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5 |
[저널초점] 전주한지, 새로운 천년을 꿈꾸다 1
관리자(2010-05-03 18:49:57)
전주한지, 새로운 천년을 꿈꾸다
천년 한지의 부활 그것은 우리의 희망 이다
‘지천년 견오백(紙千年絹五百)’. 값비싼 비단에 견준 한지의 질긴생명력을 일컫는 표현이다. 한지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함께 살아 숨 쉬어 왔다.전주는 오랫동안 한지의 고장이었다.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전주한지의 전통은 굵다. 그러나 아쉽게도 조선시대까지만해도 이어졌던 전주한지의 명성은 근대 이후 맥을 잃었다. 서구문명의 유입과 함께 밀려온 양지와 중국산 선지, 일본산 화지에 밀려 쇠락을 길을 걷게 된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주한지는 천년세월 속에서화려하게 빛난다. 왕실의 진상품으로, 외교문서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온 덕분이다.전주한지가 다시 부활을 꿈꾸고 있다. ‘한스타일’의 중심으로 각광받고 있는 전주한지의 전통은 이어질 것인가. 그 가능성과 미래를 들여다봤다.
성급한 산업화 전략, 한지의 실상을 먼저 보라
- 이승형 전북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조선 초기의『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전주가 다양하고 전문적인 종이를 생산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전주종이가‘상품(上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는 전주가 조선시대에 한지의 생산이 활발하고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임을 의미한다.그러나 양지 제조 기술이 들어오면서 한지 제조업체는 급감하게 되었고, 일본 전통 종이인 화지(和紙)의 침투로 한지의 고유한 제지 방법까지도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더불어 1990년대 폐수처리 문제로 한차례 고통을 치루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한지 제조업체가 문을 닫았고, 여기에 값싼 중국산종이의 수입으로 인해 전주한지는 산업으로서의 존립 위협을 받고 있다.
전주한지의 실상을 보다 |
한지 제조업체를 기준으로 하여 최근 전주한지의 실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09년 현재 수록한지 제조업체는 전국적으로 23개이며, 그 중 50%가 넘는 12개 업체가 전북에 소재하고 있으며, 전주에 8개 업체가 소재하고 있다. 앞으로도 디지털화로 인하여종이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 감소가 예측됨에 따라 수록한지의 수요도 계속 감소할 것으로 보여 한지 제조업체의 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특히 전주의 한지제조업체는 순지및 화선지를 중심으로 생산하고 있어 별도의 수요 확대가 없는 한 감소추세를 막을 수없는 형편이다.한편 기계한지 제조업체는 2009년 현재 전국 11개 업체가 있으며, 전주 3개, 완주 1개, 김제 1개, 임실 1개 및 남원 2개 업체 등 8개 업소가 전북에 소재하고 있다. 수록한지뿐만 아니라 기계한지도 전주를 중심으로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기계한지 제조업체는 수록한지 업체에 비해 그 규모가 크고 대량 생산설비를 갖추고, 서화지 중심의수록한지보다 장판지, 포장지, 벽지 및 한지사 등 다양한 지종을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갖추고 있다.이와 같이 한지 제조업체는 전주, 전북 중심으로 집적되어 있으나, 제조업체의 수는점차 감소하고 있으며, 업체별 생산액 및 부가가치 등은 최근 공식적으로 조사된 바가없어 그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전주한지의 실상을 보다 Ⅱ
전술한 바와 같이 한지 제조업체가 전주지역을 중심으로 집적되어 있으나, 각 업체가 사용하는 원료 및 부원료의 생산 및 공급체계의 구축은 요원한 상태이다.한지의 주원료인 닥 및 삼지닥나무의 생산임가는 총 137호(2007년)로 경북(55.5%), 전남(37.2%), 전북(7.3%) 순으로 분포되어 있어 지역 내 원료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 더불어 닥나무 종사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많은 노동력을 요하는 피닥과 백닥 생산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품질 좋은 닥나무를 생산하여 저가로 공급함으로써 한지산업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닥나무 식재사업이 추진되기 시작하였지만 이 사업의 활성화는 요원한 상태다. 전주시는 행정자치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전주대학교에 대규모 닥 재배단지를 조성하도록 협약을 맺고 진안군 및 임실군에 닥나무를 식재하는 사업을 전개하였으나 그 결과가 신통치 않은 상태이며,완주, 익산, 임실 등에서도 각각 재배단지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닥 펄프공장과의 연계성에 따라 사업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판단된다.더불어 화선지의 발묵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부재료로 사용되는 짚, 대나무, 갈대 등의 사용이 거의 없고, 대부분 폐지나 SP펄프, BKP펄프와 소량의 아바카 섬유가 사용되고 있어 지종의 다양화를 꾀하는데 한계가 있다. 한지 제조 시 이용되고 있는 점제는 PAM, PEO, 황촉규근(닥풀), 석산, 미역, 느릅나무근 등이 있으나 PAM, PEO가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황촉규근은 재배농가가 거의 없어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한편 한지의 유통에 있어서 몇몇의 제조업체가 직접 판매에 나서는 경우도 있으나 취급상품의 범위가 제한적이며 개별 제조업체가 유통부문에 전문화하기 어려워 유통업체 중심으로 소비자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이며, 한지의 수출을 통한 세계화를 위해 영문을 비롯한 외국어로 한지 제품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거의 없다. 제조업체가 개별적으로 거래관계를 형성해 온 것 외에 별도의 유통전문업체가 해외수출을 담당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전주한지산업의 열악한 조건
이와 같은 전주지역 한지의 생산, 유통 상의 특성 외에 인력양성 및 연구지원 등을 살펴보면다음과 같다.전주지역 한지산업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산업규모가 갈수록 축소되는 추세에 따라 관련 인력을 양성, 배출하는 전문교육기관도 없다. 전주대학교에 한지문화산업학과가 설치되어 관련인력을 양성해 왔으나 2009년 폐과하는 것으로 결정된 상태다. 다만 한지를 회화 및 디자인, 조형작업 등의 공예 관련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기전대학교, 예원예술대학교등과 대학이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에서 한지공예 관련 과정이 개설되어 일반인들의 한지공예 작품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에 공예디자인과를 운영하면서 인력을 양성하고 있는 상태다.전북지방 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의 기술혁신에 필요한 고가장비, 첨단장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여 연구 개발을지원하고 있다. 압축강도시험기, 만능재료시험기 등의 다양한 실험장비 등을 갖추고 있으며, 한지 관련 연구설비 및 기술인력 등을 확보하여 한지 및 한지사 소재 개발, 한지산업신기술 개발 등을 지원하고 있다.여기에 닥무지 공동사업장(한지원료가공공장)이 2007년행정자치부의 지원 및 전주시·전주대가 공동으로 설립되어닥펄프 가공 및 부산물을 이용 등의 연구 및 사업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한지산업의 기반기술과 핵심생산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기업에 이전해 산업발전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담당할 한지산업진흥원이 2010년도에 개원할 예정이다.이상 전주한지산업의 생산, 유통, 연구 및 인력양성 등의제반 여건을 검토한바 산업으로서의 존립을 위한 전반적인조건이 매우 열악한 상태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한지산업의 미래를 밝게 보는 일부의 견해가 있다.
전주한지의 정체성부터 확립해야
그것은 전주한지를‘문화자원’으로 인식하고 이를 문화산업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가 중시되며, 지역의 문화자산은 지역 이미지를 높이는 요소가 된다. 더불어 지역 주민들에게 공통적인커뮤니케이션의 장을 마련하고, 개인의 문화적 자아실현이삶의 질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문화는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하며 지역의 경쟁력으로 대두된다.한지는 전주 시민에게 문화적 자부심을 제공하는 가치 있는 자원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어 산업적 부가가치를높일 뿐만 아니라, 타 지역·타 국가와의 문화 교류를 통한새로운 정보와 문화 수용의 촉매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측면에서 전주한지의 미래는 밝다고 보는 것이다.그러나 한지의 생산 기반이 붕괴되어 가는 상태에서 문화산업화를 시도하는 것은 매우 성급한 것이며, 더 늦기 전에전주한지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전주한지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노력과 함께 전주의 한지 문화자원이 갖는 의미와나아갈 방향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이승형 전북대 농업경제학과와 동대학원을 나왔다. 전북발전연구원의 연구위원이며, 전주한지문화축제조직위원회 위원, 전주시 한지산업종합지원센터 운영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