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8 |
[테마기획 ] 서해의‘섬’ 1
관리자(2010-08-03 09:14:11)
서해의‘섬’
섬은 ‘그리움’이다
각박한 세상, 메마른 도시민의 삶은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지루한 일상의 반복과 권태.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지칠 때쯤 사람들은‘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갈망한다. 자신을 옭죄고 가둬둔 곳으로부터 벗어나 오롯이 나를 찾아가는 여행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이 짜릿한 일탈의 대상으로‘섬’만큼 적합한 곳이 또 있을까.오랜 세월 동안‘섬’은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뭍에 대한 그리움과 쪽배에 몸을 싣고 거친 바닷길에 뛰어든 임에 대한 연정 그리고 미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못다핀 꿈으로 져야만 했던유배민의 애환까지…. ‘섬’에는 이 모든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섬’은 아련히굳어져 버린‘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이번‘테마기획’에서는 그리운 이름, ‘섬’을 만났다. 지루한 일상이 지겨워질 때쯤, 가벼운 배낭 하나 짊어지고 저‘섬’어딘가로 훌쩍 떠나보자. 지독히도 외롭고 그리운 여정이 그대의마음 한 짐 덜어줄테니….
섬은 많은 것을 명상케 한다. 섬은 우리의 삶의 주요 터전인 육지로부터 떨어져 있다. 그것도 바다라고 하는 장애물로 격리되어 있다. 따라서 섬은 먼 곳, 그리운 곳, 아름다운 곳으로 일단 생각된다.산업화는 사람들을 도시로 모여들게 했다. 도시가 가지고 있는 편의성 때문이다. 생활하기에 편리한 주택,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각종 편의시설, 또는 교통시설, 행정관청 그리고 많은 취업의 기회 등 도시는 삶을 기능적이면서도 다양성을 갖게 해 준다. 그러나 도시화 문명화의 폐해 또한 만만치 않다. 사람들은 이제 도시로부터의 일탈을 꿈꾼다.되도록이면 문명과 거리가 먼 곳, 환경이 오염되지 않은 곳 일상과는 색다른 풍경과 삶의 모습을 가진 곳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 속에 과연 그런곳이 있을까. 아마 그런 곳을 찾기란 쉽지 않으리라. 굳이 찾는다면 그래도 섬일 것이다. 육지와 격리되어 있으므로 문명의 물결이 흘러들기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 제발 그런 섬들이 지상에 많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
신선이 노닐던 그곳에서 그리움을 낚다
- 문효치 시인
이상향으로의 섬
옛날부터 섬은 크게 두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고립, 유배지,폐쇄성, 수난 등의 부정적 이미지다.이것은 다분히 현실적 경험에 의해서생긴 이미지인 듯하다. 섬은 험한 바다로 격리되어 있고 풍랑이나 난파 등의고통을 경험케 하기 때문이다. 표해록류의 해양문학은 이런 경험을 모태로생겨났다.또 하나는 이상향, 선계 등의 긍정적이미지다. 도교적 시각으로는, 섬은 세속적 혼란과 치열한 경쟁이 난무하는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청정의 세계즉선계로표상화된다.『 홍길동전』에서는 정치적 포부를 실현시킬 수 있는 터전인 율도국에서 이상향을 건설하고『허생전』에서도 학정에 시달리다가 도둑이 된 무리들이 외딴 섬에 들어와 이상국을 세우는 이야기가 나온다.우리는 현실적 삶이 고달프고 어려울 때 섬을 그리워한다. 특히 시 속에서 섬은 그리움의 대상으로 많이 떠오르곤 한다.이생진 시집의 표제에『섬마다 그리움이』있다. 우리가 외로울 때 섬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아니면 외로운 섬이무엇인가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하여튼 섬에는‘그리움’이 따라다닌다.
외딴섬 하나 그려놓고
오른쪽 구석에 표지판을 세운다.
간절한 내 여름의 기항지
그리운 사람들의 영혼이 모여드는 곳
이생진 시인의「마라도·아름다운지도」의 일부분이다. ‘외딴섬’이다보니 섬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그리운 사람들의 영혼이 모여드는 곳’이라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섬을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사랑이란 미지의 것을 향한 성스러운그리움이라 했다. 이 말대로라면 그리움은 사랑을 낳게 하는 것일진대 얼마나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이렇게말하다보니 섬은 곧 사랑의 원천지가아닌가.
바다여
나의 좋으신 분을
수평선 저 너메
네가 업어 뫼신 후
날마다
천도(天桃) 한 알을
상(床)에 올리네
즈믄 날
만경창파
머리 풀어 바치던
나의 제사
어느덧 서리 묻은
내 귀밑머리
위에 보는 김남조 시인의「바다」라는 시는 평생을 그리움에 바치는 제사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즈믄 날’‘머리 풀어’바치던‘제사’의 대상은‘수평선 저 너머’에 있는‘좋으신 분’이다. 수평선 너머가 어디일까. 그것은아마도 섬이고 이상향이고 선계가 아닐까. 시인들은 섬을 보면 그리움이 생기고 그리움이 생기면 섬을 보게 되는것인가 보다. 노향림 시인의『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라는 표제의 시집이 있다. 그렇다.그리움이 없이 어떻게 섬으로 표상되는 이상의 세계, 아름다움의 세계의 진실을 알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날려 보낸 새들은/아직 당도
해 보지 못한 섬까지/ 날아갔다 돌아온다
//미처 모르는 마을/낯선 길을 따라가면/
압해도는 보일까
노향림 시인의 시에서 보듯‘아직 당도해 보지 못한 섬’, 곧 미지의 섬이라야 그리움이 있을 것이고 이런 그리움이 있어야‘압해도는 보일’수 있는 게아닌가.이중섭이 잉크로 그린 그림 <그리운제주도 풍경>은 때 묻지 않은 동화의세계다. 바닷가에서 벌거벗은 채 귀여운 고추를 달랑거리며 게들과 놀고 있는 아이들의 세계다. 그림의 한 쪽에는범섬과 섶섬이 그려져 있는데 아이들과 게는 아마도 저 범섬으로 갈 듯한모습이다. 이중섭은 피난시절 아내와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제주도에서외롭게 지낸 적이 있다. 그의 그리움은얼마나 컸을까. 이중섭의 그리움의 곁에는 이렇게 섬이 있었다.신유사옥에 연루되어 흑산도로 유배간 정약전은 적지(謫地) 생활 16년 동안 조사 연구하여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지었다. 이 책은 물론 생물학계의소중한 고전이다. 그런데 그 책의 서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자산(玆山)은흑산(黑山)이다.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있어서 흑산이란 이름이 무서웠다. 집안사람들이 편지에는 흑산을 번번이자산이라 쓰고 있었다. 자(玆)는 흑(黑)자와 같다.’흑산도야말로 예의 그‘외딴섬’에 틀림없다. 죄인의 누명을 쓴그 무서움 속에서‘집안사람들의 편지’야말로 얼마나 큰 위안이고 또한그리움이었겠는가.
이름은 달라도 모두‘선유도’였으리라
필자의 졸시 한 편을 내보이고자 한다.
우리의 배는 파도를 뚫지
못했다
나와 선유도 사이에서
파도는 키를 높이 세우고
두 팔을 벌려 가로막았다
선유도
신선이 노는 섬에
슬그머니 끼어들어 보려했던
부끄러움이
부슬비처럼 내렸다
「선유도를 바라보며」라는 시다. 선유도는 풍광이 아름다워신선이 노는 섬이다. 김중규 님의 글에 보면‘선유도라는 이름은 섬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신선이 놀았다고 하여 불리게 되었는데 신시도, 무녀도, 방축도, 명도, 관리도 등의 섬들이 신비하게도 둥그런 원을 그리며 선유도를 감싸 안고 있어 파도 없는 날 새벽안개 낀 선유도에서 주위를 둘러보면둥그렇게 둘러싼 산봉우리들 안에 호수가 있고 그 호수 중앙에 선유도가 있는 착각에 빠지게 되어…… ’신선의 놀이터임을 말하고 있다.신선의 놀이터에는 속진에 절은 사람은 접근할 수 없다. 선유도에 가려면 적어도 마음을 여며 가다듬고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그 섬이 보일 것이다.우리나라에는 3천여 개의 섬이 있다고 한다. 이 섬들은 모두 본시 신선들의 놀이터였으리라. 가장 자연에 가깝고 그래서 가장 때가 타지 않은 곳, 그래서 이름은 달라도 모두‘선유도’였으리라. 국토에‘선유도’가 많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만큼 그리움이 많고 사랑이 많다는 일 아닌가.이제 우리의 할 일은 3천개의‘선유도’를 진정한 선유도이게하는 일일 것이다.
문효치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다. 1966년 서울신문 및 한국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됐으며 주성대 겸임교수와 국제팬클럽 한국본부 이사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중국천진 외국어대 객좌교수이자계간『미네르바』발행인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무령왕의 나무새』『, 선유도를바라보며』『, 계백의칼』등10 여권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