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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6 |
장미영·전흥남의‘꿈꾸는 노년’
관리자(2010-06-03 11:19:03)
장미영·전흥남의‘꿈꾸는 노년’ 공경의 대상에서 대결의 대상으로 - 주영선 장편소설『아웃』- 장미영 전주대학교 교수 노인 신화 어린이는 보호 대상이고 노인은 공경 대상이다. 어린이는 약자니까 보호해야 하고, 노인은인생 선배니까 예우를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는 벼슬이다.특히 노인은 나이를 먹은 만큼 경험도 많을것으로 기대되는 인생의 안내자이다. 어린 시절한 번쯤 들어보았음직한 많은 설화들이 이를 뒷받침한다.고려장 풍습이 있던 고구려 때 박정승이라는사람은 노모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갔다고한다.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작별의 절을 올리자 노모는‘네가 길을 잃을까봐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 해두었다’고 말한다. 아들이 부모를 버려야 하는 참담한 상황에서도 노모는 끔찍하게도 변함없이 자식 사랑의 모습을보여 주었다. 이에 박정승은 노모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국법을 어겨가며몰래 노모를 봉양했다고 한다.어디 그 뿐인가. 당나라 사신이 말 두 마리를 끌고 와 어느 쪽이 어미이고 어느 쪽이 새끼인지를 알아내라는 문제를 냈다고 한다. 못 맞히면 조공을 올려 받겠다는 것이 사신의 의도였다. 말이 똑같이 생겨서 맞추는 것은거의 불가능했다. 고민하는 아들에게 노모가 해결책을 알려주었다. ‘말을굶긴 다음 여물을 주렴, 먼저 먹는 놈이 새끼란다.’이러한 노모의 현명함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왕을 감동시켜 이후 고려장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성경에는‘머리가 흰 노인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는직접적인 가르침과 함께 노인을 공경하므로 하느님께 크게 축복받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스의 격언에는‘집안에 노인이 없거든 빌리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나이는 기억력을 빼앗은 자리에 통찰력을 놓고 간다’는잠언도 있다.이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는 삶의 경륜을 앞세워 노인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널리 각인시켜 왔다. 이로 말미암아 가정이든 국가든 노인의 경험을소중하게 여겨야 발전한다는 믿음이 유포되었다. 노인이 혜안의 상징으로각색되면서 노인에 대한 문화적 각본은 한국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노인 신화가 되었다. 노인 공경은 인간으로서 마땅한 해야 하는 도리가된 것이다. 불편한 진실 소설가 주영선은 장편소설『아웃』을 통해 다소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 젊은 사람보다 훨씬 더 현명할 것으로 기대되는 지혜와 혜안의 존재였던 노인을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무례한 사람들로 격하시킨 것이다. 이로말미암아『아웃』은 노인의 이면을 돌아보게하는 색다른 노인소설이 되었다.그간의 노인소설들이 점잖은 노인, 고독한노인, 소외된 노인, 추억의 노인을 주로 다루었다면『아웃』은 뜻밖에도 사회적 약자로 분류된 노인들의 유세를 소재로 하여 추악한 노인의 면모를 주저 없이 언급했다고 할 수 있다. 『아웃』에 등장하는 노인들은 자신의 경험에 집착하여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 고집불통이고 젊음이 사라진 자리에 속물적 욕망만 남은 야만적 인물들이다. 또 이들은 노인이라 해서 사회로부터 물러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게 이기적인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면서지역사회를 흔드는 입김 센 이익집단이다.소설은 무의촌 보건진료소의 신축 준공식으로부터 시작한다. 무의촌이니 만큼 소설의 배경은 당연히 시골이다. 보건진료소가 신축되자, 마을 사람들은 부녀회원 모두를 동원하여마을 잔치를 벌일 정도로 기뻐한다. 온정이 넘쳐날 것 같은 농촌 마을,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위현리는 소설이 진행되면서 농촌에대한 독자의 낭만적인 환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섬뜩한 공간으로 변해간다.위현리는 어느 도시 못지않게 살벌하다.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농촌 사람들도 대도시 사람들과 다름없이 이해타산적이고 이기적인 폭력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서로를 잘 알기에 폭력성이 잔인할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 마을에 요주의 인물 몇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악명 높은 할망구가 장달자라고 했다. 생긴 것부터 우락부락한 게 남자 못지않고 젊었을 때 이마을에서 대폿집을 했으며 그래서인지 천하기 이를 데 없는 장달자의 완력은 동네에서 알아준다고했다. 한동네 사는 사돈의 마구간 여물통에 못을한 줌이나 넣어 소를 죽일 음모를 꾸몄을 뿐만 아니라, 남자 여자 구분 없이 거슬린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욕설을 퍼부으며 공개적인 망신을 주는 것이 특기여서 아무도 함부로 하지 못하고 노인회, 반상회, 부녀회에서 입바른 소리 좀 하는 사람 중에장달자에게 망신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니조심하라고 했다『.( 아웃』, 64면) 예순여덟의 박도옥 할머니는‘자신이 선물한 시계가 벽에 걸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건소에 전화해 진료소장의 인사 조치를 요구한다. 목청이너무 높아 본능적으로 듣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박도옥 할머니의 집요함은 보건진료소장을 자신의 세력 밑에 두려는 음모로 번져나간다. 결국 노인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보건진료소장은 그들에 의해 소장 자리를 박탈당하고 마을로부터 아웃되고 만다. 장달자와 박도옥, 박도옥과김금송 할머니간의 노인들끼리의 불협화음처럼 보였던 일련의 다툼들이실상은 젊은 여자 진료소장을 상대로 한 연합전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대목은 노인 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독자들을 경악케 한다.시급한 세대간 소통 문제2008년 제6회 <문학수첩작가상>을 수상작『아웃』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소홀히 한 노인의 세계를 소재로 모두들 내심 알고는 있었지만 감히언급하지 않았던 노인의 속물적 욕망을 정직하게 조명해냈다. 작가는 노인 공경만을 주장하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현실적인노인 문제를 우직하게 풀어 헤쳤다. 작품은 평범한 노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노인에 대한휴머니즘이나 노인을 대하는 신화적 시선에서 벗어나 있다. 특히 평소에도 변덕이 심하고 기대 심리가 높은 노인의 지나친 호의는 경계해야 함을 알면서도 나는 어쩌지 못했다『.( 아웃』, 11면) 작가의 냉정한 시선은 노인이나 젊은이나 마찬가지로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적인 속성을 조명해냈다. 일상에 깃든 음해와 담합은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똑같이 야비하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작가는 오늘의우리가 놓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노인의 실체 규명이 아니라 세대간 소통을 위한 노력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말하는 것을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그들이 느끼는 것을 내가 느끼지못한다는 것, 나도 어쩌면 다락방에 갇혀 소통 부재의 이 세상에서 자폐증을 앓아 왔는지도 모른다『.( 아웃』, 256면) 『아웃』은 세대간 인간관계의 이면을 들추어 나이와 관계없이 발현되는인간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로써『아웃』은 우리 사회가 다가오는 고령화사회를 슬기롭게 맞이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힘 있는 노인소설로 자리매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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