 큰 보람은 학생들과 어울려 함께 지내는 것 아니겠느냐고, 우리는 교장 교감 하지 말고 퇴임할 때까지 아이들과 같이 하자 그런 내용이었어요. 그 자리에서 70~80명이 같이 다짐을 했거든. 그런데 그 모임, 한번으로 끝났어요. (모두 웃음) 평교사 존경한다는 이야기도 많이들 하는데, 교장 교감 못되면 일반적으로 무능하다고 생각하기 쉽거든요. 으레 나이 먹으면 친구들 사이에서도 교장 됐어? 교감 됐어? 하고 묻거든. 그런데 나는 교장 교감될 욕심은 아예 품지를 않았던 것 같아요.
오 : 말이 쉽지 선생님처럼 흔들리지 않고 나간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유혹을 많이 받는 모양이에요.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전교조를 탈퇴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구요. 그런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요.
황 : 그렇죠. 전교조가 합법화 된 뒤에 순수성이 퇴색됐다, 투쟁만 일삼는다 하는 비판을 많이 받는데, 사실 언론에서 맨 투쟁하는 것만 보여주잖아요.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교사 연구발표대회에 많이들 참가하는데, 물론 순수하게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점수의 영향 때문이라고 봐요. 점수를 따기 위해서나 재정적인 지원을 받을 수가 있으니까 연구 보고서도 쓰고 하잖아요. 그런데 전교조 참교육실천대회는 그야말로 현장에서 실천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학교 눈치 봐가며 돈 쓰고 노력 보태면서 보고서를 쓰잖아요. 나는 그 행사는 꼭 챙겨서 가보거든. 어느 땐 눈물이 다 나요. 이렇게 학생들을 사랑하고 바른 인성 길러주려는 선생님들이 있구나 하고....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자리가 있다는 걸 대부분 몰라요. 맨 투쟁하는 것만 보여주지 언론에서도 이런 모습은 보도도 안해. (모두 웃음) 내가 교육 관료들한테도 간곡히 부탁을 했어요. 일선학교나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연구활동만 치하하지 말고 여기도 한번 가봐라, 정말 자랑스런 교사들이다, 라고 말이죠. 내가 전교조를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도 이런 거예요. 어떤 선생님이 40년 교단생활을 접고 퇴임하면서 하는 얘기가 통일교육, 인성교육 한번 제대로 못 시켜보고 오직 입시교육만 시키다 떠나는 게 가슴아프고 부끄럽다고 하시더라고. 그 퇴임사가 마음속에 참 절절히 와 닿더라고요.
오 : 전인교육이다 인성교육이다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육이 잘 안 되는 이유가 비뚤어진 입시 풍토 때문인 것 같아요. 아이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학원을 많이 다녀요. 저는 나름대로 아이들과 공연도 보고 영화도 보고 싶었는데, 전주 아이들은 너무 바빠서 틈이 안나는 거예요. 애들하고 스케줄 맞추는 게 너무 힘들어요. 식구들끼리 한 상에 모여 다 같이 밥 먹을 기회도 거의 없다고 할 정도니까요. 인성교육이나 전인교육이란 게 교육과정 상에 문서로만 존재할 뿐이지, 실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아이들끼리 친구 발 씻어주기도 해보고 친구를 몰래 도와주는 '콩깍지' 게임 같은 것도 시켜 보는데, 처음엔 다들 싫어하고 귀찮아하더니 나중에는 그 의미나 보람 같은 걸 차츰 알게 되는 것 같더라구요. 따돌리는 아이 없이 골고루 친하게 되는 것도 교육적인 효과가 있구요.
국가에서 투자 할 걸 학부모에게 떠넘기는 나라
황 : 대한민국 교육=입시교육, 이거 이상으로 평가하기가 참 어려운 현실이죠. 어제 스승의 날 관련 기사만 찾아서 죽 읽어봤는데, 어느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어요. 스승의 날에 학교 선생님에게는 선물을 하거나 특별히 대접할 계획을 세우지 못했지만 학원이나 과외 선생님에게는 선물도 하고 파티도 열어줄 계획이라고 말이죠. 그거 보고 참.... 너무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 교육열, 말 자체만으로는 얼마나 필요하고 아름다운 말이에요. 그런데 그게 너무 과해서 걱정이에요. 어느정도인지는 오 선생이 현장에서 더 많이 느낄 거예요. 서울에선 아이들 과외 수업료 댄다고 엄마들이 파출부에 그 이상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니 말이죠.
오 : 서울뿐만이 아닐 거예요. 여기 학부모들도 그래요.
황 : 생각할수록 속이 터지는 게 민족의 교육열을 이용해서 국가에서 투자할 걸 개인이나 학부모에게 떠넘기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 있어요. 교육 내용과 과정은 소홀히 하면서 나머지는 다 떠넘기는거야. 학교에 돈을 얼마 내주든 자기 아이 공부만 잘하면 끝이라는 학부모들이 많으니까 가능한 것이고. 특수목적고도 특수한 재능을 키워주는 학교, 이름만으로는 얼마나 좋은 이름이에요. 그런데 그마저도 입시 전문기관으로 전락해버리니 더 할말이 없는거죠. 국가에서 구호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투자할 생각을 해야 되는데, 그 비용을 학부모에게 너무 많이 떠맡겨요. 국가에서 교육과정을 잘 짜서 운영해야 하는데, 요즘 초등학교는 어떤가요? 초등학교 과목이 대략 14가지 정도 되죠?
오 : 예, 맞아요. 학교 재량에 맞기는 교육 시간이 있긴 한데, 다들 컴퓨터 교육을 시키고 있구요. 엄밀히 따지면 재량 교육이 아닌거죠. 우리반 아이 일기장을 보고 제가 깜짝 놀랐는데, 뭐라고 썼느냐면 집에서 인터넷으로 과외 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거니까 학교에 안 가고 그렇게 공부했으면 좋겠다 라는 거예요. 그 아이를 불러서 우리가 친구들과 같이 지내면 혼자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걸 경험하고 느낄 수 있으니 그게 얼마나 좋은 시간이냐고 다독인 적이 있어요. 재량 활동이란 게 민속놀이도 하고 공동체의 가치도 느낄 수 있게 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는데, 그 재량 시간마저도 획일화 된 과목의 하나로 뺏겨가고 규격화되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죠.
황 : 우리나라 교육계획서나 공문서에는 창의성 기르기나 인성교육, 전인교육이 수도 없이 빽빽하게 써 있으면서도 그게 안되잖아요. 초등 교육과정도 14가지나 되는 교과서를 만들어 놓고, 그 내용을 다루고 가야 제대로 된 교사지, 그걸 한 권이라도 떠들어보지 않거나 넘어가면 그 선생은 문제교사로 낙인 찍히는거야. 얼마전 우리나라 교육계에『당신의 자녀가 흔들리고 있다』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적이 있었어요. 거기 보면 미국 어린이들한테 벽돌을 하나씩 나눠주고 이걸 어떻게 이용할 건지 물으면 오십 가지가 넘게 그 활용 내용이 나온다는데, 우리나라 아이들은 몇가지 이외에는 없다는 거예요. 창의성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거죠.
오 : 저도 그 책 보고 실험을 해봤거든요? 집 짓는데 쓴다, 화분 받침으로 쓴다, 못박을 때 쓴다, 그런 거 이외에는 안나오더라구요.
황 : 아, 그랬어요? (웃음) 그 책을 쓴 연세대 교수가 만일 내가 교육부 장관이 된다면 초등 교육과정을 반절로 줄어버리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얼마나 맘에 들던지 그 양반 나오면 딱 좋겠다 싶었는데 안 나오더라고. (모두 웃음)
오 : 맞아요. 초등학교 실과 과목에 재봉틀 사용이 나와요. 그런데 지금 재봉틀 쓰는 사람 없잖아요. 한번은 하도 답답해서 다른 선생님한테 하소연을 하니까 그 선생님이 이 단원 하나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관계돼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냥 웃으며 넘길 수밖에 없었어요.
황 : 그렇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밥그릇이 걸려 있죠. 한 15년전엔가 어떤 여고생이 단상에 나와 한 말이 나는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데, 그 여고생이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 수업내용이 전혀 이해 안되는 상황에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칠판만 바라봐야 하는 고통을 당신들은 아느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선하고 귀에 쟁쟁해요. 15년전의 상황이 지금은 더하면 더했지 나아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오 : 맞아요. 저 학교 다닐 때는 그래도 0교시는 없었거든요?
황 : 좋은 시절 살았네? (모두 웃음)
야간자율학습, '믿거나 말거나'
오 :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인성이니 창의교육이 되겠어요. 무조건 읽고 외워야 좋은 학교 갈 수가 있으니까요. 선생님들이 의욕을 갖고 다른 시간으로 쓰고 싶어도 나중엔 다 보충교육을 해야 하니까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게 귀찮고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황 : 나는 딸만 넷인데 사위랑 딸을 합치면 다섯이 교사야. 큰 딸이 고3 고2 담임을 맡았는데, 야간학습을 밤늦도록 해야 하니까 아기를 봐달라고 하는 거예요.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온다고 하니, 이게 학생이나 교사나 다 못 할 짓이다 싶어.
오 : 그때가 얼마나 꿈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 시절이에요. 그런데 그게 다 억눌림 당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예전에 외국 프로 '믿거나 말거나'에 우리나라 야간학습이 소개된 적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됐을테니까요. 그 사춘기 아이들을 밤 늦도록 공부시킨다고 학교에 붙잡아 두고 있으니, 누가 봐도 이해가 안되는 풍경이었을 거예요.
황 : 그래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구만. (웃음) 교육은 교사와 학생이 인격적으로 만나야 하는데, 그놈의 점수 말고 다른 관계는 형성이 안되는 거예요. 점수 말고는 다 가치가 없어. 1점만 올려줘도 인정받는 교사고, 그 외에는 의미가 없는 거지.
오 : 중국도 지금 교육열풍이 한창이라고 하는데 중국 유치원은 아이들에게 작물을 키우게 해서 시장에서 팔고 그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게 하는 것까지 교육을 시키는 거예요. 그야말로 완전한 경제교육을 시키는 거죠. 저도 김제에 있을 땐 아이들하고 옥수수도 심어보고 그랬는데, 그 해 태풍이 심하게 불어서 남은 건 그냥 튀밥만 튀어먹고 말았거든요. (모두 웃음) 그런 살아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기 있을 때 가정방문을 한 적이 있는데, 한 아이의 학부모가 학교보다 학원을 더 믿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무슨 말씀이냐고 했더니, 학교는 돈을 적게 받고 학원은 더 많이 받으니, 그만큼 책임도 있고 믿음이 가는 것 아니겠냐고 해요. 참 착찹한 심경이었어요.
황 : 요즘은 초등학교만은 점수에 얽매여서는 안된다고 해서 월말고사랑 다 없앴잖아요. 학교에서 점수 따는 경쟁이 줄어서 다행스럽긴 한데, 그래도 1년에 한두번은 시험을 치르니까 미술이든 음악이든 학원에서 시험기간이 되면 시험공부를 시킨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무래도 시험을 잘 보게 되니까 학교보다 학원 선생을 더 유능하다고 생각 하는거지.
오 : 저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한 친구가 있는데, 학교 다닐 때 우리는 아이들 교육 그렇게 하지 말자, 절대 학원 보내지 말자 다짐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아이 낳고 그 아이가 네 살 정도 되니까 정신없이 학원을 보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랑 그렇게 다짐했으면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너도 애 낳아봐라, 어쩔 수 없다 하는 거예요. (모두 웃음)
황 : 그런 분위기를 극복해 가기가 너무너무 힘든거야. 농촌학교살리기 모임에 가끔 나가는데, 정읍인가 김제에서 귀농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 사람이 나름대로 의식을 가지고 고향 땅을 지키면서 자녀들한테도 생태교육을 시켜야겠다고 해서 내려왔는데, 몇 년 지나 아이가 6학년이 되니까 마음이 흔들린다고 하더라고. 도시로 나가야 되나 어째야 되나 고민이 많다면서 말이지.
오 : 그런 이유 때문일 거예요. 시골 학교는 6학년 2학기 정도 되면 졸업식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거든요. 졸업 전에 전학을 다 가버리니까 졸업식을 못하는 거예요. 전체적으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면 힘든 일인 것 같아요.
황 : 네이스(NEIS) 문제도 빨리 결론이 나야 할텐데, 아직도 교사들이 단식농성을 해야 할 상황이라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내가 교육위원 된 뒤에 했던 첫 발언이 네이스 문제였어요. 이건 문제가 있으니까 국가에서 하는 일이라고 앞장서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말아라, 신신당부를 했었거든요. 일부에서는 학생 인권을 걱정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질 거예요. 그게 뭐라고 머리 깎고 밥도 안먹냐, 그냥 하라면 하지, 그런 생각이거든.
낙숫물에 바위가 뚫리듯…조금씩 희망 만들기
오 : 전교조 교사들 보면 맘이 아프면서도 자랑스러운 게 누군가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비난의 화살도 마다하지 않잖아요. 개인적으로 보면 다 놓고 싶을 것 같아요. 어제도 지부장님 단식하는데 사람들이 그 앞에서 뭘 먹는 거예요. (모두 웃음) 개인적으로 보면 굉장한 손해고 희생이잖아요. 사실 전교조 선생님들하고 함께 사는 사모님들이 제일 훌륭한 것 같아요. (웃음) 그런걸 다 받아주고 이해하면서 사는 사모님들이 얼마나 훌륭해요.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 사모님도 훌륭한 분이세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니까요.
황 : 전교조 사무실은 항상 밤 10시 넘어서까지 불이 켜져 있잖아요. 자기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좋은 점수가 생기는 일도 아닌데 그렇게 애쓰는 걸 보면 너무 감사하고 눈물나지. 전교조 활동이 100% 옳고 정당하다고는 할 수 없고, 모든 전교조 교사들이 다 훌륭한 것도 아니지만 그 마음과 순수함만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한 교육방송 프로에서 봤는데, 학생과 교사, 학부모한테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전교조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더 많아서 절망할 필요가 없겠다 싶더라고.
오 : 선생님은 교단에 서시는 게 좋으세요,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는 게 더 좋으세요?
(모두 웃음)
황 : 교사할 때가 훨씬 좋지. 교육위원 일이 많이 힘들긴 하지만, 교육위원이 교육을 변화시키는 데엔 큰 역할을 할 수가 없더라고. 어떤 면에선 착찹한 심경이기도 해요. 교육위원을 할 마음도 별로 없었지만, 적극적으로 반대한 사람이 집사람이었거든. 집사람이 그동안 나를 좋게 평가를 하고 있더라고. 그동안 전교조를 했든 뭘 했든 사람들로부터 욕은 안 먹고 산 것 같은데 만일 교육위원 한다고 해서 욕먹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거냐고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어요. 내가 그 이야길 마음 깊이 새기고 있어요. 교육위원 역할이 중요하긴 하지만 아직은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리 즐겁지는 않아요.
오 : 제가 아는 교장 교감 선생님 대부분은 전교조 교사들이 참 부럽다고 하세요.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 실천해 가는 삶이 부럽다구요. 많은 분들이 선생님 이야길 하시면서 그런 의미에서 참 부러운 분이라고 말씀하세요.황 : 오 선생한테 칭찬을 다 받네요? (웃음)
오 :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은 다들 제가 교장 1순위라고 우스갯 소리를 했었거든요 운동에 참여한 적도 없구요. 그래서 처음 전교조에 가입할 땐 갈등도 많았어요. 학교 다닐 때는 항상 시키는 대로하고, 그러면서 칭찬도 받고 했는데, 살다보니 내가 뭔가 주관을 갖게 되고 판단할 줄도 알고 뭐가 중요한 지도 알게 되면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더라구요. 전교조가 아니었으면 아마 예쁨 받는 예스맨으로 그럭저럭 살았을 거예요. (웃음)
황 : 좀 전에 오 선생이 전교조에서 일하는 교사 사모님들이 존경스럽다고 했는데, 나는 반대로 오 선생처럼 전교조 활동을 열심히 하는 여선생들의 남편이 더 훌륭해 보여. (모두 웃음) 어두운 터널을 슬기롭게 벗어나면, 눈빛 맑은 초롱초롱한 학생들과 즐겁게 살 수 있는 시간이 오겠지.
오 : 예. 낙숫물에 바위가 뚫린다고 하잖아요. 노력하다 보면, 우리나라 교육이 조금씩 원하는 대로 바뀌어 가지 않을까 싶어요. 선생님, 오늘 진지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반갑고 유익했습니다.
황 : 나도 그랬어요. 자주 보면서도 이런 시간이 없었지. 참 의미 있는 자리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