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6 |
[문화시평]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
관리자(2010-06-03 11:20:40)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
전주 영화의 거리(4월 29일~5월 7일)
전주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 김이석 동의대학교 영화학과 교수, 부산독립영화협회 대표
2009년 겨울, 파리에서 실험영화 감독이자 파리 8대학 영화학과 교수인 기 피만(Guy Fihman)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내 눈길을 끈 것은 그 감독이 들고 있던가방이었다. 지난 2004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던 감독은 5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전주영화제에서 받은 가방을 들고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 가방을 손으로 가리키며 웃자 그도 나를 향해 미소를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만 감독의 손에들려 있던 낡은 가방은 전주국제영화제를경험한 자들이 전주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하나의 상징이다.비단 해외 게스트들뿐만 아니라 국내 방문객들도 전주국제영화제를 다녀가면 이 영화제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만다. 특히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 동안 영화의 거리에 넘쳐나는 생기와 활력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도시를, 이 영화제를 다시 방문하고 싶어진다. 언젠가부터 스타들이 줄줄이입장하는 레드 카펫이 영화제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영화제가진정한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영화제가 열리는 공간이 감독과 관객들이 어우러지는장이 되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전주국제영화제는 아직 순수한 축제성을 유지하고있다. 올해도 영화의 거리에서는 유진 그린감독이 비디오를 들고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을 촬영하고 있었으며, 막걸리집에는 페드로 코스타와 제임스 베닝이 사람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배우와 감독들이 수행원을 대동하지 않고서도 영화의거리를 산보할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전주영화제가 아직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영화제임을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프로그램이 경쟁력이다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영화제들이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차별화된 프로그래밍은 영화제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평가보고서에참여한 전종혁 기자는“전주영화제는프로그램이 브랜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평가에 동의하게 되는 이유는그만큼 전주국제영화제가 프로그램에서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출범 당시부터 주류 영화보다는 대안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에주목해 온 전주국제영화제는 10년이지금까지도 모험적이고 공격적인 프로그래밍 기조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동안 전주국제영화제는 특히 회고전과특별전 프로그램을 통해 개성을 드러내곤 했는데, 올해도 페드로 코스타 특별전, 미클로슈 얀초 회고전, 로무알트 카마카 특별전 등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감독들의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전주영화제를 기다리던 관객들의기대에 부응하였다. 또한 이번 전주영화제에 초청된 감독들을 중심으로 꾸민 기획전시 <숨쉬는 환영/IMAGEIN TIME>은 시각예술작품과 영화와의 접점을 찾고자하는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고 생각된다.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도전적인 프로그래밍 철학에 대해 대중성 부족을 이유로 반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올해 페드로 코스타 특별전이나 전년의 벨라 타르 회고전이 표를 구하기가어려울 정도로 관객들의 호응이 뜨거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저런 반론들은 기우가 아닌가 생각된다. 오히려대중적이지 않은 작품들을 향해 보내는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이 감독들로하여금 전주국제영화제를 잊지 못하게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전주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램 철학은 유지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사실 전주국제영화제가 짧은 역사에도불구하고 국내외에 명성을 얻게 된 데는 전주국제영화제가 꾸준히 기성 영화제의 패러다임에 도전해왔기 때문이다. 작년 영화제에서 마스터클래스를진행한 레이몽 벨루는“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제의 틀을 넘어서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다른 해외 게스트들 역시 공통적으로“전주는 다른 영화제들이 시도하지 못했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실현시키고 있다”고평가한다. 그런 점에서 전주국제영화제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그렇다고 해서 영화제측이 관객들의 입장에 대해 무관심한것은 아니다. 올해의 경우 프로그램 카테고리를 단순화시킴으로써 관객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시도를 하였다. 이는 자신의 철학도 지키고 관객의 편의도 높이려는 영화제측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개·폐막작을 제외하면, 국제경쟁, 한국장편경쟁 그리고 한국단편경쟁을 한데 묶은‘경쟁부문’, 동시대 세계영화의 흐름을보여주는 장, 단편영화와 한국영화 쇼케이스, 그리고 전주지역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로컬 시네마로 구성된‘시네마 스케이프’, 일반 극장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영화들을 소개하는‘영화보다 낯선’, 회고전과 특별전중심의‘포커스’, 야외상영과 불면의 밤 등을 통해 영화제의축제성을 극대화시키는‘시네마페스트’, 그리고 전주국제영화제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디지털 삼인삼색이 포함된‘Jiff프로젝트’로 상영작들을 분류하였다. 전주영화제처럼비경쟁 혹은 부분 경쟁 영화제의 경우 섹션이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어서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시도는 신선한발상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몇 가지 과제들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한국영화의 비중이 다른 국내 경쟁영화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다. 해외의 우수한 영화들을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것도 영화제의 중요한 목적이지만, 우수한 우리 영화를 국내외 관객들에게 소개하는역할 역시 영화제가 담당해야 할 중요한 임무다. 특히 최근들어 국내 독립영화가 상당히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주국제영화제가 국내에서 제작된 실험적이며 대안적인 독립영화들을 수용하는 장을 열어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더불어 전주의 영화산업과 문화에 대한 영화제의 역할도전주영화제가 고민해야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올해 영화제결산 자료에 따르면, 영화제의 객석점유율은 전년도보다 높은 83.4%를 기록하였으며, 총 273회의 상영 횟수 가운데 매진된 상영횟수만도 157회에 달하였다고 한다. 이런 수치들은 영화제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고무적이다. 하지만 높은 객석점유율과 매진기록을 전주의 영화 인프라와 연관 지어 생각하면 염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특히 올해는 총 좌석수(80,269석)가 전년(91,112석)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는 전주 지역 영화관 숫자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전용관 건립을통해 영화제 운영의 안정화와 더불어 관객의 편의를 높이는해결책을 마련한 데 비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아직 이런 종합적인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영화제는 일회성 축제가 아니며, 궁극적으로는 지역의 문화환경을 개선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주영화제도 더 늦기 전에 미래의 청사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김이석 영화평론가이자 부산독립영화협회 대표이다. 현재 동의대 영화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