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5 |
<그린 존>, <허트 로커> 그리고 아아! 천안함
관리자(2010-05-03 18:52:25)
<그린 존>, <허트 로커> 그리고 아아! 천안함
개장수들의 <그린 존>
9.11은 할리우드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영화 그 이상이었다. 미국도 안전한 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15개월후, 2003년 3월 19일 미국은 가장 오래된 역사 도시 바그다드를 공격한다. 전쟁 이유?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고 이라크인에게 자유를 찾아주기와 세계평화 유지라는 대의명분에서부터 석유와 달러라는 미국 자본에 항구적 자유를 선사하는 음모론까지. 멀쩡한 개를 잡아먹기 위해서는 미친개라는누명을씌우듯,‘ 대량살상무기’색출이라는그럴듯한이유로 전쟁은 계속된다.미 육군 로이 밀러 준위(맷 데이먼)는 대량살상무기가 있는 곳을 찾아내 이를 제거하는 특수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중. 그러나‘마젤란’이라는 별명의 제보자로부터 얻은 소스에 따라 죽음을 무릅쓰고 수색할 때마다 매번 허탕을 친다.관객들은 다 안다. 대량살상무기라는 것이 애초에 없다는것을. 주인공만 모르고 관객이 얼음의 돌출부분 같은 비밀을 알 때 시나리오가 빛을 발한다는 정석 그대로다. 관객들은 팔짱을 끼고 이 추악한 전쟁을 주인공이 어떻게 파헤쳐가는지, 관찰해도, 좋다.장군도 장교도 아니지만 실전 군인 밀러는 실태를 파악하던 중 후세인의 오른 팔이었던 알 라위 장군이 배후에 있음을 알고 그를 추적한다. 목숨을 담보한 피 말리는 추적의과정에서 밀러는 개를 잡아먹으려는 간악한 미 정부 관리가관련된 위험한 진실과 마주치게 된다. 이것이 조작이란 것을. 이 살육의 피바다 속 음모의 전진기지 한 가운데에 파라다이스가 있으니 이름하여‘그린 존’.사담은 제거되었지만 지속되는 폭력 사태로 인해 폐허가되어가는 바그다드는 마실 물 한 방울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이라크인에 비해 비키니를 입고 수영하며 맥주를 마시는최고급 수영장과 나이트클럽까지 차려진 공간을 드나들며그는 진실 속으로 몸을 던진다. 옛날 후세인의 공화궁을 개조한 미군사령부 및 이라크 정부청사가 자리한 전쟁의 중심부 여기서 벌어지는 음모라니.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지목한 개장수들이 얼마나 지독한 악으로 둘러싸여 있는지를.<본 아이덴티티> 시리즈의 맷 데이먼을 원톱으로 세운,총격전에 추격전의 비주얼도 볼 만하다. 진실을 향한 강인한 정신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영웅이 대량살상무기의 존재여부를 파헤쳐가는 스토리는 탄탄하고. 보이지 않는 더러운 개장수 세력을 향해 한발 한 발 다가서는 뜨거운 가슴의정의감과 첩보 영역의 냉철한 두뇌 거기다 빠른 발을 가진미션수행에 능한 군인은 결국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결국살아남는다. 리얼한 액션을 담는 현란한 카메라 워크와 스피디한 편집은 이라크 전쟁의 추악한 진실이라는 묵직한 주제의식을 전달하는데, 허 참, 자국의 더러운 속성을 드러내는 미국의 영화 만드는 자유라니….
킬 존의 <허트 로커>
역시이라크전쟁이야기다.‘ 대량살상무기’색출이라는미명하의 지옥풍경을 망원경으로 들여다 본 것이 리얼리티스릴러 <그린 존>이라면 그 전쟁의 한 부분을 현미경으로들여다 본 것이 <허트 로커 The Hurt Locker>다. 직역하면‘상처입은 열쇠공’이고, 베트남이나 이라크에서 전쟁을치른 군인들이 말하는‘극단적인 고통이 있는 곳’이라는 속어란다. 로커(locker)는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란 뜻도있다고.이라크 전쟁 1년 후인 2004년, 사담이 잡히고 부시의 승리선언으로 전쟁은 끝이 났지만 전투는 계속된다. 첨단무기가 뿜어대는 무시무시한 화력의 시대에도 기계나 로봇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 법. 민중 속에 숨어든 게릴라들은미군이 가는 길목에 사제폭발물을 설치하고 높은 곳에서 원격조종한다. 이 위협과 맞서는 미군 폭발물제거반(Explosive Ordance Disposal) 특수부대의 활약을 다룬화면에는 감동이 있고 그 과정은 긴장 그 자체다.첨단무기를 자랑하는 미군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사제폭발물. 이 킬 존을 마음 놓고 통과할 병사는 없기에 처음에는 원격조종 카메라로봇이 출동한다. 이 로봇을지켜보는 이라크인들의 시선과 미군들의 시선은 다르지만공통점은불안감이다.‘ 니네나라의평화를위해왔는데’라는표정에전혀감동하지않는,‘ 즈그들그러거나말거나’라는 표정 뒤에 숨은 무언가 일어나길 바라는 멀거니 바라보는 이라크인들의 표정이라니. 작은 돌멩이 하나, 쓰레기한 점, 지나가는 고양이 한 마리조차 모두 불안감을 자아낸다. 여기 브라보 중대 제임스 중사(제러미 레너)는 살인적인더위 속에서 옷 무게만 45㎏의 우주복 닮은 폭탄해체 의상을 입고 텔레토비처럼 걷는다. 성전(聖戰)의 도화선이라는것이 레토릭이 아닌 폭발물에 붙은 선을 찾아내는 것이 그의 임무다.살아남는 길은 전역밖에 없기에 제대 날짜를 거꾸로 세는군인들의 모습은 인간적이다. 전투신이 전혀 없는 전쟁영화 속 죽음을 다루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죽음을 앞둔 병사들의 두려움을 담는 것. 총 가진 놈의 불안감을 만들어내는 리얼리티를 위해 감독이 제시하는 화면은 철저히 관찰자시점이다. 군인들 옆에서 포르노 DVD를 파는 소년의 죽음혹은 폭탄조끼를 입은 이라크인에 대한 이야기는 전쟁의 큰그림으로 보면 미국의 프로파간다 같은 느낌을 주지만 감독은 그냥 덤덤하게 심미적인 접근의 유혹을 이긴다. 피범벅군복 입은 채 샤워하는 한 장면 빼고는.살 떨리는 폭발물 제거 현장을 다룬 스토리 라인은 심플하다. 이라크전쟁 종군기자가 시나리오를 쓴 이 영화는 관객이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숨 막히는 리얼리티를보여준다. 자신과 동료를 잡을 뻔한 사제폭탄을 873개나해체한 후 기폭장치를 수집하는 괴벽이 있는 제임스는 살아남아 결국 미국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배수구에 든 낙엽을치우고 아들과의 평화를 버리고 다시 바그다드 델타중대로복귀하지만….흔들리는 핸드헬드 다큐멘터리 기법에 저예산 영화라고우습게 보지마시라. 가장 적은 양의 총알과 포탄으로 가장많은 긴장을 제공한 캐서린 비글로우의 <허트 로커>는 그전쟁 속 진실의 한 퍼즐 조각을 이야기한다. 한정된 공간에서의 우직한 판단과 생사를 넘나드는 미션완수를 보여주는과정의 성실성은 전쟁의 음모를 넘어 감동을 선사한다.캐릭터에 대한 감정적인 접근 그리고 시선을 통한 긴장감의 조성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하니,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장면 하나하나를 뜯어볼 만한 작품. 멀쩡한 개를 미친개로 만드는 위선자들에 대한 적대감보다는 극한상황 속에서 임무에 충실한 병사들의 숭고한 인간성이 전달되는 것은 감독의 내공이다. 전쟁영화 속 미군을 증오하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에게도 시원하지 않지만 불편하지는 않을것. 무거운 소재로 흥행에 관계없는 영화를 만드신 예순 다되신 여성 감독께서 전남편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아바타>를 누르고 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 등 6개를 석권했다.3D가 미래영화의 전부는 아니리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굿뉴스다.
주인공 다 죽는, 아아! <천안함>
영화는 보통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한다.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전쟁영화는 더욱 그렇다. 당연히 감독들은 블록버스터의 유혹을 받는다. 지금 충무로에서는2002년 벌어졌던 연평해전을 다룬 영화가 두 편이나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한 편은 150억 이상을 들인 블록버스터라는데, 과연 개봉이 가능할까 싶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극적인 긴장과 슬픔을 배가시키고 있으니 말이다.목련들이 죽은 병사들의 넋처럼 희게 빛나는 사월, 전쟁영화 중 세라복 입은 해군을 다룬 영화가 떠오른다. <크림슨 타이드>, <붉은 시월>은 잠수함이라는 밀폐된 공간 속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룬다. 독일군의 시각으로 본 영화 <특전 U보트>는 심장을 옥죈다. 소나그래프와 해도(海圖)말고는 감각만을 의존한 채, 천신만고 끝에 지브롤털 해협을 통과해 무사히 도크에 귀환한 그들을 맞는 것은 연합군전투기의 기총소사였다. 후일 우리 해군영화가 개봉하면한번쯤 비교해보시길 바란다.상현달이 뜨는 밤, 수심의 변화가 가장 적은 시각 천안함이 침몰했다. 안타까운 치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안강의 그물을 가진 민간인 고기잡이배가 가라앉고 링스 헬기두 대가 떨어졌다. 영화 속 폭발물처리반 제임스 하사는 돌아왔지만 영화 바깥의 천안함 함미를 수색하던 UDT 노병한준호 준위는 영화처럼 돌아오지 못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장관과 장군들의 속은 모르겠다. 해군의 명망은 땅에떨어지고 국민들의 가슴은 뻥 뚫리다 못해 두 동강이 났다.함정 아래쪽에는 유리창이 없다. 물길을 가르는 거대한어뢰를 쏘는 헌터가 다시 헌터에게 밥이 되는 폭뢰가 터지고 물이 찬 함정 속에서 죽어가는 영화들이 아닌 잠수함에서 발사된 어뢰에 처참히 죽어가는 실제상황이 일어났다.영화가 아닌 현실이기에 유속과 간만의 차이라는 작은 지식부터 로미오급, 상어급, 유고급 잠수함 등 많이 배운다. 잠수함을 다룬 롤플레잉 게임과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등 모든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도 천안함의 진실은 아직도 알길이 없다.봉은사 부처님은 손바닥도 안 들여다보셨는가? 말씀이없으시다. 글쎄, 이제‘잠수 탄다’는 말 함부로 못하겠다.그 무슨 화양연화도 없이 함미에 갇혀 버려진 젊은 수병들을 기다리는 세월은 <추노>의 OST처럼 하루가 일 년처럼길다. 드라마 속 이병헌, 신세경, 장혁 등이 가더니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천안함 생목숨 마흔 여섯 명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않는다. 한국영화와 드라마 작가 그리고 감독들에게 한 마디 꼭 하고 싶다. 주인공 함부로 죽이지 마라,제발.2010년 사월 중순에 내린 눈에 벚꽃들이 어름땡 자세로엉거주춤 서 있다. 그 나무들 곁에 그냥 함께 있어주고 싶었는데…. 46명 천안함 용사들의 명복을 빈다.
butgoo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