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0.5 |
[서평] 『낙타』
관리자(2010-05-03 18:57:08)
『낙타』 자식 잃은 아비의 지노귀굿 한 판 - 정희경 소설가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가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나마 주말이라고 집에 와도 주중에 미루어 두었던 학원과 과외로 바쁘다. 그 사이사이 틈이 생기면 미니홈피를 관리하고 남자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느라 고개를 들 여유가 없다. 엄마는 저를 보내놓고 애면글면 마음을 졸이는데아이는 주말 저녁에 학교로 돌아갈 때도 엄마와 같이 가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눈치다. 혼자 들어가게 놔두라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삭신이 아팠다. 젖을 떼느라 젖몸살을 앓는 어미처럼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팠다. 한때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고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르던 아이가이제 날아갈 때가 되었구나. 이렇게 내 품을 떠나는구나. 기쁘고 자랑스럽게 아기새를 떠내 보내야 하는데 나는 자꾸만 코끝이 아렸다. 허전해서밥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자식 잃은 아비의 지노귀굿 책장을 열자 작가가 나를 향해 소리 질렀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지 말라고. 내 앞에서 그런 이야기하는 것 아니라며 몸을 돌리는데 그의 옆구리에 절벽이 보였다. 나는 눈을질끈 감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대 여섯 살 때 정채봉 선생님의『오세암』을 보고 통곡을 했다. 나는 지금도 오세암 이야기가 나오면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쏟는다.눈 내린 깊은 산중에 며칠을 두고 혼자 두려움과 배고픔에시달렸을 아이를 생각하면 또래 아이를 둔 어미는 마음이 무너져 내리곤 했다. 작가의 옆구리에 난 절벽을 보면, 난 또하나의‘오세암’갖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눈을 감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눈에 힘을 주면 줄수록 참혹한 그의허물어진 옆구리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 옆구리의 주인공은 작가 정도상이다.정도상 작가의 신작 소설『낙타』는 자식 잃은 아비의 지노귀굿이다. 나는 열여섯 난 아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그 피맺히는 고통을 상상할 수 없다. 아무리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다 해도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쓴『낙타』를 읽으면서 그가 얼마나 많은 울음을 삼켰는지, 자신의 슬픔과 고통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아들을 잃고 삼년, 작가는『낙타』를 통해 아들의 영혼을 춤추는 별로 보내준다. 아들의 영혼을 업고 사막과 마주하다 소설은 몽골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김은 테비시에서 암각화를 보고, 고비사막으로 들어갈 계획이다. 고비에서 고비를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비를 넘기 전에 고비가 찾아왔다. 김을 태우고 가던 몽골인 운전사가 드넓은 초원에서길을 잃었다. 동행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리고 김의눈앞에 삼 년 전에 죽은 아들 규가 나타났다. 귀신이라도 좋았고, 꿈이라도 좋았다. 규가 그렇게 참혹한 죽음을 선택하기 전 김은 아들과 테비시로 암각화를 보러 가기로 약속했었다. 그림을 그리고자 했으나 제도권 미술 교육에 염증을 느끼는 아들을 위해 그는 태양의 사슴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김은 아들과 테비시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십 대 후반 아이들의 정서는 마치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일으킨다. 작은 사건 하나가 아이의 생활 전반을 망가트리고, 아이 하나가 주변 친구들을 모조리 휘저어놓기도 한다.어른들은 단지 도미노 판 한 개를 잘못 건드렸을 뿐이지만결과는 모든 것이 망가지기 일쑤다. 그러니 이미 그 시기를까마득히 잊어버린 어른들이 어찌 결과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 십육 년 동안 지극한 마음으로 사랑했고 아꼈던 아이가‘단테의 신곡을 따라 여행하고 싶다. 다만 제13곡 겨울나무숲은 피하고 싶다. 생을 리셋하련다’라는 문자를 친구들에게보내고 지하철로 몸을 던졌다.김은 망가진 도미노 판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누구보다 가까운 부자지간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은 꼰대가 아니라 친구 같은 아버지라는 은근한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도리어그 자부심 때문에 아이의 심연을 들여다볼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 아들 규가 지금 옆에 있다. 여느 아이들처럼 MP3 이어폰을 귀에 꼽고‘어쩌다, 어쩌다, 어쩌다’를 흥얼거리며 몸을 흔든다. 규가 말했다. ‘아빠는 너무 경직되어 있어. 사람이 오는데 일단 웃어야지.’소설 속에서 김은 외형상 아들 규와 여행을 하고 있지만실제로 그와 험한 사막지대를 동행하는 이는 다름 아닌 과거의 그다. 외 고모할머니 댁에 맡겨져서 눈칫밥을 먹던 나, 껌팔이를 해야 했던 나, 학생 운동을 하다 후배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나까지 현재의 나를 이루는 그들을 불러낸 김은그들이 가진 상처 하나하나를 직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상처를 직시하고 다스릴 수 있을 때 비로소 규와 나란히 서서 짧았던 그 아이의 삶을 이해하고 아이의 선택을 인정할수 있기 때문이다. 가슴에 묻은 아들을 향한 그리움 김은 노력하고 있었다. 아니 작가는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단테의 신곡을 따라 여행하고 싶다며지하철로 몸을 던진 아이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 부분에서 김과 규의 여행길 에피소드들은 겉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부분에서 생동감 있게 펼쳐지던 문장들은 규와의 여행길에서는 급속도로 추상적으로 바뀌어 힘을 잃어 버렸다. 그건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진행형인 고통 앞에서 김은 어떤 방식으로 규를 보내줘야 할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나는 작가가 감정을 절제하다 사건까지 절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노귀굿은 좀 더 강렬했어야 했다. 자잘한 에피소드가 아닌 중심 사건을 거치면서 김과 규는 서로를 좀 더 알아갈 수도 있었다.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부부가결코 사이좋은 부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싸워야 할 때 싸우고, 터져야 할 고름은 빨리 터트려야상처가 쉽게 아무는 법이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아무리 굿판을 크게 벌려도 김의 고통을 모두 씻어 내릴 수는 없다는사실을 말이다.책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 나 역시 부모이고 까마득한 날에 십 대를 보낸 탓에 아이의 슬픔이 아니라 아이를 잃은 아비의 슬픔에 동화되어 울었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시련을 주신다고 했다. 낡아빠진 저잣거리 위안 같지만 때론그러한 위안이 고상한 말보다 훨씬 깊게 다가올 때가 있다.작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구체적인 고통과 상처를 딛고 깨달음을 얻어낼 수 있었던 사람이다. 그 무시무시한 슬픔의 시간들을 풍화시키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작가에게경의를 표한다.‘지상에 평등한 삶은 없습니다. 평균율의 삶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삶은 근본적으로 불평등합니다. 낙타와의 여행은 그것을 깨닫는 길이었습니다. 불평등한 삶을 더욱 불평등하게 몰아세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영혼의 나태를 경계해야 합니다. 무한경쟁에서 승리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타자를 배려하면서 자기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다음 작품에서는 작가의 옆구리 허물어진 절벽에서 꽃 한송이 피어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정희경 2010년 전북일보와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