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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8 | [특집]
'문화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 생활문화 이끄는 시민 문화동호회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9-05 11:35:19)
바야흐로 시민 동호회가 만개하는 시대다. 문화의 영역에도 진흙처럼 찰진 시민들의 '결속'이 위력을 발휘하며 새로운 문화의 향기를 분출하고 있다. 취미와 관심분야가 같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시민모임을 결성하고 자신이 속한 삶의 테두리나 쳇바퀴 도는 반복적인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거점에서 발언과 행동의 '코드'를 맞추며 개인의 삶의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가정과 직장이라는 보편적인 '결속'의 개념을 넘어 새로운 사회성을 획득해 가고 있는 사람들. 이들은 공동의 사회의식 속에서 '변혁'을 꿈꾸는 식의 과거 운동성을 지닌 사회적 집단이기보다는 삶의 여유시간을 나누려는 이들의 자발적인 결속체라는 점에서 한층 더 민주적이고 문화적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자유로운 만남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만족과 함께 그 속에서 사회적 '의미 찾기'도 시도된다. 사회적 발언의 의무와 권리를 지닌 '시민'들, 그들의 '헤쳐 모여' 현상이 새로운 문화 코드로 등장하고 있다. 시간적 여유와 소득 증대, 시공의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터넷 그물망이 이러한 현상을 추동하는 것들이다. 개인주의적이고 파편화 되고 있다는 현대인들이 타인과의 의사소통 구조를 확보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욕구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문화적' 코드가 선택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다양한 형태로 증가하고 있는 시민 문화동호회가 이 같은 현상을 입증한다. 시민 문화동회회의 문화적 발현은 자기 삶의 '관계성'을 확장해 가면서 사회적으로는 새로운 문화 주체로 주목받고 있다. 한때 매스게임에나 '동원'됐을 법한 이들이 이제는 자신의 욕구를 찾아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당당한 문화적 주체로 떠오른 것이다. 시민 문화동호회는 '풀뿌리 문화민주주의'의 단초이자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가입 탈퇴가 느슨한 자율성의 매력 20~30대 직장인 모임인 '2535 직딩 모임'(cafe.daum.net/yeser32)이 마련한 일일호프 현장. 몇몇 '주동자'들이 카운터와 홀, 주방을 분주히 오가고, 모임에 늦은 사람들도 일행과 함께 속속 자리를 잡는다. 각자 "좋아서 하는 일"이라 업무량(?)에 대해서 불만이 있을 리 없다. '직딩 모임'은 지난 2001년 '정모(정식 모임)'를 통해 조직 결성(?)이 이뤄졌다. 단순히 직장인의 애환을 나누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무언가 뜻 깊은 일을 도모해 보자는 제안이 받아들여져 '일일 호프'를 기획했다. 여기에서 모인 수익금은 홀로 사는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을 돕는 일에 쓰여진다. '직딩 모임' 가입 회원들은 모두 400여명. 인터넷 모임으로 출발했지만, 오프라인에서 꾸준히 정기모임을 갖고 있고, 회원들 사이에 축구모임, 봉사 모임 등 자연스럽게 '분과'가 형성됐다. 전북지역 직장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오프모임을 갖기 위해 서울, 대전 등지에서 원정 온 '열혈' 회원들도 있다. 물론 가입, 탈퇴, 조직 운영이 느슨해 '강제성'은 전혀 없다. '직딩 모임'은 온라인이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직종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직장인'이라는 공통의 깃발 아래 모여들어 직장동호회로 조직된 경우다. 이들이 친목모임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장애 어린이들과 체육대회를 열거나 홀로 사는 노인 돕기, 문화행사 등 사회적 활동으로 '결속'의 의미를 다져가고 있다는 데 있다. '직딩 모임'은 시민 문화동호회의 가장 흔한 형태인 인터넷 모임으로 출발한 경우. '직딩 모임' 회원인 강기훈씨(30, ID huni)는 "여가시간을 내가 속해 있는 일상을 벗어나 좀 더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 시간으로 채워보고 싶었다"며 "무엇보다 가정이나 직장에서처럼 의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고 말한다. 지역 문화 이끄는 시민 문화동호회의 등장 시민운동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일반 시민들의 다양한 관심분야를 포용하며 새로운 시민문화조직체로 성장한 부천시민센터. 건강한 문화사업 추진이나 통일사업, 지역 현안사업 등에서 시민들의 발언 창구를 넓혀가며 전국적으로 모범적인 운영이 돋보이는 말 그대로 시민들의 단체다. 특히 일상적인 문화활동과 문화동아리, 통일음악회 등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문화 사업이나 연극과 노래, 풍물, 그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형성된 시민 문화동호회가 단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직장인 연극 소모임으로 정기공연과 비정기 공연활동을 벌이고 있는 '장작불', 직장인 노래모임 '천둥 소리', 지역 풍물 모임 '얼쑤패', 그리고 그림을 좋아하고 그리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인 '그림반' 등이 부천시민센터의 문화 향기를 전파하는 시민 문화동호회다. 부천시민센터 이화자 대표는 "사회운동단체는 아니지만, 회원들의 성취감이나 만족도가 높아 건강한 아마추어 집단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며 "회원들이 생활이나 문화가 변해 가는 스스로의 모습에서 큰 위안과 힘을 얻고 있으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주도해 가는 문화 활동들이 지역 문화에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부안시민문화모임도 전북에서는 알아주는 문화 동호회다. 교사, 의사 등으로 조직된 부안시민문화모임은 1998년 발기인대회를 갖고 문화답사에서부터 시민문화강좌, 다양한 문화행사 등을 벌이며 척박한 지역문화를 일구고 있다. 두드락 공연(1999), 『아 정여립』의 황정수 작가와의 대화(1999), 'DVD 영화상영'(2001) 등 시민들의 문화적 향취와 힘을 보여주는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운영으로 주목받고 있다. 직장인들의 반란, 생활문화를 바꾼다 시민 문화동호회의 힘은 문화 욕구를 해소하는 창구를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 가면서 이것이 개인의 생활에 활력을 더해주는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데 있다. 다양한 계층들의 참여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 중에서도 특히 직장인들은 이러한 시민 문화동호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세포들이다. 전국직장인밴드연합(www.freechal.com/workband).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동호회로오프라인 활동이 온라인보다 앞서 있다. 전국적으로 직장인들이 모여 만든 밴드들이 급증하면서 정보를 나누고 서로의 존재를 알기 위해 온라인 상에 방을 하나 만든 경우다. 최근 1~2년 사이 직장인들이 취미로 결성해 활동하게 된 밴드가 붐을 이루면서 아마추어 밴드의 전성기를 불러오고 있다. '수면 부족' '구내 식당' '사내 소동' '야근수당' 등 이름만으로도 직장인들의 애환과 재치로 가득한 이들 밴드 동호회들은 '넥타이 부대'의 반란을 주도하며 나름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들을 그저 아마추어라고만 부를 수 없는 것이 어엿한 합주실과 장비, 회원들의 뜨거운 열정을 바탕으로 직장인 밴드 페스티벌을 갖는가 하면, 각자의 공개 무대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직장인밴드연합' 마스터 선정우씨(31)는 "온라인은 서로 소식이나 알자고 열어둔 건데, 뜻밖에 엄청난 수의 직장인 밴드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비슷한 취향이나 음악적 교감을 가진 밴드들이 연합 공연을 갖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한다. 그는 "요즘은 주객이 전도돼 직장과 취미생활이 뒤바뀔 만큼 밴드 활동에 푹 빠져 있다"며 "생활에 활력 이상의 의미를 주고 있다"고 덧붙인다. 전북에서도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전주효문여중 교사 밴드와 직장인으로 구성된 'EZ 밴드' 등이 주목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효문여중 교사 밴드는 학내 축제에서 인기를 독차지하면서 아이들에게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고 배우는 선생님"이라는 모토를 몸소 실천해내는 이들이다. 'EZ 밴드'는 자영업자, 회사원 등 여섯명으로 구성돼 있고, 각자 사비를 털어 2001년 연습실을 마련했다. 30대 중후반의 가장들이지만 처음 배운 악기연주에 '도끼 자루 썪는 줄 모르는' 이들이다. 밴드의 리더 장동수씨(기타)는 "가까운 친구들끼리 모여서 할 수 있는 일이 날새기 당구모임뿐이었다"며 "그러다 뭔가 뜻 있는 일을 해보자고 의기투합 한 것이 밴드활동이었는데, 활동을 하다보니까 새삼스레 30대의 여가 문화가 무척 척박한데다 30대 가장들이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란 걸 알게 됐다"고 말한다. 이들은 봄, 가을로 정기연주회를 갖고 전주 중산공원에서 야외공연을 치러냈다. 직장인들의 문화를 활성화하고 입시를 치른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문화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요즘은 연습실에 물이 차 잠깐 휴식기를 갖고 있지만, 환경을 주제로 한 공연을 기획해 보겠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같은 직장에서 문화동호회를 꾸린 이들도 있다. (주)하이엘 직원들로 구성된 '타임머신'은 그 이름답게 역사의식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다. 여섯명의 직원들로 구성된 '타임머신'은 한달에 한 두 번 가까운 지역부터 역사적 숨결이 담긴 유적지들을 돌아보며 역사 공부에 심취해 있다. '타임머신' 대표 이승민씨는 "고창 선운사와 익산 미륵사지 등 지역 사찰을 비롯해 충청도 지역까지 역사코스를 답사하며 나름대로 전통과 역사의식을 높여가고 있다"며 "힘든 직장생활에서 여유와 문화적 향수를 찾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직장인 모임 중에는 제법 오래된 전통과 실력을 갖춘 전주 남성합창단이나 직장인 연극모임 '심심' 등도 별다른 지원 없이 회원들의 힘으로 연주와 공연을 벌여 가는 주목할 만한 직장인 문화동호회다. 이밖에도 직장인들의 모임은 일일이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전북지역 노래패 '소리꽃'은 1989년 대학 노래패를 중심으로 문예운동을 벌였던 386세대들이 시대 변화에 따라 시민들에게 참여의 문을 활짝 열어 시민 노래 동호회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하나될 노래' '선언' 등의 운동성 짙은 이름에서 지난 1996년 '소리꽃'이라는 대중적인 이름으로 바꾸면서부터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사회 현상이나 지역 역사에 적극적으로 몸을 싣고 있다. 소년소녀가장돕기 작은음악회(1996)를 비롯해 '양심수 후원의 밤'(1996) '5.18 기념행사'(1998) '효순, 미순 1주기 추모대회 노래공연'(2003) 등 여전히 문제의식과 사회참여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뜻 있는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주부들이나 아파트 모임도 새로운 문화향기를 발산하며 자발적인 문화 네트워크를 형성해 가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주부문화모임인 '주부동호회'(www.hitel.net/~k2jubu). 1995년 하이텔 통신으로 소모임을 시작한 이들은 '시삽'들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다양하고 풍성한 문화행사와 의미 있는 사회 사업으로 주부들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동호회다. '여름방학 아이들을 위한 꿈 그리기 잔치'(1996), '아이와 함께 읽는 책 도서전'(1998), '문화 이벤트 어머니와 연극을…'(1999) 등의 교육 문화행사를 비롯해 '여성부에 바란다' '소록도 양말 보내기' '불우이웃돕기 퀼트 작품 경매' 등 사회적으로 주부의 발언과 힘을 보여주는 풍성한 사업들을 펼쳐오고 있다. 공동 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아파트에서도 주민들의 문화 욕구를 담보해 가기 위한 아파트 주민자치위원회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시민단체 '시민행동 21'이 지난 한햇동안 집중적인 활동을 벌였던 '아파트 문화제'는 폐쇄적인 아파트 문화를 바꾸고 주민들의 문화 향수를 생활 공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담아내며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전주시 삼천동 신일강변 아파트나 평화동 동신아파트 등은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아파트 음악회나 서예교실 등을 자체 운영하며 아파트 주민 문화를 전파해 가고 있다. 시민 문화동호회는 '문화의 시대'를 견인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산실이면서 시민들의 문화욕구가 자발적으로 분출되고 모아지는 문화적 결속의 기초단위다. 이들의 결속은 개인적인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사회적으로는 시민들의 생활문화를 바꾸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민 문화동호회의 가치는 참여자들의 자발성에서 찾을 수 있다. 강제력이 없는 대신 조직운영이 유연하고 자유로우며, 조직의 동력은 '사회적 의미'보다 개인의 만족도에서 비롯되고 있다. 개인의 일상을 바꾸고 건전한 생활문화의 전파를 주도하고 있는 시민 문화동호회. 문화정책이나 행정이 어떤 틀 속에서 어떻게 방향을 찾아가야 할 것인지, 시민 문화동호회의 성장과 요구에 맞춘 체질 개선이 또 하나의 중요한 잣대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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