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7 |
얘기보따리의 소리로 엮는 전주이야기
관리자(2010-07-05 13:37:33)
얘기보따리의 소리로 엮는 전주이야기 - 2 녹두장군 비빔밥뎐(傳
전주의 맛과 멋을 비비다
- 이병천 소설가
(아니리)
전라감영 선화청서 집강소 일에 바쁘시던 우리 녹두장군
님, 하로난 전주남문 밖 시전 단골집을 살째기 찾아외겼등
가부더라. 오랜 전쟁 저끄심서나 하도 맛나게 자셨던지라,
신간이 비록 쪼깨 펜허지셨다고 허더라도 입에 어찌 비빔
밥 한번쯤 땡기지 않었것느냐? 이윽고 비빔밥 한 그럭을
시키시는디,
(진양)
주모 보아라. 저 주모 보아라.
갓 지어 고슬고슬헌 이팝, 고봉으로 꾹꾹 눌러 퍼담고는
사설 가락 제 입에 실어 형형색색 특제 비빔밥을 만드는
구나.
(중모리)
동쪽으로 봄이 와서 천지가 푸르거니 동방엘랑 애호박을
살짝 삶아 얹어놓고
서산 너머 해가 진 뒤 흰 빛이 비치나니 서쪽으론 도라지
나물 하얗게 치장허고
남쪽 세상 여실 제 붉은 피 흘리셨으니 남방이사 붉은 뿌
리 당근채로 기리옵고
한양 땅 구중궁궐 대소 신하 음흉허니 북쪽엘랑 검은 나물
고사리를 올립지요.
채소 나물 이팝이 서로 잘나 섞이잖으면 황토 찬지름 뿌려
쓱싹 비벼 드사이다.
부디 빌고 비나이다. 장군님 전 비나이다. 동학 꿈 대동 세
상 밥으로 먼저 이루소서.
(중중모리)
주모는 듣조시오. 주모는 듣조시오.
자고로 세상천지난 오방으로 이뤄지니 상하좌우 사방에
한가온데 또 있다오.
이팝으다 사색 나물 고루 갖춰 놓았건만 한 가온데 빠졌으
니 설은 밥에 진배없소.
설익은 밥주발에 대동 세상 어이 꿀꼬.
주모가 받자오되 주모가 받자오되,
군군신신 부부자자 어깨 너머 들었사온데 아비는 아비요
자식은 자식이나
임군은 임군 아니요 신하는 신하 아니니 가상보다 가온데
가 틀어진지 오랩지요.
하물며 백성 밥에 가온데를 챙기리까.
(아니리)
비빔밥 한 그럭을 앞에 두고 녹두장군님과 전주 주모 사이
에 오가는 말에 세상 이치가 다 들었던가 부더라. 장군님
가만히 웃고 나더니 한 술 더 뜨시는디,
(중모리)
가온데가 미운 심사 인자사 알겄으나 가온데난 하늘 아니
요 임군 또한 아니라오.
본시는 땅으 자리니 황토 빛깔 거그 남아 가운데 오방색은
누렁이라 칭헌다오.
임군이 땅을 노려 백성께 빌렸을 뿐 땅도 곧 백성 것이며
누렁도 백성 색이지요.
전주천변 저 달구새끼 계란 하나 놓았거든 철냄비 지름 둘
러 반쯤만 익힌 연후
노른자는 노랗거니 비빔밥에 얹어두고 흰자는 하얗거니
순백허신 주모 들구려.
(휘모리)
주모가 듣고 좋아라고, 주모가 듣고 좋아라고… 철냄비에
달구알 얹어두고는 뭣이 또 마뜩찮은지 고개를 찌웃짜웃
히쌌더니마는…. 애고 장군님, 내 죽어도, 내 암만혀도 그
리는 못허오니, 잠시잠깐 지둘리사이다.
(아니리)
장군님이 배는 고파 목구넝으서 자꼬 당그래질을 해쌓지
만 하릴없이 지두리고 앉았는디, 저 순백으 주모 보아라.
녹두로 만든 묵이 본시 푸르딩딩허여 청포묵이라고 부르
는디, 청포묵에 치자물 들여 노란 황포묵을 맹글었등가부
더라. 그걸 잘쪽잘쪽허게 썰어가꼬 비빔밥 한 가온데 둥근
노른자 부침과 짱짜런히 올려놓고 고허는디,
(휘모리)
임군은 내 죽어도 싫으니 녹두 청포묵에 노오란 옷 입혀드
리나이다.
녹두장군님, 우리 녹두장군님. 비빔밥은 인자 비로소 다
익었사오니
푸른 녹두 옷 벗어 횃대에 걸어두옵고 남에서 북에서 동에
서 서에서
숟꾸락 사방에서 일궈 노랑이고 빨강이고 가온데까장 갈
아 엎으소서.
땅이 넓고 평평허니 황포묵은 네모지고, 계란은 하늘처럼
둥그러운디
비빔밥마냥 묵정밭처럼 장군님 다 갈아엎고 나면 그게 대
동이지라우.
새 세상 열릴 때까장 쇤네는 노른자 황포묵 한데 올려 비
나리헐지니
임군이 백성에 섞이고 백성이 임군에 섞이기를, 빌고 또
비옵나이다.
(진양)
주모가 퍼질러앉어 기어코 울음을 우는디, 우리 장군님인
들 어찌 맘이 펜헐 수 있었것느냐? 뚝뚝뚝뚝 떨어지는 눈
물 간장 삼어가꼬 왼갖 거섭 한데 모아 비비기만 비비기만
허는구나.
그 일 있은 연후로 우리 착헌 전주 주모덜은 비빔밥 맹글
기를 똑 그리 허는 것이니, 크고 둥근 대동 세상의 갸륵헌
꿈이 거그 비빔밥 한 그럭에 담긴 뜻을 어느 누가 기억헐
끄나. 더질더질
지난해 연말, 일본 산케이신문의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는 우리말‘비비다’의 뜻을 뒤섞는다는 의미로 표현하면서 한국인들은 뭐든지 뒤섞어서 먹는 버릇이 있다고 우리의 식습관을 폄훼하는 기사를 썼다. “겉으로는 예쁜 모양을 한 비빔밥이지만 실제먹을 땐 엉망진창의 모습으로 변한다”며, 비빔밥이 양두구육(羊頭狗肉)1) 같다는 게 기사의 요지다. 이에 대해 소설가 이외수씨는“비빔밥이 양두구육이면, 일본 사시미나 스시는 원시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미개한 음식”이라는 다분히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물론 구로다의 비빔밥 폄훼가 바람직하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이번 기회에 따져봐야 할 보다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구로다가 우리나라를 잘 안다고 하더라도 일본인인 한계를 감안한다면, 그가우리 음식문화에 담긴 철학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진실처럼 믿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음식과 거기에 담긴 문화적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우리 자신들의 잘못은 없을까?이런 고민들 속에서‘녹두장군 비빔밥뎐’이 나오게 되었다. 동학농민혁명과 전봉준, 이 땅의 민중들과 비빔밥을 판소리라고 하는 하나의 거대한 소리판 속에서 하나로 묶어내고자 하였다. 이를테면비빔의 스토리텔링인 것이다. 여기에서‘비비다’의 현상 너머에 존재하는 본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녹두장군 비빔밥뎐’은 개연성 있게 꾸며낸 하나의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사실을 넘어서는 진실이 담겨 있다. ‘비비다’의 참뜻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갖가지 재료들이 속속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비빔밥처럼, 개연성 있는사실들의 연대와 결속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고자 한 작품이 바로‘녹두장군 비빔밥뎐’이기 때문이다.다섯 색깔과 다섯 방위의 비빔 속에 역사가 놓여 있고, 의뭉스럽게주고받는 말 속에 올곧게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크고 둥근 대동세상의 갸륵한 꿈’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선한 의지가 있다. 그것이 바로‘녹두장군 비빔밥뎐’에 담긴‘비빔’의 가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