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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이야기] 이해경의 신화로 본 세상
관리자(2010-02-02 13:43:04)
이해경의 신화로 본 세상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를 통해 본 신화의 영속성
- 이해경 전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농업의 신 데메테르
데메테르(Demeter)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딸로 포세이돈 하데스 제우스의 누이이며, 올림포스 12신 중의 하나이다.데메테르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땅’을 의미하는‘De’또는‘Da’와‘어머니’를 의미하는‘Meter’가 합쳐져 땅의어머니를 뜻한다. 로마식의 이름으로는케레스(Ceres)인데, 이는 동사‘자라다’를 의미하는‘crescere’나‘선택하다’의‘creare’에서 유래한다. ‘곡물’을 뜻하는 영어의‘cereal’은 케레스에서 기인하고 있다. 이러한 명칭과 의미를 종합해 볼 때, 데메테르는 곡식 과실 초목 등 모든 식물을 보호하면서 성장케 하는 땅의 모성을 상징함으로써 대지의 신이면서 어머니 신이고, 낟알과 곡식의 신으로 불린다. 따라서데메테르는 대지의 모신 가이아를 계승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농업과 관련된 전체적인 일을 관장한다.데메테르의 자식 생산성은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의 남동생들과 결합을 하거나 자기의 딸이 그녀의 남동생과 결합하여 자식을 낳았지만, 그 자식들이 낳은 자식은없다. 데메테르는 한편으로는 동생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는데, 그가 페르세포네이다. 딸이 너무 예뻐서 다른신들이 넘볼 것을 우려한 어머니 데메테르는 딸을 시칠리아섬에 숨겨두었다. 그럼에도 딸은 그녀의 동생이면서 지하를주재하는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강압적인 결혼을 하게 됨으로써 남편에 따라 지하를 주재하는 여신이 되었다. ‘페로(phero)’와‘포노스(phonos)’가 결합되어‘파괴하는’의 의미가 있는 페르세포네는 아테네에서는‘파괴를 유발하는’의미의‘페테르시스(ptersis)’와‘에파프토(ephapto)’가 결합된 형태의‘페르세파타(Persephatta)’로 불리었다. 이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남편인 하데스와의 연관선상에서이해할 수 있다. 반면 페르세포네는 로마신화에서는‘다산’이나‘열매를 맺을수 있는’을 의미하는‘프로세르피나(Proserpina)’라 불렸다. 이것은 페르세포네가 어머니 데메테르의 속성을 계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페르세포네는 소녀라는 의미의‘코레(Core)’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하데스의 지하에서 벗어나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지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데메테르는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의 또 다른 동생 포세이돈과도 결합하였다. 하데스에게 납치된 딸을 찾아다니던 그녀에게 연정을품고 달려드는 포세이돈을 거부하기 위한 방편으로 데메테르는 말로 변신하였다. 그러자 그도 곧바로 말로 변하여 그녀를 덮쳤다. 그로 인하여 낳은 것이 불사의 명마 아리온이다.데메테르는 신이 아닌 인간과의 결합을 하기도 하였다. 카드모스와 하모니아의 결혼식에 참석한 데메테르는 그들에게곡식을 결혼선물로 주고, 결혼축하연에서 물처럼 흐르는 넥타를 마시고 취해 이아시온과‘경작되지 않은 세 번 갈은 땅’의 밭고랑에서 성적인 결합을 하였다. 그러나 제우스는 인간이 신과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무례한 것으로 생각해 분노하며 이아시온을 벼락으로 쳐 죽였다.데메테르가 이아시온과 관계 속에서 쌍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이들은 풀루토스(Plutos)와 필로멜로스(Philomelos)다. 풀루토스는 그리스어로 충만, 부(富)를 뜻하는데, 그는곡물저장을 관장하는 자이며, 땅 속에 있는 보물의 지배자로, 또 땅의 품속에서 싹트는 식물들의 지배자로서 땅에서곡물이 자라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돌봐주는 자로 그려진다. 그는 신화에 의하면‘온 대지와 바다의 넓은 등 위를돌아다니며 누구든지 만나 자기를 껴안는 자를 부자로 만들어주고, 복을 많이 내려’『( 신통기』) 주었다. 공평성이란 점에서 문제 있다고 생각한 제우스는 그가 사심 없이 재산을 분배하고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의 눈을멀게 하였다. 필로멜로스는‘노래들의 친구’라는 뜻으로 가난한 농부로서의 삶에 만족하였다. 그는 쟁기와 짐수레를 고안해냈는데, 데메테르는 그의 발명에 놀라워하며 그를 7마리의 황소가 수레를 끄는 목동자리 별자리로 만들었다. 이별자리는‘쟁기질하는 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페르세포네의 순환성신화에서 데메테르는 무엇보다도 페르세포네와 함께 이야기되곤 한다. 신화에 따르면 페르세포네는 시칠리아 섬에서자라면서 어느 날 친구들과 꽃을 따다가 수선화 한 송이에매료되어 친구들과 떨어지게 되었다. 이때 땅이 갈라지면서황금마차를 탄 하데스가 나타나 페르세포네를 땅속으로 납치하여 아내로 삼았다. 이것은 순간적인 충동에 따라 갑작스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데스의 주도면밀한 계획과 더불어 제우스의 암묵적인 동의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즉 하데스는 페르세포네에 반하여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삼고자 하였고, 제우스 역시도 하데스의 아내로 페르세포네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제우스는 자기의 누나 데메테르가강하게 반발할 것을 예견하였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동의를하지 못하고 단지 애매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하데스가 폭력적인 행동을 감행하는 것을 도와주는 꼴이 되었다.근친간의 결합은 신화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며, 실제로 고대 그리스에서도 드물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근친간의 결혼은 유전적인 문제 때문에 오늘 날에는 금기시되고 있지만,예전에는 정체성을 지키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인정되기도 하였다. 고대 그리스에서의 근친간의 결혼은 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행해졌다. 아들이 없고딸만 있는 경우 부모의 재산을 딸이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딸은 재산을 소유한다든지 관리하는 등의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재산은 결국 남편 가문의재산으로 귀속되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부모의재산을 상속하는 딸은 아버지와 가까운 친척과 결혼하였다.그럼으로써 상속녀는 자기 가문의 재산이 다른 가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고 재산을 지킬 수가 있었다.딸 페르세포네를 잃은 데메테르는 자신의 주 업무인 토지와 곡물들을 돌보는 일을 팽개쳐버리고, 지상을 떠돌며, 딸을 찾는 일에 열중하였다. 그럼으로써 지상은 흉년이 들어인간들은 굶어죽고, 신들은 인간의 제물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제우스는 여러 사절들을 데메테르에게 보내 그녀를 올림포스로 데려오려 하였으나, 그녀는 완강하게 거절하고, 페르세포네가 되돌아오기 전까지는 땅이 열매를 맺지못하게 주문을 걸었다.결국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하데스에게 보내 페르세포네를지상으로 보낼 것을 요청하자 하데스는 페르세포네에게 키스하면서 입속에 일곱 알의 석류를 넣어주었다. 이것은 하데스가 자신의 아내가 된 페르세포네를 지상으로 보내지 않기위한 계략이었던 것이다. 지하 음식을 먹지 않은 경우에만지상에서 살 수 있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안데메테르는 결코 올림포스로 되돌아가지 않고, 대지에 대한저주를 풀지 않았다. 제우스는 어머니 레아를 데메테르에게보내 설득케 하여 페르세포네가 일 년 중 2/3는 데메테르 곁에서 생활하고, 1/3은 하데스의 아내로 지하에서 머문다는 절충안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붉은 색의 음식은 단지 죽은 자에게만 제공되는 음식으로,석류를 먹은 페르세포네에게는 죽음과 지옥이라는 여신의의미가 새롭게 부가되어 하데스의 의미 선상에서 이해된다.그러나 하데스는 데메테르나 페르세포네와 마찬가지로 곡식을 성장케 하고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것은 땅과 곡식의 여신과의 관련 하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지하세계에서 하데스와 같이 보낸다는 면에서 페르세포네는 죽음과 연관되고, 지상으로의 귀환과 어머니와 함께보내는 지상생활은 탄생 및 성장과 관련을 맺는다. 그럼으로써 하데스에게 납치됨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영원한 죽음이 아닌 부활을 준비하는 것으로서 페르세포네의 순환적인이중의 삶은 탄생, 성장,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연속성의의미가 있다.페르세포네의 지상과 지하를 왕래하는 순환적인 삶은 농경과 관련하여 일 년 중 곡식이 싹터 성장하고 수확되는 기간인 가을에서 초여름까지는 지상생활, 수확이 끝나고 가을에 파종되기 전인 여름동안 씨앗으로 어둠 속에서 보관되는기간인 1/3은 지하생활이 된다. 이로써 페르세포네의 순환적인 삶은 씨앗의 삶처럼 연속적이고 영속적인 생명과 같다.페르세포네가 지하와 지상을 왕복하면서 생활하는 기간은그리스의 기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리스에서 늦여름은우기이기 때문에 곡물이 자라지 않고 곡식은 썩게 된다. 그래서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추수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페르세포네의 지하생활 기간을 겨울로 이해하고씨앗이 싹트는 봄부터 성장하는 여름과 열매를 맺어 추수하는 기간인 가을까지를 페르세포네가 지상에서 머무는 시간으로 이해한다.페르세포네가 삼촌과 결혼한다든지 하데스와의 지하생활을 겨울로 이해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신화가 탄생한 지역적인 특수성과의 관계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화의 창조성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할 수 있다. 신화는 어느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생겨났고, 지속적으로 이야기되었다는 것은 신화가 탄생한 지역의 사정과 연관되어 있고, 그 지역의 정서에 부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신화가 다른지역으로 전해져 인기를 얻게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내용은새로운 지역 사정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것은 기존의 신화에서 일부의 내용이 더해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구술성의 특징인 창조성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오늘 날에도 우리가 여전이 신화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해경 전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하노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