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4 |
[서평] 『우리 시대의 교양 리영희 프리즘』
관리자(2010-04-01 19:00:02)
『우리 시대의 교양 리영희 프리즘』
우리시대는 어떤 빛깔을 얻었나
- 이재규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초등학교 과학실습 시간, 교실 창으로 스며들어온 한 줄기 빛이 수정 삼각기둥을 통과해 무지개의 실체로 드러나던 순간의 경이는 지금도 생생하다. 무채색으로만 알았던 빛이 프리즘(빛의 분산이나 굴절 따위를 일으키는 데 쓰는, 유리 또는 수정으로 된 다면체의 광학 부품)을 통해 그토록다양한 여러 빛깔을 숨기고 있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을 때, 빛에 대한 이제까지의 낡은 관념은 단박에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리는것이었다.
사상의 스승‘리영희’를 만나다
여러 언론매체의 비평이나 분석글의 표제로 자주 쓰이기도 하는‘프리즘’은 그 도구의 특성처럼 사물의 내면적 실체를 남다른 시선으로 잡아내는 글에 붙인다. 리영희 선생의팔순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이 책의 표제를‘우리 시대의교양 리영희 프리즘’으로 정한 뜻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열 명의 필자는 각자의 전공과 생활 영역, 세대의 특성에따라 자신만의 시선으로 리영희 선생의 삶과 글을 읽어내면서 리영희라는‘비판적 지성’을 우리 시대 민주주의를 향한여정의 출발점으로 자리 매긴다.필자들이 모두 동의하는‘사상의 스승’으로서의 리영희의대표적 저작은 1974년에 출간된『전환시대의 논리』, 1977년『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를 우선 꼽을 수 있다.냉전체제의 극단적인 반공주의가 온 사회를 옥죄어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식인들의 지적 상상력도 극도로 제약받던 시절에 나온, 한마디로‘선구자’적인 의미를 가진 책들이다. 리영희는 이 글들에서 당시의 지배적인 담론을 뒤흔들고 베트남과 중국에서 진행되는 역사적 사실들의 의미를 객관화하면서 닫힌 생각의 감옥에서 탈출할 것을 주문한다.
우상이 지배하는 철제 감옥의 이단아
필자들이 고백하듯 당시 리영희를 읽는다는 것은“하늘이무너지는 충격”이오, “진실을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온몸이 떨리는 일이었다. 리영희의 글읽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이 뒤집힌 청년대학생, 지식인들은 우리 현대사의 해석을놓고 그어진 수많은 금기들을 뛰어 넘었다. 리영희 선생에게직접 배운 적은 없어도 그 영향의 자장 아래에서 리영희를‘사숙’한 이들이 집단으로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우리 사회의 현실과 미래를 격정적으로 고민했던 80년대야말로 우리현대사에서 다시 재연되기 힘든 사상의 백가쟁명 시대였다.한국전쟁 이후 가장 많은 젊은이들이 참가한 인식과 실천의이 격한 연쇄 반응에 의해서 숱한 사회 사건들이 터져 나오면서 리영희는 자신이 관계한 적도 없는 온갖 사건들의‘간접적 주범’이 되었다. 고병권의 말대로 리영희는 범죄를 야기한 범죄, ‘메타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당시의 지배체제 입장에서 보면 가장 무겁게 다스려야 할 중죄인이었다.‘의식화’의 원조로 불릴만한 이 사람은 그러면 어떻게 해서 닫힌 사상의 감옥에서 홀로‘이단적인’생각의 실마리를붙잡을 수 있었을까.리영희의 사상은 끊기지 않고 이어진 독서와 현실체험의팽팽한 긴장관계에서 탄생하고 끊임없이 넓어지고 깊어졌다. 1929년생인 리영희는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어 번역본을통해 세계에 눈을 뜨고, 해방 직후 폭넓은 문학 서적 탐독을통해 의식적 독서를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식민지 시대를 통과한 그 또래의 청년들이 쌓은 일반 교양 코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전선의 참호와 병영 속에서도 책읽기를 멈추지않았던 젊은 장교 리영희는 미군 통역으로 일한 7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제대 후 합동통신사와 조선일보 외신기자로국제관계 정보를 접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의 본질과 냉전체제의 모순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영어, 일어, 중국어, 프랑스어에 능통하여 국내에 소개되지 않는 진보적 문헌들을 접할 수 있었던 능력에다가 국제관계 전문 저널리스트로서 생생한 정보가 더해지자 그는 당대어떤 사회과학자 보다 깊이 있는 인식과 분석력을 갖추게 되었다. 세계를 향해 열린 외국어의 창을 많이 확보했던 그에게 당시 한국현실은 우상이 지배하는 철제 감옥에 다름 아니었다.
진실을 말하는 글쓰기의 대가
리영희의 글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우상’과‘신화’에 맞서 진실과 용기있게 대면하는 일이다. 여기서 우상이란 한사람의 독재자나 극우적인 이론 등의 특정한‘대상’이라기보다는‘상태’, 더 나아가서 하나의‘체제’라고 할 수 있다.‘저 놈은 빨갱이다’라고 누군가 낙인을 찍으면 우르르 몰려가 몰아세우고 처단하는 사회체제. 여기서 그 사회 구성원들의‘생각’이란 일종의‘반응’이고‘조건반사’일 뿐이다. 이런 우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주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려면우상의냄새를맡는예민한후각외에,‘ 감히알려하고 감히 말하려 하는’용기와 각오도 필요로 한다. 4번의 수감 생활과 두 번의 해고가 보여주듯 리영희의 선각자적 인식과 글쓰기의 대가는 혹독한 것이었다. 리영희를 사숙한 수많은 지적 제자들도 비슷한 길을 기쁘게 걸었다.
각자의 이성적 실천을 환기하고 촉구하는 아픈 주문서
흔히들‘의식화’라고 하면 일정한 생각을 남에게 강제로옮겨 심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의식화의 원조인 리영희선생은“자기 생각을 가르치는 사람이기 이전에, 각자에게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었다.”때문에 그는 별 수 없이사람들에게‘고통을 주는 사람이었다.’자각의 고통. 닫힌 철제 방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고통을 먼저 자각하고 옆의 사람을 흔들어 깨우며 소리치는 자의 고통. 그것은 안온한 타협과 굴종이 주는 지배체제의 평화와는 다른 것이었다. 진실을대면하는 자각의 고통을 지나는 순간, (그 대면을 매개한) 스승은 더 이상 스승이기를 멈추고‘함께 깨어 있는’사유의 동료, 해방의 동료가 된다.리영희는 70년대 이래 냉전체제가‘한국적’방식으로 굴절된 흑백의 단순 세계에서 자신의 온 지식과 삶을 던져 만든 리영희 프리즘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색채의 세계, 진정한 사유의 세계를 열어 주었다.노골적 금압체계라는 외형은 잠시 벗었지만 여전히 작동하는 분단체제 아래에서 우리 사회는 조건반사에 익숙한 자들이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고 역사의 시계를 자꾸 뒤로 돌리려 한다.많은 사람이 진실과 대면하면 허위의 성채가 일거에 무너지리라고 보는 것은 순진한 낙관이었다. 자각의 고통은 1회로 완성되지 않는다. 역사는 단선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리영희 선생 자신은 이제 병고로 글을 쓰지 못한다고 한다.그러나 수많은 리영희들이 이 고통스런 자각과 실천의 연쇄반응을 다시 이어가야만 한다는 점에서 리영희의 작업은 아직 미완성의 것이다. <리영희 프리즘>은 여전히 진행형인우리 사회의 각종 우상들을 뒤돌아보고 우리 각자의 이성적실천을 환기하고 촉구하는 아픈 주문서이다.
이재규 전북대학교 법학과 졸업, 현재 전북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 전민련, 시민행동21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오래 했다. 국회의원 보좌관, CBS 라디오 진행자 등을 거쳐 현재는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부대변인을 맡고 있다. 『시와 소설로 읽는 한국현대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