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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 |
[신귀백의영화엿보기] 500일의 썸머
관리자(2010-03-03 17:23:05)
애이시습지 (愛而時習之) 불역열호 (不亦悅乎)! <500일의 썸머> 귀 여 운 형 식 미 매 맞으며 배운 원소주기율표나 근의 공식은 잊어도 첫 키스의 추억과 그날의 별빛과 떨리던 마음은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여자의 입에서 낙하하던 힘들다는 말에 이어 우리 조금 떨어져 보자는 제안과 파국으로 이어지던 복잡한 화학식의 과정들 또한 잊을 수 없다. 그 잊을 수 없는‘나쁜 년(bitch)’에게 주는 애증의날들에 대한 기록이 <500일의 썸머>다. 스크린을 응시하는 어떤 여자는 뜨끔하고 어떤 남자는 속상할지 모르겠다.이 영화 2010년 1월 말에 개봉했다. 사랑 이야기치고 포스터는 촌스럽지만 이 영화 귀엽다. 그리고 새롭다. 남녀 간 러브스토리라야 해 아래 새로울 것이 없겠지만 500일간의 형식이 새롭다는 말이다. 하루하루의천당과 지옥을 기억의 중요도에 따라 배치했으니 플래시백이 막 섞여 있달까? 가령, 8일에서 154일로 전환되니 산만할 수 있겠다. 슬로우 모션, 정지화면, 분할화면, 컬러 영화 속 배우가 흑백 주인공 되기, 친구의 사랑이야기는 다큐 형식으로 들려주기 등 감독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오프닝은 홈 비디오에 찍힌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성장기를 다룬 분할화면으로 시작된다. 먼저, 남자. 그깟 축구공 하나를 몸에 놓치지 않으려 이리저리 뛰는 것이 사내아이다. 반대로 여자아이는 공들여 기른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니…. 프롤로그에서 이것은 사랑 이야기는 아니라고, 여자가 남자를 만나는 이야기라고 번역되지만 원어를 들어 보면 소년이 소녀를 만나는 이야기라고 시작한다. 선 남 선 녀 의 빠 끔 살 이 사랑을‘운명’이라고 믿는 지구인 남자와‘우연’이라고 생각하는 화성인 여자의 드라마니 이 남자 조금 행복하고 많이 피곤할 터. 카드그림에 쓰이는 카피를 만들어 내는 회사의 카피라이터 톰(조셉 고든 래빗), 이름이 톰이니 우리나라라면 철수다. 남자주인공 톰의 선은 일찍이 서양 배우에게 없던 동양적 남자의 선이다. 양복을 입으면 단정하지만 티셔츠를 걸치면 풋풋하고 선량하게 보이는 그. 멘토인 초딩 여동생과 닌텐도나 하고 저녁 식사 후의 키스타임을 놓치는 소심한 녀석의 우수에 젖은 고운 턱 선이라니! 섬세하고 부서지기 쉬운영혼을 가진 이 남자는 운명적 사랑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그 첫날, 사장의 새로운 비서로 썸머(주이 데 샤넬)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4일째 엘리베이터 안에서팝그룹‘스미스’를 듣는 톰에게 그녀가 말을 건다. 이 처자 예쁘다. 그녀가 알바를 하면 편의점 매출액이 2배로뛰고집주인은월세를내려받는다.‘ 썸머효과’라는말이있을정도로남자들의선망에익숙한여자다. 얇은 블라우스에 아랫배가 도드라져 보이는 몸매의 그녀는 톰이 좋아하는 슬픈 브리티시 팝 정도는 죽 꿰고 있다. 이 천사가 복사기 앞에서 불쑥 딥키스를 하는데 어찌 자신의 반쪽이라고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썸머는 한 성질 하지만 킬힐이나 노출이 심하지 않은 단정하고 수수한 옷차림만으로도 잘 어울린다. 회사회식의 노래방에서‘슈 슈 슈’하며 60년대 올드팝을 부르는 썸머를 사랑하지 않을 남자는 없다. 그녀의 미소, 머리칼, 무릎, 입술, 웃음소리가 다 아름답다. 그런데, 그런데‘누군가의 무엇’이 되는 게 불편하다는 이여자는 멍미? 사랑은 환상일 뿐이라고. 결국은 인간관계의 혼란으로 이어지기에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이 여인을 톰은 몸에서 벗어나려는 축구공처럼 붙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알고 싶고 갖고 싶은 남자의 마음을 무시해 버리는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여자라니.그래도 사랑은 계속 된다. 백화점 가구코너에서 아이쇼핑을 하며 장난하는 장면은 연애를 해 본 사람만이아는 그림이다. 함께 가구를 사고 그 가구의 광택이 시들어질 때까지 서로 사랑하는 꿈, 그 꿈마저 꿀 수 없을때의 쓸쓸함을 감독 마크 웹은‘니들 그거 아나?’고 묻는다. 어릴 때 빠끔살이 장난 그것이 끝난 뒤에 의사놀이를 하듯 그들의 사랑과 전투는 지속된다. 그래, 사랑. 모를 수 있겠다. 모른다. 그러나 알면 좋다.167일 째, 회사에서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인생이 가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고 지나가는 사람 누구와도춤을 추고 싶어진다. 그래서 공원의 댄스장면은 완전 발리우드 영화다. 문신하고 싶다는 썸머에게 과감히 안된다고 말하는 톰. 그는 한 쌍의 북엔드로 청춘을 자리매김하고자 낯선 남자와 주먹을 교환하기도 한다. 아니, 저 때문에 싸우고 두들겨 맞았는데, 고양이처럼 변해버리는 그녀에게 톰은 묻는다. 우린 뭔데? 나는 네게뭐냐고? 규정짓지는 않아도 일관된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 남자의 생각이다. 동의한다.허진호의 <봄날은 간다>에서‘어떻게 사랑이 변하니?’하고 묻는‘어록’은 나오지 않지만 괜찮은 장면이있다. 보리밭이나 대숲에 이는 바람의 소리를 채집하는 그림은 없어도 그래도 제일 멋진 장면은 이거다. 그남자의 열정과 그 여자의 냉정 사이 이들의 두오모는 엘에이의 건축군(群). 벤치에 앉아 자기가 만들고 싶은건물군을 여자의 흰 팔뚝에 그려주는(톰은 건축을 전공한 남자다) 장면이라니? 종이가 없어 그녀 팔에 건물그림을 그리는 장면은 탁월한 연애의 기술이다. 가 는 여 름 322일 째, 영화 <졸업>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에 대한 남자와 여자의 해석은 다르다. 로빈슨 부인에서 벗어나 웨딩드레스 여친과 버스에 올라 탄 뒤 더스틴 호프만과 여자친구의 표정에 대한 해석은 썸머가 더 정확할지 모른다. 사실 그들에겐 틈이 있다. 브리티시 팝을 좋아하는 총론은 서로 같지만 각론에서 썸머가 비틀즈멤버 중 유독 링고스타를 좋아하는 취향 같은 것 말이다.썸머에게 빠져드는 톰에게 가구가게에서 몸을 더듬고 샤워실에서 섹스(이건 히치콕의 샤워실 살인사건의패러디일 것)를 벌이고 하지만 그녀는 만나면 만날수록 어퀘인턴스(아는 여자)를 넘지 않는다. 구속받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지만 극장에서 웃고 키스하는 사이로 발전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사랑을 믿지 않는 썸머.그는 함께 살고 싶어 선택을 강요하는데 결국 혼자 영화를 보게 된다.어느 날 스미스의 노래가 싫어지는 날이 오고 접시를 깨트리는 게 아니라 부수는 톰. 이 남자 헤어져 본 적있지만 이번은 다른 것 같다. 이유는 그녀가 이별(눈 땡그렇게 뜨고, 이제 그만 만나야 할 것 같다는 …)을 선언했기에. 이유? 훈수 두는 사람은 호르몬 증후군 아닌가 하지만, 그녀는 그냥 그래야 될 것 같으니까 그러는것이다. 이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이 여자는 5차 이상의 다항식이기에 당해 본 젊은남자 관객들은 이 여자를‘미친년’이라 부른다.이제 컬러 세상은 잿빛으로 보이고 그를 둘러싼 공간이 포토샵 하듯 지워진다. 문학이 표현하기 어려운 영화만의 특색이다. 결국 톰도 보통 지구 남자인지라 보통 수준의 여자를 만나는 수순을 밟는다. 미워하고 자책하고 짧게 다른 여자 만나다 친구 결혼식 가는 열차에서 둘은 다시 조우한다. 그녀는 부케를 받고 그리고 톰을 자신의 파티장으로 초대하는데….기대와 현실에 관한 생각을 분할화면으로 병치시켜 놓고 화면은 현실로 확대된다. 잔인해라. 그는 그녀의약혼식에 초청된 것. 머리칼 한 올 한 올이 메두사인 그녀를 두고 운명이니 뭐니 하는 것 믿지 않았어야 했다.결국 톰은 회사 작파하고 폐인의 날들을 보낸다. 그의 사랑에는 복수가 없기 때문에. 삶이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지고 밤을 분노로 보내고 인생을 증오하고 머리감지 않고 모자 쓰고 칩거를 한다. 누워 하루 종일 공만 튀기다 일어나는 이 장면 역시 스티브 맥퀸이 포로수용소로 돌아와 다시 공 가지고 노는 장면을 닮았다.그는 꼭 베르테르는 아니기에 예쁜 여자 아니면 연애 안하는 비장한 오기 같은 것은 없다. 진짜 여자가 나타날 때까지 슬슬 다른 여자랑 잠깐 탐색하다가 예쁜 여자가 나타나면 돌진하기 등 연애의 코드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살아야 하니까, 사랑은 성숙을 주게 되니까. 영원히 지속되는 무엇, 말하자면 건축 같은 것에 몰두하고 싶어 하는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건축 스케치에 시간을 보내며 썸머를 잊어간다. 5월 23일 수요일, 그는 건축 관련 면접장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이름을 묻자 싱그러운 그녀는‘어텀’이라고 대답한다. 하하. 어텀은 너그럽고 더 예쁘게 생겼다. 썸머와 헤어지고서도 해피엔딩라니. 목이 쑥 빠지고 웃는 모습이 예쁜 이남자의 썸머와의 길고 긴 500일이 지나자 다시 그 첫 번째 날이 시작되는 것. 보 면 좋 은 사 람 들 이 영화 썸머의 마음은 보여주지 않는다. 거기다 그녀가 결혼하는 남자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그가 잘생겼는지 직장이 좋은지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다. 그러니 이것은 철저히 남자의 심리와 선택에 대한 텍스트일 것이다.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浮雲)>이 남자의 마음대로 여자를 바꾸는 영화 교과서라면 이 영화는그 반대쪽에 있는 참고서일 것.알콩달콩한 로맨스나 베드신을 기대하는 분은 보지 마시라. 한 여자와 여러 번 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지루할 것이다. 사랑을 단칼에 썰어버리는‘싸나히’들도 재미없을 것이다. 그룹 피노키오가부른‘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그 어색한 사이’가 싫어서 떠난 경험이 있는 생애전환기에 선 중년들에게는 이 영화가 젊은 날의 리와인드일 수 있겠다. 라디오헤드나 이소라 등 적절한 우울함을 갖춘 대중가요삘을 좋아하는 이모들도 즐거울 것이고 운동이나 건강을 입에 달고 사는 갱년기 넘기신 분들도 입가심으로한 번 보면 좋을 듯. 미친년이라고 말하는 숯불에 덴 청년들에게 진심으로 권한다. 이 영화는 사랑이라는 이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이다. 그러니 이 영화로 공부하면 좋을 것.썸머를 화성인 취급하는 못난 남성들에게 고한다. 이 영화 속 매혹의 OST는 썸머의 마음을 이해하는 중요한 힌트를 줄 것이다. 그녀는 주유소와 호텔방 기차역 등 광막한 풍경 속 표정 없는 사람을 그린 미국의 화가에드워드 호퍼, 그리고 마르그리트를 사랑한다. 또한 <시드와 낸시> 같은 섹스피스톨즈를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 걸 보면 뭘 좀 아는 여자다. 영화 뒤에 숨어있는 감정선이 화학식처럼 녹아있는 코드를 찾는 일 역시 즐거운 일일 것이다. 그것도 공부다.우리 모두는 썸머와 사귄 적이 있다. 그 여름이 길고 무더웠던 사람이 있고 유난히 짧았던 사람도 있었을것이다. 하다보면 가을이 온다. 그것도 풍요롭고 아름다운 가을이. 연애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벤자민이 로빈슨 부인에게서 <졸업>한 것처럼 우리도 사랑의 학교를 다니고 학점을 이수해야 청년 졸업장이 나온다. 톰이 썸머를 졸업하고 성숙하는 어텀을 맞듯, 이별이 습관화 되고 내재화되어야 강철은단련되는 것이다.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이별 속에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이라는 것이다. 애이시습지(愛而時習之) 불역열호아(不亦悅乎)! <500일의 썸머>를 권한다. butgood@hanmail.net ps: 사랑하고 때로 익히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공자님 보시면 웃으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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