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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8 |
[테마기획 ] 서해의‘섬’ 2
관리자(2010-08-03 09:14:24)
서해의‘섬’ 너무도 아름다운 내 기억 속의 풍경 - 신성순 여행작가 한적하고 호젓하게 쉬기에 섬 만한 곳이 없다. 운항할 수 있는 여객선이 한정되어 있어 섬에 드는 사람 수도 한정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필자가 처음으로 찾은 전라북도의 섬은 선유도였다. 천혜의 비경 선유도 활처럼 굽은 백사장에 은빛 모래가 곱게깔린 모습이 명사십리를 방불케 한다. 완만한 수심과 깨끗한 물을 자랑하는 선유도해수욕장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백사장 건너편에 우뚝 솟은 두 바위 봉우리가 더욱 눈길을 끈다. 선유도로 유배 온 충신이 이곳에 올라 북쪽 한양 땅을 바라보며 임금을그리워했다는 전설에 따라 망주봉(望主峰)이라 불리는 멋들어진 암봉이다.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고 나면, 저 거대한 암벽을 타고 내리꽂히는 150여 미터 높이의 장쾌한 물줄기, 망주폭포도 볼 수 있다.저 봉우리를 오를 수 있을까? 깎아지른 절벽으로 사방이 둘러싸여감히 도전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저 옛날 어느 충신도 올랐다니 어딘가 길이 있으련만 워낙 발길이 뜸한지라 흔적 찾기도 힘들다. 가까스로두 봉우리 사이로 남아 있는 희미한 오솔길 자취를 찾았다. 울창한 숲을 헤치고 10여 분 오르자 암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는 길도 없는 절벽을 오른다.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다. 비 온 뒤가아니라면 그다지 미끄럽지 않은 바위다. 암벽 틈새에 손과 발을 넣어버티고 10분 남짓 오르니 이윽고 해발 152미터의 망주봉 정상이다. 힘겹게 망주봉에 오른 감흥은 필설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 뜨겁게 타오르던 태양이, 작은 섬들이 보석처럼 박힌 바다와 구름 둥실 떠다니는 하늘을 붉게 물들이다가 수평선 너머로 몸을 숨기는 장관에 넋을 잃는다.고백할 일이 하나 있다. 1980년대 중반, 어느 젊은 여인과 함께 망주봉에 올랐다. 민박집 옆방에 묵고 있던 새내기 은행원이었다. 민박집 주인은 홀로 섬에 들어온 그녀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떼지 않았다.혼자 여행하는 여자는 뭔가 수상쩍다는 편견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런여자 가운데는 엉뚱한 일을 벌이는 예가 종종 있다.그녀와 대화를 나누다가 실연의 상처를 씻으려 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러다 망주봉에 올랐을 때 혹여 그녀가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던지지나 않을까 몹시 신경을 곤두세웠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고 그녀는 황홀한 낙조 풍경에 삶의 활력을 되찾은 듯했다. 혹시나 해서 몇달 뒤 그녀가 근무하는 은행에 슬그머니 들렀다가 환한 미소로 고객을대하는모습을보고안도했고그후그녀는뇌리에서잊혀갔다. 고요하지만 풍요로운 어청도 다음으로 찾은 곳은 어청도였다. 어청도는 군산항에서 72㎞나 되는 긴 항해 끝에만나는 외딴섬이다. 전라북도에서 가장 먼까마득한 해상에 외롭게 떠 있는 절해고도로 3시간 반이나 거친 파도를 헤쳐야 모습을 드러낸다. 오죽하면 중국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까지 있을까? 그만큼 중국산둥반도가 가깝다.부두에서 25분쯤 걸었을까? 넓은 길이 끝나고 공터에 이르자 좁다란 오솔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산책하기 딱 좋은 길이다. 오솔길 따라 쭉쭉 뻗은 아름드리 노송 숲이 펼쳐지다가 빨간 동백꽃이 수줍은 듯 미소 짓는가 하면, 짙푸른 바다와 산자락이 숨바꼭질하기도 한다. 그러기를 15분 남짓, 낭만 가득한 이 길이 더 이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하얀 등대가 동화속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1912년 3월 세워진 어청도 등대는 중국 쪽 서해 바다를 지켜보면서 22해리(약 40.7㎞)까지 불을 밝힌다. 등대 안에 우뚝 서 있는 노송 한 그루가 이곳의 긴 역사를 말없이 증명하는 듯하다. 우리나라 섬에 있는 등대 가운데몇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예쁘고 아름답다.등대를 한 바퀴 돌아보고 아래로 눈길을 돌리는 순간, 절로 탄성이 터져나온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을 쉴 새 없이 파도가 철썩철썩 때린다. 바다로 고개를 내민 암벽에는 흡사 공룡의 등뼈처럼 얼기설기 줄이 그어져 있다. 그 천길 낭떠러지 아래 좁은 틈새로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이 어디선가본 듯하다. 그렇다.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했던 영화 <빠삐용>에서 마지막 해상 탈출 장면이 바로 저랬다. 강한 북서계절풍의 침식에 따라 발달한 해식애라는 학술적 해석보다는, 조물주가 빚은 대자연의 걸작품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한 절경이요, 감동적인 서사시다. 외롭고도 외로운 그 섬, 왕등도 전라북도의 섬 중에 가장 기억에남는 곳은 왕등도였다. 왕등도는 가깝고도 먼 섬이다. 격포항에서 불과34㎞ 남짓하므로 육지 같으면 지척이나 마찬가지. 그러나 바다가 갈라놓은 거리는 물리적 수치만으로 가늠하기 힘들다. 격포항에서 2시간이나 바다를 헤쳐야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 있는 이 섬을 만난다. 여객선이래야 고작 일주일에 두 번 다닐뿐이지만 그나마 제 날짜에 탈 수 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멀쩡하던 뱃길이 위도를 지나면서 심술을 부리는 탓이다. 위도에서 왕등도는 약 15㎞로 서로 빤히 보이지만 파도가 거칠고 안개가 자주 끼어다가서기 힘들다. 그래서 위도까지 갔다가 발길을 되돌리기를 두어 차례. 세 번째 도전에서야 어렵사리왕등도에 갈 수 있었다.쌍둥이 같은 두 섬으로 이루어진 왕등도는 바다 한가운데 우뚝 버티고 있어 멀리서 보아도 위풍당당하다. 만고풍상을 버티며 간직해 온 근엄한 위용이 느껴지기도 하고, 아무에게나 쉽게 열어 보이지 않겠다는 고집스런 표정도 엿보인다. 그러기에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왕등도는 상왕등도와 하왕등도로 이루어져 있다.넓이는 하왕등도가 0.75㎢로 0.57㎢의 상왕등도보다 크지만 주민들은 윗섬 상왕등에 산다. 하왕등도는1970년 무렵만 해도 25가구가 모여 살았고 분교도있었다. 그러나 학교가 폐교된 1992년을 전후해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 지금은 상주인구가 한 명도 없다.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이 평화롭지만빈집들이어서 을씨년스럽기도 하다.하왕등도는 염소 천국이다. 천적이 없고 먹을 풀과약초가 풍부해 섬 전체가 염소 집이나 매한가지다.수입을 올릴 요량으로 섬사람들이 염소를 풀어놓았으나 도저히 잡을 도리가 없어 야생 염소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섬이 워낙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져있어 암벽 타기 명수인 그들을 잡을 수 없는 데다 사람들이 떠나자 야생 염소들만 남아 제 세상 만난 듯살아간다는 것이다.왕등도는 유배지로서 그 역사가 시작된 듯하다. 요즘처럼 현대화된 동력선으로도 드나들기 힘든 섬인만큼 그 옛날 돛단배 시절에는 유배 보내기 딱 좋았으리라. 약 300년 전부터 노씨, 남씨, 서씨 등이 섬으로 들어왔는데 상왕등에는 광산 노씨, 하왕등에는선녕 남씨가 주축을 이루어 살았다고 전해진다.상왕등도에 올라서면 방파제 옆으로 늘어선 멋들어진 돌들이 눈길을 끈다. 오랜 세월 동안 파도에 씻기고 씻겨 동글동글해진 몽돌들이 무리 지어 모여 있다. 꼭 새알 같다. 메추리알만한 놈, 달걀만한 놈, 오리알만한 놈 등 크기는 가지가지다. 벌거숭이 어린아이 엉덩이처럼 보드랍고 큼직한 돌도 있다. 어떤 훌륭한 조각가도 이처럼 예술적인 작품을 빚지는 못하리라. 마음을 평화롭게 감싸주는 천연 조각공원이다.1970년 무렵만 해도 상왕등도에는 35세대가 살았다지만 이제는 10여 가구만 남았을 뿐이다. 갓난아이 울음소리나 어린아이 웃음소리는 말할 나위도 없고 젊은 청년의 씩씩한 발걸음 소리도 들을 수 없다.섬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 교육 때문이다.1992년 분교가 문을 닫으면서 아이들을 따라 부모까지 왕등도를 등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어찌 보면 왕등도는 심심한 섬이다. 일단 들어가면며칠은 묵어야 하는데 위락 시설이라고는 전혀 없으니 따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센 파도에 따른 침식과 강한 바람에 의한 풍화 작용으로 빚어진 해식애(해안 절벽)는 해금강이 부럽지 않고, 코발트빛 바다는 가슴 깊이 스며든다.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머리를 텅 비우고 명상하노라면 섬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어 종국에는 나오고 싶은 생각이 달아나 버리기도 한다. 왕등도는 그런 섬이다. 신성순 월간『학생과학』과 도서출판 전파과학사, 월간『자동차생활』, 월간『오토』등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신삿갓 오지비경 즐기기> 카페를 운영 중이며저서로는『계곡여행100배즐기기』,『 아침에훌쩍 떠나는 서해안 여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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