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6 |
[문화시평]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를 말하다Ⅰ
관리자(2010-06-03 11:20:51)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를 말하다Ⅰ
전주라는 프리즘과 스펙트럼
- 김창주 전주문화재단 연구원
JIFF는 내게 놀라움을 준다. 우선 관객들의 지식이 풍부하다. 또 다른 점은 상영되는 영화들이 양극단(대중·실험영화)을 모두 포함한다는 것이다. 둘 중 어느 것도 다른 영화제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제임스 베닝 감독
양극단
사람이 과거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거의 대부분 그 내용이자랑이거나 험담이다. 낮의 일상에서 벗어나 밤의 일탈이 벌어지는 술자리에서는 더 많은 양극단의 이야기가 오고 간다.예술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아름다운 것을 찬양하거나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진실을 보여 주거나. 예술가는 그의탁월한 통찰력으로 작품을 표현한다. 작가의 은유와 추상에의해 숨겨 놓은 진실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을 때, 감상자는 그작품에 의미를 부여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예술가들은 어떤 것이‘좋다, 나쁘다’라고 쉽게 말해주지 않는다.예술가가 아닌 사람들도‘좋다’라고 말할 때는 수사가 필요하고,‘ 나쁘다’라고말할때는배배꼬지않던가! 그냥좋다보다는 뭔가 화려해야 하고, 나쁘다는 뭔가 의미를 숨기고돌려서 말하곤 한다. 아주 친한 사이든 그렇지 않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종의 페르소나(가면)이다.극단적인 경우 회사원들에게 전자는 아부가 되고, 후자는 뒷담화가 된다. 이 수사와 은어는 그들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실험적인 예술 작품 역시 그 가면을 뜯어내고 얼굴을 보려면,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제임스베닝감독은이렇게말했다.“ 관객들의지식이풍부하다. 놀랍다.”이보다 더한 칭찬이 있을까? 이 말은 눈명창이 많다는 말이다. 인간이 과거를 이야기하며 자랑과 험담을하는 것은 이것을 통해 미래를 향해 가는 발전 동력을 얻기때문이다. 예술이 그렇고, 축제 역시 그래야 한다. 도시의 빛과 그림자가 존재해야 한다. 양극단이 존재해야 한다. 편식으로는 건강해질 수 없다. 내가 본 양극단을 달린 영화는 <츄리멜로>와 <기무>였다. 영화의 내용은 생략한다. 양극단 사이에서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어떤 스펙트럼을 펼쳤을까?
스펙트럼
120kW의 조명과 10kW의 음향, 높이 2미터가 넘는 무대. 대학교에 다닐 때 그룹사운드를 했었다. 매번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스폰서가 필요했다. 학교 앞 주점과 식당을돌면서 몇 만원의 기부금을 받았다. 30~40곳에서 각기 5만원 정도의 돈을 받아야 무사히 치룰 수 있는 공연이었다. 당연히 공연비를 모우기 위해서는 30~40곳이 훨씬 넘는 곳을돌며 구걸해야 했다. 그때마다 펼친 편지와 이야기는 저 kW수였다. 하루 종일 무대를 쌓고, 잠시 화려한 조명을 받고,다시 무대를 해체하면 허무함이 밀려왔다.무대에서 보여준 건 겨우 백인 노동자들의 음악이라는 서양 록 음악의 카피곡들이었다. 남의 음악을 흉내 내느라, 허리가 휘는지도 모르고 그냥 좋아서 했다. 그때 깨닫지 못한허무함의 까닭은 내가 보여 준 것이 음악이 아니라, 그 화려한 조명과 무대, 기계장치에 눌려 그것을 위한 쇼가 되었기때문이다. 많은 축제들이 딴 나라의 성공한 축제를 벤치마킹했지만, 성공을 벤치마킹하지는 못하고 있다. 전주에는 완판본이 시조 한 수를 불러도 완제가 있듯 전주 스타일이 있지않은가! 얼마나 아이디어가 빛나고 독창적이었나를 쓰려고한다.내게 가장 충격을 준 이벤트는‘설레는 춘정’공연이었다.전기 기타를 멘 인디밴드들이 공연하는데 무대는 아예 없고,사이키 조명 역시 없다. 공연장 역시 작다. 막걸리를 나누어주고 함께 마신다. 거대한 무대와 화려한 조명에는 많은 예산이 든다. 돈이 들어간 만큼 관람객이 더 신나게 놀 수 있는것은 아니다. 결국은 아이디어다. 이런 예는 영화제 곳곳에서 보였다. 작년보다 줄어든 예산을 전주국제영화제 직원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채운 것 같다. 돈은 부족하나, 아이디어가 있는 곳에는 열정과 순수함이 느껴지기 마련이다.두 번째‘홍대 프리마켓’이었다. 살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전혀 팔리지 않을 것 같은 물건들이 팔린다. 보통 기념품 가게에 가면 팔릴 것 같은 물건을 팔지만, 별로 사고 싶지는 않다. 돌아서면서 든 생각은 상품을 팔고자 하는대상을 분명하게 둔 수공예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이‘홍대 프리마켓’을 통째로 사다가‘영화의 거리’에 놔야 되느냐며 좋지 못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의 말도 맞다. 그래도 한번쯤은 나같이 전주에만 사는 사람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쨌든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고, 한 수 배웠다.세 번째는 세심한 배려. 무엇을 볼까? 무엇을 먹고 마시고,어디서 잘까? 무엇을 즐길 것인가? 이 모든 고민에 대한 답변을 섬세하게 안내책자로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영화제뿐만 아니라, 전주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 홍보의 장이었다. 인쇄된 책자뿐만 아니라, 지프 어플(국내 영화제 최초) 등 온라인상에서도 많은 정보가 제공되었다. 너무 친절하다. 여기서제안을 하나 한다면, 사람들은 지면에 글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을 읽지 않는다. 오히려 안내 책자에 빈칸을 만들고관람객이 스스로 작문해 채우게 만든다면, 더 오래 그 기록물을 남기지 않을까? 이미 영화제의 기념품 중에는 이런 상품이 있다. 더 확대해 보면 어떨까?네 번째는 JPM(전주 프로젝트 마켓)이다. 작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 제작자와 투자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축제가 소비에서 끝나지 않고, 생산으로 이어진다. 사실 문화란 어원처럼 경작한 곡식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경작하는 과정, 생산하는 행위가 문화이다. 또 하나 JPM의 독특함은 창작자에게 조언을 해준다는 점에 있다. 창의적인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조력자이다. 내년에는 JPM을 통해 성장한 감독과 작품을 보고 싶다.
프리즘
영화라는 빛이 전주라는 프리즘을 관통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생시켰다. 전국 곳곳에서 국제영화제가 개최되고있다. 이것은 전주국제영화제의 위협요소이다. 우리만의 고유한 색을 갖지 못한다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이점에서전주라는 프리즘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아이디어를 내야한다. “지역색을 독특하게 갖는 동네 영화제지만, 국제적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말은 쉽다. 누구나 다알 것 같은 뻔한 이런 말을 할 때가 제일 미안하다. 작년 보다 적어진 예산을 아이디어로 채운 전주국제영화제에 박수를 보낸다.
김창주 전북대학교에서 역사와 국악작곡을 전공했다. 그룹사운드‘토러스’에서 베이스기타를 연주했으며, 연극·영화·PC게임의 배경음악 작곡가로 활동하였다. 다이스넷엔터테인먼트 사운드팀에서 전통음악을 소재로 모바일 음원을 개발하기도 했다. 현재는 전주문화재단 문화사업팀에서 근무 중이다.저서로는『아리랑 기원설 연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