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6 |
[테마기획] 그리운 갯벌
관리자(2010-06-03 11:14:48)
그리운 갯벌
생명을 키워내는 이 아름다운 작은 우주
갯벌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은혜로운 선물이다. 우리나라 갯벌은 생물종 다양성이 풍부해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인정받고있다. 그 중 수심이 얕고 조석간만의 차가 매우 큰 서해안에는83% 정도의 갯벌이 몰려 있다.갯벌은 그저 황량한 땅이 아니다.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는 철새들의 쉼터이자 망둥이, 짱뚱어, 농어, 낙지, 조개 등과 같은수많은 생명체의 서식처다. 오랜 세월, 어민들의 삶을 지탱해준 소중한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소중한 생명의 땅 갯벌이 사라지고 있다. 수만 년, 인간과 함께질곡의 삶을 버텨온 갯벌이 개발에 밀려 날로 사라지고 있는일은 안타깝다. 어미의 젖줄을 잃은 수많은 생명은 순식간에화석이 되어 흔적으로 남아 있다.이번호 테마기획은‘갯벌’이다.서해, 그 중에서도 전북 곳곳에서 사라져가는 갯벌의 한 자락이라도 붙잡을 수는 없을까.지금 서해안의 갯벌이 울고 있다.
네가 아프면 칠게도 인간도 아프다
- 갯벌의 문화화 -
- 김준 전남발전연구원
물이 살아나는 서물이다. 바닷물이 바람모퉁이를 돌아 돈지 앞 갯골로 들어올 시간이다. 이때가 되면 할머니는 어깨가 근질근질하다. 서둘러 어깨에 그레를 메고 등에 망태를 지고 생합잡이에 나선다. 냉동실에 얼려 둔 물과 미숫가루와 빵 두 개면 준비 끝이다. 새만금 방조제 앞에서 생합잡이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백발머리 할머니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
갯벌은 운명이다
할머니가 갯벌과 인연을 맺어 온 것도 반백년이 훨씬 지났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중선배 두 척으로 칠산바다와 연평도를 누비던 시절에 그녀는 바닷물은 물론 부엌물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바다를 목숨과도 바꿀 만큼 좋아하던 시아버지는 끝내 용왕의부름을 받았다. 할머니가 갯일을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이었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세 아들과 두 딸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갯벌 때문에 가능했다.이제는 그만 두고 싶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아들집에서 푹 쉬자고 생각했다. 보상도 해 주고 일자리도 준다는데, 어차피 내 땅도 아니지 않는가. 이런 생각에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새만금방조제 반대시위로 요란했지만 할머니는 서울 아들집으로올라갔다. 손자들 재롱에 며칠간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달이 차고 기울고 다시 찰 무렵이 되자 몸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병원에도 가보았지만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으니 편안하게‘푹’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자꾸 눈길이 달력으로 갔다. 깨알만한글씨를 읽을 수 없었다. 시골 부엌에 걸려있는 큰 글씨로 물때가 적힌 달력이 그리웠다. 보나마나 서물쯤 될 성 싶었다. 날이 밝자 아들을 졸라 고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녀를 부른 것은 갯벌이었다.
갯살림의 비밀
지구에서 원시적인 생명성이 유지되고 잉태되는 곳은 많지 않다. 원시림과 습지정도될까. 갯벌이 중요한 이유다. 갯벌은 생태계와 생명의 보고다. 그런데 생명이 어디 독립된공간과 개체로 존재하던가. 우리는 오랫동안 갯벌과 바다를보전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성과라고 내놓을 만한 것은찾기 어렵지만 훼손된 곳은 줄줄이 욀 만큼 많다.적어도 근대 이전까지는 인간과 갯벌은 공존했다. 칠게와낙지와 인간과 도요새가 같은 갯벌에서 더불어 생존했다. 부리가 긴 알락꼬리 마도요와 짧은 검은머리 물떼새가 같은 갯벌에서 공존하고 칠게와 붉은발 농게가 함께 생활했다. 같은바다와 갯벌에서 윗마을은 곤쟁이를 잡고 아랫마을은 꽃게를 잡았다. 이러한 공존의 경험은 수 백 년 동안 갯벌과 함께인간의 삶에 쌓여갔다. 그것이‘갯살림’이다. 그들은 공전의유전자를 갖고 있었다.나는 그런 사람을‘어부’라고 부른다. 그들은 인간이기에앞서 갯벌생물이었다. 오늘날은 어부보다는‘어업경영인’이라고 한다. 문화보다는 경제적 가치가 앞선다. 갯벌은 더 이상 인간의 저금통이 아니다. 더 이상 인간의 반찬통이 아니다. 갯벌이 갖는 가치를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살림’의 철학만이 갯벌을 살릴 수 있다. 갯벌은 존재 그 자체가 살림이다. 육지와 가장 큰 차이가 이것이다. 그 가치는 이제 갯벌에서 육지로 확산되어야 한다. 도요새도 살고 인간도 살고 갯벌도 살 수 있는 방안이다. 그 비밀은‘갯살림’에 있다.
우리의 갯벌이 보존돼야 하는 까닭
람사르협약에서는 바닷물이 빠졌을 때 6m를 넘지 않는해역을‘연안습지’라고 한다. 이곳은 조간대를 포함해 인간이 가장 빈번하게 접촉하는 공간이다. 어민들의 삶이 시작되는 곳이다. 어민들만 아니다. 그곳은 바닷물고기들도 산란하고 성장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강물과 바다가 만나 만들어낸갯벌은 풍부한 영양염류와 원시적인 생명성을 간직하고 있다. 다양한 서식 환경 탓에 생물다양성이 높아 먹이사슬과생산력의 보고이다. 그뿐만 아니다. 수문학 및 수리학적 기능(자연댐, 수분조절), 기후 조절 기능(지구표면의 6%, 대기중으로 탄소 유입 차단, 이산화탄소량 조절, 대기 온도와 습도 조절, 국지적 기후조절), 수질오염 물질 제거 등의 기능을한다. 이러한 기능주의적 접근으로 갯벌의 가치를 재단하는것은 옳지 않다.특히 우리나라 갯벌은 그렇다. 이미 우리 갯벌은 자연이 아니라 환경이다. 인간과 끊임없이 교감하며 관계를 맺어온 환경이다. 갯벌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원할 수 없는 것도이 때문이다. 작은 규조류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명들이 갯벌에 의존한다. 한국의 서해 어류들은 70%가 갯벌에서 산란하고 자란다. 강과 갯벌과 섬과 바다로 이어지는 독특한 해안생태계는 다양한 문화의 모태였다. 세계5대 갯벌중에서 우리 갯벌이 주목을 받아야할 이유는 종다양성과 문화다양성 측면에서다. 유럽이나 북미의 갯벌과 다른 점이다.
갯벌에 드리운 그림자
한국의 갯벌은 1960년대 3900㎢에서 2006년 2400㎢로감소했다. 가장 큰 이유가 간척이다. 특히 새만금(208㎢),시화호(180㎢) 간척이 갯벌상실을 주도했다. 그 동안 갯벌을간척하여 논, 염전, 공장 등으로 이용했다. 특히 최근 대규모간척들은 명확한 목적 없이 정치적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시화호와 새만금이 대표적이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 이후 많은 조개들이 갯벌위로 올라와 죽었다. 갯벌이 마른 후비가 오자 많은 조개들이 바닷물이 들어 온 줄 알고 올라왔다. 이제 새만금은 빠르게 육지화되고 육지생물들이 우점화하고 있다.새만금지역 어민들은 남자들은 배를 타고 고기를 잡고 여자들은 갯벌에서 조개를 잡았다. 간척사업으로 바다에서 고기잡이가 어려워지자 모두 갯벌에 들어와 조개를 잡았다. 균형을 이루던 생태계는 무너졌다. 사람들은 서로 더 많이 잡기 위해 견제하기 시작했다.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던 마을공동체도 무너졌다. 방조제가 완성되자 갯벌은 육지화되기 시작했다. 조개를 잡아 살던 사람들은 어업에서 농업으로 일용근로자로 전락했다. 마을을 떠나는 사람도 생겼다. 호주로가던 도요새들도 중간기착지를 잃고 인근 논으로 내려앉았다. 칠게도 구멍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어갔다. 칠게와 갯지렁이도 죽었다. 도요새는 새로운 삶터를 찾아 떠났다. 어민들은 농민이 되거나 일용근로자로 바뀌었다.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갯벌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
바다는 바다로 존재해야한다. 육지의 사고로 환원해서는안 된다. 다양한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는 바다를 획일화된시공간으로 바꾸어서도 안 된다. 바다와 갯벌은 우리문화의원형질이다. 바다와 갯벌은 미래의 삶의 지표이다. 자손들에게 오롯이 전달해주는 것이 우리세대가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갯살림’이다. ‘갯살림’은 바다도 살고 갯벌도 살고 사람도 사는 살림살이다. 갯벌은 진달래가 필 무렵 몸속 가득새로운 희망을 품은 황금조기가 제일 먼저 찾던 곳이다. 작은 실뱀장어들이 태평양 깊은 바다 수만리에서 하늘거리며찾던 곳이다. 인간은 그곳에서 바지락을 줍고 백합도 캐고낙지를 잡았다. 살을 매어 숭어도 잡았다. 갯벌은 인간이 내뱉는 온갖 배설물을 받아 풍요로운 생명의 곳간으로 만들었다. 파도와 태풍에 온몸을 맡기며 마을을 지켰다. 욕심이 많은 인간은 살림을 팽개치고 물길을 틀어막고 갯골을 매워 공장을 지었다. 인간은 남은 갯골에서 갯살림을 한다. 그들은여성들이다. 어부들에게는 농부들의 논과 같은 공동어장이있다. 바다와 갯벌은 태생적으로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공간이다. 돌담을 쌓고 물길을 돌려보지만 들어온 고기들은 그곳에만 머물지 않는다. 생명에는 나눔이 있다. 아름드리 참나무가 수많은 열매를 떨구지만, 칠년 된 숭어가 수많은 알을 품어내지만 아름드리 소나무로 자라는 팔뚝만한 숭어로자라는 것은 단 하나에 불과하다. 왜 그렇게 많은 생명을 떨구고 품는 것일까. 그것이 나눔이다. 그것이 생명이다.우리 갯벌은 생활과 생업의 공간이다. 이러한 가치를 고려한 갯벌보전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우리 갯벌보전정책은늘 경제적 가치로 접근해 왔다. 이제는 어민들이나 어촌에서갯벌이 갖는 문화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 주민이나설 수 있다. 그리고 시민과 연대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갯벌의 문화화라고 생각한다. 육지중심의 가치를 사회화했다면 이제 갯벌이 갖는 다양한 가치, 철학이 육지로 확산되는‘갯벌의 문화화’가 필요하다. 이는 인간도 갯벌생물의 하나라는 것을 수용할 때 가능하다. 먹이를 찾아 고개를 젓는저어새와 조개를 캐는 할머니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 갯벌에는 다양한 생명이 살고 있다. 인간도 그 중에 하나다. 인간은갯벌에 등장한 최후의 갯벌생물이다. 갯벌이 아프면 칠게도아프고 도요새도 아프고 돈지마을 할머니도 아프다.
김 준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에서 해양문화를 연구했다. 현재전남발전연구원 문화관광팀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섬과 바다』,『 새만금은갯벌이다』,『 농어촌사회문제론』,『 서해와조기』,『서해와 갯벌』,『 김준의 갯벌이야기』등이 있으며, <섬과 여성 >(2007), <소금밭에 머물다>(2008) 등 해양문화 관련 사진전을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