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5 |
123회 백제기행│4월 17일
관리자(2010-05-03 18:55:39)
123회 백제기행│4월 17일
Roger Dean전, Neo Sense전, 연극 B언소
나른한 봄날, 지루한 일상 대신 자유를 입다
- 이지현 방송작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 내려놓고 싶은 순간이 있다. 어깨에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진 듯한 느낌으로 하루하루 숨이 막히듯 힘이 들었다. 지난몇 달 동안 무차별 공격이라도 퍼붓듯 쏟아지는 일과 주변의 시선들. 그 많은 것을 감내하기에 내 체력은 이미 고갈 상태였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 내려놓고 싶은 심정으로 신청을 한 것이 바로 백제기행이었다. 내 옆자리에서, 20년 동안 한결같이 내 옆에 서 있어준 오랜 친구의 권유로,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백제기행을 선택했다. 일단은 지금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심정으로. 그런데 또다시 일감이라니…. 글을 쓰는 일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 그렇게 큰 욕심이었나. 백제기행에서 만난 문화저널의 기자가 내게 원고 청탁을 한다. ‘이건아닌데…, 나 여기 놀러왔는데…’하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기행을 따라나섰으나, 다시금 글을 써야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나로 하여금 다시 머리를 쓰게 만들었다. 당초 나의 기획의도와는 너무도 달라진 기행이었다. 그러나 즐거웠다. 잠시나마 삶이 가벼워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껍데기도 보라 - Roger Dean전
어린 시절, 무조건 겉에 그려진 그림이나 문구가 좋아서 책을 샀던 적이 있다. 지금도 내 서재에 꽂혀있는 그 책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내가 무슨마음을 먹고 이런 책을 다 샀을까 싶은. 그리고 그 책 표지에는 한없이 닭살스러운 멘트가 적혀있다. 내가 한때는 그 닭살멘트에 반해서, 별 내용도없는 그 책을 사서 한동안 가방에 넣고다녔을 것을 생각하니, 왠지 낯설다.물론 그 시절 그 모습도 내 삶의 일부였을 텐데 말이다.겉모습의 화려함에 혹하던 나의 버릇은 한동안 지속됐다. 껍데기에 반해서 앨범을 한 장 구입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이었다. 아무것도없이, 앨범의 표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담벼락이었다. 그 답답함 속에 갇혀진 음악이 뭔지 궁금해서 덜컥 샀던 앨범, 그러나 나는 그 음악을 별로 들었던 것 같지는 않다. 지금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걸 보면 말이다. 아무튼 훗날들은 얘긴데, 그 음반이 꽤 유명한 음반이었던 모양이다. 프로 그레시브 락의 선구적인 앨범이라고 한다. 하지만그러거나 말거나, 전생에 음악과 별 인연이 없었던 나는 그저 그런 음악장르가 있나보다 하고 넘겨버렸다.그런데 이번 백제기행 <로저 딘>전에서 나는 다시, 프로그레시브 락과 핑크 플로이드를 만났다. 오래전 추억을다시 꺼내든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전시를 보는 내내, 미술관 안에서는 프로그레시브 락의 전설적인 밴드들인YES, 핑크 플로이드, AISA의 음악이시종일관 흘러나왔다. 그 이유는 바로,그들 앨범의 커버를 디자인한 커버 아티스트가 바로‘로저 딘’이기 때문이다. 커버 아티스트라는 직업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다. 그만큼 아직커버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나 위상이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다는 얘길 수도있다. 그러나‘로저 딘'의 커버 디자인은 어느 유명 전시 못지않게 사회적인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그 이유는, 바로 그가 1970년대 그렸던 그림이나 커버 디자인을 지난 해개봉해 국내 관객만 천만을 넘어선 3D영화‘아바타’가 표절했다는 의혹이제기됐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표절의진위여부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약간의 속물근성으로 그 전시회를 둘러봤다. 비록 이 자리에서 표절이다,아니다를 거론할 처지는 못 되지만,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하다는 느낌만큼은지울 수가 없다. 또 무엇보다 놀라웠던사실은, 작가‘로저 딘’은 이 그림들을자그마치 40년 전, 1970년대에 그려냈다는 점이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센세이션하고 충격적인 그림들이었을 텐데, 그 그림들이 아티스트나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져 앨범 커버로까지 사용됐다는 점이 더욱 놀라웠다. 새삼 우리나라의 1970년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없었다. 암울했던 시기,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조차도 많은 억압과 제약이 따르던 시절, 지구 반대편에서는시대에 길이 남을 음악과, 그 음악을감쌀 충격적인 커버 디자인까지 만들어졌던 것이다.그리고 전시를 다 둘러볼 무렵 만난그림 한 점…. 나는 한동안 자리를 뗄수가 없었다. 순간 내가 동양화 전시회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그림이다. 바위 끝에 걸쳐진 소나무와 그나무위에 앉은 새. 어떻게 서양의 작가에게서 이런 동양적인 색체와 정서가담긴 그림이 나올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로저 딘’이어린 시절 홍콩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시절에 받은 경험이나 기억이 훗날 디자인 작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런면에서볼때,‘ 로저딘’은분명 세대를 초월한, 시대를 뛰어넘는 예술가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또한 백발이 성성한 노장이 되어서도, 여전히 뿜어져 나오는 열정과 끝 모를 상상력에경외감을 표할 뿐이다.
3D 시대, 못 볼게 없다.
- Neo Sense전
이번 백제기행의 두 가지 전시는 아마도 3D라는 큰 맥락에서 일맥상통하는 듯싶다. 두 번째 사비나 미술관에서 만났던전시 역시 3D 전시회였다. <로저 딘>전이 3D 영화 아바타에 대한 관심에서 어느정도 혹했다면, 이번 전시는 아예 대놓고3D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름 하여 신감각, <Neo Sense>전이다.이 3D는 가장현실을 실현시키기 위한최적의 표현기술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에는 모두 13명이 작가들이 참가를 했는데, 3D를 차용한 조각, 설치, 영상, 사진,판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대개의 전시회가 한 가지 장르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면, 이번 전시회는 잘 조화된 전주비빔밥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뿐만 아니라, 3D 안경을 직접 쓰고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됐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호기심을 충족시켜줄만한 전시회가 됐을 법 한다. 비록 나의 호기심을 채우기는 2% 부족했지만 말이다.
5감을 자극하는 4차원 연극
<B언소>
<로저 딘>전에 이어서 또다시 나의 속물근성이 고개를 들었던 연극이다. 솔직히 연극을 좋아는 하지만, 극단 차이무가어떤 곳인지, 누가 만들었는지 설명이 없었다면 전혀 알지 못할 정도로 나는 이번백제기행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다. 이미앞서 말했듯이, 그저 내려놓고 싶어서아무 생각 없이, 아무 관심 없이 따라나선 기행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연극 <B언소> 얘기를 들었을 때는 또 다른 호기심이 발동했다. 잘하면 배우 문성근을 만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하지만거기까지였다. 이번 연극에서는 문성근을 만날 수 없었다. 대신, 드라마 <파스타>의 설사장님이 나와서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기에, 바로 문성근의존재는 잊었다.연극 <B언소>를 관람하는 동안, 참많이 웃었다. 내 안 어디서 이렇게 많은 웃음을 숨겨두었었나 싶을 만큼 나는 많이 웃었다. 옆자리 누구의 시선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참으로 많이웃었다. 더불어, 아직까지 이런 바른말하는 연극이 상연되고 있는 걸 보면,우리가 민주공화국이 맞긴 맞구나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이 연극의 연출가인 이상우씨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날카로운 사회 풍자나 칼날을 들이대기보디는 얼싸안는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좀 더 재미있는 코미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 연극을 통해서웃음 뒤에 숨어있는 날카로운 칼날을느낄 수 있었다.게다가 연극을 관람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그 많은 남자들이 한꺼번에내 앞에서 바지 지퍼 내리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조금놀라고, 나중에는 태연히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게 된 것도 꽤 유쾌한경험이었다.그리고 영화배우로도 잘 알려져 있는 박원상 씨가‘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곳에 전화해서 묻는 대사가지금도 기억이 난다. ‘저기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들 때에는 대통령 흉내내는 코미디언이 많았잖아요, 그런데왜 지금은 없어요? 돈이 안돼서 그런가요?’.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대통령을 흉내 내는 코미디도, 정치를 살짝비꼬는 이야기도 많이 사라졌다. 하긴얼마 전 국회에서는 개그맨의 유행어인‘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도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 나왔다고 하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국회의원도 개그콘서트를 보긴 하는구나 하면서 웃었는데, 그냥 가볍게 웃어넘길 수는 없었을까. 굳이 세상의 모든것에 무게를 둘 필요는 없이 않은가 말이다.더불어 나도 이번 백제기행을 통해서, 많이 가벼워져서 돌아왔다. 비록돌아온 다음날부터 다시 일에 치여서살고 있지만, 요즘엔 일복이 복중 으뜸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더 많이일에 대해 욕심을 부리고 있는 내 자신을 보고 있자니, 이 또한 복이려니 싶어진다.세상의 모든 짐 진 자들이여, 백제기행을 따라나서 보라. 삶이 가벼워질지니.
이지현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에 전주 mbc 구성작가로 방송활동을 시작했으며 jtv와 tbn에서도활동했다. 현재는 전주 mbc 라디오 <여성시대>, <손우기가묻는다>와 라디오 다큐멘터리 <월매의 초대-판소리의 맛이보인다>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