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4 |
이현근의 농촌학교 이야기 환경
관리자(2010-04-01 18:58:02)
“별 다섯개되면 아이스크림 사주실거죠”
- 이현근 임실지사초등학교 교사
임실지사초등학교에는 특별한 선생님이 있습니다. 수석교사 이현근 씨입니다. 이 교사는 교감, 교장으로의 승진도 마다하고 16년째 농촌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가 오롯이 농촌학교만을 고집하게 된것은 남다른 신념때문입니다. ‘농촌의 교육이 살아야 한다’는 것.고향이 임실 성수인 그는 전주교대를 졸업한 뒤 한동안 강화도, 인천,전주, 완주 등을 떠돌았습니다. 인천과 전주에 잠시 머무른 것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농촌학교를 택했습니다. 그런 그가 작년 겨울, 다시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농촌과 농촌의 교육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이 교사는 매일 전주에서 임실까지 기차를 타고 출퇴근합니다. 때로는고된 여정이지만 그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곳에는 언제나 그를 반겨주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새롭게 시작하는 <이현근의 농촌학교 이야기>는 이 교사와 아이들이 좌충우돌 겪는 농촌학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교사는 앞으로 시골의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재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는 지난해 겨울부터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나의 하루 낮 삶터는 임실군 지사면의 지사초등학교이다. 지사는전라선 기차가 지나가는 길과 가깝다.나는 그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매일, 내 아침을 맞아주는 그리운 얼굴
기차를 타면 좋은 점이 있다. 관찰, 해찰, 통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운전을하면 앞만 보고 가지만 기차를 타면 앞만 보지 않고 책도 보고 풍경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가끔은 삶도 본다. 내가 좋아하는 상상을 마음껏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조직 속에서 엉켜서 살아간다. 이 때조직 속의 개인과 자유롭고 싶은 개인의가치 선택 사이에서 갈등의 줄을 탄다.나도 이와 같다. 나는 가끔 내가 날마다여행을 떠난다고 상상한다. 이는 현실을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다. 나는『창가의 토토』(프로메테우스출판사)에서 고바야시 선생님처럼 나만의 기차를운전하는 상상을 한다. 그러다“여기는……”이라는 말에 현실로 돌아온다.이렇게 나는 기차에서 판타지 여행을 떠난다.『창가의 토토』에 나오는 고바야시 선생님의 기차는 특별한 기차다. 모든 기차는 기찻길로 달리지만 고바야시 선생님의 기차는 철길에서 벗어나 멈춰있다.그러나 이 기차는 철길에 얽매이지 않고타고 싶은 아이들을 마음껏 태우고 새로운 교육의 세계를 향해 달린다. 토토는주어진 철길을 달리는 기차 안에 갇혀있지 않고, 창가로 나와 세상을 보다가 결국은 자연과 친구와 더불어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가르치려는 고바야시 선생님의 기차로 옮겨 탄다. 지사초등학교에도 창가의 토토처럼 창가로 나와 내 아침을 맞아 주는 진수가 있었다.
개구쟁이 진수를 소개합니다
지사초등학교는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에 있다. 전교생이 32명이다. 아주 작은 학교다. 그 중 가장 적은 학년이 1학년으로, 학생 수는단 3명이다.(2009년) 그 중 한 명이 진수다.진수는 앞니 빠진 이를 드러내며 학교를 주름잡는 개구쟁이다. 형들과의 다툼도 많지만 목소리가 맑고 힘 있는 학생이었다. 현관에 먼저들어가려고 아침이면 나와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말하는 당돌한 아이였다. 나보다 먼저 학교에 도착한 날이면 창문을 통해 친구인 경기와함께 학교로 오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맞아 주는 따뜻한 마음의 아이였다.“선생님, 오늘은 파란색 옷을 입고 오셨네요. 멋진데요.”, “선생님,저 오늘 영어 2번 녹음 했어요. 별 5개가 되면 아이스크림 사주실거에요?”,“ 선생님, 오늘경기와함께책읽었어요. 예쁘죠?”.진수의 아침 인사는 내가 지사초등학교로 출근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했다. 그러다 가끔. 진수는“선생님 저 내일 전학가요!”말을 꺼내며 선생님들의 마음을 심난하게 했다. 그날은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는 아빠가 오거나 친척 중에 누가 지사를 찾아온 것이다. 밤새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진수가 아침에 학교 오면‘전학’이라는 말을 꺼낸 것이다.그러나 다음날에도 진수는 창가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맞아 주었다. 1년을 그랬다.
박숙희 선생님과 진수와의 특별한 인연
진수의 담임은 박숙희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은 진수를 언제나 사랑으로 품어주셨다. 진수의 짓궂은 장난을 다 받아주었다. 진수와 선생님의 인연은 30년 전부터 시작된다. 선생님은 진수의 아버지를 초등학교때 가르치셨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진수를 사랑해 주었을 것이다.선생님은 진수가 도시의 어느 보육원에서 유치원 시절을 보내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 지사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때부터 진수를넉넉히 품어 주셨다.가끔 선생님은“진수를 보면 30여 년전의 제자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애틋해져요”,“ 진수가 험한 세상으로 나가기전에 이 곳 지사에서 감성이 풍부하게자라며, 학교에서 사랑받았으면 좋겠어요”라고 하시며 삶의 고단함으로 떨어져사는 진수네 가족을 안타까워하며 엄마와 함께 살지 못하는 진수를 엄마처럼품어주셨다.진수는 자칫 3명뿐이 없어서 지루해지는 1학년 교실을 활기차게 만들었다.착한 강재와 말 없는 경기는 진수의 둘도 없는 친구들로 이 셋이 모여 1학년선생님께 웃음과 활기를 만들어주었다.“3명뿐이 없어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넓은 교실에 진수의 목소리는 기를넣어 주는 보약이에요”,“ 진수가 지사에서 오래도록 학교를 다니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이 곳에서생활하며 보육원에서 다친 마음을 치료하였으면 좋겠어요”,“ 진수가 지금의 마음으로 도시로 간다면 청소년기를 어떻게 보낼까 걱정이 돼요”.
먼 훗날의 만남을 기약하며
그런 진수가 전학을 갔다. 2학년의 봄을 맞이하지도 못하고 설날의 추위를 안고 서울로 갔다. 3월 2일이 되어 학교에간 나를 맞이하는 것은 닫힌 창문이었다. 봄을 맞이하는 3월. 창가에 진수는없었다.“선생님 저 희정이(6학년) 누나 좋아해요”,“ 저, 누나랑 결혼할까 봐요”라고귓속말하던 진수가, “선생님 저 5학년 누나들이 저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도5학년누나들이좋아요”를말하던진수가,“ 선생님저효진선생님좋아해요”를외치던진수가,“ 선생님, 저는앞으로요리사가될것에요”라고 점심시간에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두 번 먹으며 말하던진수가,“ 선생님, 차있으세요. 저는커서차를살거예요. 그래서가고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거예요.”답답한 마음에 자동차를 타면 어디든갈 수 있다고 상상하던 진수가 전학을 갔다. 사랑받고 관심 받을 수 있는 우리를 떠나 도시로 갔다. 조금 더 오래도록 사랑받고 관심 받았으면 하는 지사초등학교 선생님들의 마음을 뒤로하고 떠났다.시간이 흐른 뒤 진수는 자동차를 사서 지사로 내려 올 것이다. 할아버지도 없고 할머니도 없고 진수를 가르쳤던 선생님도 없는 지사에 내려올 것이다. 진수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지사로 내려올 것이다.진수 빠진 2학년. 강재와 경기는 30년 뒤에 1학년 때 진수를 기억할까? 나는 진수를 잊고 싶지 않다. 내가 담임한 제자는 아니지만 1학년선생님이 진수를 생각하며 흘리신 눈물을 잊을 수 없어 진수를 기억하고 싶다. 진수의 큰 눈 속, 당돌하게 나에게 싸움을 걸어올 때의 눈동자를 잊지 않으려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남긴다. 박숙희 선생님의 대를 이은 제자 사랑을 생각하며…….(2010년 3월)
이현근 임실 지사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16년차 수석교사다. 임실성수 출신으로 전주교대를 졸업한 뒤 강화도, 인천, 전주, 완주를 거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현재 전주 어린이도서관 책마루의 자원봉사자와 전북환경운동연합 독서모임‘책읽어’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