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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 |
[저널초점] 틀 안의 예술, 틀 밖의 예술 5
관리자(2010-03-03 17:21:18)
개복동은 변신 중, 아픔 딛고 희망의 거리로 - 군산 예술의 거리 - ‘예술’을 위한 예술의 거리, 개복동 이른 저녁에 찾은 군산‘예술의 거리’.‘ 예술의 거리’라고 하지만 서울의 인사동과 같은 풍경을 기대하고 온 이들은 실망하고 발걸음을돌릴 터. 이곳‘예술의 거리’는 기존의 공간을그대로 유지한 채 작가 중심의 예술촌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작가의 오픈된 작업실에 들어가면 작업하는 과정을볼 수도,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작가와 이야기를나눌 수도 있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탄탄히 구축돼 있다. 특히 요즘은 젊은 아티스트들이 잇따라 입주하면서 훨씬 활기를 띠고있다. 예술의 거리 조성사업은… 예술의 거리 조성사업은 지난 2002년 집창촌에서 발생한 화재사건 이후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한 이곳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고자 시작됐다. 2006년부터 이상훈 미디어 아티스트를 비롯해 한상숙(한국화가), 조권능(미디어 아티스트), 한경자(서양화가)씨 등 지역 예술인들이 이곳을 예술의 거리로 재탄생시키기위해 뭉친 것이다. 이후 2008년부터 예술의 거리 조성위원회를 결성, 사업을 진행해 왔다.그동안 진행해 온 사업으로는 <예술의 거리전>, <깃발전>, <사랑의 선물전>, <푸름축제>,<꽃순이를 아시나요> 등이 있다. 예술의 거리 조성위원회는 이 같은 전시와 공연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상처를 치유, 개복동을 문화예술의 중심 지역으로 만들고자 계획했다. 특히 <꽃순이를 아시나요>전은 개복동 화재참사로 숨진 여인들을추모하며 잊혔던 그날의 사고를 돌이키며 다시금 각성케 했다. 산으로 가는 예술의 거리 조성사업 개복동이‘예술의 거리’로 탈바꿈하는 데는이상훈 씨의 공이 가장 컸다. 그는 10여 년의독일 유학을 마친 후 고향인 군산에 돌아와 개복동의 현실을 보게 됐다. 고향의 낙후된 문화예술 수준과 개복동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예술촌 건설을 결심, 개복동에 작업실을 마련했다.처음 이곳에 터를 잡고자 했을 때 무엇보다 힘들었던 점은 주민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는“이곳에 사시는 분들은 대부분 노인분들로 예술의 거리를 이해시키는 자체가 쉽지않았다”며“또한 아직도 그때의 상처가 아물지않아 그 얘기를 꺼려하신다”고 말했다. 이때부터그는매일개복동주민들을만났고,‘ 예술의거리 조성사업’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했다. 또한 그는 수시로 군산시에 예술의 거리 조성사업 계획을 알리며 시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하지만 지금 그는 예술의 거리 조성위원회위원장을 사퇴한 상태다. 예술의 거리 조성사업이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버려진 공간을 살리려 시작했던 사업이 이제는 밥그릇 싸움으로 번진 것. 특히 전라북도에서 문예진흥기금 1억 5천만 원을 지원받게 되자 그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게다가 몇몇 주민들의 얌체 같은‘실속챙기기’는 단합과 화합으로 가야 할‘예술의 거리 조성사업’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실정이다. 이 씨는“예술의 거리 조성사업은 현재 과도기”라며“예술의 거리를 조성하는데 필요한 희생정신이 많이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예술의 거리는1, 2년 안에 해결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끌고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현재 군산‘예술의 거리’조성사업은 정체돼있는 상황이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개복동 곳곳에 아직도 이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개복동에서‘나는 섬’이라는카페를 운영 중인 조권능(미디어 아티스트) 씨는“개복동에 입주한 지 2년이 됐다”며“예술의 거리 조성사업은 이제 시작이라고 본다. 이공간에 들어오는 예술인들의 새로운 움직임을통해 개복동은 변화될 것”이라고 말했다.개복동은 아직도 깜깜하다. 이 어둠속에서드문드문 존재하는 조그만 불빛들. 그들이 하나 둘 모여 개복동을 희망의 거리로 가꾸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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