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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초점] 전주한지, 새로운 천년을 꿈꾸다 3
관리자(2010-05-03 18:50:30)
전주한지, 새로운 천년을 꿈꾸다
한류의 모체 한지, 아직도 멀기만 한 세계화
- 김병기 전북대 중어중문과 교수
한지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상품이자 전주의 특산물이다. 그러나 광복 이후 서양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일종의 변종 서화 용지인 화선지가 널리 보급되면서 전주의 한지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더욱이 1980년대 이후 중국의 값싼 화선지(중국의 전통종이 선지(宣紙)가 아닌 서화지(書畵紙))가 대량으로 수입되면서부터 한지산업은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지자체와 한지업계 모두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한지벽지, 포장지, 공예용지, 한지의류를 개발하고, 한지의상만의 매력을 선보이는 패션쇼도가졌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성과도 거두었다. 전주가 한지공예의 중심도시로 부각되었고, 패션쇼는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전라북도의 한지산업은 아직도 예전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유망한 산업으로 정착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투자에 비해 눈에 보이는 수요가 창출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전북의 한지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한지산업이세계적인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순수한지산업에 주목하라
첫째, 한지산업에 대한 분명한 개념의 정립이 필요하다. 무릇 모든 종이의 본래 용도가 그렇듯이 한지의 용도도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에 있다. 그런데 그동안 전북의 한지산업은 쓰거나 그리는 용지로서의 한지를 생산하고 홍보하기 보다는한지공예, 한지패션, 한지벽지 등 한지를 응용한 생활용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데에 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그 결과, 한지의 대량 수요처인 서화용지, 고문서·고서화 보수용지 등의 분야에서는 해외 수출은물론 국내에서의 수요도 창출하지 못했다. 이제부터는 공예, 패션, 벽지 등 응용한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원점으로 돌아가 한지 본래의 용도인서화용지와 보존용지로서의 수요를 창출하는 데에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지산업의 개념을 분명히해야 하는데, 이제부터라도 한지산업을‘순수한지산업’과‘응용한지산업’으로 나누어‘응용한지산업’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한지공예, 패션, 벽지등 현대의 생활과 연계한 상품을 개발하는 데에 주력하고, ‘순수한지산업’은 종이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서화용지와 고문서·고서화 보수용지로서의 한지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둘째, 순수한지산업을 부흥시켜야 한다. 응용한지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된 순수한지산업을전북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문화자산인 서예와 연계하여 부흥시킨다면 한지산업은 활성화될 수밖에없을 것이다. 지금 한국이나 중국의 서화계에서는지난 수 십 년 동안 한지 대신 사용해온 화선지의문제점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화선지의 내구성에도 문제가 생겼고 화선지에 적응해온 서예의 작품성 자체에도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한지가 서화용지로 다시 부상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수명이 매우 긴데다가 한자문화권 서화의 매력을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우리의 한지가 성가를발휘할 때인 것이다. 그러므로 21세기의 한지산업은 서화와 함께 나아가고 서화와 함께 홍보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지, 다시금‘종이’의 역할을 찾아야
셋째, 디지털 시대에 더욱 빛나는 한지는 서양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일수록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이 더욱 빛을 낸다. 디지털화한 전자문서나 영상으로 기록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종이 위에 손으로 쓴 사람의 글씨를남겨 1,000년 이상 보존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예를 들자면, 세계를 움직이고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헌신한 위인들의 사인(Sign)이나 기념비적인 말을 종이 위에‘손 글씨’로 남겨 반영구적으로 보존하는 일 같은 것들이다. 내구성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한지와 동아시아의 신비를 담고 있는 서화는 단순한 보존뿐이 아니라, 때로는 다양하고 참신한 예술이 되어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곁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오게 해야 한다.넷째, 고서·고서화 보수용지로서의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서양의 각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우리의 고서들중에 보수를 기다리고 있는 책들이 부지기수이다.그런데 이런 책들을 보수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화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리고서양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중국이나 일본의책을 보수하는 데에는 일본의 화지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그런데 실지로 내구성을 최우선시 하는 보수용지로서는 우리의 한지만 한 게 없다. 국내외 고서화보수 시장에서 우리 전북의 한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면 전북의 한지산업은 국제적인 산업이 될 수 있을것이다. 한지는 서양의 고서나 고화 보수에도 매우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지금 서양의 각 도서관에는 종이가 부스러지는 바람에 아예 펴보지도 못하는책들이 많이 있다. 책 표지는 양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지만 내면의 종이는 펄프로 만든 종이라서 불과200여년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부스러지고 있는것이다. 이러한 책들을 우리 한지를 이용하여 충분히보수할 수 있다. 서양 고서의 보수에 우리 전북의 한지를 사용하는 길을 개척한다면 전북의 한지는 최고급, 최고가의 세계적인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텔링과 응용산업을 통한 홍보 강화해야
다섯째, 한지 스토리텔링 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지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리고 한지가일찍부터 중국이나 일본으로 수출되어 각광을 받았다는 기록도 적지 않게 남아있다. 이러한 기록들을모아 한지에 감동적인 이야기를 입히면 한지는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명품으로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한지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나가야 한다. 대만에는‘고궁박물원’이라고 하는 세계적인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는 중국역사상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한 서화가들의 진적(眞蹟) 서화작품들이 거의 수장되어 있다. 장개석이대만으로 내려오면서 당시 북경 고궁에 수장되어 있던 고서화들을 모조리 가지고 내려왔기 때문에 중국의 서화작품에 관한 한 대만의 고궁박물원이 가장수준 높은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이들 서화작품 중에는 우리의 한지(고려지)에 제작한 작품도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작품을 찾아내어 스토리텔링 작업을 거쳐 적극적으로 홍보한다면 우리의 한지산업 활성화에 매우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루 빨리 전문가를 지원하여이러한 작업을 진행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여섯째, 응용한지산업은 첨단 과학과의 연계 아래새로운 아이디어 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한동안 새로운 발전의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처럼 보이던 응용한지산업이 최근 들어 보다 더 창의적인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벽지, 의상, 식품(닥나무 소재), 공예품 등 각 방면에서 새로운 소재, 새로운 기법을 개발하려는 노력을기울인다면 한지산업은 21세기의 새로운 웰빙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전주한지, 세계로 나갈 수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빠르게 변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이있다.‘ 배고프면밥을먹고졸리면자고추우면털옷을 입고 더우면 모시옷을 입는다’는 식의 절대상식과, ‘물은 아래로 흐르고 불은 위로 타오른다’는 식의 절대진리,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 바탕을 둔‘사랑’,‘ 진실’,‘ 믿음’등도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것들이다. ‘종이는 뭔가를 그리거나 쓰는데 사용한다’는사실 또한 절대상식이다.이제 전북의 한지산업은 절대 상식에 입각하여 종이 본래의 용도를 살리는 방향에서 서화용지와 고서화와 도서를 보수하는 보수용지로서의 수요를 적극적으로 창출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응용한지산업은응용한지산업대로 창의성을 발휘하여 적극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전북의 한지산업은 전북, 한국을 넘어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한지산업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세계를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김병기 현재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이자 전북대학교 중어중문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한자와서예』,『 강암 송성용 시문』,『 한문 속 지혜 찾기』시리즈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