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6 |
[이현근의 농촌학교 이야기] 특별한 운동회
관리자(2010-06-03 11:13:34)
이현근의 농촌학교 이야기
특별한 운동회
뿌리가 튼튼한 나무
- 이현근 임실지사초등학교 수석교사
5월 7일은 학교 재량휴업일이라 세 아이의 아빠로써 처음으로 학교 운동회(5월에 하는 작은 운동회)에 참석했다. 아빠가 운동회에 함께 한다는 말에 둘째가“아빠 정말 우리 학교에 올 거예요?”하니 옆에서 듣고 있던 유치원 다니는 셋째가“아빠, 나아… 아빠랑 달리기해도 되요?”하며 달려와 안긴다. ‘모처럼 아빠 노릇하겠구나’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갔다.
지사초등학교만의 특별한 운동회
하늘에는 만국기가 휘날리고, 학교 방송반 아이들의 방송 소리와 배경 음악소리가 운동장에 가득하다. 운동장 가운데에서는 3학년 아이들의 훌라후프 던지기가 한창이다. 엄마들은 자기 아이달리기 경기를 보려고 이리 저리 바쁘다. 나도 내 아이 뛰는 모습을 보려고 결승선에 갔다. 보여 지는 운동회의 모습이작은 학교 운동회와 겹치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운동장 가운데라는 무대에 나간 아이들은 승부를 가르려 열심이다. 이 승부에누가 관심이 있는지 눈을 들어 살피니 가운데 참여한 아이들만 열심히 하는 경기다. 아이들이 있는 응원석을 보니 운동장 가운데 무대의 경기를 보는 아이들 수가 몇 안 된다. 나무 그늘을 보니 구경 온 부모(대부분이 엄마)들과 할머니 몇 명이 가운데 무대에 눈길을 주고 있다. 그러다 자기 아이 경기가 아닌 듯 다른 엄마들은 뭔가에 바쁜 듯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 사이를 지자체 선거에 나온 후보자들이 때를 만난 듯 명함을 돌리고 있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결과 발표, 최종 점수가 발표되어 청군이 만세를 부르며 운동회를 마친다. 이 운동회는 행사의 겉모습만 본 사람들에 의해 무난한 운동회였다고 평가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 말을 걸어온 질문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과연 내 아이들을 이 운동회에 어떤 경험을 했을까?”,“ 아이들 하나하나가 경기에참여한기회는몇번이었을까?”,“ 아이들은경기(학년경기, 달리기)에참여하기 위해 기다리며 먼지 자욱한 응원석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른들은 그늘에 앉아서 아이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이들은 며칠 전 받은 어린이날 선물의 보답으로 뙤약볕에서‘어머님 은혜’를 불렀을까?”지사초등학교도 5월 4일에 가정의 달 체육행사를 했다. 전교생 32명을 데리고 운동회를 했다. 처음에는 넓은 운동장에서 전주 시내 한 반 아이들 숫자인 32명, 지사초 전교생이 모여 운동회를 하려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운동장에서 32명이 모여 운동회를 하려니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으려는 듯 어색한 것이다. 여러 의견을 거치며 이번 운동회는 강당에서 하기로 했다. 참여한 학생들과 학부모가 서로 어울리는 놀이마당으로 갖자고 마음이 모아지고, 뙤약볕에서 연습하여 보여 지는 운동회가 아닌 참여하는 운동회 프로그램으로 꾸리기로 했다. 그래도 어린이들이 운동장에서 맘껏 달려야 하지 않느냐는 말에 마지막 프로그램은 운동장에서 전교생 이어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잘하고 못하느냐를 떠나 함께 참여하는 운동회로 준비하기로 했다.날씨가 이상하여 농사가 늦어지고 구제역으로 걱정이 많은 바쁜 절기에 부모들이 몇 명이나 참석할까(?)하는 걱정만남았다.운동회 당일, 지사초는“농촌의 작은학교는 학생 수가 작아서 운동회도 할수 없을 것이다”는 문제를 운동회를 다른 차원으로 접근하여 지사 온 가족이참여하는 놀이 시간을 가졌다. 줄맞춰입장하고 청군 백군으로 나눠서 경쟁하는 경기를 하지 않고 어른과 아이가 어울려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이 어른들의구경꺼리 제공을 위해 뙤약볕에서 땀 흘리지 않았다. 아이와 어른이 손잡고 함께 참여하여 신나게 놀았다. 교장선생님도 뒹굴고, 할아버지도 구르고, 엄마도뛰었다.
뿌리가 튼튼해야 건강한 열매 꽃 피운다
지난 금요일(5월 14일)에 아이들과학교 텃밭에 고추를 심었다. 학교 텃밭을 통해 학생들에게 흙에 대해 소중한경험을 주고자 농촌의 많은 학교에서는텃밭을 가꾼다. 텃밭에 여러 가지 채소를 가꾼다. 완주 삼우초에 근무할 때 텃밭을 통해 학생들과 감자, 상추, 치커리등을 가꾸어 점심시간에 키운 채소로 여름철 내내 밥을 먹으며 소중한 시간을보낸 적이 있다. 문제는 방학을 보내면서 학교의 텃밭은 풀밭이 된다는 것이다.올해는 선생님들과 의논하여 고추를 심기로 했다(비교적 풀을 잡기가 쉽다고 판단함). 고추를 수확하여 말리고 가을에 배추를 심어 김장을 하기로 교육과정을편성했다. 아이들에게 교육적 의미를 더 채워 주기 위해 김장을 담아 어려운 친구들(보육원이나 장애우 시설)을 방문하자는 목표도 세웠다.고추를 심자고 하니“저는 엄마 아빠랑 3만주를 심었어요”하는 아이부터 13명정도의 학생들이 고추를 심어 봤다고 한다. 아이들이 알아서 심으려니 하고 맡겼다. 다 심고 난 텃밭은 그럴듯한 고추밭이 되었다. 마음 놓고 농기구를 정리하고퇴근을 했다. 아이들이 물은 잘 주었을까 하는 걱정의 마음으로 고추모에 물을주려고 오늘(16일) 오후에 학교에 갔다. 그런데 고추모가 5월의 뙤약볕에 말라죽은 모습으로 모두 시들어 있는 것이다. 부랴부랴 시든 고추모 덮은 흙을 눌러보니 속이 비어있었다. 고추는 뿌리 사이에 공기가 들어가면 안 되는데 고추모들이 뿌리를 땅에 튼튼히 박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박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일뿐 허공에 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도와 고추를 심었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고추모를 다시 심고 물을 주었다. 어른들과 함께 3만주의 고추모를 심었다는 아이의 모가 제일 튼튼히 심어져 있었다. 다시 심어진 고추모가 제대로 깨어났으면 좋겠다.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자칫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는 일이 많지 않았나 되새겨본다. 솔직히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 운동회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어른들이 자칫 땅에 튼튼히 뿌리를 박지 않고 서 있는고추모처럼 보이는 것만 추구하여 몇몇의 구경꾼들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하고있지 않았을까?어제(이 글은 5월 16일에 쓰임)가 스승의 날이었다. 요즘 시대 돌아가는 상활을 보며 이 시대에 나는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요즘 내머리가 아닌 내 맘속에 남아서 나를 지배한다. 맘에 남아 있으니 쉬 지워지지 않는다.내 아이 가르친다는 마음으로 튼튼한 어린모들을 심고 싶다. 겉으로 보이는 그럴싸한 밭이 아니라 튼튼히 뿌리 내린 어린모들이 뜨거운 뙤약볕을 이겨내는 묘목을 심고 싶다.올해는 고추가 많이 열리고 병들지 않아서 농촌의 부모들은 웃음 꽃 피고, 우리 아이들은 김장해서 다른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