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0.7 |
[서평] 『산 밖의 산으로 가는 길』
관리자(2010-07-05 13:35:15)
『산 밖의 산으로 가는 길』 경계와 경계에 서 있는 - 김성철 시인 어느 날 갑자기/ 산 사람이 목숨을 다치기도 한다/ 귀맥 서린 팔작지붕 아래/ 밤빛인 듯 간간이 흘러드는 바람 소리/ 꼭 사람같이 문턱에 턱을괴고 죽은/ 늙은 누렁이가 묻혀 있는 집/ 오래 사람의 훈김 쐬지 못한/ 누렁이 우울한 피가 어느 방이나 수맥처럼 흘러/ 뒤울 안 도화꽃만 형형하게 살아 있는/ 그 집의 짧은 운명 속에서/ 불에 타죽은 할머니와/ 젊어 객사한 아버지는 무얼 먹고 사나/ 송장을 달여 환을 지어 먹고도 얼마못 산/ 큰 아버지는 또 어디를 헤매고 있을까/ 집안사람을 다 잡아먹은 무서운 집이라고/ 도망치듯 떠나온 아픈 세월 너머/ 어둠 푸른 문설주에곁을 둔 채/ 서까래마다 늙은 누렁이가 가릉거리는,-「옛집에서」전문 며칠 전, 재개발 되어지는 옛집에 들른 적이 있다. 초저녁의 하늘이 어둡고 음습한 5층 아파트에 물린 채 질질 끌려가는 시간이었다. 버려진 가재도구들이 옛 주인을 찾아 이리저리 떠다니고, 깨진 창문을 열면 누군가 덥썩, 내 손을 잡고구구한 사연을 이야기 할 것 같은 풍경들. 철거 차단막이 여기저기 둘러쳐지고 외부인 출입금지의 푯말 사이로 낡고 병든 아파트가 내 유년시절을 품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안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뼈만 앙상히 남은 콘크리트가 벗겨진 벽지처럼 너덜너덜했다. 버려진 것들과 생명을 다한 채죽어가는 것들 혹은 죽은 것들 위로 뛰어다니는 유년의 내가보였다. 재개발단지 속에 남아있는 저 유년. 죽은 걸까? 살아있는 걸까?나 아닌 나가/ 나가 되어 있을 때가 있네/ 눈에 보이지 않는/나 아닌 나는/나의 속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나를 나 아닌 나가 되게 하네간혹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아닌 나가/ 어떤 마음으로 나가 되어 있는지-「나 아닌 나」부분1동 301호. 떨어져 나간 문짝을 밟고 들어간다. 13평 아파트.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엄마를 기다리며 창턱에 손을 괴곤앞 동의 옥상을 하염없이 바라본 적이 많았다. 건너편 아파트 옥상 곳곳에 세워진 TV안테나들. 저녁 5시 반 TV속 만화 주인공들과 나를 만나게 해주는 매개체들. 저 것들을 맘껏 조종할 수 있다면 만화 속 주인공들은 언제나 나와 같이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하지만, 현실은 1시간여의 시간동안만 허락을 한다. 딱 부족하지도 넘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어제의 궁금증을 풀게 하고 다음 편의 기대감을 부풀리는 시간. TV안테나와 5시 반의 관계들. 어쩌면 안테나는 이승과저승의 경계에 선 무녀였을지도 모른다.과거의 형상과 미래의 희망과 기대를 품게 하는 매개체가아닌 중간인 혹은 중계인.잠들려고 하면/ 신들끼리 하는 얘기가 들리네내게 뭐라 말하는 소리도 들려/ 귀를 한껏 이승이 아닌 이승에열어두고나는 신들과 함께 둥근 하늘다리를 건너네대릉에서 걸어나오는 문 앞에서/ 석화 붉은 다섯 개의 꽃문이소리도 없이 열리는 소리가 나기척도 없이 퍼지는 은은한 향내와 함께그 꽃문 안으로 푸른 달개새가 오고 가는 걸 보네-「대릉(大陵)」부분어스름이 떨어지고 퇴근한 엄마의 심부름으로 가계에 가는 밤. 꺼진 가로등 뒤의 어둠 속 해골이나 귀신이 꼭 내 목덜미를 움켜쥘 것 같은 두려움들. 뒤돌아보지 않은 채 정신없이 뛰어간 가계 앞에서 안도의 숨을 돌리며 문을 열고, 또다시 뒤돌아보지 않고 뛰어오는 일들. 문득 뒤돌아보면 불빛에 희미한 내 그림자를 보고 기겁을 하며 전력질주를 하던못나고 못난 유년.내 그림자는 검은 물이다귀신인지 사람인지 아무런 냄새도 없다아주 오래 산 가물치 같기도 하고,내 심연 깊은 곳에 내가 그린 난 같기도 하다아무 말 않고 있어도 나는 내 그림자에게서검은 물의 소리를 듣는다-「내 그림자」부분재개발 아파트의 어둠을 등지고 불빛 환한 거리로 나선다.뒤돌아서서 한참동안 흉물스러운 어둠덩어리를 바라본다.작은 소도시의 불빛과 다른 경계에 선 저 어둠 속에 내 유년이 묻힌 채 남아있다. 불러내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며 웃음과 울음을 만들어내는 기억들. 저 콘크리트의 건물은 현생과 과거의 생이 통하는 중간계이다. 예전의 모습과 현재의모습 그리고 앞으로의 모습에 웃을 수도, 울을 수도 아니면희망을 품을 수 있는 김형미 시인의 첫시집『산 밖의 산으로가는 길』속에는 TV안테나 같은 중간인 혹은 중계인이 가득하다. 이승과 저승의 다리역할을 하며 때로는 한숨도, 때로는 눈물도 풀어댄다. 때론 귀기 서린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고 때론 주변의 흔한 사물과의 수다스러움도 풀어낸다. 오래된 옛것들을 불러내 켜켜이 먼지를 털어내기도 하고, 읽는독자 기억을 끄집어내 달래기도 할 것이다. 무인(巫人) 혹은무녀(巫女)가 되어 한판 굿을 펼칠지도 모른다. 한바탕 굿 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 들어가는 길, 김성철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영남일보 신춘문에 시 부문에 당선돼 등단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