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8 |
[신귀백 영화엿보기] 대부(代父1972)
관리자(2010-08-03 09:16:47)
거절할 수 없는 영화, The Godfather 대부(代父1972)의 귀환
▶▶시간의 질적 체험
<대부>가 보고 싶었다. 나는 말론 브란도가 보고 싶어서삼중당문고 한 권보다 극장표를 택했다. 그 해, 한국영화로장미희주연의<겨울여자>가히트를했고,‘ 유라잇업마이 라이프’와‘호텔 캘리포니아’가 첨으로 나오던 때였다.한국에서는 5년 늦게 개봉된 이 영화의 설명에는 많은형용사와 부사가 필요했다. 천편일률적 퀄리티를 가진 할리우드 영화들에 비해 나는 금세 이 악당에게 몰입되었다.극장에서 영화의 삼분의 일 이상을 잘랐기에 왜 영화 속 영화제작자 애마의 말목을 잘랐는지, 왜 저리 죽이는지 맥락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갱들의 전쟁 이면에는 이탈리아 이민들의 정착사를 깔고 있다는 것은 당연히 몰랐다. 단지 톨게이트에서 소니 꼴레오네가 기관총으로 피습당하던 장면과 마사지 숍에서 안경을 뚫는 총알 장면 등 상식을 벗어난 눈부신 폭력만 오래 남았었다.그리고 많은 시간들이 흘러갔다. 33년 전, 이리극장에서내가 본 검은 배경의 총질하던 장면들이 단순한 통속적 갱영화가 아니라 갱스터 영화의 기념비고 고전이었다니….이제 그 영화관은 헐렸고 성인 나이트클럽이 되었다.다시 <대부>가 보고 싶었다. 소장한 DVD가 집에 있지만 극장에서 보고 싶었다. 아무 때나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지만 나는 와이드 화면 앞에 내 몸을 묶고 싶었다. 시간의 질적 체험이 물리학으로 가능한 지점이 아니지만 인문학적 관점으로‘좋은 영화’는 이것이 가능한 시대 아닌가.김기영의 오리지널 <하녀 1960>가 디지털 복원된 것처럼,스티븐 스필버그가 이 필름을 디지털 리마스터링(필름을디지털로 아카이브화)한 것. 이‘검은 보석’때문에 나는2010년 7월 16일,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세 시간을기꺼이 묶여 있었다.
▶▶검은 방의 대부
검은색 바탕의 마리오네트가 드리워진‘마리오 푸조의<더 가드 파더>’로고가 뜬 다음에 그 검은 색 그대로 어두운 방, 이탈리아식 발음의 영어를 쓰는 한 남자의 살인 청탁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카메라는 듣는 이의 시선이고 그시선의 주인공이 바로 대부(代父)다. 자신의 딸이 미국인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딸을 범한 미국인은 인종차별 때문에집행유해를 받고 풀려났다며, 대부인 돈 비토 꼴레오네(말론 브란도)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청을 한다. 자유로운 나라 미국의 법보다 가까운 이탈리아 이민자의 고충해결사에게 그는 미국을 믿었다고 말한다. 경청하던 대부는 쉬운 복수보다는 인간사의 존경과 우정을 이야기하는데….블라인드로 가려진 월넛 가구의 검은 방에서 검은 색 턱시도의 대부는 정의를 요청하는 무시당한 자들의 방문에품성을 따지면서 그들의 문제 해결에 힘쓴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이민의 밑바닥을 헤친 모진 고생 끝에 재력과 백그라운드를 갖춘 뉴욕의 암흑가 보스로 군림하면서 힘없는 민간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에사람들은 그를‘대부’라 부른다. 검은 방에서 인물 하나하나를 바스트 샷으로 잡아가는 연출 기법은 영화를 보는 관객 자신이 패밀리의 방에 몰래 숨어 엿보는 느낌을 만들어내기에, 이제부터 관객은 마피아의 눈으로 화면을 응시하게 되는 것.검은 방이 주는 사적 공간의 내밀성은 갑자기 극도의 어둠에서 밝음으로 바뀌는데, 막내딸 코니 결혼식의 춤과 음악이 넘치는 화려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호화저택에서의결혼식 장면은 풍족하고 화려한 이탈리아 이민들의 가족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이자 패밀리들의 관계설정의 집합인데, 그 때 아마 이 부분을 뭉턱 잘랐을 것이다. 여기 거칠게 기자와 경찰을 다루는 형 소니의 모습 뒤에 해병장교 복장의 마이클(알 파치노)이 나타난다. 데려온 애인에게‘거절 못할 제안’을 하던 갱스터 아버지 이야기를 남의 일처럼이야기하는 풋풋한 청년 마이클. 어두운 공간과 파티가 오래도록 교차 편집되는 장면은 딸과 아버지의 춤으로 제1막이 내린다.
▶▶흔들리는 대부
비토의 양자인 한 물 간 가수 조니(프랭크 시나트라의 이야기라는 설이 있다)의 부탁으로 영화에 출연할 수 있도록영화제작자를 협박하기 위해 그가 사랑하는 종마의 목을잘라 밤사이 침대에 피투성이가 된 말 머리를 놓는다. 이것이 바로 돈 꼴레오네의 스타일인‘거절 못할 제안’인 것.비토의 대척점에서 경쟁하던 타탈리안 패밀리들은 현금,정치인, 경찰 동원능력이 뛰어난 비토에게 떠오르는 신흥사업인 마약판매를 위해 윗선을 대는 대가로 이익의 30%를 준다는 거래를 요청한다. 비토는 마약산업이 조직의 미래를 바꿔놓을 블루오션이란 것을 알지만 단박에 이것을거절한다. 도박과 매춘의 해악에 비해 마약은 더러운 사업이라는 것 그리고 이것이 조직을 공멸로 이끌 것이라는 게대부의 사회적 인식이다. 당장의 돈은 될 수 있지만 미국인특히 교회가 싫어한다는 이유를 대니 마피아의 눈으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감정이입은 지속될 수밖에. 그 거절로하여 영화가 시작한지 43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살인이벌어진다.제안을 거절한 이유로 비토는 거리에서 상대 조직으로부터 총알 세례를 받는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비토는 살아나지만 조직은 힘을 잃어간다. 불안과 신경쇠약의 대부는침대에 누워 아들 마이클 앞에서 눈물 흘린다. 관객은 이제마피아의 한 식구가 되어 그를 동정하게 되는 셈.이제 마이클이 나선다. 패밀리들의 역학구조를 간과하고복수심에 덤벙대는 후계자 소니에 비해 마이클은 이 지점이 감정 폭발 상황이 아니라 이것 역시 사업의 일부임을 금방 깨닫다. 마이클이 레스토랑 화장실에서 가져온 권총으로 솔론조와 경찰 반장의 머리에 총알을 박을 때, 지나가던기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린다.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오는 것. 마이클은 아버지의 고향 시칠리아로 잠수를 타고조직들은 계속되는 전쟁을 이어간다.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갈대밭에서 조직원을 처리하는 모습이라니….마이클은 이탈리아에 피신 가서 아리따운 처녀와 결혼을한다. 멍 자욱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칠리아에서 만난 아내가 폭사하고 형 소니가 벌집이 되어 죽는 처절한 과정 속에서 대부와 마이클은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진 상황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서투른 복수가 사업을 망하게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비토는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후 5개 패밀리의 회의를 주선한다. 그는 성조기가 걸린 회의실안에서 타 조직들과의 회합을 통해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마이클의 안전 귀가를 요청한다.큰 아들을 잃었지만 냉철한 자제력으로 이국에서 도바리생활을 하는 막내아들의 안전보장과 휴전을 제안하는 비토는 지쳐있지만 지혜로운 인물임을 보여주는 장면. 여기서그는 갱들의 그릇됨을 파악하면서 배신자가 누구인가를 알아낸다. 늙고 지친 사자가 포옹 속에서 상대의 그릇을 재고상대의 인정감을 자아내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아버지와 아들
마이클은 가족을 지킬 힘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귀국하여 아버지의 조직을 재건하는 일을 맡는다. 법학 전공에 장교 출신의 엘리트 돈 마이클 꼴레오네는 이제 음지의법을 따르는 마피아 보스의 길에 들어서는 것. 결혼을 하고가정을 꾸리는 반면에 점차 조직을 장악해 나가지만 중간보스들의 독립요구에 시달리는 마이클에게 비토는 말한다.“나는 너에게 이 일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마이클. 난 내평생 거물들의 꼭두각시가 되길 거부했어. 그게 내 방식이었다. 넌 그릇이 될 만해.네 형들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너는 자랑스러운 미국인으로써‘꼴레오네 상원의원’, ‘꼴레오네 주지사’그런 걸 상상했었어, 그런데, 시간이 없다,시간이….”돈 비토 꼴레오네 그는 냉혹한 마피아의 보스로 손에 피를 묻혀가며 더러운 바닥을 지키지만 사랑하는 막내아들마이클 만큼은 마피아의 길이 아닌 자신의 재력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지도자가 되길 바란‘아버지’였다. 눈만 껌벅이면서 말론 브란도가 가쁜 숨을 쉬면 관객들은 이 갱에게감정이입이 되어 그의 쓰러짐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적들이쓰러짐에 해방감을 느낀다.아버지를 혐오하며 살았던 시간을 접고 마이클은‘대부도 좋다’고 말한다. 이 때 아버지를 껴안은 아들에게 이야기 하는 공간은 나무와 숲과 하늘이 보이는 공간이다. 한말 또 하고 노파심을 늘어놓는 장면 그리고 저격당할 때,죽어갈 때만큼은 감독은 밝은 모습의 야외 신을 택하는 것.타고난 두뇌와 판단력 그리고 자제할 줄 아는 성품을 가진 가장 미국적 스타일의 인간으로 성장한 마이클은 조직의 보스로서 지속가능한 체제 유지를 위한 전단계로서 평탄작업인 가족의 복수와 패밀리의 재건에 나선다. 치밀하고 무자비한 계획들을 준비하는 이들 부자의 공통점이 있다면 절대 큰 소리가 없고 동작 또한 크지 않다는 것. 관객을 끌어들이고 공간을 지배하는 배우의 힘 아니겠는가.
▶▶제2의 대부, 마이클 꼴레오네
돈 비토 꼴레오네는 햇볕이 따뜻한 날 토마토가 익어가는 정원에서 손자의 재롱 속에 쓸쓸히 죽게 된다. 그의 장례식 때 적들은 마이클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몰락한 꼴레오네 패밀리의 숨통을 완전히 끊기 위한 상대 조직들의 연합에 마이클은 이 시기가‘결정적 시기’임을 인지하고 과단성과 뛰어난 전술로 임한다.조직 안에서조차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침착함과 폭력을 사용하는 적절한 타이밍에 대한 동물적 감각과 냉정함을 갖춘 마이클. 올백으로 빗어 올린 머리, 이글거리듯 빤히 바라보는 눈을 가진 마이클의 기획력과 판단력은 그야말로 전광석화다. 물론 이것을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은 마이클의 대사 아닌 눈 연기로만 보여주는데….성당의 세례식에서 누나 아이의 대부(다음 대 대부가 되는)를 서는 사이, 성당의 오르간 소리와 함께 교차되는 살육 신은 경이롭다. 장중한 교회음악 사운드가 성당 밖 화면으로 이어지는 세례식과 기관총 학살의 대비는 일찍이 영화사에 없던 죽음의 파티를 보여준다. 아이의 이마에 성수가 흐르는 장면에 이어지는 다섯 개 조직의 보스들을 섬멸하는 교차편집 장면은 소름과 함께 시각적 리듬감을 선사한다.검은 방에서 들어오는 측광으로 보스의 아우라를 뿜어대는 마이클은 피의 숙청을 끝낸 혁명가이자 제2창업자의모습을 보여줄 때, 아내는 묻는다. “당신이 정말 매형을 죽였느냐?”고, 이때 그는“당신에게 마지막으로 딱 한번 물을기회를 준다”고 말한다. 대답을 갈구하는 아내에게 그는“노”라고 대답한다. 아내가 나간 후 검은 방의 어두운 조명속 공적인 영역에서 피폐해진 사람들의 소청공간에서 임무를 완수한 부하와 접견인들이 그의 손에 키스를 하며 175분의 영화는 막이 내린다. 마이클 돈 꼴레오네 그가 이제‘대부’가 된 것이다.
▶▶사랑은 가도 영화는 남는 법
세월은 가도 영화는 남는다. 공간을 차단하는 영화관 안에서 되새김질하는 영화는 시간의 질적 체험을 가능하게하는 벽에 난 창문 같은 것. 총질의 미학과 시각성에 경도되던 날들이 흐른 후, 집에서 비디오로 이 영화를 곱씹을때는 미국식 천민자본주의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배신과 처단 등 다분히 정의적인 입장의 선과 악에 초점을 맞추고 보았었다.반듯했던 청년 알 파치노가 지친 노인의 모습이 된 지금,이제 남자의 영역으로 다시 <대부>를 본다. 철이 들었는지영화의 속도감보다는 블랙이 주는 절제미와 인간의 내면을꿰뚫는 인물 묘사의 섬세함과 카메라의 움직임이 다가왔다.과격과 분노 공격성 보다는 관용과 유순이 세상을 따뜻하게 한다. 하지만 세상은 가끔 수컷의 결기를 요구하는 시간들이 있는 법. 들어야 할 때 듣는 지혜, 복수에 앞서 분노를 억제하는 방법, 결단의 타이밍과 속마음을 드러내는 시점에 대한 장면들은 교과서는 못되어도 참고서 수준은 되리라.“ 그에게거절못할제안을하마”,“ 남앞에서네생각을 말하지 마”,“ 남자는 절대 약점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대부의‘어록’을 만날 공만 차는 아들놈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으니 나도 늙은 것일까?<대부>를 안 본 사람이 누가 있겠나? 권위주의적 가부장제를 싫어하는 세상의 딸들에게도 권한다. 권력과 정의의 가치전도(顚倒)라고? 안다. 하지만 <대부>의 지둔함과유현함을 견딜 줄 모르는 여인이 어찌 남자의 속을 알겠는가? 네루다의 시도 그렇지만 <일 포스티노>가 인류의 유산인 것처럼 <대부>는 우리가 지쳤거나 결기를 가다듬을때 다가갈 수 있는 서사시로서의 문화유산이니 살면서 몇번은 더 보아야 할 텍스트 아니겠는가.영화 속 니노 로타의 주제가는 후일 앤디 윌리엄스가‘스피크 소프틀리 러브’로 불렀고 오래도록 명곡으로 기억된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후일 이리극장 무대에서 벌어진‘김추자 쇼’에서 그녀의 목소리로 <대부>의 번안곡“다정한 그대 음성 하늘 가득히, 부드런 목소리가 나를 감싸네”하는 노래를 직접 귀로 들었다.