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8 | [문화와사람]
수자원공사 부안댐 관리사무소
'문화'를 가꾸는 진짜 '물' 장삿꾼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9-05 13:13:27)
물을 다스리는 곳에는 으레 사람들의 이해가 얽히기 마련, 하물며 물을 가둬 삶의 터전을 빼앗고 걸핏하면 물싸움이 벌어지는 댐이야 그 갈등이 오죽 더할까.
섬진댐 용담댐 등 이 지역 가까운 곳에서 댐 건설과 물 사용을 둘러싸고 사람들의 이해가 각축을 벌였던 것만 보아도 댐은 가는 곳마다 말썽을 일으키는 '애물단지'다. 그러니, '아전인수' 최대의 격전지(?)는 댐이 아닐 것인가.
병풍처럼 펼쳐진 내변산과 푸른 서해를 끼고 사람과 자연이 함께 호흡하며 사는 땅, 변산반도의 빼어난 절경이 절정을 이룬 곳 부안.
이곳에 거대한 인공의 치수(治水) 시설인 부안댐이 들어선 지 8년. 1년전부터 부안댐이 새로운 '댐 문화'를 만들어가겠다며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수자원공사 부안댐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요란한 문화 가꾸기, 전북은 물론 전국으로도 짜르르하게 소문이 퍼져 있다. 애물단지에서 사랑 받는 댐으로의 변신, 그들의 변신은 아무렴, 무죄다.
'물 장사꾼'이라는 오명을 벗고 지역민과 가깝게, 지역 문화를 끌어안기 위한 부안댐 관리사무소 직원들. 그들이 움켜쥔 것은 '콜롬버스의 계란'이다. 의식의 전환과 고정관념을 깨는 이들의 이색 시도가 댐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놓는가 하면, 지역 문화에까지 파장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소 앞 뜰. '아름다운 부안 댐'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박힌 초록색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강사를 따라 댐을 향하고 있다. 부안댐이 마련한 '물사랑학교'에 참여한 아이들이다. 지준기 소장과 윤원기 과장은 '물사랑학교' 운영자들 가운데 부안댐 관리사무소가 정부 투자기관 중 유일하다고 말한다. 지 소장과 윤 과장은 댐 문화를 견인하는 중핵들이다.
"혐오시설이라는 댐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고 아름다운 문화를 보급하는 지역 주민의 자랑이 되고 싶습니다. 물은 철학이자 문화입니다. 단순히 물장사에 급급한 곳이 아니라 주민들과 물을 지역의 상품으로 만들고 댐 현장을 문화의 향기로 가득 채워놓고 싶습니다."
부안댐의 문화사업은 지 소장과 윤 과장이 발령 받아 오면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소박한 문화행사부터 지역 문화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제법 규모 있는 문화 사업도 함께 이뤄졌다. 물사랑학교, 대형 영화스크린 설치, 실향민 망향제, 부안댐 문화축제 등 부안댐을 무대로 한 문화사업은 다양하고 풍성하다.
특히 7월부터 9월까지 이어질 '물 문화의 물결을 퍼뜨리자'를 주제로 한 '부안댐 문화축제-지역과 함께'는 부안댐 관리사무소의 문화적 역량(?)이 집중되는 행사다. 2개월간의 문화축제는 5월 29일 '물 속을 들여다보면 산 아래서도 산꼭대기가 보인다'를 주제로 한 내변산 문화기행이 행사의 첫 포문을 열었다. 내변산과 부안댐을 끼고도는 우슬재-중계교-남여치에 이르는 12km 구간에 문화거리를 조성하고 이곳에 아름다운 변산을 노래한 36개 글을 대형 걸개 그림으로 만들어 배치했다. 부안예총과 손잡고 마련한 문화기행에는 부안과 전주는 물론 서울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2백여명의 참가자가 몰려들었다.
부안 문인협회와 함께 부안댐과 부안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지역 문인과 학생들의 시, 수필 등을 모아 문집도 펴냈다. 『물 속을 들여다보면 산 아래서도 산꼭대기가 보인다』. 신석정 시인의 '변산일기' 다섯편을 비롯해 양규태 주봉구 씨 등 지역문인 16명의 작품과 부안댐백일장대회 학생 당선작도 함께 실렸다.
'물사랑학교 다모축제 2003'도 6월까지 이어져 물감사편지쓰기 대회, 대나무물총만들기대회, 부안댐지도그리기대회, 들꽃 판화체험전, 길거리 농구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됐다.
7월 25일에는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몰고 왔던『물은 답을 알고 있다』의 저자 에모토 마사루를 초청, 물 감사의 날을 추진한다. 또 8월에는 전주 홍지서림과 손잡고 '물 자연 사람'을 주제로 도서 전시를 가질 예정.
부안댐 관리사무소가 치러냈거나 앞으로 전개해 나갈 사업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댐의 이미지를 버리면 버릴수록 부안댐이 더 커진다"고 입을 모으는 지 소장과 윤 과장의 '지략'이 계속되는 한 그렇다.
어찌 보면 이들의 문화 마인드나 지역 친화력은 결국 부안댐과 수자원공사를 알리기 위한 '고도의 선전술'이다. 얄미울 만큼 저돌적인 문화 기획력, 그 힘의 원천이 바로 그곳에서 발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희 사업은 어차피 댐과 지역주민이 함께 발전해가자는 윈윈 전략입니다. 문화와 관광을 접목시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부안댐이 지역의 문화관광상품으로 적극 이용되는 것, 거기에 댐과 수자원공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다면 저희나 지역주민이나 더없이 기쁜 일이죠. 우리는 바이러스가 되고 싶어요. 이제 댐은 문화다, 그 인식과 문화를 퍼뜨리는 바이러스 말입니다."
전북지역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들이지만, 부안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깊다. '고도의 선전술'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선 부안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공부도 많이 해 이제는 어지간한 토박이 못지 않은 '부안통'이 되었다고 으쓱해한다.
그러나 상류지역 주민들을 위한 배려나 고향을 잃어버린 수몰민들의 그리움과 한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이들이 마련한 실향민 망향제는 그런 마음을 모아 준비된 자리였다. 댐이 실향민들에게 내민 따뜻한 손길이었고, 화해의 마음이었다. 여러 가지로 규제가 많은 상류지역 주민들은 관광객 유치가 어려울 수밖에 없으니, 각별한 지원과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물 판매 수익금을 상류지역 주민들에게 되돌려주는 주민 지원폭을 10%에서 20%로 확대해 가는 방식이나 하수종말처리장을 완벽하게 지을 경우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댐 관련 법 개정 등 수자원공사 차원의 노력도 진행중이다.
만나자마자 지 소장이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이 상류지역 주민들을 늘 염두에 두고 있음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게 될지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이들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댐 현장은 늘 그리움이 깃들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더이상 댐을 건설하지 말아야 된다는 데 깊이 공감합니다. NO댐 이야기가 거론되는 것도 십분 이해할 수 있고요. 지금 저희가 하는 일은 현재의 상황에서 지역민에게 칭찬받고 댐 수익금을 모범적으로 쓰는 하나의 모델이나 전형을 보여주려는 노력입니다. 친환경적인 댐 문화 만들기, 그리고 지역 주민의 요구에 귀기울이는 배려, 그것이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수원 주민들에 대한 직접지원을 늘려가는 방법도 더더욱 적극적으로 고민되어야 하고요."
진안·임실·부안군을 아우르는 댐문화창달협의회 설립이나 내변산 팜스테이, 내변산 문화학교 개설 등 이들이 구상하고 제안해 놓은 사업들은 지역주민들 속으로 다가서려는 한층 업그레이드 된 시도들로 기대를 모은다. 특히 내변산 팜프테이나 문화학교는 민박 주민들에게 부안댐이 제공할 수 있는 관광상품을 적극적으로 개발,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질 주목할 만한 사업이다.
지 소장과 윤 과장은 조만간 이기반 시인의 물에 관한 헌시가 부안댐으로 전해질 것이라며 벌써부터 자랑이 대단하다. 신바람 나는 이들의 모습이 대립하는 것보다 화해하고 어우러지는 속에서 얻게 되는 희열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화해와 어우러짐의 방법으로 "댐을 버리고" 문화를 선택한 부안댐 관리사무소 직원들. 그들을 보자니, 역시 '문화'는 사람의 마음을 잇는 훌륭한 교량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