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이 보이는 정원(雲海之歌)전 (5월 12일~18일) 서신갤러리 디지털로 창조된 한 폭의 수묵화 전통 회화 양식인 수묵이 디지털 영상매체와 만나 새롭게 탄생했다. 지난 5월 12일부터 18일까지 전주 서신갤러리(관장 박혜경)에서 열린 <수묵이 보이는 정원>전. 탁영환(41) 씨가 2005년 이후 3년 만에 갖는 세 번째 개인전으로 서신갤러리 공간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디지털 수묵 애니메이션을 창조하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디지털 수묵 애니메이션이란 장르를통해 우리네 산천초목 혹은 그 안에서 부비며 사는 사람들을표현했다. ‘디지털 수묵 애니메이션’이란 그가 새롭게 개념화한 장르. 전통적인 수묵화 방식에 애니메이션 기법과 컴퓨터 영상기술을 응용, 디지털로 창조하는 과정을 일컫는다.선보인 작품은 <운해지가(雲海之歌)>를 비롯한‘연기 3부작’. 그동안 수동적이자 정적인 양식으로 각인돼 온 수묵화의 관념을 탈피, ‘움직이는 수묵화’라는 색다른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전통 수묵화에 다양한 연기를 디지털 기기로합성, 입체감 있는 수묵화를 만들어낸 그의 작업은 주목받을만 하다.이를 위해 그는 연기(Smoke)라는 오브제를 촬영, 이미지간의 무와 유의 경계를 설정한 후 운해가 감도는 산과 폭포수가 쏟아지는 절벽, 끝없이 달리는 인간을 그려 넣었다. 실제 촬영된 연기의 이미지와 허구로 창조된 수묵화의 움직임이 한 화면 안에서 입체적으로 표현된 것. 특히 한지를 이용해 디지털 병풍 혹은 족자를 표현, 수묵의 멋과 아취를 그대로 담아냈다.“물건이 가지는 성질은 정해져 있는데, 연기라는 물성은속도·투명도 등이 가변적으로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때문에 연기의 이미지는 수묵의 여백과 농담을 표현하는데 아주 적절한 재료지요.” 영상에 대한 끝없는 갈증 그가 영상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큰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저희 큰 아버지가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한 덕에 어려서부터 극장을 수시로 드나들며 영화를 볼 수 있었죠. 그때만 해도 전주에 극장이 세 개뿐이었으니 영화를 접하기 힘들 시절이었죠. 그런데도 큰아버지 집에는 영사기와 영화잡지, 카메라 등이 있었어요.”어린 시절부터 영상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예술가는 가난하다’며 반대하시는 부모님의 뜻대로 전주대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시절 한 광고회사의 스토리 보드 공모전 수상을계기로 광고회사에 취업하게 된 그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시간이 지날수록 영상미술에 대한 갈증은 더욱 깊어졌다. 결국 그는 5년여 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일본 유학을 결정했다. 그는 일본 도쿄 디자이너스 가퀸에서 애니메이션을,무사시노 대학원에서 영상연구와 예술학 석사과정을 마치고6년 전 다시 전주로 왔다. 전주에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전파하기 위해 전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서예나 수묵화작품을 볼 기회가 많았다. 이번 전시 역시 수묵화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정식으로 수묵화를 배운 적이없었던 그에게 수묵화 영역은 큰 부담이었다.“수묵을 전공하시는 분들이나 전문가들이 보기에 미흡한작품일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수묵화 자체보다 수묵과 디지털이라는 만남에 더욱 주목했습니다. 수묵이 영상으로 보일 때 발생할 시너지 효과는 또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수묵화보다는 그 도전과 가능성에 초점을 뒀으면 합니다.”그러나 전주에서의 활동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아직까지도 전주는 영상·설치미술의 황무지와 같은 곳이다. 적어도그의 생각에는 그렇다.“도립미술관에서 소장작품을 수집할 때도 영상·설치작품은 거의 없고, 이 분야에 대한 지원도 희박하지요. 그런데 가끔 일본 친구들이 오면 전주를 보고 감탄해요. 경주는 너무인위적인데 비해 전주는 자연스러운 멋이 있다고 하죠. 그걸보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자기 고향을 배경으로 작품을만들었듯 우리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작지만 큰 힘이모이면 분명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믿어요.”앞으로 더욱 활발한 작품활동을 통해 영상·설치미술에대한 전북의 척박한 환경을 개선하고 싶다는 그는 지역에 새로운 물결이 퍼져나갈 수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