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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 |
[서평] 『너는 모른다』
관리자(2010-02-02 13:44:14)
『너는 모른다』 소통하지 못하는, 소통하지 않는 시대 - 장마리 소설가 정이현의 작품은, …… 도발적이다, 발칙하다, 감각적이다, 칙릿 소설의 열풍을 일으켰다 ……. ‘유지’네 가족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족이라는 개념의, 행복이 넘치고 사랑이 충만하여 웃음이 넘치는, 즐거운곳이 아니다. 아버지 김상호는 은성(딸)과 혜성(아들)을 두었지만 성격차이로 이혼을 하고, 중국 국적(중국어 강사)의 미혼녀 진옥영과 재혼한다. 이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몇 번 잠자리를 하다 보니 진옥영이 임신을 하게 됨으로써 어쩔 수 없이 결합하게 된 가족이다. 그런데 진옥영이 임신한 아이는, 김상호의 아이일 수도 있고, 진옥영의 오래된 중국 애인 밍의 아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하튼 진옥영에게는‘내 아이’이다. 김상호 또한 유지를‘내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유지’라는 아이로 인해 가족이 형성되었지만, 항상 조마조마하여 어떤 음모가 숨겨져 있는 듯한데, 유지의 실종으로사건이 터지고 만다.유지가 실종되자 혜성은 아버지에게 경찰에 신고를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너무도 당연한 말을 꺼내지만 아버지는‘들어가서 잠이나 더 자라’고 말한다. 혜성의 심란한 마음이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처음에는 어리둥절했으나 점점 기분이 더러워졌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단호하게 선을 그은 것이었다. 이 집에서 일어나는 어떤 문제도 엄밀하게 따져 너의 일이 아니므로, 더이상 개입하지 말라고 선언한 것이었다. 자신을 금 밖으로밀어낸 것이었다. 잔인하다. 혜성은 입술을 깨물었다. 권리없는 자가 제아무리 걱정하고 애태운다 한들 모두 무의미한짓이었다.’(p96)가족이되, 가족일 수 없다는 아버지 말에 혜성은 제 방으로 들어가 인터넷으로 사건사고를 찾아보는 것으로 그친다.유지의 실종을 조사하기 위해 기용된 사설탐정 문영광은 탐문조사를 하다가 소통되지 못해 숨이 막히는 유지네 가족을이렇게 묘사하고 있다.‘김혜성은, 아버지와 새엄마 사이에 대해서도 역시‘잘 모른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요 근래 집안에 수상한 손님이 방문하거나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적 없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순간, 소년이 공연히 둘러대는 게 아니라 정직한 대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혜성은 이집의 일원이되, 동그라미의 바깥 어딘가에 있는 존재였다. 자발적 선택인지 구조적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p152)이런 가족이 정말 있을까. 소설이니 가능하지 않을까. 반문하는 독자에게 작가는 일상적인, 전형적인 가족도 이렇다고 대답을 한다.‘어느 날 갑자기 불행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고 서로를 마냥 보듬어주기만 하는 가족은 없다.가족 구성원들은 분열하고 싸우고,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느라 몹시 바쁘다’(p243)그렇다면 도대체 소통하지 못하는 이 가족은 누구의 책임일까. 궁금하다. 이렇게 묻는 독자에게 작가는 가족의 가장인 김상호의 입을 빌려 말한다.‘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고 믿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수백개의 신장을 밀수했고, 미성년자임이 분명해 뵈는 여자애와술집 2차를 나갔으며, 조금이라도 싱싱한 심장과 폐를 구하기 위해 중국인 교도관에게 적잖은 뇌물을 주었다. 무엇이어디에서 잘못되었단 말인가. 수입의 절반은 아내에게 생활비로 주었으며, 전처의 아이들을 보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유지가 원한다면 미국, 영국 아니 아프리카까지라도 유학을 보낼 결심이 서 있었다. 자신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였다. 그의 인생은 그렇게 굴러갔다. 그런데 왜?’(p438)김상호는 오히려 독자에게 반문을 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냐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으로 최선을 다한 죄밖에없는데 왜, 이런 시련을 주느냐고. 그래,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김상호만 이렇듯 부르짖는 것은 아닌가 보았다. 살아 있는 자신의 몸뚱이를 팔아서라도가족을 보살피겠다는 가장의 눈물어린 책임감은 중국도 매한가지인가 보았다. 얼굴빛이 싯누렇게 떴고 여윈 사내가 김상호 앞에 무릎 꿇고 말한다.‘북쪽 지방에서 사업을 벌이다 크게 망하곤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처와 어린 딸이 많이 아프다고 했다.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황달과 폐렴이 심하지만, 심장만은 쿵쿵 규칙적으로 뛰고 있다고 했다. 그것을 팔고 싶다고 했다.’(p450)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이쯤 되면 가족을 위해서 제 한 몸뚱이, 기꺼이 바치겠다는 가장의 숭고함에 눈시울이 붉어져야 마탕할 터이다. 가족이란 혈연이나 입양, 결혼 등으로 관계되어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가장에게만 책임감을 묻는 게 옳은 일인가. 가장이 이렇게 힘겨워할 때 그의 아내는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는 물음에 진옥영은 말한다. 아마도 남편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아내인 내가 모를 거라 믿는다고. 남편이 중국대륙에서 가짜 양주나 짝퉁가방 따위를 거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진즉 눈치 채고 있었지만 아내이기에, 그럼에도 모르는 게 약이라는 한국 속담까지 들먹이며, 아내여서 어쩔 수 없었노라고 대꾸한다.‘남편은 무역업자였고 자신은 무역업자의 아내였다. 남편은 십 년 내내 넉넉한 생활비를 가져다주었다. 그가 그것을어떻게 벌었는지 따지는 일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쪽 눈을 꾹 감아왔다.’(p270)뻔뻔스럽다. 작가가 독자를 대신해 진옥영에게 한마디 쏘아붙인다.‘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직면해야 하는 윤리적 고뇌를 어떻게든 피해버리고만 싶어’(p270)서였겠지. 그러니‘어쩌면이제야 그 죄의 대가를 받고 있는 중’(p270)이라고.작가는 이런 가족 때문에 지쳤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내란모름지기 이래야 되지 않겠느냐고 독자에게 동의를 구하는지도 모르겠다.가족이라는 이름을 저버리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작가는죄를 물었다. 유지를 잃고 산, 6개월은 그들에게 지옥이었다. 자신들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그들의 외침을 거부할수 없자, 작가는 가족이란 끈을 이어준“유지”의 소식을 그제야 가르쳐 준다. 유기된 채 무연고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에 식물인간이나 다름없게 된 유지를 그들 앞에 뚝 던져놓는다.“이것은 소통하지 못하고 산 너희 가족에 대한 죄 값이다.그리 알고 유지를 서로 돌보고 아끼도록 해라. 가족이란 이래야 되는 거구나, 이러는 것이구나, 라고 진심으로 깨달아행복의 결실을 맺길 바란다.”가족을 소재로 한 소설이 많지만 언뜻 손이 내밀어지지 않는 이유는 너무나 정형화 된, 마치 계몽소설 같은 형태의 뻔한 이야기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정이현의『너는 모른다』 는 소통하지 못하는, 소통하지 않는 이 시대의 자화상을 추리형식 기법을 이용해 그린 수작이다. 또한 작가 특이의 감각적 문체가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장마리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9년 제62회『문학사상』「불어라 봄바람」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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