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8 | [특집]
분위기 조성에서 한발짝 뛰어 오르기
자치단체, 시민문화를 이끈다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9-05 11:40:29)
1995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되면서 지역의 문화정책은 진일보하는 계기를 가져왔다. 지역의 행정 권한과 자율성을 넓혀가면서 문화를 통한 지역 이미지 제고나 경제·산업적 효과를 거두기 위한 자치단체들의 노력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민들의 문화욕구 증가와 문화 실현에 대한 의지가 높아지고 있어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자치단체 문화행정에 중요한 방향타로 떠오르고 있다.
소득 증가와 주 5일 근무의 확산 등으로 여가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레저문화나 엔터테인먼트 산업, 관광산업이 각광받고 있는데, 이들 산업은 대부분 '문화'의 연결 고리 속에서 콘텐츠가 발굴되고 진행되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 감상하고 바라보던 것에 머물지 않고 직접 뛰어들어 체험하고 느끼고 싶어하는 능동적인 시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시민 대상 문화정책의 새 판 짜기를 촉발시키고 있다. 시민들의 문화 욕구와 향수를 적극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자치단체는 다양한 시민 대상 문화프로그램을 개발해내고 다양한 통로를 통해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무료로 참가하거나 비용이 든다 해도 저렴하게 참여할 수 있어 자치단체가 마련한 시민대상 문화프로그램은 시민들에게 더더욱 긴요한 문화 정보가 되고 있다. 전주시-각 구청-동사무소(또는 문화의집)를 잇는 자치단체의 문화프로그램은 무엇보다 주민들의 생활 공간과 밀접한 곳에서 진행되고 있어 문화 향수의 '민주적' 실현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자치단체가 앞장서 건전한 생활문화를 발굴하고 유도하면서 시민 문화 형성의 기초를 다질 '멍석'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자치단체의 당연한 의무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문화실현 욕구와 자치단체의 육성 정책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문화에 대한 시민들의 일상적 관심과 실현들이 최근 들어 '문화의 시대'를 이끌어가는 '인프라'로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시민 문화육성이나 분위기 조성에 자치단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각 구청과 동사무소. 이곳에서 진행되는 문화 프로그램들은 주민 '복지'의 실천이라는 개념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부나 노인 대상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는 것이 문화적 혜택으로부터 소외될 수 있는 계층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구청 프로그램은 계몽적인 성격보다는 시민들의 문화 욕구가 표출되는 가장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장르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주부 대상 노래교실, 노인 대상 국악 교실 등이 가장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프로그램. 무엇보다 주부들의 호응과 참여도가 괄목할 만하다. 덕진구청의 경우 월요일과 수요일에 열리는 노래교실에 한번에 몰리는 참여자들이 평균 300~500명 정도. 주로 40대~60대 중년들이 주요 참여층이다. 최근 1~2년 사이에는 여가시간을 즐겁게 소비한다는 목표 이외에도 '의미'와 '배움'을 얹어놓는 프로그램 마련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덕진구청 전통문화교실은 문화 답사와 전통음식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있어 젊은 주부들의 호응이 높다.
덕진구청 관계자는 "평균 50~6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는데, 젊은 주부들이 전통과 역사를 배우고 몸소 체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인지 전통문화교실이 예상보다 반응이 좋은 편이다. 노래교실보다 조금 더 젊은 층인 30대~50대들의 참여가 많다"고 설명한다.
노인대상 프로그램은 국악과 건강이 주요 테마다. 가벼운 댄스 스포츠나 판소리 교실 등이 주요 프로그램으로 열리는데, '실버 프로그램'이라고 부르기엔 참가자들의 연령이 낮은 편이다. 40~50대 참가자 비율이 가장 높고, 60세 이상은 드문 상황.
구청 문화프로그램에 참가해 본 시민들은 대체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접근성이 쉽고, 생활의 활력을 얻을 수 있으며, 무료 이용이라는 점이 큰 장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동사무소와 구청의 문화 프로그램이 틀에 박힌 듯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은 짚어봐야 할 대목. 쉽게 흥미를 잃거나 참가자들이 분산돼 프로그램 운영자들에게 고충이 될 만큼 여기저기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어 양질의 문화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되새겨봐야 할 부분이다.
또 동 주민들의 합창대회, 노래 교실, 댄스스포츠 등이 각 동과 구청 문화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장르에서의 문화 향수를 달래기엔 역부족. 여기에 노인층을 끌어당기는 참신한 문화 프로그램 개발도 아쉬운 대목이다.
주민들과 가깝게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주로 각 구청과 동사무소의 복지시민과나 가정복지계에서 이같은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복지의 개념으로 접근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나 독특함을 담보해 내기엔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상황.
최근 정부 정책과 맞물려 증가하고 있는 문화의집이 이러한 '틈새'를 메우고 보다 전문적이고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생산해내고 있어 자치단체의 주민 대상 문화행정에 생기를 더하고 있다. 전주시는 민간위탁을 통해 문화의집을 꾸리면서 운영면에서의 탄력과 전문성에 힘을 싣고 있다.
동사무소가 '문화 사랑방'으로 탈바꿈하면서 문화의집 역할과 중복되거나 문화의집이 대부분 동의 이름을 걸고 운영되고 있어 해당 동 주민들의 공간으로만 한정되는 듯한 인식을 심어줘 '형평성'에 대한 불만이 심심찮게 불거져 나오고 있지만, 문화의집 고유의 역할 면에서는 주민들의 문화 실현을 담보해 나갈 긍정적 공간으로 평가할만 하다.
문화의집과 청소년문화의집은 주부와 어린이, 노인, 청소년 등을 두루 아우르면서 영화와 문학, 전통문화체험, 컴퓨터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청소년문화의집은 일반 문화의집보다 상대적으로 재정과 인력면에서 열악하거나 자치단체의 관심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문화동아리들을 대상으로 공간 지원을 하거나 정서 순화를 위한 문화행사 등을 벌이고 있어 자칫 소외되기 쉬운 청소년 계층의 문화 향수를 끌어안는 중요한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진북동문화의집을 비롯해 아중문화의집, 삼천동문화의집, 효자동문화의집, 서신동문화의집 등은 각 동 주민들이 친근하게 찾아드는 가까운 문화공간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직접 문화 체험을 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들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공간 지원이라는 측면에서의 배려는 부족한 편이다.
문화평론가 문윤걸씨는 "시민 문화동호회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들이 연습을 하거나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각 동의 문화의집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간인 만큼 좀 더 개방적인 자세로 공간 지원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시민 문화동호회가 연습이나 공연할 수 있는 공간 지원 시스템도 사업 내용의 주요 부문으로 다뤄져야 할 것이라는 설명.
시민들의 문화 욕구와 직접 참여를 통한 문화실현의 요구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시기다. 자치단체가 발빠르게 대응하면서 가까운 곳에서 주민들의 문화 욕구를 담아내는 적극적인 주체로 등장하면서 '문화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자치단체에서 마련하고 있는 문화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루면서 자치단체는 시민들의 생활문화를 이끄는 중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분위기 조성'에서 한 발짝 앞서 나가 문화서비스의 다양성과 질을 어떻게 확보해 나갈 것인지 민감하게 반응하고 관찰하는 한 단계의 도약과 성숙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