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7 |
[저널초점] ‘길’의 재발견-예향천리 전북의 마실길 4
관리자(2010-07-05 13:40:49)
‘길’의 재발견-예향천리 전북의 마실길
걷는 길을 통한 반인간적인 문명성찰
- 지리산 둘레길 열린 이야기 -
- 이상윤 사단법인 숲길 상임이사
지리산 둘레길 800리. 지리산 주 봉우리를 보면서 에둘러 지리산 자락 한바퀴 걸어서 도는 길. 봄철, 지리산둘레길을 걷다보면 고사리 꺾는 아낙을만나고 소로 쟁기질을 하는 촌노와 길섶에 핀 모진 바람 속에서 굳세게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삶이란 서로가 서로를 안고 사는 걸 금방 알게 된다.이름 없는 촌노로 꽃으로 살아도 그저 행복한 세상이 있다면 따로 천국이필요하랴! 저마다 삶의 무게대로 이고지고 가는 것이지….얼마나 부질없이 달려가는 세상인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치열해야만 하는가. 옆으로 눈길 한번 주지 못하고 달려가는 생활의 수레바퀴를 안고 굴러가는 게 삶의 모습이 아닌가.
둘레길의 탄생
그랬다. 처음 지리산 순례길을 찾아보자는제안은 한번쯤 우리가 사는 삶의 밑바닥을 걸으면서 느끼고 돌아봤으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정부기관이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산림청이 녹색자금으로 2007 부터2011년 5년간 1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지리산 둘레길 300㎞를 완성키로 했다. 2007년 시범구간 20㎞이 열렸고 2008년 남원시주천면~산청군 금서면 수철 50㎞가 열리고2009년 산청 수철 마을~하동군 청암면 상이마을 60㎞, 2010년 하동군 청암면 상이마을~하동군 악양면 대축마을 30㎞, 전남 구례군 밤재~구례군 토지면 50㎞ 연차별 계획에 따라 지리산 둘레길은 이어지고 있다.지리산 둘레길은 사람이 경계 지어 놓은 행정구역이나 편의에 의해 갈라놓은 고갯길과 강,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고갈라진 경계의 벽들을 넘어 지리산 둘레길로 소통된다. 어떤길은 소금상이 다니던 길이었고 어떤 길은 장을 보러 다니던길 시집, 장가가던 길이다. 포장된 임도도 지나고 농로와 지방도 국도도 지난다. 사람들은 지리산 둘레길이니 흙길과 숲길을 원하지만 흙길과 숲길만으로 지리산 둘레를 이어낸다는 것은 애시 당초 불가능했다. 경제개발의 이름으로 농로와시골길이 포장되었고 임도라는 이름으로 확포장된 곳이 많기 때문이다.지리산 둘레길은 길의 조건보다 걸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조건이나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07년부터 시작된 지리산 둘레길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찾아온 분들은마을 주민들 집에서 민박을 주로 하고 지리산 지역 농산물로차려진 밥상을 받는다.처음 지리산 순례길을 제안하면서 내 세운 가치는 성찰과반성, 마을 공동체 회복이다. 지난 3년 지리산 둘레길은 정신없이 달려왔다. 둘레길 조성을 위해 사단법인 숲길이 만들어졌고 조사, 설계, 시공을 위해 시간을 쪼개 살았다. 시범구간 개통과 더불어 찾아오시는 이용자 안내일 까지 보태졌지만 지역에 사는 사람으로 소외되고 버려진 우리 고장의 일이기에 신바람나게 일했다.지리산 둘레길을 통해 지리산의 상징성을 살리고 지리산을 중심으로 산업사회의 모순들을 극복하는 대안 사회도 꿈꾼다. 지리산의 가장 큰 상징성은 인간 본성에 깃들어 있는자연에 대한 경외심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을 찾아지리산을 오르고 자연으로 회귀를 꿈꾸지만 정작 지리산 마루길은 훼손되고 종주 산행의 악습으로 말미암아 생태계가교란되는 위기를 맞는다. 지리산을 보존하면서 지리산의 상징성을 지키는 방안이 지리산 둘레길의 정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리산 둘레길은 국립공원 지리산을 가운데 두고 지리산 자락 300㎞를 에둘러 가는 길로 구성된다. 에둘러 걷는길은 걷는 사람들에게 지루하거나 경이로움이 없을 수 있다.그 길속에 오감을 비롯한 마음을 열고 걷다보면 자신의 삶,이웃의 삶, 많은 생명들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게 내면에 숨어 있는 상처들이 치유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지리산 마을공동체가 없었더라면 지리산 둘레길은 열리지못했다. 마을 사람들의 이해와 협조가 없었다면 지리산 자락을 연결해서 다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역민들의 마을길,농로를 지리산 둘레길로 사용하도록 협조해 주신 마을 분들이 없었다면 이용자들이 먹고 자는 문제도 불가능했다. 지리산지역 산촌이 때로는 이용자들의 숙소가 되고 쉼터와 안내역할을 해 주고 있다. 지리산 마을공동체가 지리산 둘레길을통해 활력을 찾고 도시와 농촌이 만나는 소통의 공간으로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역할이 이 길을 다니는사람들의 몫이기도 하다.
둘레길을 둘러싼 갈등과 발전과정
지리산 둘레길이 열리고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꺼번에 몰려드는 사람으로 자연경관 훼손이 염려되고 이익을 둘러싼 주민간의 갈등, 농작물 피해를 둘러싼 이용자와주민의 갈등도 있고 지역 관광객 유치를 최우선 목적으로 삼으려는 지리산권역 5개시·군 지자체와 지리산 둘레길을 하나의 공간으로 다루려는 사단법인 숲길과 지자체간의 갈등도 있다.잘못된 여행문화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몰래 버리는 휴지와 조용히 걷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단체 여행객의 피해도 나타난다.갈등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리산 둘레길은 산림청과 지자체 사단법인 숲길이 참여하는‘지리산길 실무협의회’를 통해 지리산 둘레길의 제반사항을 다룬다. ‘지리산길실무협의회’는 의사협의 조정기구라고 할 수 있다. 협의회는 법적인 지위나 구속력을 가지기보다는 상호간 신뢰를 통해 지리산둘레길 운영관리를 잘 해나가자는 목적으로 2008년 구성되었다.실무협의회를 통해 2009년 동절기(2009년 12월 28일~2010년 2월 28일) 지리산 둘레길정비기간을 갖고 이용 제한을 했다. 현장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보완하고 보다 성숙된 운영관리를 위해 지리산정비기간을 갖게 되었는데 오히려많은 분들이 정비기간의 취지에 동감해 주셔서 여행문화의변화, 시민의식의 성숙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다채로운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의 열린구간은 현재 70㎞이다. 남원시 주천면 소재지~남원시 운봉읍 구간 14.3㎞는 운봉의 너른 들과지리산 북사면을 보면서 걸을 수 있다. 이 길은 구룡치를 넘어 옛사람들이 남원장을 보러 다니던 길이다. 마을 분들의말에 따르면 이 길은 안전한 길이었다고 한다. 수십 년 동안무탈했던 길. 길을 걷다 보면 의병장 조경남과 얽힌 이야기가 있는 솔정지와 개미정지를 만나고 안전을 빌었던 사무락다무락도 만난다. 이 길에선 무덤들도 많이 만나는 데 너희도이와 같이 될지니 무욕하라는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남원시 운봉읍~인월 9.4㎞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산지대인 운봉고원을 지나 영호남의 경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이어울린 지리산 자락의 큰 장인 인월장을 보게 된다. 옛날 통영대로였던 이 길은 영남과 호남을 지나 한양으로 가는 길목역할을 하기도 했다. 동편제 판소리의 본고장 비전 마을과석장승이 지키고 있는 서림공원도 이 길에 있다. 바래봉의철쭉과 서림공원~비전마을로 이어지는 강둑길은 누구나 걸을 수 있는 편한 곳이다. 인월 소재지에 있는 지리산둘레길안내센터에 들리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남원시 인월면~경남 함양군 마천면 금계구간 19.3㎞는장항마을, 매동마을, 상황 마을 등 지리산 자락의 옛 마을들이 자리하고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고풍스런 마을들이 지켜온 당산나무의 우람한 자태는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한다. 이 구간은 행정구역을 가르는 등구재가 전북과경남을 가르고 있지만 옛날 이 재를 통해 사람들은 시집을가고 장가를 간 길이다. 강이나 고개를 인간의 편의를 위해경계지점으로 삼았지만 경계는 서로를 가로 막는 것이기 보다 서로의 소통통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을 지나다지루하다 싶으면 잠시 길을 벗어나 실상사에 들러 구산선문의 가람 실상사를 둘러보는 맛도 지리산 둘레길 여행의 또다른 여행의 재미.함양군 금계~함양군 동강 15.2㎞는 엄천강을 따라 걸을수 있는 곳. 용유담과 세진대 등 옛 선조들이 이 길을 통해지리산을 유람한 통로이기도 했고 산사람들이 이곳을 통해지리산으로 숨어든 곳이자 빨치산의 야전병원 역할을 한 벽송사 지리산 둘레길이 역사의 현장이었음을 확인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리산 둘레길이 열리고 벽송사 구간의 길이 개통되었으나 갈등으로 인해 원래 길은 닫히고 의중마을~모전마을 사람들이 다니던 옛길을 이었다. 길은 늘 이렇게 복잡미묘한 것이다. 마을 사람 공동체가 합의하고 서로를 위해내 놓았던 옛길이 있다면 요즘은 사유화라는 재산가치로 길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큰지도 모른다.함양군 동강~산청군 수철 11.9㎞ 아픈 현대사의 상흔을그대로 간직한 곳. 아픈 현대사와 지리산 북쪽의 옛길이 어울려 지리산 서부능선을 조망하면서 걷는 즐거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강을 지나 쌍재로 접어드는 오봉천을 건너기전 만나는 산청 함양사건 추모 기념관. 한국전쟁의 위기는지리산에도 찾아든다. 피아간의 전리품은 군인의 몫이라면희생은 주민의 몫일까. 전승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게 전쟁의 윤리. 그 부도덕함에 치를 떨어야 했던 민중의 아픔은 언제나 치유될까. 산청 거창 양민학살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이 주변마을 사람들은 치독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긴 세월이 기념관으로 보상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 사건을 기념할 기념관이 건립돼 세월의 흐름이 다시 무상함을 느끼게 해 준다. 쌍재 지리산의 풍성함이한 눈으로 들어오는 곳. 상사폭포에 얽힌 전설도 이 길에서만날 수 있다.지리산 둘레길은 아직 미완성이다. 전체 구간도 그렇지만이 길은 늘 미완이자 완성되어 가는 과정의 길이다, 사람이사는 이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길(道)이라 했던가. 삶의 이치를 일순간 깨닫는 사람도 있고 평생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다지. 날마다 깨우치는 게 도라는 말도 있다. 길에 대한 가르침이 얼마나 많은지 지리산 둘레길을 지나다 보면 알게 된다. 단 걷는 자 모든 것 내려놓고 걸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