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8 | [문화시평]
전라북도 미술대전을 돌아보고
무엇을 위한 미술대전?
조은영 원광대 미술학과 교수(2003-09-05 13:03:38)
7월로 접어들어 연일 내리던 장마비가 잠깐 그친 날, 제 35회 전라북도 미술대전을 보기 위해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 들렀다. 종강 후 밀린 논문들과 번역 원고사이에 묻혀있는 내 귀에까지 미술대전에 대한 우려의 말들이 곳곳에서 전해져서 어쩌면 7월의 신록보다 더 무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차였다. 미술대전에 대한 원고요청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몇 번이나 발걸음을 망설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우려의 목소리들이 한결같이, '우려'를 공론화 해보았자 '제도권'으로부터 떼를 지어 '몰매'만 맞을 것이요, 상황개선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토를 달았기 때문이었다. "다들 한국의 미술계를 걱정해서 잘해보자는 좋은 뜻인데 설마 그렇겠어요?"라는 반문에, 내가 미국의 미술계에서만 십 수년을 보내온 탓에 "순진해서" 최근의 국내상황을 모른다는 답변들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이유가 있었다. 지난 달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내가 속한 서양화과 교수님과 학생들 백여 명과 함께 대한민국 미술대전을 관람하러 갔다가, 앞으로는 미술대전 단체관람을 하지 않기로 했을 정도로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왜 미술대전 같은 것에 시간낭비 하느냐는 핀잔을 서울 쪽에서 여러 번 듣고도 '나름대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겠지' 하는 생각에 진행을 했다가, 여러 선·후배들의 말처럼 "한국 미술계의 부끄러운 현주소"를 목격하는데 하루를 꼬박 보낸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소리문화전당의 전시실들을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보는데는 예상대로 이,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과천에서 전국 미술대전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시간이었다. '예상대로'라고 함은 현대미술을 20년 이상 공부하면서 몸에 붙은 못된 버릇 때문이다. 특히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의 국립미국미술관과 국립동양박물관에 여러 해 몸담고 있으면서 매년 적어도 수십 개 이상의 대규모 기획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전시회를 다니다가 체득한 '필요악'으로, 작가들이 산고의 애를 써서 낳은 작품 앞에 일일이 멈추지 못하고 나는 송구스럽게도 걸어가면서 관람한다. 그렇지 않고는 인생 전체를 작품 감상에 보내도 모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짝 지나치려 해도 시선을 붙들어매는 작품들이 있다. 걸음을 멈추고 겸손히 앞에 마주서게 만드는 힘은 때로 그 작가의 독특한 창작성과 스타일일 수도, 작가가 담아낸 혼신의 힘이나 진실에의 의지, 또는 작가만의 뛰어난 감각과 감성일 수도 있다. 시대를 앞서는 작가의 정신일 수도, 과거나 타인의 작품을 차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능력일 수도 있다. 이러한 힘은 자리를 뜨기 전에 그 작품과 작가에게 조용히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작품 하나로 인해 전시회를 오고, 보고, 가며 쓴 몇 시간이 아깝지 않음에 감사하게 된다. 물론 나의 안목이 부족하다보니,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스쳐갔을 작품들에게는 인생이 짧음을 변명할 밖에.
이번에 전국 및 전북 미술대전을 보면서 안타깝게도 두어 차례 밖에는 작품 앞에 멈추어보지 못했다. 이것이 출품 수에 비해 입상작이 많고 전시공간은 좁다보니 작품들이 제대로 그 빛을 발하지 못한 탓이거나, 나의 모자란 안목 탓이기를 바란다. 그런데 작품이 서로 엇비슷한 예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왜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이던 80년대 중반과 별반 스타일이나 기법이 달라진 점이 없는지, 한국의 미술계는 그동안 괄목할 만큼 다양하게 성장했는데 왜 미술대전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지, 한국상황에 '무지한' 나는 정말로 의아했다. 문화·예술부문에서의 한국인의 뛰어난 자질을 믿고 있으며, 또한 80년대 미술대전의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기억하는 나의 안목이 부족한 탓인지, 그 뛰어난 한국 미술가들의 저력이 올해 미술대전에서는 별로 드러난 것 같지 않았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미술대전의 '뒷걸음질'에 대해 우려하는 까닭이 이해될 것도 같았다. 왜 출품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상위권 수상자들이 미리 정해져있는 마당에 들러리는 싫다는 작가들로부터, 그래도 필요악이니까 어떤 방법으로든 일단 입상을 해야된다는 젊은이들, 순전하게 열심히 작업하여 얻은 좋은 결과에 용기를 얻는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각각 대응하는 방법도 다양했다.
이런 무성한 이야기의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위 '비제도권'의 불평인지 알지 못한다.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이든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미술계를 주도하려는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갈등은 의례 있어왔다. 가령 현대미술의 산파역할을 한 프랑스에서도 모더니즘이 처음에 정통 아카데미와 노선을 달리했을 때나, 인상주의 이후 다양한 유파의 아방가르드가 등장했을 때나, 제도권과의 타협을 거부한 작가들은 가난과 무시와 비웃음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장기적으로 바보는 아니다. 역사가 흘러가면서 당대에 최고의 명예와 성공을 누리던 작가들과 공모전 수상작품들이 미술관 전시장에서 끌어내려져 창고에서 일 백년이 넘도록 빛을 못보고, '인맥'이 끊기면서 작품 값도 '거품'이 빠져 바닥으로 떨어진 예들이 부지기수이다. 반면, 예외도 있지만 오늘날 미술관에 드높이 걸린 많은 작품들은 그 자리에 가는데 수십 년씩 걸렸다.
문제는 바로 '정도의 차이'이다. 즉 역사상 각 문화권에서 미술을 사랑하고 후배를 아끼는 제도권의 인물들이 공모전을 주관함에 있어서, 작품성과 아울러서 연배나 인연을 중시하는 고려가 아주 없기는 힘들되, 어느 정도로 작용하느냐가 문제였다. 이 '정도의 차이'로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작가들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미처 모자라는 작품을 미리 수상해 줌으로써 그 작가의 잠재력을 죽이게 되고, 능력이 뛰어남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다른 작가들도 자칫 함께 죽이게 된다. 공모전 수상이라는 격려나 명예와 관계없이 모두들 꿋꿋하게 작업을 지속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다들 연약한 면모를 지닌 인간이기에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뛰어난 재능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만개하지 못하고 시드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전북미술대전 때도 그랬지만, 전국미술대전을 본 날도 종내 마음이 무거웠다. 20여분만에 전시회를 본 후, 미술대전은 자신들과 전혀 관계가 없음을 거듭 강조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상설전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어느 작가가 15년 전쯤 그린 한 그림 앞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이만한 재능의 작가 몇을 모아 한국현대미술 기획전을 미국의 대형미술관에서 가졌으면 하는 감동에, 그 이름을 기억하면서 인사동에 들렸다. 스미소니언박물관의 모 관장이 협조를 요청해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후배가 운영하는 갤러리 관장실에 들어설 때 눈에 띈 것은 뜻밖에도 조금 전 현대미술관에서 인상깊게 본 그 작가 것이 분명하되 크게 달라진 성향의 작품이었다. 최근 그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려 25점이, 호당 거의 40만원씩에 팔렸다고 했다. 이 작가는 천재라고,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전시할 수 없겠느냐는 후배의 말에, 나는 한 시간 전에 '발굴한' 작가가 이미 15년이 지난 현재에는 자신의 천재성을 현실이란 상황과 바꿔버린 후임을 알았다. "천재가 될 수도 있었는데…. 스미소니언 전시? 작가가 혹시 15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대답하면서도 못내 애석할 따름이었다.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은 어쩌면 채 완성되지 않은 자질이나 천재성을 진력을 다해 끌어내기보다는, 전국이든 전북이든 미술대전이라는 '현실' 그리고 제도권 및 수집가의 취향과 맞바꾸는 작가들이 양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이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미술대전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급변하는 현대미술계에서 '세계 속의 고도, 한국'이라는 자리매김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조은영/이화여대 미술사학과에서 미술사 석사, 미국 델라웨어대학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정부의 Fellowship으로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박물관(국립미국미술관과 국립동양박물관) 및 윈터투어박물관에서 일했으며, 미국미술사학자협회(AHAA) 부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전라북도 문예진흥위원과 국내·외 여러 학회 임원 및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