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0.4 |
[신귀백 영화엿보기] <녹색광선, 1986>
관리자(2010-04-01 18:56:46)
사랑이 탄생되는 지점 <녹색광선, 1986> 고 립 다 이 어 리 7월, 오피스 레이디 델핀(마리 라비에르)은 전화로 또 여자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파트너를 찾지만폭탄 같은 휴가가 째깍째깍 다가온다. 무리하다시피 긴 4주간의 휴가를 단체여행으로 보내기엔 끔찍하고 남자친구는 소식도 없다. 깨진 그리스 여행 대신 가족들은 아일랜드 여행을 하자 하지만 나이는먹어가고 세상은 재미없어진다. 누군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 앞에서 델핀 양, 고립을 피해 시들어가지만, 하릴없다. 상처로부터 벗어나고 궁상맞음에서부터 떠나는 것이 휴가인데, 함정이다.누벨바그의 별, 에릭 로메르! 예순여섯 드신 영감님께서 카메라에 담은 이 변덕스러운 처녀의 고립탈출의 다이어리를 들여다보자. 내숭은 아닌 것 같다. 큰 키, 잘 뻗은 다리에 단화가 잘 어울리는 이처자, 소심 아니면 섬세하달까? 지금은 솔로지만 사실 그녀는 마음을 나눌 남자 친구가 필요하다. 델핀은 길 가다 우연히 주운 타로카드의 녹색이 자신에게 희망을 줄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있지만, 거 참 애매한 성격이….델핀은‘혹시나’하는 마음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아일랜드도 그리스도 아닌 노르망디에 있는 별장으로 휴가지를 잡는다. 휴가지에서 이 고독녀는 남자 사귀기는 고사하고 그곳 멤버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아니 주위사람들은 이 신기한 채식주의자를 불편을 넘어 동정과 연민으로 바라보는 눈빛을 보낸다. 심지어 재수 없는 여자 취급하는 것에 이 아가씨 제라늄이 핀 계단에서 홀로 운다. 사실 요트가 있는 남자를 만나도 배 멀미가 심한데 어쩌라고? 가방을 든 젊은 남자가 담배를 권하지만 어림없다. 다시 파리로 돌아와 세느강을 산책해도 외로움은 가시지 않는다. 아 무 도 없 던 피 서 지 이 영화 거의 종반까지 카메라는 아름다운 자연 속 델핀의 고립 장면만을 붙든다. 해변 산책은 그렇다 쳐도 별 의미 없는 장면들로 하여 의미를 생성하는 로메르 영감님의 편집기술은 알아줄 만하다.고양이가 담벽을 타고 지나가는 그림이나 젖 돋는 소녀가 델핀의 사랑과 미래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는 수풀 속 열매 따는 장면, 또 걸음마를 시작한 여자아이가 흙장난을 하는 장면들은 사실 그녀의 외로움이 부각되는 장면들인 것. 특별한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지만 타인들과의 소통 부재와 존재의외로움을 잘 나타낸다. 이런 건조한 장면들은 외로움의 경험이 진한 관객일수록 감정이입이 어렵지않을 것.솔로 산책주의자라 해도 역시 파도와 바다를 함께 할 사람을 찾는다. 사실 젊은 날 그것만한 열망이또 있겠는가? 아직은 젊고 또 죽음을 맞기 위해 베니스를 찾은 노인네도 아니니 말이다. 가끔 나타나는 낯선 남자들이 대시를 하지만 미열에도 이르지 못하게 생긴 녀석들은 델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소비가 미덕이고 육체의 향연이 삶의 목표인 세상 속 해수욕장은 활기차다. 여기 대화를 나누게된 혼자 휴가를 즐기는 토플리스 차림의 스웨덴 출신 여자 친구 엘레나는 대담하게 전방위적 연애를즐기지만 역시 델핀의 취향이 아니다. 타인이 사랑하는 방식에 연연해하지 않는 그녀.아무나 함부로 받아들이지 않던(못하던) 까칠한 젊은날을 보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누군가 내 인생에 끼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끼어들길 바란다는 말과 같다는 것을. 사랑이 춤이라 할 때, 춤의 박자를 놓친 그녀지만 사랑은 조심스럽게 몰래 찾아온다는 것을잘 알기에, 그 때를 기다리는 것. 델핀 역시 모태솔로는 아니니까.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바보 멍충이가 아니라 세 번이나 사랑에 실패한 여자라는 사실.머리칼을 간질이는 해안의 바람과 발끝을 건드는 푸른 물속에서 스쳐온 남자들을 생각했을 것이고자신의 미래에 대해 한숨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델핀의 외로움을 형상화하는 로메로에겐 플래시백이없다. 현재의 언어를 통해서 존재를 노출하기 때문에 행동과 공간 모두 과거의 것이 중요하지 않은것. 자동차나 청약통장, 재테크보다는 책 한 권 더 읽는 미혼의 델핀에겐‘지금 어떤 결단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감독은 세 번의 사랑이 주었던 고통과 집착의 감옥에 갇힌 추억을 보여주지않는다. 단지 자연광 아래서 관찰자의 시선을 보여줄 뿐. 원색은 원색대로 파스텔 톤은 톤대로 잘 어울리는 옷차림의 이 숙녀는 해변에서 할마씨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처음 본 건 8살 때 우라볼 해안에서였어요. 아버지와 함께 갔었는데, 녹색광선에 대해 말해주셨어요. 그날은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운 좋게 그걸 볼 수 있었죠. 하지만 몇 초뿐이었어요. 태양이 질 때녹색 빛줄기가 수평선으로 퍼졌어요. 아주 얇은 층이었지요. 짧은 장면이었지만 너무 아름다웠어요.” 사 랑 이 탄 생 하 는 순 간 하늘은 새파랗고 바람은 싱그럽고 나뭇잎들은 춤추지만 솔로의 달인 델핀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한다. 외로움의 일상 속에서 매일 이별하며 산다고 믿는 이 여인에게 그래도 기적은 있다. 파리로 돌아가는 작은 시골역에서 우연히 만난 검은 티셔츠를 입은 청년과 몇 마디의 대화로 델핀은 마음의 문을 연다. 이성에 대한 긍정적 콘트롤은 책과 사유 그리고 오랫동안의 고독의 흔적들이 주는 선물 같은것.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을 먼저 읽었다는 이 훈남 목공예를 배운단다.일몰의 시간. 이 선남선녀 해변 벤치에 자리 잡고서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는 태양을 응시하고있다. 거짓말처럼 꼴깍 넘어가는 해는 일시적으로 녹색광선을 발한다. 델핀은 그 빛을 향해 감탄의 소리를 지르는데…. 경건함의 견지 끝에 찾아 온 기념비적인 순간! 과학적으로는 대기의 굴절현상이겠지만 정서적으로 사랑이 찾아왔다는 말이렷다. 솔로 탈출 시 나타난다는 놀라운 기적의 간증일 것.그런 때가 왔다는 건, 삶이 가끔 주는 선물지금까지 잘 견뎌왔다는.널 만났다는 건 외롭던 날들의 보상인 걸(이덕진의 노래 <내가 아는 한 가지> 중)델핀이 육식 아닌 채식주의자란 사실은 아무 것이나 입에 넣지 않듯, 사랑은 까다로운 식성, 철학적식성이 필요하다는 것 아니었을까? 사랑은 나의 영혼을 누군가에게 던지는 것. 사랑이란 다른 사람의참견을 받아들이며 그 인생에 참견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 준비를 말하는 우아하고 단순한 이 아름다운 엔딩신은‘인디언 썸머’라긴 좀 그렇고 기쁜 우리 젊은 날의‘선물’이라는 것. 선물 같이 은총 같이 녹색 광선이 찾아오는 순간을 표현하기 위한 과정 속 로메르의 성실한 관찰은 지루하겠지만 엔딩이 주는 상큼함은 한 편의 단편소설이다. 글쎄, ‘녹색 광선’보다는‘녹색 섬광’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사랑은 섬광과 같이 찾아오니까. 홍 상 수 와 로 메 르 지난 1월 11일, 90세의 나이로 선생이 타계했다. 트뤼포나 고다르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평론가 또감독으로 누벨바그 전설의 한 축을 담당한 사람이다. <녹색광선>이 1986년 작이면 이순 넘은 연세에만들어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 기다림에 대한 지독한 태도를 견지할 때 은총처럼사랑이 찾아온다는, 꿈결 같이 지나온 날들을 되새김하는 에릭 로메르 선생, 젊으시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아니라 사랑의 사유에 관한 긴 유효기간을 보여주신 선생이 형상화한 델핀은 자신이 갖고 있는모랄리티와 또 이상형 여성의 이미지 투영이리라.홍상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양반의 영화를 보면 아하! 하고 그 리얼리즘의 시선에 무릎을 칠것이다. 각본 집필과 연출을 동시에 하면서 소신에 따라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일컫는 '오퇴르(작가)'로메르의 스타일을 남한 감독이 제대로 응용했다. 인공조명보다 자연광을 사용하는 것과 카메라 동작을 자제하는 그 밋밋함이 닮아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적이고 사색적인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모랄의 밝은 면을 보여 준 로메르와 남한 작가가 그린 지식인 내부의 졸렬함의 차이점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할 터. 여기 홍상수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자.“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특히 <녹색광선>을 좋아해요. 로메르는 뭔가 대단한 이야기를만들겠다는 강박이 하나도 없었던 사람이에요. 오직 그 때 자기 곁에 있는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 자기를 둘러싼 공기와 날씨, 그리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작은 감정의 결, 그런 걸영화에 담았던 사람이지요. 그 사람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공간에서 같이 숨 쉬는 것 같은 느낌이들지요.”로메르의 작품은 <비포 선라이즈>같은 영화로 따듯하게 이어지고 또 서울 어느 하늘 아래 초록색술병이 놓인 남녀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서양의 선생이 보여 준 주인공들의 일관성에 반해 홍상수가보여준 인물들의 일관성 없음과 편견과 위선으로 가득 찬 남녀가 술 마시고 여관가는 그림은 시니컬하고 거칠다. 홍상수가 거칠다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에 잡힌 우리 사회 속에 드러나는 지식인들이 그렇다는 말일 것이다. 로메로의 시리즈 중‘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를 권한다. 여기 그의 첫 국제적 성공작 <모드의 집에서 하룻밤>과 첫 컬러영화 <클레르의 무릎> 을 보면 남자들과 여자의 얘기 속 신랄한 위트 속에서 홍상수의 그림을 찾는 것은 재미를 배가할 것이다. butgood@hanmail.net 팁1.‘ 문화학교서울’에서나온시네마떼끄총서『에릭로메르』는재미는없지만참조할만한책이다. 팁2. 알랭 드 보통의 소설『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한 페이지는 로메르의 영화를 두고 남녀 주인공의 싸움이 벌어진다.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났던 여인 클로이는 로메르의 영화를 싫어하고 나는 좋아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