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7 |
124회 백제기행│6월 12일
관리자(2010-07-05 13:37:05)
124회 백제기행│6월 12일
<달은 가장 오래 된 시계다>, <영국 호페쉬 쉑터 컴퍼니>
느릿한 시간과 열정적 몸짓을 만나다
- 허정화 시민
이번 백제 기행이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참석이었다. 우연하게도 지난 가을 기행에도 미술 전시와 무용 공연이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기획된 기행에 참석하게 되었다. 약간의 운명론적인 사고를 가진 나로서는 이런 우연이 신의 축복으로만 느껴졌다. 이는 물론 두 기행 모두가 나에게 너무만족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겸재 정선 전시는 우연찮게도 내가 최순우의『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를 읽고 난 뒤라 우리 그림에 대한관심이 많이 생겼을 때여서 기꺼이 그림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그리스 루트리스루트 무용단의 무용 <침묵의 소나기>를 보았는데 문자 언어보다, 그 어떤 시각매체보다, 강력한 몸짓언어에 매료되어 전율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전시와 공연도 어쩌면 그렇게 시기적절하게 나에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시간에 대한 화두를 품고 있을 때, 선거가 끝난 뒤 정치적인 인간으로서 내가 처해있는 상황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이번 기행이 찾아왔다.
시간에 대한 느릿한 성찰
백남준의 작품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에서 따왔다는‘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는 이번 백제기행 중 관람하게 된 덕수궁 미술관 전시회의 타이틀이다.‘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 듣는 순간 저절로 읊조려 보게 되는 문장이다.‘ 달’,‘ 오래된’, 그리고‘시계’라는 단어가 조합되어 굉장히낭만적인 문장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달’의‘ㄹ’과‘래’의‘ㄹ’이 입안에서 발음되는 것이 오랜 세월 풍화 작용 속에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오랜 세월 깎인 바위나 고목의 둥글거림을 연상시키는 굴림이 있다.전시 안내 소개글에서 김남인 학예연구사는“〈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라는 전시제목은 손목에 매달린 시계를 보기 위해 아래로 숙여야 했던 우리의 시선을 저 위로끌어올려 하늘 위로 옮겨다 놓는다. 그것은 달을 보며 농사를 짓고, 몸의 주기를 짐작하며, 달의 주기에 따른 열 달 간의 생명을 잉태하던 자연과 긴밀히 닿아있는 관계,그 연결을 파악하던 인간의 원래적 소통을 추구한다”라고 말한다.순간‘시선을 하늘 위로 옮겨다 놓는다’는 말에 한 영상이 떠올랐다. 얼마 전인지가늠이 안가는 평화동 살던 어느 날이었다. 빽빽한 고층 아파트 사이 주차장에서 한남자가 하늘을 보고 있었다. 일상적으로 보는 광경이 아니라, 하늘에 무엇이있나 하는 생각에 나도 같이 그의 시선을 따랐다. 그러나 하늘에는 아무 것도없었다. 단지 아파트 숲 사이 창문만한하늘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 희뿌연하늘, 네온의 연막을 뚫고 몇 개의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나와 전혀상관없던 그 광경이 오랜 시간을 두고내 머리 속에 남아 이번 전시를 통해다시 떠오르는 것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생각을 해봤다. 그것은 잃어버린 유전적 행동의 회복 같은 것일까? 선조들은 날을 가늠하고 날씨를 가늠하기위해 저녁이면 습관적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 습관들은 이제 우리에게 남겨있지 않은 오래된 것이 되었다. 그 오래 전에나 있을 법한 사건이나에게‘낭만적이다’라는 감성을 일으켰음이 분명하다. 오래된 궁전, 오래된나무, 오래된 사이,‘ 오래된’이라는 이형용사가 주는 낭만성이‘달’과‘시계’를 만나면서 극대화 된다.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것들에서는‘낭만적이다’는 것을 느낄 수 없다. ‘오래된’시간이 만나 이루어진 작품들은 순간에만들어진 작품들이 아니었다.‘물; 시간이 번지듯’섹션의 한은선은 이접지에 물을 들여 떼어내는 작업을 하여〈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라는 작품을 보여주었는데 그 번짐의 이미지는‘오래된 나이’가 되어가는 내 머리 속의 시간관념처럼 다가왔다. 머리카락과 합성수지로 만든 함연주의〈얼(All)〉은 머리카락의 이어짐과늘어짐이, 설치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강익중의〈365일 달항아리〉, 〈산 바람〉, 〈강을 지나서는〉는 달이 차고 강이 흐르는 그 시간을잊는 흐름과 세월이 있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이진준의 <불면증>이었다. 〈불면증〉은낮 두시 블라인드가 처진 창문을 영상으로 만들고 소리를 녹음하여 설치된작품인데 작가 같은 불면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 불면증 환자가 느끼는 감각이 온 몸으로 전해졌다. 밤 새 잠을 못 이루고 맞이한 아침, 그리고 그아침을 보낸 낮 두시의 사람에게 인식되는 시간은 피로감을넘는 분리다.‘시간’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진 전시에서 작품들은 흐름과연속성, 연결과 분리, 반영과 투영, 순환으로 인식되는 시간의 관념들을 드러낸다. 강익중 김호득 김홍주 도윤희 박현기존 배 백남준 신미경 이진준 한은선 함연주 등 세대와 시공을 초월한 11명의 한국 현대 미술가들이 모인 덕수궁미술관,‘여기 오래된 곳, 물과 달의 시간과 함께’하는 곳에 전시가끝나기 전에 한 번 가보길 기꺼이 권한다.
전 세계를 사로잡은 몸짓
강한 비트 때문에 핸드폰 소리를 들을 수도 없을 테니 핸드폰을 꺼두라는 유머스러운 안내 멘트 덕분에 객석은 한바탕 웃음으로 공연을 맞이했다. 나는 그것이 핸드폰을 잠시꺼두라는 안내의 단지 유머스러운 표현이라 생각하고 진지하게‘( 정치적인 엄마’라는 타이틀이 주는 어감에 짓눌려서)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농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모은 영국 드라마 시리즈 <스킨스(Skins)>의 감각적인 오프닝 안무를 통해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호페쉬 쉑터의 공연은 그랬다.시종 일관된 강한 비트. 녹음된 반주가 아닌 말 그대로의생음악. 집중된 조명과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뿌연 연기들이현실감을 없앴다. 그러나 무대 뒤편을 2층으로 나누어 실재악기를 직접 연주하여 공연의 현장감은 극대화시켰다. 북과전자기타 위주로 두드리고 연주하는 것이 거의 소음 수준으로 시끄러운 데다 독재자의 발성은 웅웅거리는 괴성으로만들린다. 소음에 가까운 음악과 악쓰는 독재자의 모습은 강한조명과 함께 광기와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무대 뒤편 모습이 조명과 함께 드러났다가 감춰지는 동안 무대 앞의 춤추는무용수들은 두려움의 몸짓처럼 또는 구원을 바라듯이, 두 손을 수도 없이 위로 뻗고 걸음걸이는 겅중겅중 조심스럽고 어수선하다. 단순한 패턴의 강한 비트, 단순한 동작과 강렬한몸짓으로 보여준 <Political Mother>는 일본의 사무라이처럼 자결하는 무사로 시작되어“억압이 있는 곳에 포크 댄스가있다(Where There Is Pressure There Is Folk Dance)”는자막과 함께 마무리 된다.정치적인 엄마는 독재자이며 파시스트일 수 있고, 끊임없이 압력을 가해오지만 그 안에서 춤을 출 수 있는 것이 민중이라는 것이 주제라면 퍽이나 식상하다. 그러나 호페쉬 쉑터는 그 식상함을 음악과 몸짓으로 무력화시키고 관객에게 강한 충격을 준다. 우리의 사는 모습이 그렇다고.
허정화 책을 아주 좋아하는 독서광이다. 현재 사교육현장에서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