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8 | [문화와사람]
김제 청운사 도원스님
싯다르타의 삶 역시 그러했기에
김선경 객원기자, JTV 전주방송 구성작가(2003-09-05 13:11:44)
비 오시는 날 김제 청운사에 갔다. 만경강 둑방길을 따라 5킬로미터. '제2회 하소백련축제'라고 씌어진 플래카드를 서너 개쯤 만난 것 같다. 하소 백련이 얼마나 예쁘길래 전국에서 그 꽃을 보자고 모여드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도 잠시 일었다. 마침내 찾은 절 입구에는 방송사 중계차가 서 있었고 말로만 듣던 흰 연꽃이 거기 있었다. 빗속의 백련. 아름다웠다.
스님을 만난 곳은 대웅전도 승방도 아닌 공양간이었다. 거기서 스님이 국수를 끓이고 있었다. 공양주 보살이 따로 없어 직접 손님치레를 해낸다고, 맛 좀 보시라고 한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요사채 방에 앉아 점심공양을 한다. 그런데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해진다. 누구신지요?
"주인인데요."
나는 도원스님을 바라본다.
"이 절의 주인은 도원스님 아니신가요?"
도원스님 말하기를,
"옛날에 한 스님이 길을 걷다 피곤해서 한 집에 들어가 주인장을 불렀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기에 마루에 앉아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소. 달게 자고 있는데 집주인이 돌아와 주인도 없는 데서 잠을 잔다고 호통을 치지 않았겠소? 스님 왈, 당신 이전에 이 집 주인은 누구였소? 우리 아버지였죠. 그럼 그 이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였죠. 그럼 그 이전은? ...모르지요. 기껏해야 이 집에서 백년도 살지 못했으면서 주인타령을 하는 거요? 집은 그대로 있고 사람은 왔다가는 거요. 그런고로 왔다 가는 모두가 주인인 게지요. 쇠통도 없고 울타리도 없으니 들고나는 사람 모두가 주인 아니겠소?"
나는 어딘지 모르게 주눅이 든다. 말 한마디 허투루 할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 스님에 대한 신상은 묻기가 겁나서 그냥 백련축제 이야기부터 꺼내본다. 올해 백련축제의 주제는 뭔가요?
"주(主)는 연이고 객(客)은 사람이지요. 하늘(天)의 마음과 땅(地)의 마음이 합해져서 연(蓮)꽃을 피웠고, 그것을 사람(人)이 함께 합니다. 그래서 천심, 지심, 연심, 인심이라는 주제어를 택했고, 이 모든 것이 결국은 공으로 돌아가기에 마지막 주를 '공심(空心)'으로 정했습니다."
역시나 어렵다. 아무래도 나는 도원스님과의 인터뷰에 실패할 것 같다. 그냥 백련이나 구경하고 가자, 는 심정으로 마당으로 나왔다. 산등성이의 절간 두 채. 그런데 절 마당은 일만대중이 야단법석을 하고도 남을 만큼 시원하게 넓다. 거기에 가설무대가 세워져 있고 접이식 의자들이 열을 맞춰 비를 맞고 있다. 여기저기 설치작품이 전시돼 있고 김제문인협회의 시화전도 진행중이다. 백련 하나를 놓고 이렇게 다양한 것들이 모일 수 있다니. 그것은 정녕 도원스님의 의도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터.
"이왕 놀고 즐기는 거라면 깨달음이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자기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어른'이 없는 이 시대에 조금이라도 질 좋은, 깨침이 있는 문화를 보급하고 싶은 것이 제 생각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불교의 사회성은 0.5%라고 보고 있는데요. 이제 불교는 부처님이 펼쳐준 마당 아래로 내려와야 합니다. 부처의 위대성을 현실 속에서 깨닫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 혼자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저를 보러 오지 않습니다. 백련이 있다고 하니까 옵니다. 백련은 저와 대중을 이어주는, 불교와 일반인들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사실 스님은 이대로 말하지 않았다. 높임말을 쓰지도 않았고 중간 중간 알 수 없는 예도 몇 가지 들었지만 내가 이해한 건 이 정도 수준이었다. 당연히 이쯤에서 백련을 어떻게 심게 됐는지 물어야 옳으리라.
"우연히 심은 거죠, 우연히. 심다 보니까 이 연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고... 그래서 이리 저리 연구를 해보니까 이렇게 일을 벌이게 된 것이죠."
자료에 의하면 스님은 6년 전 천안 인취사에서 백련 8뿌리를 얻어왔다고 한다. 꿈에 하얀 옷을 입은 보살이 나타나 백련을 심으라 해서 그랬다는데, 하소라는 이름 역시 자다가 생각해낸 이름이라고 한다. 청운사 뒷산인 청하산은 새우가 구부러진 모양이다. 구부러진 등성이에 절이 있고 구부러진 안 쪽에(그러니까 새우 배때기 쪽에) 연못이 있다. 자다가 거기에 생각이 미친 스님은 느닷없이 일어나 '하소(蝦沼)'라 이름지었다. "하소 백련축제"라는 이름은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꽃 백련을 스님은 농산물 취급한다. 스님의 입에서 농업대체작물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조금 놀랐다. 꽃이 아니라 밥이란다.
"연은 농가의 대체작물로 아주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 혼자만 백련을 기르는 것이 아니고 이것을 농가에 보급해서 음식도 개발했고 이미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아직 대량생산과 마케팅 쪽으로는 연구가 덜 돼서 고민 중이죠."
그러면서 스님은 "연밥 한 알에 콩 10개∼16개에 맞먹는 영양소가 들어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강조한다. 나는 그런 객관적인 자료보다는 "우리나라 음식 중 주식 외에 '밥'자가 붙은 말은 '연밥'밖에 없다"는 말에 더 끌린다. 그렇구나. 연밥은 밥이구나. 그러니 밥으로 먹는 것이 당연한 것이구나. 그렇다해도 굳이 스님이 농가의 생산성까지 신경을 쓸 이유는 없다. 농가가 어려운 것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절에 사는 중이 언제부터 그렇게 농가에까지 신경을 써줬단 말인가? 하지만 스님은 '생산불교'를 해야 한다며 싯다르타의 삶 역시 그러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불교철학을 백련을 통해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유를 더 붙인다. "국민정서 순화 차원에서" 백련을 심고 있다고.(1만여평의 백련지는 계속해서 조성 중에 있다.)
온갖 사람들이 다 찾아와서 "백련을 왜 심었느냐"고 물으니 스님은 아무래도 귀찮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세 가지 모범답안을 준비해놓은 모양이다. 그냥 "백련이 아름다워서"심는다는 선문답은 스님에게 통하지 않는다. 스님은 대처승이고 사판승이다. "절집에 와서 참선하라고 하면 누가 절집에 오겠습니까? 보편성 속에서 건강의 척도를 찾아야죠. 백련을 보러 와서 천심, 지심, 연심, 인심, 공심을 느끼고 간다면 그것보다 더 훌륭한 정신건강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렇듯 대중들 속에 묻혀 살 생각은 아니란다. 수행과 득도는 스님의 궁극적인 목표다.
"인도 히말라야 주변에는 지금도 염력을 지닌 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55세만 되면 가족과 연을 끊고 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자기수행을 위해서. 수행은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일입니다. 그건 자기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저도 속세와의 인연은 60세까지만 가져가려고 합니다. 6년 후에는 모든 것을 버릴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작심하고 탤런트 노릇을 하기로 했습니다."
탤런트가 되기로 작심한 도원스님. 그는 전라북도가 지정한 탱화부문 무형문화재(제27호)이기도 하다. 탱화 이야기 한 줄 없이 인터뷰를 끝낼 수는 없다.
"나는 생활을 위해 불화를 그린것 뿐이지 '탱화 그리는 스님'은 아닙니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경제를 유지할 방법을 찾다 보니까 탱화를 시작하게 된 것이죠." 역시 그에게서는 삶의 냄새, 돈의 냄새가 난다. 선(禪)의 향기와 깨달음의 죽비소리 대신, 독하고 솔직한 생활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든다.
마지막 당부의 멘트도 준비돼 있다. "하소백련축제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고, 불교만의 축제가 아닌 다양한 사상들이 교류할 수 있는 개방적인 축제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것.
작심하고 탤런트가 된 스님. 아니나 다를까. 돌아와서 TV를 켜니 화면 가득 도원스님의 얼굴이 비친다. TV 속에서 스님은 백련차 만드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차에 대한 이야기가 빠졌다. 그 맛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직접 가서 드시라는 말밖에는. 그리하여 도원스님께 매혹돼 보라는 말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