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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6 |
[테마기획] 그리운 갯벌_추억 속 갯벌
관리자(2010-06-03 11:15:45)
그리운 갯벌_추억 속 갯벌 해창갯벌, 그 쓸쓸한 이름을 추억하며 - 김옥성 사진작가 남도의 서쪽 끝 변산반도는 끝 모를 갯벌과 그곳에 사는 수많은 생물들, 그리고 기암괴석이자아내는 파노파마와 같은 풍경이 몹시도 인간적인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하늘과 바다, 또한 그 곁에 살며시 다가서는 해송 숲의 서늘한 곡선들은 해질 무렵 조용히 끓어오르는 낙조와 어우러져 그 풍광의 절정을 보여준다. 해창갯벌의 찬란함 지워지지 않아 스물셋에 시집와 50년 서울생활을 하면서 4남매(3남 1녀) 아이들과의 어렸을적 휴가는 늘 변산반도의 고향바다 송포해수욕장을 찾곤 했었다.1930년대 일정 때 개발한 변산반도의 송포해수욕장 앞바다는 세계 10대 안에들어가는 리아스식 해안이다. 모래사장과 갯벌이 아름답고 고와서 패류가 잘 자라고 특히 바지락, 생합, 대합조개는 패류 중 가장 맛이 고급이다. 당시 굴이 손쉽게 자라는 곳이 없어서, 나의 부친은 1967년부터 해창 앞바다 갯벌 15만평(50헤타)에 일부 망을 치고 생합(대합조개) 양식을 했었다. 그곳은 민물, 썰물의 간만의 차가 없어 양식하기에 적합했다.당시 부친인 부안여중·고 설립가 김태수 선생의 큰 뜻은 1만평 학교 부지에여자고등학교를 건축할 원대한 꿈을 갖고 계셨다. 호미 한번 잡아보지 못했던 부친은 썰물 때면 그 넓은 바다에 들어가 조개의 천적인 소라를 잡으려고 여자인부를 20~30명씩 고용하여 일을 시켰으며, 밀물 때면 종패를 심은 바다 망 속에서1cm되는 조개가 갯벌 속에서 깨끗하고 맛있는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 3년 만에3cm로 자라서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다. 늘 바다에 나가시면 1cm되는 종패 하나를 집어 들고“이 조개 하나가 벽돌 한 장이다”,“ 벽돌 한 장이면 학교를 세운다”고 말씀하시던 부친은 결국 원대한 꿈을 이루어내셨다. 아름답던 갯벌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그 바다의 양식장 갯벌의 대합조개(생합과 바지락)들은 학교 건물을 세우는 마당이 되었다. 당시는 사립학교에 문교부 장학 원조금이 전혀 없었던 어려운 시절이라 자비로 사립학교를 세웠다.썰물이 되면 손바닥만한 게와 숭어, 망둥어, 전어새끼 할 것 없이 망에 걸려양동이로 주어 담을 수 있어, 김치와 장조림 쌀만 갖고 가면, 식사는 진수성찬이었다. 자가생산이 되어 방학 한 달을 거뜬히 지낼 수 있는 자가해수욕장이 되었었다.동네아이들에 1원씩 주고 주어온 바닷돌로 돌집별장을 짓고, 지금은 80년도해일로 쓸어져 버렸지만, 창고와 트럭이 닿는 곳엔 조개노적이 산더미 같이 성을 쌓아 수십 톤을 수출하곤 했었다.이제 이 바다가 매립되어 공장과 농경지가 된다는 의미는 패류의 서식지와 갯벌을 잃어 버린다는 뜻이다. 환경변화는 물론 100년을 이어 대를 이어줄 추억은 갯벌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새만금 해안도로가 있고, 여의도의 340배 정도의 면적이 된다는 이 간척지가 두바이 같은 도시로 공업, 농업, 자연림, 풍림지, 관광지,생태공원으로 나뉘어 자연 환경변화를 겪는다. 50년, 100년이란 일세기의 세월을 보내며 1937년생의 인생이 간직했던 아름다운 추억은 사라지고 말겠지. 사라져가는, 그러나 영원히 잊히지 않을 갯벌 새만금 도로를 완성하기 전 현지답사 때 준설선으로 갯벌을 퍼내는 광경을 보면서, 나는 생태계들이 전쟁을 겪는 것이 나 스스로 전쟁을 겪는 것 같아 눈물을흘리곤 했었다.아이들이 어렸을 적 놀던 해수욕장, 양식장을 바라볼 때, 그곳에서 생업을 삼던 농어민들, 농한기에 농부들에게 굉장한 소득원을 주게 한 해창 앞바다와 돌집, 사람들의 추억은 갯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새만금 개통식의 오색깃발은 통과하고, 며칠간의 축하잔치로 끝나 버렸지만,통과하는 사람마다 깃발을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계획 100년을 내다볼 수 있는 설계로 꿈꿀 수 있었으면 한다. 사라져 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운 추억은 다가올 역사의 생명의 기틀로 또한 삼았으면 한다. 사라져 간 것들은 내인생과 함께 가버리고 말겠지…. 나의 삶과 동시에…. 김옥성 부안여중과 전주여고를 거쳐 전북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후 가천의과대학 영상정보대학원에서 사진미디어과를 이수했다. 대한민국 사진대전 입선, 경기도대전 특선, 대한민국 신미술대전 최우수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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