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8 |
[테마기획 ] 서해의‘섬’_위도
관리자(2010-08-03 09:15:27)
서해의‘섬’_위도
쓸쓸해서 더욱 아름다운…
세계 최장(33.9km)의 새만금 방조제가 개통된 지 50여 일. 새만금 방조제에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있다. ‘바다의 만리장성’이라 불리는 이곳의 위용이 새삼 실감난다.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7월의 여름. 숨겨진 비경이가득하다는‘위도’를 찾았다. 위도에 가기 위해서는 전북 부안의 격포항에서 여객선을 타야 한다. 군산에서격포까지는 새만금 방조제 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위도’의 숨겨진 비경을 찾아서
한참을 달려 도착한 격포항. 그곳에서 하루5~6번 위도까지 운행하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여객선 뒤로 산산이 파도가 부서진다. 자연이 그리는 한 폭의 수채화다.‘위도(蝟島)’란 이름은 섬이 고슴도치 모양을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슴도치 모양의입 앞에는‘고슴도치 밥’으로 불리는 식도가 자리하고 있다. ‘위도’는 정금도, 상왕등도, 하왕등도 등 6개 유인도와 24개 무인도의 어미섬격이다.50분 남짓 지났을까. 여객선은 어느새 임수도앞바다를 지났다. 마침 함께 승선 한 관광객이“17년 전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가 난 곳”이라고설명했다.임수도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여객선은 파장금항에 닿았다. 여객선이 닿은 파장금항은 한때 대규모 조기 파시로 유명했던 곳이다. 이곳은 해마다 봄·가을이면 셀 수 없이 많은 조기떼가 몰려들어 황금어장이라 불렸다. 그때 그 시절, 파장금항은 만선의 꿈으로 가득 차 있었다.파장금 선착장을 지나 진리 쪽으로 향하는 길,서해 훼리호 위령탑이 보인다. 지난 1993년, 임수도 앞바다에 배 한 척이 침몰했다. 당시 사고로 292명이 목숨을 잃었다. 위령탑에는 당시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아로새겨졌다. 아직도 이곳에는 그때의 상흔이 선명하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
위도를 대표하는‘위도 해수욕장’을 찾았다.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도로를 달리니‘위도’의 빼어난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갖가지 모습을 지닌기암절벽이 천혜의 경관을 자랑한다.‘위도 해수욕장’은 고운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 곳이다. 이곳은깊숙한 만 안에 펼쳐진 단단한 모래밭이 유명하다.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아 해수욕을 즐기기에 그만이다.이밖에도 위도에는 영화 <해안선>과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지였던 논금,아담한 망월봉, 낚시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왕금도 등과 같은 숨은 비경이곳곳에 산재해 있다.때문일까. 일찍이 허균은 이곳‘위도’를 <홍길동전> 속 율도국의 모델로 삼은 바있다. 먼 옛날에도‘위도’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이상향의 땅이었던 것이다.마지막 목적지는 대리마을이다. 이곳은 매년 정월 초 사흗날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기원하고, 이런 염원을 띠배에 실어 보내는 풍어제를 성대하게 지낸다. 이 풍어제가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된‘위도 띠뱃놀이’다.
아름답지만 쓸쓸해서 더 그리운 곳
여객선에 오르기 전, 다시 한 번‘위도’를 돌아봤다. 산굽이 돌 때마다 펼쳐지는 그림같은 해안과 고즈넉한 풍경에서 쉽사리 눈을 뗄 수가 없다.위도에서 만난 김옥순 할머니(72)의 말이 자꾸 귓가를 맴돈다.“예전엔 여기도 사람이 많이 살았었지. 그때만 해도 고기가 잘 잡히니깐 고기잡아서 그것 팔아먹고 살았어. 그런디 인자는 사람보기 힘들어. 고기가 안 잡히니 다들 먹고 살라고 자꾸 여길 떠나.”어장의 쇠퇴와 서해 훼리호 사건 그리고 핵폐기장 유치 논란 등. 풍요의 기억이면에 남겨진 슬픔과 상처는‘위도’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그러나 그 모든 아픔과 상처에도‘위도’는 여전히 아름답다. 소박하지만 넉넉한 인심이 가득하고, 때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경관이 그림같이 펼쳐진 곳. 아름답지만 쓸쓸해서 더 그리운 그곳, 바로‘위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