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8 |
[테마기획 ] 서해의‘섬’_어청도
관리자(2010-08-03 09:15:16)
서해의‘섬’_어청도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는 절해고도의 섬
- 박상건 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어청도는 절해고도(絶海孤島)이다. 군산시 고군산열도에 딸린 섬 63개 중 서해북단의 외딴 섬이다. 조선 말엽 충남 보령군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전북 군산시 옥구면에 편입됐다. 섬 면적은 1.8 ㎢, 해안선 길이는 10.8㎞이다.
거친 파도에서 솟아 국토의 기준선이 되는 섬
그 해 어청도의 봄은 더디게, 더디게 오고 있었다. 어청도는 군산항에서 66㎞ 망망대해에 떨어져 있어 기상변동이 아주 심한 섬이다. 주민이용원(47)은“인근 외연도 연도까지는 일기예보가 잘 맞지만 어청도는 하루에 기상이 여러 차례 변하는 곳이다”고 말했다. 실제 나도 서울에서 군산항까지 갔다가 세 번이나 주의보 때문에발길을 돌려야 했다. 마침내 네 번째 어청도로들어갔지만 이번에는 하룻밤 사이에 풍랑주의보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외롭고 고독하게 험난한 바람 속에서 크는 섬어청도. 어청도는 서해 영해기선(領海基線) 기점중 하나이다. 영해기선은 국가 통치권이 미치는영해(領海)가 시작되는 선으로 통상기선이라고도 부른다. 서해와 남해는 해안선 굴곡이 심하고섬들이 많아 적절한 지점 설정이 필요한데 이 기준선을 직선기선이라고 부르며 정부는 1977년이를 선포했다.카뮈는“우주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것은 거대한 고독뿐”이라고 말했다. 느림의 미학으로 철썩철썩, 터벅터벅 봄을 향하는 외딴 섬 어청도에서는 조용히 나를 돌아보고 고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제격이다. 인간에게고독은 중요하다. 평안과 만족에 이르는 시발점이다. 각진 일상에서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킨다.고독한 섬에서의 하룻밤은 그런 고독과 인생의가치를 진실로 체험하는 실험실이다. 그리고 고단하게 부대끼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안식처이다.
망망대해에서 구세주처럼 반짝이는 등대불빛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전쟁 중 군량미를 보관하던 섬이기도 한 어청도는 서해안에서제일 먼저 무선표지(無線標識,radio beacon)가 설치됐다. ‘무선표지’는 등대에서 항만, 항로등 어느 일정한 지점에서 전파를 발사하면 항해 중인 선박이이를 수신하여 그 지점에 대한방위를 측정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말한다.어청도 등대는 굴곡의 삶을 살아온 어청도의 역사와 함께 한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들이 거센 바람을 만나면 반사적으로 찾아오는 대피항이어청도항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도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받은 중국 대륙고기압으로 인하여 풍랑과 폭설이 잦았다.어청도 등대는 이런 난기류에 길잡이 역할을 한다. 등대로 가는 길은 마을 시누대 숲길을 지나40여분을 걷는 산길이다. 산 중턱에 팔각정이 있는데 땀을 식히며 어청도항과 마을 전경을 굽어볼수 있는 전망 포인트이다. 유난히 대나무와 소나무가 많은 구릉선 산지인 탓에 주민들은 농사를지을 수 없어 채소 등을 군산에서 사다 먹는다.해망도로 팔각정에서 호흡을 고른 후 다시 마을뒤편 산등성이를 내려서는 길은 60여 미터의 절벽으로 이어진 황토길이다. 등대는 그 끝자락에아담한 돌담길로 에워싸여 있다. 어청도 등대는일제강점기 일본의 대륙진출의 야망에 따라 전략적 목적으로 세워졌다.근 100여 년을 한결같이‘누구에게나 아무 조건없이’망망대해 뱃길의 길라잡이 역할을 다해온어청도 등대. 이성원, 최종관 두 등대원이 나그네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면서“오자마자 풍랑주의보가 내려 고생이 많겠어요? 다음부터는 저희 등대로 먼저 일기예보를 물어 보세요”라고 말했다. 등대원은 유인 등대 불빛뿐만 아니라 이처럼 기상청에 시간 단위로 해상 날씨를 파악하고무인등대 관리는 역할도 한다.어청도 등대는 1912년 3월 첫 불빛을 밝혔다.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발동기와 발전기를 돌려등댓불을 밝혔다. 며칠에 한 번씩 오는 배편을 통해 기름 드럼통을 받아 지게에 지고 해발 100미터의 가파른 산길로 원료를 가져와 등대 불을 밝혔다. 어청도 등대는 백색의 원형 콘크리트 구조에 윗부분을 전통 한옥의 서까래 형상으로 만들어조형미가 으뜸이다. 등대 윗부분 홍색 등롱과 하얀 등탑 그리고 돌담이 바다를 낀 채로 등대를 껴안은 모습은 해질녘 석양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대숲 지나 돌담길의 어청도 등대
우리나라 10대 아름다운 등대로 선정된 어청도 등대는 초기 등대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수은 위에 뜨게 하여 등명기를 회전시키는‘중추식 등명기’가 귀중한 유물로 보존되고 있다. 12초마다 1회씩 불이 깜박이고 불빛은 37㎞의 먼 바다까지 비춘다.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남아프리카공화국 서남쪽 끝 희망봉 등대처럼, 어청도 등대는 고도 61m에 우뚝 선 마도로스의‘희망’이다. 유럽 여러 선박들이 대서양을 지나 인도양으로 향하던 긴긴여정에 희망봉 등대는 구세주처럼 다가섰다. 어청도 등대도 그런 항해자에게 안도의 한숨을 전하며 든든한 동행자 역할을 한다.1989년 8월 29일부터 이틀간 어청도 해상에 최대 풍속 초속 25m로 몰아치던 폭풍우 사태가있었다. 파도 5m의 해일이 어청도를 들이닥쳐 선원들이 사망 실종하고 어선들이 침몰하거나 포구의 배들이 뭍으로 밀려온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고로 어청도항에는 하얀 방파제 외에 두 개의방파제가 디귿자 모양으로 더 설치돼 지금은 주민들의 평안이 되어주고 있다. 등대원들은 이처럼섬과 섬사람들의 안전을 위한 바다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맑고 푸른 어업전진기지, 고래잡이서 낚시꾼 천국으로
중국 산둥반도와 300km떨어져 있는 어청도는 다른섬과 달리 시조가 한국인이아닌 중국인 전횡이다. 그는중국 제나라의 재상을 지내다 왕이 되었으나, 한나라가중국 천하를 통일하자 추종자 500명을 이끌고 어청도에 피신하여 밭을 일구고, 고기를잡으며 최초 원주민으로 정착했다. 그러나 한왕 고종이 보낸사자에게 붙들려 본국으로 잡혀가던 중 바다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고 전한다. 전횡의 넋을 위로하고자 백제 옥루왕 18년사당을 지었는데, 이것이 치동묘이고 지금도 어민들은 이곳에서 풍어제를 지내고 있다.어청도(於靑島)는“물 맑기가 거울과 같아”, ‘어조사 어(於)’, ‘푸를 청(靑)’자를 쓴다. 수심이 깊어 김 미역 다시마양식 등을 할 수 없다. 양지식당 김차남씨(50. 여)는“어청도주민들은 고기를 잡을 때 그물을 사용하지 않아 물고기가 산란하는 해초의 손상이 없습니다. 고기를 잡을 때도 20cm급이하 물고기는 바로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낙들은 섬기슭에서 돌김, 해삼, 전복 등 해산물을 채취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주로 찾는 낚시꾼들을 대상으로 한 민박수입이 주 수입원이다.어청도 에머랄드빛 바다는 어업전진기지로써 우럭, 돌돔,참돔, 감성돔, 방어, 농어, 놀래기 등이 많이 잡힌다. 특히 우럭과 농어의 황금어장으로 알려져 낚시꾼들에게는 천국인 셈이다. 대표적 낚시 포인트는 비안목, 가진여, 불탄서, 신목여,사생이골, 등대낚시터 등이다. 선상낚시꾼들이 자주 찾는 6개 지역에는 인공어초가 조성돼 있다.어청도는 과거 고래잡이를 위한 포경선의 주요기지였다.동해에서 고래를 잡던 포경선은 12월부터는 4월 봄까지 어청도를 배를 돌려 밍크고래 등을 잡았다. 1985년까지 연평균900마리를 잡을 정도였고 당시 한 마리 가격이 3천여 만 원에 달했다. 2006년 6월 12일에도 길이 6m, 무게 6t 가량의밍크고래 한 마리가 그물에 걸려 발견되기도 했다. 고래잡이호황은 70년대 어청도 인구를 1만 명으로 끌어올렸다.
천혜의 섬을 골재채취구간으로 지정하다니?
어청도는 검은이마직박구리 국내 최초 발견 등 희귀 철새 266종의 안식처이다.어청도항에 사이좋게 서 있는 두 섬 농배섬은 고니 서식처이다. 희귀조류가 많아조류학자 닐 무어스 등 유럽 철새탐조 여행객들에게 더 유명한 섬이 어청도이기도 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청도에서 안타까운 모습을 목격했다. 군산에서 너무 멀리떨어져 여행객의 발길이 뜸한 것이다. 하루 두 차례 운행하던 여객선이 한 차례로줄어들었다. 94명 정원의 낡은 여객선이 저속으로 먼 바다를 오고가면서 불편이이만저만 아니다. 주민들은 차량을 선적할 수 있거나 1시간 30분 내에 오갈 수있는 쾌속선으로 교체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아무튼 천혜의 섬이 정부의 관심에서 멀어져 간 사이에 2001년 주민 428명이던 것이 2008년 3월 현재 행정서류상 280명으로 떨어졌다. 현재 실거주자는150명에 이른다. 역사와 문화적 자산이 풍부한 아름다운 어청도가 옛 명성을 되찾길 간절히 소망한다.
박상건 시인이자 여행칼럼니스트다.『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편집부장, 서울신문 편집자문위원, 신문발전위원회 연구위원, 문화부 올해의 잡지 선정 심사위원, 리얼TV 다큐멘터리 <섬과 바다> MC 등을 지냈다. 현재 KBS강릉라디오‘박상건의 섬 이야기’코너에 6년째 고정출연 중이고 사단법인 섬문화연구소 소장이자 계간『섬』, 인터넷신문 <섬과 문화> 발행인으로활동하고 있다. 또한 성균관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한국의섬과바다』『, 포구의아침』『, 빈손으로돌아와웃다』등다수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