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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5 |
[서평] 『자연달력 제철밥상』
관리자(2010-05-03 18:57:18)
『자연달력 제철밥상』 잘 먹고 잘 사는 법, 자연밥상에 비밀이 있다 - 서미숙 전주 소비자 생활 협동조합 사무국장 농사꾼 장영란은 앞에도 산, 뒤에도 산인 무주 산골에서 농사를 짓는다. 철학을 한다. 말만 앞세우지 말고 생명답게 살라고 가르친다. 달과 해의순환에 따라 나뉜 24절기, 다만 관찰하고 느끼는 그녀의 발자국을 따라가 본다. 자연이 주는 선물, 철 따라 골라먹는 재미 첫 절기, 아직 눈발 성성한 입춘에 지난 가을 받아 놓은 고추씨로 모종을 키운다. 언 땅이 풀리고 삽질이 시작되면 어느새 장 담그고 씨앗 준비하고 다가오는 봄을 맞이한다. 겨우내 땅속에서 싹을 올려낸 냉이며 씀바귀며 그 소란한 생명의 기운을 고스란히 먹는 우수의 밥상. 벌레들이 잠깨고 개구리, 도롱뇽이 알을 낳아 새 생명의 순환을 시작하는 경칩.약속한 듯 일제히 올라오는, 햇빛을 닮은 노랗고 푸른 꽃순들, 그것들 샘내는 추위에 어림없다.여린 새싹들을 찾아 토끼도 주고 아이도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저자의 모습, 생명과 생명이 해후하는. 이쯤 되면 들과산과 벌레들과 함께 자란 아이들은 어떻게 컸을지, 궁금하다. 제초제치고 퇴비 잔뜩 주고 어떤 풀은 죽이고 내 먹을 곡식 채소 살리는, 인간의 입과 욕망을 위해 자연을 구조조정하는 오만함. 나와 우리, 너무 멀리 오지 않았는지. 공존하지못하고 지배하려는 이 물질문명, 생명이 아닌 이윤에 자리를내어준 우리. “누군가 농사를 일컬어‘타이밍의 예술’이라했다”는, 어쩌면 땅과 바람과 햇빛과 비가 인간의 뜻대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그렇듯 당연하게 살지 못하다. 자연이 만드는 집에 인간은 단지 그 때를 알고 씨를 뿌리고 돌보고 거둘 뿐이다. 곡식의 입장에서인간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과 비와 다르지 않으리라.이제 4월 하늘이 짓는 농사가 시작된다. “나무에 물이 오르”고(청명) 비가 오니“고사리, 취가 돋아”난다(곡우). 볍씨를 물에 담가 논농사를 시작하는 철. 취, 뽕순, 두릅, 고사리,화살나무순, 다래순, 엄나무 순, 파드득나무…. 나물 무치고차 마시고 천지가 꽃으로 향기롭다. 아침저녁 서늘하지만 어느새 여름이 조금씩 오고 있다. 모를 찌고 못자리를 하고 고추, 토마토, 가지꽃 피고 보리가 익어 소만이다. 아직 열매를맺기 전, 꽃이 핀, 그러나 시장에는 온통 철없는 과일들이다.작자의 후배가 그랬단다, “그래서 제가요, 도시 사는 친구들한테 유기농산물 찾기보다 제철을 찾으라고 말해요”. 애초 1만 년 전 씨를 뿌릴 때부터 모든 농사가 유기농이었음을, 농약을 뿌리며 농사를 지어온 것은 겨우 200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제 유기농업이 특별한 까다로운 일이며 농약을 뿌려 짓는 농사가‘관행’농이 되어버린, 자본과 이윤이 지배한이 뒤바뀐‘traditional’이라니. 결국 유기농업이냐 관행농업이냐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우리는 살기 위해 먹고먹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먹는 삶의 순환에서 상품을소비할 것인가 대지와 우주의 기운을 나눌 것인가는 선택의여지가 없는 듯하다.더 따라가 보자. 앵두가 익는다. 들에 딸기도 익어 붉다.여름이 코앞이다. 입하와 소만에는 쌀로 만든 막걸리를 빚는다. 곡식과 공기와 물이 만드는 예술. 그 작품을 모내기 참으로 먹는 맛이라니. 가뭄 끝에 장마가 온다. 토마토가 붉어지고 마늘쫑이 나온다. 감꽃이 떨어지고 매실이 익어간다. 보리가 익고 저마다 열매를 맺을 채비. 작자는 축축하고 눅눅한 장마, 벌레와 곰팡이가 살기 좋은 이때, 또 이것저것 갈무리를 하고 철을 산다. 비바람 부는 장마통에서 그녀는“나 역시 자연이 기르는 목숨”이니“자연에 믿고 맡기기보다, 나도모르게 자꾸 나서려 한다. 얄팍한 지식을 무기로 휘두르며…”라며“나는 어떤 씨를 퍼트릴까? 내 자식들은?”하며 묻는다. 나도 내게 물어본다. 쉽지 않구나.이제는 햇살이 고추와 가지에 영근다. 소서. 이 많은 곡식들, 채소들을 일일이 보아주고 만져주고 벌레를 잡고 수백수천번씩 눈길을 주었을 작자의 손길. 열매와 온갖 풀의 잔칫날은 벼꽃이 피고 지는 입추에 이르고, 여름 기운 꺾이는처서에 이르러 곡식의 마지막 결실의 때를 맞아 바람과 햇볕의 기운을 받아 누렇게 익는다.동물은 코끼리, 기린, 하마, 악어만 있는 줄 알았지만 다람쥐, 멧돼지, 고라니 등 야생 동물이 우리나라에는 훨씬 많다.이처럼 저리도 많은 야생, 제철 과일과 채소는 간데없고 대형 마트에는 여름 자두와 복숭아보다 바나나, 오렌지, 사과등 거의 모든 과일이 사철 내내 진열되어 있다. 이제는 그저상품인 그것들을 우리는 언제나 싱싱한 과일을 먹을 수 있다고 참 철없이 받아들여야 했고 그게 풍요로운 삶인 줄 알았던 것이다. 미국에 간 어느 유학생이 그랬다던가. 미국의 진보는 월마트 앞에서 멈춘다고. 자본의 논리가 내 근육과 피를 통제한다. 먹을거리, 입을거리…. 모든 것을 돈 주고 살수밖에 없는 우리. 자급자족은 우리의 유전자에는 기억되지않는 고전인지.작자는 이제 열다섯째 절기인 백로에 이른다. 콩, 호박, 들깨, 오미자, 기장, 수수..열매들을 거둔다. 싹이 움트고 꽃이피고 태풍이 몰아치고 가지가 휘어지고 들로 산으로 나물을하러 다니고 산에 열린 열매를 따고 생명들 살리고 보살피며작자는 참 행복했으리라. 그녀의 밝은 눈이 백과사전도 식물도감도 울고 갈 이 책을 그녀의 열매로 일궈냈으리라.이제 찬바람 불고 단풍드니 무주 산골엔 눈까지 내리는 10월. 백로, 한로, 상강, 입동. 어서 준비하라고, 겨울날 준비하라고 서리를 내려준다. 겨울곡식이 제 맛을 낸다. 콩 삶아“처마 밑에 메주!”로 올려“일 년 작품이 매달”렸을 때에는그녀와 남편, 아이들은 아마 메주 냄새 청국장 냄새로 서로를 품었겠지. 토끼는 굴을 파지만 그녀와 남편은 에너지 자급을 위해 로켓스토브(rocket stove)를 만들며 실험하며 겨울도, 미래도 준비한다. 아직 가을, 눈이 내려 겨울인가, 아니 아직 배추 뽑아 김장담을 준비해야지. 손과 발이 편해지면 삶이 위태로워질. 그러나 팥밥, 녹두밥, 고구마밥, 콩나물밥에 시래기 된장국, 무나물, 배춧국, 단호박찜…. 그 생명들이 추운 인간에게 온기를 준다. 김장담고 쌀 독아지에 그득하면 그보다 배부를까. 청국장 띄우는 냄새 푸근하고 달콤한고구마에 야콘에 겨울이 달다. 산골의 겨울, 수도가 얼고 땅이 얼고 농사는 휴가다. 일년내내 부지런한 농사꾼에게 겨울햇빛 한 줌이 언 발에 가슴에 꽃으로 피겠다. 동지 팥죽 한사발이 온 몸에 퍼진다. 광대나물, 고수덩이, 겨울냉이, 늙은호박, 은행, 밤, 무생강대추꿀차. 떡메 내려쳐 인절미까지 먹고 나면 쌈장과 간장을 담근다.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간다. 대한 소한, 찰밥 먹고 기운 내고 봄동 먹으며 햇빛을 먹는다. 다시 시작이다. 자급자족하는 삶이 아름답더라 이 책은 작자의 지혜와 수만 년 전부터 살아온 생명들의지혜,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사는 법에 대한 한 관찰 같다. 한번 쓰고 버리는 상품처럼 우리 밥상을, 우리 먹을거리를 방치하지 않고, 그 시작과 끝을 모를 오래전 우주에서 비롯된순환하는 생명, 순환하는 삶을 지금 당장 선택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나는 서양의 철학, 자본주의 문명이‘나’,‘개별’,‘ 주체’,‘ 이성’을 우위에 두었다면 우리는 존재하는모든 생명들과 공감하고 협동하고 나누는 철학이 이미 우리에게 피로 흐르고 있다고 본다. 지금, 이곳에서 눈 밝히고 귀밝히면 가능함을, 평화로울 수 있음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철없는 우리에게 철에 따라 살면 철든다고 가르치는 것 같다. 철없이 살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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