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4 |
장미영·전흥남의‘꿈꾸는 노년’
관리자(2010-04-01 18:56:58)
잉여 인생에서 기회 인생으로
- 천명관 장편소설『고령화 가족』-
- 장미영 전주대학교 교수
우리 사회는 고령화 경보를 발령한지 오래다. 우리나라는 2000년을 기준으로 65세이상 고령인구의 비중이 7%를 넘어서면서 UN이 정한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에는 고령인구의 비중이 14%를 넘어선 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6년에는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여 초고령 사회에 들어설 것이고, 205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38.2%로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될것이다.
고령화 경보
한국의 고령화 진행 속도는 그 유래가 없을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고령화 추이는 고령화 사회의 도래를 예견하고 대비할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정도다.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들은 대체로45~100년 정도 걸려 고령화 사회가 되었다.이에 비해 한국은 20~30년 후면 최고령 국가로 진입하는 이변을 낳을전망이다.천명관의 장편소설『고령화 가족』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의 속사정을 여지없이 파헤친다. 소설은 인생에 실패한 삼남매가 엄마집에 기어들어 와 넉살 좋게 얹혀사는 답답한 상황으로부터 시작한다. 방이 세 개 딸린 스물네 평 연립주택에는 칠순이 넘은 엄마와 쉰두 살에 백이십 킬로그램이나 나가는 큰아들 오한모, 머리가 벗어져가는 마흔여덟의둘째 아들 오인모, 마흔 넘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막내딸 오미연과중학교에 다니는 십대의 손녀딸이 모여들어 평균나이 사십구세의 고령화가족을 이루고 있다. 연립주택 바깥 담장에는 노파들 몇 명이 버려진 소파에 나와 앉아 해바라기 모양을 하고 일광욕으로 소일하고 있다.집안이든 집밖이든 온통 중년 이상의 사람들뿐이다. 소설에서조차 아이들이 등장하지 않을 정도로 한국사회의 고령화와 저출산은 이미 심각된상태이다. 소설의 제목처럼, 한국의 가족 형태는 아버지-아들-손자로 구성된 삼대 가족에서 부부-자녀 중심의 핵가족 시대를 지나 나이든 가족중심의 고령화 가족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수명의 연장에 따른 고령화가 재앙으로 느껴지는 지점이다.
고령화 처방의 모색
소설 속 엄마는 칠순의 나이에 기능성화장품 장사로 살림을 꾸려간다.옛날 같으면 뒷방 노인으로 살아야 했을 엄마가 사회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미 한참 전에‘완경’을 맞이했을 엄마는 생식 능력이 마감되어 여성으로서의기능이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 스스로 오롯이 독창적인 노년기 삶의 해법을마련한 것이다. 그 결과 늙은엄마는 생식 능력이 왕성했을 젊은 시절의 엄마 못지않게 화장품을 팔러 밖으로 부지런히돌아다니는 와중에도 중년의 삼남매에게 닭죽, 잡채, 콩국수, 자반고등어, 아욱국, 고들빼기김치, 조개젓, 감자조림, 뱅어포를 반찬으로꼬박꼬박 끼니를 챙겨주는 식의 기염을 토하고 있다. 엄마의 엄마로서의 변함없는 열정은중년이 된 자식들에게“아침저녁으로 죽어라고기를 먹여 콜레스테롤의 위험을 걱정할 지경”이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는“엄마가 해 준 밥을 먹고 몸을 추슬러 다시 세상에나가 싸우라는 뜻”이 함께 있었다. 이러한 소설 속 엄마의 노년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있다.소설에서는 인생을 좀 더 산 엄마가 중년의자식들에게 바람막이가 되고 든든한 버팀목이되고 있다. 엄마의 꿋꿋함은 지금 상황보다 더나빴던 기억을 되살려 현실을 긍정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가능했다.엄마에 대한 남성 작가의 판타지가 고스란히 드러나기는 하지만, 천명관이 생산해 내는 고령화의 해법은 소설 속 엄마처럼 생물학적 늙음에 매몰되지 않고 노년에도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지독하게 삶을 긍정하는 것이다.
인생 조직 개편
소설가 천명관은『고령화 가족』을 통해 고령화라는 무거운 주제를 기막히게 코믹하면서도 천연덕스럽게 풀어냈다. 소설은 완전 콩가루 집안처럼느껴지는 절망적인 고령화 가족도 더 나아가“선배들이 부끄러워하고 후배들이 경멸하는”어정쩡한 중년의 늙은이도 사고의 전환과 혁명적 실천으로 해피엔딩의 노년을 꿈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령화 가족』은 독자들에게현재의 고령화 적색경보에 대해 고민으로 머리를 썩이는 것보다 훌훌 털고 일어나 무엇인가 시작해야 한다고 말을 건넨다. 저자는 노년을 단순한 잉여 시간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듯하다.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가『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SERI연구에세이, 018)에서 주장한것처럼, 소설『고령화 가족』의 미덕은 제2인생의 설계가 기회의 시간이 된다는 희망의 판타지를 생산한 것이다.젊은 시절의 엄마는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자식들을 팽개친 채 야반도주를 했고 그로 인해 큰아들은 계모로 들어 온 새엄마를 용서하지 못하고 폭력과 강간, 사기와 절도로 얼룩진 전과 5범의 변태성욕자가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집안에서 유일한 대학생이었던 둘째 아들‘나’는데뷔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십 년 넘게 충무로 한량으로 지내는 회생불능의 늙다리가 되어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하나뿐인 빈털터리 신세로살아간다. 여동생은 카페 마담으로 일하면서 허구한 날 남자를 갈아 치우는 바람둥이고, 하나밖에 없는 조카는 맞춤법 하나 제대로 모르면서 담배나 꼬나무는 불량 학생이다. 이렇듯 소설 속‘고령화 가족’이 보낸 전반기인생은 지질한 일상과 수많은 시행착오, 어리석은 욕망과 부주의한 선택으로 후회와 반성만을 남긴 철없는 인생이었다.전반기 막장 인생의 끝은 새 삶을 시작하는 기회가 되었다. 엄마는 뒤늦게 재회한 옛사랑을 불륜의 씨앗인 딸의 결혼식에 불러 들였고 결혼식을마친 딸은 식당을 열었다. 큰아들은 미용사와 결혼하여 입양한 두 아들을키우고 둘째 아들인‘나’는 포르노영화감독으로 사회생활을 재기했다.마지막으로 작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인생 이모작의 수칙을 제안한다.
장미영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임 중이며, 전북여성연구회 회장과 문화원형콘텐츠 연구회대표이사를맡고있다. 저서로는『스토리텔링과문화산업』,『 글쓰기나침반-탈경계시대의컨버전스경쟁력』『, 여원연구-여성, 교양, 매체』외다수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